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끝이네요.”
“ 아.”
모두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일이면 끝. 아틀란티스에서의 일정 이 내일 끝이 난다는 이야기다.
잠깐이지만 꿈같은 시간이었기에 모두가 아쉬움을 느꼈다.
“오후 7시에 돌아간다 했나?”
“네, 내일 오후 훈련이 끝날 때쯤 한국에 도착한다고 했어요.”
이서준의 물음에 송숭아가 답했다.
“그래? 아쉽네. 놀러 온 게 아니긴 해도.”
“헤헤. 아쉬우면 다음에 또 놀러 가면 되죠.”
송승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이서준이 아닌 최서윤이 반응했다.
그러곤 잠시 생각에 빠지는가 싶더 니 말했다.
“그러네. 아쉬우면 다음에 또 오면 되는구나.”
아까의 울적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눈을 불 태웠다.
“내년. 아니, 올해 겨울에 또 가죠! 훈련할 겸 해서.”
최서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 였다. 3일의 짧은 시간의 아쉬움을 느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김선우는? 걔도 가려나?”
“걔는 내가 책임지고 데려갈게.”
이서준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 했다. 그러자 신영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되겠어? 걔도 똥고집 장난 아니잖 아. 어디 놀러 가자고 하면 절대 안 놀고.”
똥고집이라는 표현에 이서준은 피 식 웃었다.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그것만큼 잘 표현한 게 없다.
“흠. 그래도 똥고집보다는 신비주 의라고 하자.”
“신비주의라…… 뭐, 신비주의 맞 기는 하지. 걔랑은 밥 한번 같이 먹 기도 힘드니까.”
쯧쯧. 신영준이 다시 한번 혀를 찼 다.
이서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면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선우를 잘 모르겠어. 하하.”
“뭔가 비밀이 많아 보이기는 하 지.”
“비밀…… 맞아요. 근데 실례될까 봐 굳이 안 물어보고 있어요. 뭔가 여러 사연도 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번엔 최서윤이 중얼거리듯 한마 디를 했다.
“그거 알아? 걔 평소 생활하는 거 보면 내내 훈련만 하는 거. 독기에 찬 것처럼.”
“그건 이미 유명하긴 하지.”
요즘은 전보다 덜 하긴 하지만, 예 전엔 정말 당장이라도 숨넘어갈 것 처럼 매일매일 극한의 체력 훈련을 하곤 했다.
그건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스러 워할 정도였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지금 김선우의 가파른 순위 상승에도 전교생들은 어느 정도 납득하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주말엔 또 항상 어디 나가서 뭔가 하더라.”
“어, 맞아. 걔 은근히 주말 약속이 많아.”
“몰래 누굴 만나나? 큭큭.”
그때였다. 음악이 멈추고 연주자들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공연이 끝났다.
짝짝짝짝.
힘찬 박수 소리가 광장 안을 크게 울렸다. 이내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 리에서 일어나 광장에서 빠져나왔다.
이서준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슬슬 가자.”
나는 아틀란티스의 지하 2충을 걷 고 있었다. 사건이 터질 장소인 만 큼 미리 눈에 익혀두기 위해서였다.
“흠.”
그런데 지하가 워낙 넓어야지.
지하 2층에서 사건이 터질 건 알 고 있는데 정확히 지하 2층의 어디 에서 사건이 터지는지는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아 알 방도가 없다.
나는 쭉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문패가
달린 수많은 문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하니 가지각 색의 결계가 주변에 펼쳐져 있는 것 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환영 마법도 있었고, 공 간 마법들도 있었다.
역시 아틀란티스의 심장과도 같은 장소이다 보니 마법적 장치로 단단 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쭉 길을 걷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발을 멈췄다.
“이건 나도 풀어내기 힘들겠는데.”
눈 앞에는 강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대충 보는데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느껴졌다. 아마 포세이돈에 의해 생 성된 마력이겠지.
손으로 만져 보려 하자, 마력이 마 치 탄력이 강한 젤리처럼 내 손을 튕겨냈다.
“어우, 엄청 강하네.”
마치 얼음 마법처럼 고체화된 느낌 이 들었다. 이 결계에 상상 이상의 마력이 담겨있다는 증거였다.
“흠.”
그나저나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사건에 개입 해서 얻을 이득이 없다.
물론 포세이돈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후 전개에 어마어마한 이점을 챙 길 수 있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자운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중요한 물건.
녀석들이 마음을 먹은 이상 지금의 내가 뭔 짓을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녀석들보다 먼저 포세이돈을 훔쳐내는 게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의 결계들이 신
비로 이루어져 있어, 나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열쇠 조각을 얻기 위해서는 원하는 가상 세계에 개입할 수 있어 야 하는데, 나에겐 자운이 소유한 ‘환상 개입기’와 같은 유물이 없다.
“......흐음.”
사실 ‘포세이돈’은 원작에서도 자 운이 갖게 될 물건인 만큼 빼앗긴다 고 해서 앞으로의 전개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예정된 사건이기도 하니 아 주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걱정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엘린’이다.
사건이 1년으로 앞당겨졌다.
지금의 엘린과 1년 뒤에 등장할 엘린의 강함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보다 1년이 지난 원작 속에서, 엘린은 자운을 상대로 어느 정도 호 각을 다투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 은 아니다.
신비가 담긴 장비로 무장되어 있지 도 않고, 룬의 일족의 비기라 할 수 있는 ‘룬의 속박’ 역시 아직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엘린이 자운과 붙게 된다 면.
어쩌면 주요 인물이 사망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건 피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빌런’인 한세진 밑에서 지내고 있기에 그녀 역시 지 금 당장은 ‘빌런’ 포지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자운의 악감 정을 가진 인물인 만큼 자운의 힘을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인물이기 때문이다.
“후우.”
그때 어디선가 발소리와 떠드는 목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몸을 피해 벽 뒤로
숨었다.
“이쪽인가? 너무 넓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목소리의 주인은 백은성이었다. 그 뒤로 베르트와 진, 스카, 헤더가 있었다.
“어? 결계 찾았다.”
백은성이 눈앞의 거대한 결계를 바 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뒤에 포세이돈이 있는 건 가.”
백은성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마도.”
“진, 열쇠 조각 꺼내 봐.”
진은 주머니에서 열쇠 조각인 ‘보 석’을 꺼냈다.
총 두 개였다.
“아직 두 개라 안 될 거야. 아직 하나가 남았으니까.”
“혹시 모르니 한 번 해봐.”
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보석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 작했다. 그것과 동시에 결계가 파도 처럼 출렁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출렁이기만 할 뿐, 결계는 열리지 않았다.
“오. 그래도 반웅은 하네.”
“말 그대로 반웅만 했네.”
갈색 단발머리의 여성, 헤더가 큭 큭 웃으며 말했다.
“됐어. 열쇠 조각이 진짜라는 걸 확인했잖아. 새벽에 남은 조각 가져 오자고.”
“그래. 그나저나 기대되네. 포세이 돈. 실제로 보면 얼마나 대단할까?”
진이 중얼거렸다.
“이번에 포세이돈을 획득하면 남은
신비는 몇 개지?”
“아마 6개 정도. 아, 7개네.”
“7개라.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
네. ‘그분’을 다시 뵐 그 날이……
베르트가 감격에 젖으며 말했다.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신을 그리워하는 신도들의 모 습.
그 말을 끝으로 자운 일행은 어디 론가 사라졌다.
나는 한 5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금
세 진정시켰다.
“……그럼 나도 올라갈까.”
나는 다시 1층으로 올라섰다.
계단을 타고 오르자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앳된 외모의 학생들은 마지막 밤을 불태우려는 듯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놀고 있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려는 순간 익 숙한 얼굴들을 마주쳤다.
“김 선우?”
이서준 일행이었다. 그들은 반가운 미소로 내게 다가왔다.
“숙소에서 쉰다더니 뭐하냐?”
“잠깐 답답해서 나왔어.”
대충 그럴싸하게 지어내서 말했다.
“그래? 나온 김에 같이 놀자. 우리 이제 마법 게임장 갈 건데. 응?”
이서준이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이서준을 빤히 바라보았 다. 앞으로 일어날 일 때문에 불안 해 죽겠는데 얘네는 참 태평하구나.
“하아.”
굴러야 하는 건 저놈인데 왜 내가 이러는 건지.
1년 뒤의 이서준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서 뭔가 도움이라도 됐을 텐데.
내가 한숨을 털어내자, 이서준이 기분 나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 다.
“뭐냐? 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 냐?”
시간이 홀러 새벽 무렵.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오전 2시.
대다수 사람은 잠들고 식당과 공연 장, 그 외 유홍 시설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사건이 터지는 건 아마 새벽 3시 쯤. 지금쯤 자운이 3번째 열쇠를 얻 기 위해 포세이돈이 만들어낸 가상 세계에서 열심히 열쇠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때 동안 내가 할 일은 없기에 난간에 몸을 걸쳐 밤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괜한 감성에 젖어 들었다.
동시에 여러 생각과 함께 걱정과 불안감이 생겨났다.
마인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1년 뒤에나 일어날 사건이 앞당겨지면서.
이번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에휴,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뒤를 돌아 4층 난간에서 1층 을 내려보았다.
새벽이지만 몇몇 사람들이 눈에 들 어왔다.
마지막 밤을 즐기는 일반인들의 모
습도 보였고, 인물 간파를 사용하자 정체를 숨긴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들인 엘린 일행과 자운의 모습들도 보였다.
그들은 평온은 연기하며 대화를 나 눴다.
그때 엘린 일행이 갑자기 모이더니 귀를 속닥이며 바쁘게 어디론가 이 동했다.
자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신 마 도구로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가 싶 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이제 시작인가.”
지하 2충.
열쇠가 빛을 발하고, 결계가 풀려
났다.
포세이돈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굳 건한 결계가 해체된 것이다.
“드디어……
백은성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
다. 남은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탄할 시간 없어. 빠르게 회수하
고 도망쳐야 해.”
진이 침착성을 유지한 목소리로 말
했다.
“어어. 가자!”
자운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지하에 붉은빛이 번쩍이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위이이이잉——
[긴급 상황 발생!]
[엔진실 결계에 침입자 발견!]
음성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러나 자운은 신경 쓰지 않는 움
직임으로 앞으로 쭉 달려나갔다.
그렇게 앞으로 달릴수록 그들은 점 차 주변의 마력이 짙고 강해지는 것 을 느꼈다.
마력이 몸에 닿자 약에 취한 둣 몽환적인 기분까지 들었다.
“엄청난 마력이네.”
진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전설로만 전해지던 포세이돈 답게 장소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도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고성능의 마도구와 마공학 장치 사
이에서 혼자 중력을 무시하듯 부유 하고 있는 푸른 빛의 돌을 발견했다.
돌의 모형은 마치 파도를 연상시켰 다.
“……드디어 찾았다. 포세이돈.”
그때 어디선가 무구를 든 보안 요 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을 뿜 어내고 있는 게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였다.
“누구냐?!”
보안 요원의 외침에 진은 백은성에 게 눈짓했다.
“처리해.”
백은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쥔 창을 휘둘렀다.
카앙!
그러나 백은성의 공격은 보안 요원 의 장막 마법에 생각보다 쉽게 막혔 다.
“뭐야. 제법 하는데?”
백은성은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짓 더니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못해도 A등급 이상은 되나 보군. 단순히 보안 인력으로 썩히기에는 많이 아까운 실력인데.”
백은성이 다가가자 보안 요원들의
표정히 싸늘하게 굳었다.
방금의 공격으로 어렴풋이 그가 가 진 실력을 눈치챈 것이다.
최소 S등급 이상의 마법사.
그리고 창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외 형을 보았을 때, S등급의 무기, ‘방 천화극’이 분명했다.
“서, 설마 자운?”
“정답이다.”
파직一!
백은성의 창이 다시 휘둘러졌다.
피가 바닥을 적셨다. 가장 선두에 있던 보안 요원은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뒤에서 그것을 지켜본 남은 보안 요원들은 큰 충격을 받으며 뒷걸음 을 쳤다.
“어, 어떻게 저런……?”
쿠우우^——
배가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배 안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짙은 어둠이 드리우고 그 속에서 진이 말했다.
“포세이돈 회수 완료.”
[동력실, ‘신비’ 감지에 문제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