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535)

겠네. 저기요. 공부 안 하세요?”

송승아가 최서윤을 찌릿 노려보며 말했다. 최서윤은 송승아를 바라보 더니 ‘미안.’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곤 다시 펜을 잡아 공부를 시 작하려나 싶더니 얼마 안 가 또다시 다른 생각에 빠졌다.

“……너무 부담스럽게 굴었나.”

최서윤은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김선우밖에 없었다.

최근 자신을 대하는 게 미묘하게 달라진 김선우의 태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김선우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있 다는 것을.

기점은 바로 불꽃 축제 이후. 분위

기에 취해 흔자 쓸데없는 말을 해버 린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진짜 왜 그랬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끄..”

O .

“아 진짜. 똥 마려우면 화장실이라 도 가라고.”

최서윤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송승아는 손에 쥔 펜을 내려놓 더니 팔짱을 끼었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

“아냐 아무것도.”

“김선우 선배님 때문에 그래?”

“으웅? 아, 아니?”

최서윤의 더듬는 말에 송승아가 눈 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너 혹시 불꽃 축제 때 차였냐?”

최서윤은 순간 어깨를 움찔했다.

차였냐니.

고백하지 않았으니 차이진 않았다. 차임이 성립되려면 고백을 해야 하 는 거니까.

근데 생각해보면 이건 사실상 차인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말로만 듣던 0고백 1차임.

최서윤이 대답하지 않자, 오히려 당황한 건 송승아였다.

“와. 대박. 진짜?”

“아, 아냐. 안 차였어. 내가 뭘 차 여‘?”

“차였네. 딱 보니까 분위기에 휩쓸 려서 별 이상한 소리 다 했네.”

“……아니라고.”

최서윤은 그렇게 말하며 책에 머리 를 박았다. 송승아는 안쓰러운 얼굴

로 최서윤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에휴. 됐어. 잊어.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지. 근데 그 선배님도 눈 진짜 높다. 최서윤을 거르네.”

눈이 높다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당장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만 봐도 유아라 선배님, 윤하영 선배님이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죽었지만, 김선 우 선배가 한때 좋아했던 박민예 선 배도 있었고.

그러고 보니 박민예 선배가 마인으 로 밝혀졌을 때.

김선우 선배님은 어떤 기분이었을

까.

“승아야.”

“웅?”

“……혹시 좋아했던 사람이 잘 대 해줬는데, 알고 보니 이용당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떨 거 같아?”

“뭔 소리야? 너 이용당했냐?”

“아니, 그냥 어떨 것 같냐고.”

“어떻긴. 사람을 못 믿게 되겠지.”

역시.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마음 의 문을 닫고 사람의 작은 호의에도 의심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김선우 선배님

도…….

이 현실을 피하고 싶은 최서윤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늦은 밤.

모든 훈련을 마친 나는 공원 조명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윤하영이 밝게 웃으며 내게 달

려오고 있었다.

“할 얘기라는 게 뭐야?”

“아니, 이제 곧 시험이잖아. 그거 관련해서 말해줄 게 있어서.”

내 말에 윤하영이 의문에 찬 표정 을 지었다.

“이번 시험에서 동행이 가능한 건 알고 있지?”

“당연히 알지. 근데 왜?”

“아니, 이번 시험 때 동행이나 하 자고.”

“아

윤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좋지. 근데 위치 배정이 랜 덤이라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나, 나 는 고개를 저었다.

“약속 장소를 미리 정하면 돼.”

“약속 장소?”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꺼내 화면을 터치했다.

“이번에 공개된 던전 내부의 지도 야.”

지도에 공개된 던전은 마치 개미굴 처럼 여러 갈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한다면 한 장소에 모든 학생이 모이는 것도 가능했다.

이 모든 건 마인의 계획을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잘 보면 필연적으로 모이게 되는 포인트들이 몇 군데 있어.”

화면을 유심히 보던 윤하영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러네?”

“이쪽에서 만나자.”

나는 손가락으로 포인트 한곳을 가 리켰다.

위치는 던전의 중앙쯤이었다. 처음

어느 위치에 배정받더라도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을 만한 장소.

윤하영은 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난 상관없기는 한데, 내가 늦 게 도착할까 봐 조금 걱정이네. 그 럼 선우 너만 손해잖아. 공략 시간 늦춰지면 어떡해?”

“그건 신경 안 써도 돼.”

어차피 이번 시험의 점수는 테러로 인해 반영되지 않을 예정이니까.

“아, 그리고 이건 좀 뜬금없는 말 인데. 던전에서 만약 누군가를 마주 치게 된다면……

윤하영이 궁금증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이서준이나 유아라 같은 정말 믿 을 수 있는 애가 아니면 무조건 경 계해.”

다음 날 방과 후. 최일현과의 1:1 실전 지도를 마친 나는 바닥에 대자 로 누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째 훈련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심지어 마력이 아닌 자꾸

체술만 강요하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체력 스텟이 엄청 높아서 웬만하면 지치지 않는 몸인데도 그럴 정도면 말 다 했지.

[‘강화계 기본 체술(C)’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가르침’의 영향으로 강화계 기본 체술이 ‘최일현류 체술’로 진화됩니다.]

[감각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집니 다!]

[‘체술 습득’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그렇게 누워서 쉬고 있는데 의문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바라보 았다.

……이건 또 뭐야.

특성이 진화했다.

최일현류 체술.

강화계 기본 체술에서 엄청 구린 이름으로 바뀌었다.

보아하니 별다른 변화는 없고, 메 시지에 적힌 대로 감각이 조금 날카 로워지는 수준인 것 같았다.

내가 직접 습득해서 차이를 못 느 끼는 건가?

쩝. 뭔가 아쉽지만 포인트를 얻었 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나는 슬쩍 최일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격한 체력 훈련이 있었음에도 최일 현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평화로웠다.

그때 최일현과 눈이 마주쳤다. 최 일현은 내 눈을 빤히 마주 보더니 턱의 수염을 매만졌다.

“흠. 이상하네.”

“……뭐가요?”

“아니, 실력이랑 센스는 나쁘지 않 은데, 뭐라 해야 하지. 재능이 생각 보다 없네.”

재능 부족한 거 맞다. 그래서 아득 바득 포인트에 집착하는 거기도 하 고.

“뭐, 그런 점도 마음에 들지만. 내

가 재능 넘치는 애들을 안 좋아하거 든.”

“아, 예……

뭐라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암튼, 오늘 훈련은 끝이죠?”

“어어, 끝이다. 가려면 가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 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훈련장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기숙사 방향으로 쭉 전진했

다.

삐빅.

시간이 지나 기숙사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그레텔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레텔, 기다렸어?”

그레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테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살(?) 이라도 쪘는지 어째 전보다 무게감 이 느껴진다.

몸이 좀 커졌나?

자세히 보니 몸집이 약간이지만 커 지긴 했다.

그리고 머리의 나뭇가지에도 처음 에는 이파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는 데 지금은 녹색 빛으로 풍성해졌다.

“그레텔, 너…… 풍성충이었구나?”

내 말을 이해 못 한 듯 그레텔이 고개를 갸웃했다.

“축복받으며 태어났다는 뜻이야.”

“응애.”

축복받았다고 하니 밝게 웃으며 좋 아한다. 나도 따라 웃으며 그레텔을 내려놨다.

그러곤 샤워실로 들어가 몸을 깨끗 이 씻어냈다.

“후우.”

샤워를 마치고 냉장고에서 맥주캔 을 꺼내 쭈욱 들이켰다. 동시에 행 복감이 차올랐다.

“으. 시원해.”

나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그레텔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맥주 캔을 바라봤다.

“이건 안돼.”

단호하게 말하자 그레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시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켰다.

딱히 연락이 오거나 한 건 없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주요 등장인물들 의 메시지 프로필을 확인했다.

다들 자신 있게 자신의 얼굴을 박 아놓은 모습이다.

이서준은 훈련 중인 자신의 모습을 걸어놨고, 이현주는 유령의 섬에서 이서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놨 다.

보정 하나 안 했는데 더럽게 잘생 기고 이쁘다.

그렇게 프로필을 쭉 둘러보다가 최 서윤의 프로필에서 손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최근 최서윤에게 연락 이 오지 않았구나.

전에는 매일 메시지 하나씩은 왔었 는데.

아마 눈치 빠른 그녀답게 내가 거 리를 두려고 했던 행동들을 눈치챘 던 거겠지.

“……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최서윤이 주요 등장인물인 만큼 이 런 식으로 불편해지는 건 원하지 않 았는데.

나 혼자의 착각으로. 사실 별일 아

니었는데 내가 오바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기적인 합리화일 지도 모 른다. 하지만 내 손은 저절로 그녀 의 메신저 프로필을 선택했다.

프로필에 들어가자 평소에 걸려 있 던 송승아와의 셀카가 내려져 있었다.

대화 창에는 5일 전 내 읽씹 이후 로 대화가 없었다.

쭉 기록을 살펴보는데 대다수가 읽 씹 혹은 단답이다. 그럼에도 꾸준하 게도 메시지를 보냈었네.

“……메시지나 보내볼까.”

최서윤에게 선톡하는 건 아마 이번 이 처음인 것 같은데.

[내일 특별반이네. 잘해보자.]

짧고 담백한 문구. 이거면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전송을 눌렀다.

“웅?”

근데 메시지 옆에 1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메시지 를 바로 읽었다는 뜻이다.

“뭐야.”

대화 창을 켜놓고 있던 건가?

[등장인물 ‘최서윤’이 당신의 행동 에 크게 당황합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그때 최서윤한테 메시지가 도착했다.

[?서 H 내님]

[선배님한테 메시지 보내려고 했는 데]

[우연 O 네]

마치 당황하기라도 한 듯, 메시지 가 계속해서 날아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그나마 평소와 다른 일이 있었다 면, 특별반 소집에 다녀오고 윤하영 과 특수 훈련 시설에 방문해, 악마 형 몬스터 상대로 멸마의 힘을 훈련

한 정도였다.

그 외에 몇 가지 사건이 또 있다 면, 우려했던 대로 김진우와 한세연 의 관계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는 거다.

연애 스캔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절친한 친구’, ‘함께 술 마시는 사 이’라는 기사가 하나둘씩 떠올랐다.

동시에 나를 향한 악성 댓글도 꽤 나 달렸다.

[사귀는 건 아닐 둣거 거 여자 쪽이 너무 아까움]

[진짜 남자 쪽 너무 별론데 긔긔

솔직히 제정신이면 한세연이 김진우 는 안 만나지 긔 키

[아. 한세연이랑 술친구. 김진우 XX 진짜 욕 나오네거 거]

[세계 최악의 마법사 김진우]

덕분에 포인트가 꽤 쌓였다. 수많 은 빌런을 잡아내고, 사건을 해결했 을 때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했다.

한세연과의 기사 하나만으로 무려 8천 포인트를 벌어냈다.

한세연에 대한 대증들의 관심이 내 상상을 초월했다.

[진우 씨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해 서 미안해요.]

한세연은 이 상황이 미안한지 내게 거듭 사과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포인트를 벌어 냈기에 그저 기분 좋을 뿐이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기사를 더 퍼트 려볼까 고민하다가 과거 ‘박제’ 사 건이 떠올라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세연에게 폐를 끼치고 싶 지도 않았고.

어찌 됐든 시간이 홀러, 2차 중간 시험 당일이 되었다.

이론 시험은 어제 모두 마쳤고 이 제는 실기 시험만 치르면 된다.

“자, 이제 2차 중간시험의 메인 시 험인 ‘단체 던전 공략’을 시작하겠 다.”

150명의 학생은 학교에 새로 설립 된 신식 ‘인공 던전’ 앞에 모였다.

나는 학생들을 쭉 둘러보다가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 인물인 ‘원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으~ 던전 시험 귀찮은데.”

옆에서 신영준이 기지개를 켜며 중 얼거렸다.

그 옆의 이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왜 하필 던전 공략 시험 인지.”

“엉? 웬일로 자신감이 없어?”

“저기 공략 시험 1등 전문가가 있 잖아.”

이서준이 힐끔 나를 바라보며 중얼 거렸다. 눈이 마주치자 괜히 뻘쭘해 서 말을 걸었다.

“야. 1등에 미련 갖지 말고 안전하 게 공략할 생각이나 해.”

앞으로 있을 사건의 위험성을 생각 해서 한 말이지만 이서준은 내 말을 다르게 이해한 둣 피식 웃었다.

“뭐냐? 견제하는 거야?”

“……견제는 무슨.”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슬슬 이번 사건의 빌런들을 파악할 때가 되었다.

나는 150명 학생 하나 하나에게 인물 간파를 사용해 인피면구로 정 체를 숨긴 마인들을 찾아내었다.

숫자는 총 3명.

원혁을 제외하면 등급은 B와 A였다.

적은 숫자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들의 등급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 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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