소설리스트

167화 (167/535)

“혹시 손녀분께서 신비 열병에 걸 리게 된 시기가 언제입니까?”

“미연이가 세상을 떠난 뒤였지.”

은미연.

은설아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손녀분의 어머니 이름이군요.”

“그래, 맞다.”

“따님의 신비 열병이 손녀분에게도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 요?”

“모른다. 말 그대로 ‘신비’는 인간 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이니까. 다만 미연이에게 깃들어있던 신비가 비슷

한 성질의 숙주인 설아에게 옮아갔 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저는 신비 열병의 원인이 누군가 의 주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술이라고?”

“이것과 비슷한 사례를 직접 본 적 이 있습니다. 주술의 힘에 사람이 죽고 그 자식에게 이어지는 강한 주 술을요. 물론 그 정도의 주술이라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테지만요. 제물

이라던가 신비와 관련된 도구도 있 어야 할 테고요.”

내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딸이 걸렸던 신비 열병이 누군가의 주술이라고?”

그때 은혜수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벌렸다.

“짐작되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딸이 예전에 주술에 관한 이야기 를 꺼낸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신비 열병이 걸리기 전이라 별생각 없이 넘어갔었지.”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그렇다면 더욱 주술의 가능성이 커지겠네요.”

“……주술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 했군. 주술이 맞다면 그 수많은 의 원이 모여도 병을 고치지 못한 것도 설명이 돼. 하지만 대체 누가?”

“그건 차차 알아봐야겠죠.”

은혜수는 홍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재밌는 추리다. 확실히 이전까지 봐왔던 의원들과는 느낌이 달라.”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요.”

“그래, 만약 네 말대로 신비 열병

의 원인이 누군가의 주술 때문이라 고 치자, 주술사는 어떤 방법으로 찾아낼 거지?”

“제가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내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첫 번째는 주술사를 유인하는 겁 니다.”

“유인?”

“네. 손녀분을 밖으로 내보내서 주 술사의 눈에 띄도록 하는 거죠. 누 군가에게 주술을 걸었다는 건 분명 그만큼 커다란 악감정을 가지고 있 다는 것. 무언가 반응을 보일 것입

니다.”

“하지만 단순히 밖으로 나온다고 해서 주술사가 설아를 찾아낸다는 것은 너무 가능성에만 의존한 이야기가 아닌가?”

“직접 찾아오게 만들면 되죠.”

“뭐?”

“유명해지면 알아서 찾아올 겁니다.”

이게 바로 원작에서 은설아의 신비 열병이 해결된 방법이었다.

은설아는 내년 마법사관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이며 단숨에 이서준, 유아라, 최서윤을 잇는 역대급

유망주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앓고 있는 신비 열 병에 관한 이야기 역시 퍼지게 되 고.

그 소식을 들은 주술사는 내년 특 별반 에피소드에서 정체를 숨기고 은설아에게 접근하게 된다.

“유명해져서 찾아오게 만든다라. 재밌구나. 하지만 네가 약속한 2일 내로는 불가능하겠군.”

원래라면 조금 의심받을 순 있겠지 만 2일 내로 주술사가 있는 장소로 쳐들어가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은혜수의 신뢰가 조금씩 차

오르는 지금 기간을 늘리는 것도 괜 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소중한 손 녀분의 일인데 2일이 중요합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 그럼 다음 방 법은 뭐지?”

“다음 방법은 돌아가신 따님분의 흔적을 조사해 주술사로 의심되는 자를 추적하는 겁니다.”

이건 그냥 해본 소리다.

은혜수의 홍미를 돋우고 추리를 그 럴듯하게 만들기 위한.

물론 원작에서 은설아 어머니의 혼 적 같은 건 언급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 방법이 사용될 일이 없 을 것이다.

은혜수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 다.

“흔적이라……

“역시 혼적이라고 할 만한 건 없겠 죠? 그럼 첫 번째 방법으로 찾

“ 있다.”

“네?”

“서울에 내 딸이 죽기 전에 사용하 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곳을 조사해 봐라.”

엥? 뭐, 서울?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거기서 병 의 원인으로 주술을 생각할 수 있 지?”

은월가의 정문 앞.

외출 준비를 마친 이서준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이것과 비슷한 사 례를 본 적 있다고. 그래서 추측한 거야.”

“대체 그런 사례는 어디서 보는 건 데?”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해?

“......그건.”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이서준 이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 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어디서 봤냐 니까.”

“……넌 몰라도 된다.”

“에휴. 비밀도 참 많다.”

이서준은 금세 포기한 둣 고개를

저었다.

이서준의 저런 사사로운 반응에 신 경 쓸 때가 아니다.

갑자기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겨나 버렸다.

은설아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공간.

이건 원작에서도 등장한 적 없던 건데.

원작 속 맥거핀 같은 것들을 경험 하게 된다는 건 언제나 기분이 이상 하다.

혹시 거기서 나도 모르는 특이한 걸 발견하는 게 아닐까 몰라.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사 이, 멀리서 은설아가 뛰어왔다.

옷은 평소와 다르게 현대적인 옷을 입고 있었다.

등에는 웬 작은 가방이 하나 들려 있는데 가방의 크기를 보아하니 공 간 마법이 걸린 가방인 것 같았다.

“죄송해요. 짐이 많아서 조금 늦었 어요. 또 할머니랑 얘기 좀 나누다 가……

은설아가 미안한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신경 쓰지 마.”

그때 은설아의 뒤로 은혜수가 모습 을 드러냈다. 은혜수는 나를 물끄러 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 내 도움은 필요 없나?”

“네, 괜찮습니다. 오히려 가주님이 끼어들면 주술사가 도망칠 겁니다. 최대한 허술한 모습을 보여야 녀석 이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요.”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

“할머니. 전 괜찮아요. 제 몸은 제 가 지킬게요.”

은혜수는 안쓰러움이 담긴 눈으로 은설아를 바라봤다.

“쯧. 그래.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 야 한다.”

은혜수는 은설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곤 내게 시선을 돌렸다.

“설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게 하 지 마라. 안 좋은 일이 생겼다가 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 보고 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은월가를 떠나 밖으 로 나왔다.

은설아는 잠시나마 가문을 떠나는 것이 처음인지 표정에서 설렘이 가 득했다.

“이대로 서울로 올라가는 건가요?”

“그래야지. 어머니의 흔적이 서울 에 있다고 하니까.”

내 말에 은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 본다.

나도 따라서 그녀의 시선을 마주치 는데 그녀가 내 시선을 피해 획 고 개를 숙였다. 그러곤 쭈뼛쭈뼛 말했다.

“……정말 어머니와 제 병의 원인

은 주술일까요?”

“내 생각에는 그래.”

은설아의 표정이 자칫 심각해졌다. 그러더니 약간 분기가 깃든 목소리 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건 직접 만나서 물어보자고.”

“……네. 그럴게요.”

은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동할까?”

우리는 포탈 게이트 방향으로 쭉 걸었다. 장소에 도착하자 은설아가

긴장된 표정으로 포탈 게이트를 바 라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포탈은 처음 사용해 봐서요.”

“포탈을 처음 사용해 본다고?”

“네.”

이 세계에서 포탈을 처음 사용해 본다는 건, 마치 현대에서 기차를 처음 타본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아니, 포탈 게이트가 훨씬 비싸니 그 정도는 아닌가?

“그럼 서울 가보는 것도 처음이 야?”

“네, 처음이에요. 그래서 떨려요.” 나는 풋 하고 웃었다.

이거 완전 시골 촌뜨기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169화

번쩍!

포탈 게이트를 타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하루도 안 돼서 돌아온 거지만, 높 은 빌딩들을 보자 이상하게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와…… 무슨 높은 건물이 이렇게 많이……

은설아는 서울의 풍경을 보며 빛냈다.

진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촌뜨기의 모습이라 반응이 꽤 귀엽 다.

“신기한가 보네.”

내 물음에 은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타임머신 타고 미래로 온 거 같아요. 건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마공학 시스템도 그렇고.”

어제와 다르게 말이 많아졌다. 뭔 가 들떠 보이기도 하고.

사실 나도 처음 이 세계로 떨어졌 을 때 저런 반응이긴 했다.

내가 알던 현실의 서울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라서.

“나도 볼 때마다 신기해.”

“네?”

은설아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말에 의문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신기하잖아. 인간이 어떻게 저런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을까.”

“아. 그렇죠.”

은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은미연 의 주소지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이서준이 문득 궁금한 듯 은설아에게 물었다.

“근데 어제부터 멀쩡해 보이는데 병 때문에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

“네, 지금은 괜찮아요. 이게 주기적 으로 열이 생기면서 아픈 시기가 있 거든요. 보통 한 달에 두 번 정도 그래요. 15일 간격으로.”

“그래? 특이하네. 그럼 다음 발병 일까지는 얼마나 남은 거야?”

“한 일주일 정도 남았어요.”

“일주일이라……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그때 은설아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제 병의 원인이 주술인 거 같다고 하셨잖아요. 만약 제 병의 원인이 주술 때문이라면. 주술사를 찾아낼 생각이신 가요?”

“당연하지.”

“찾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몰라. 내가 알기로 주술은 시전자

가 풀어내지 않으면 절대 풀리지 않 으니까.”

내 말에 은설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술사를 죽 여야 할 것이다.

그게 주술을 풀어내기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애초에 그 주술사의 정체를 생각해 보면 죽일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시간이 홀러.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금 방 도착했다.

“여긴가?”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낡은 빌라였다.

뭔가 음침한 것이 사람이 사는 곳 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도 이 주변에는 사람의 혼적 이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주소는 여기가 맞아.”

“여기가 어머니가 살던……

은설아가 멍한 눈으로 빌라를 바라 봤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가 살던 공간이라고 하니 여러 감상에 젖은 둣했다.

“들어갈까?”

“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은월가 소유의 건물이라고 들었는 데 꽤 오래 방치됐는지 낡아 보였다.

“203호. 여기네.”

끼이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5평 남짓한 원룸.

주변을 둘러보는데 딱히 주술의 단

서라고 할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 다.

“그냥 평범한 방 같은데?”

“그러게.”

맥거핀은 어디까지나 맥거핀인 건 가?

그렇게 쭉 둘러보는데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관학교 배경으로 교복을 입 은 학생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서준은 그것을 보더니 은설아에 게 물었다.

“어머니도 마법사관학교 학생이셨

어‘?”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보았다.

“.…”어?”

그때 이서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서준에게 다 가가 사진을 함께 보았다.

사진 속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진천우를 포함한 과거의 주요 인물 들이었다.

“같은 세대였구나.”

“은월 가주가 말했었잖아. 딸이 진 천우한테 빚을 졌다고.”

“아. 그랬었지?”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부터 궁금했는데 진천우 라면 자운의 전 리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때 은설아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서준은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은설아는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그 사람과 연관이 있었다니. 전혀 생각 못 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쭉 건물 내부를 살 폈다. 솔직히 주술사의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슬슬 모두가 지쳐갈 때쯤, 나는 잠 겨있는 서랍을 발견했다.

은은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이 보호 마법이 걸려있는 서랍이었다.

결계의 일종이기에 내 실력으로 손 쉽게 풀어낼 자신이 있었다.

나는 곧바로 마력을 주입했다.

내가 마력을 사용하자 이서준과 은

설아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 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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