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535)

최일현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피어 올랐다. 저 사람 즐기고 있다.

“좋아 좋아. 좀 더 진심으로 해봐. 그래, 한 대라도 유효타를 맞추면 선물 줄게. 내 입에서 억. 소리 한 번이라도 나오게 해봐.”

“……선물 뭐요?”

“뭐 갖고 싶은 거 있냐? 어차피 한대도 못 맞출 텐데 크게 불러.”

“그럼 선물 말고 소원으로 하죠.”

최일현이 피식 웃었다.

“소원. 그래. 소원으로 해주지. 제 자님이 한대 맞추셨다는데 그 정도 쯤이야.”

나는 씨익 웃었다.

한대…….

과연 할 수 있을까. 물론 소원이 걸리니 오기가 생기기는 한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나도 최근에 연습해둔 신기술이 있으니.

“갑니다.”

“그래.”

나는 5개의 마법을 방출함과 동시 에 최일현을 향해 달려갔다.

최일현은 장막을 펼쳐 공격을 차단 했다. 그리고 나의 접근을 기다렸다.

나는 마력으로 다리를 강화해 휘둘 렀다. 그러나 최일현이 내 다리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곧바로 반대 발로 최일현의 머리를 노렸고 그의 시야 사각에서 마법 구체를 구현해 방출했다.

“제법이지만!”

최일현이 깔끔하게 모든 공격을 피 했다.

“뻔해!”

내 공격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이런 방식 의 공격을 이었다.

육탄전과 중간중간 섞어주는 마법 방출. 최일현이 내 움직임에 익숙해 지도록.

그렇게 최일현이 슬슬 지루함을 느 끼려는 그때.

‘지금이다!’

두근!

대자연의 심장과 투쟁심을 발동했다.

여러 능력이 중첩되자 신체가 가벼

워지고, 힘이 느껴졌다. 거기다 마력 으로 신체를 몇 단계 더 강화했다.

내 움직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순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 공격 을 시도하는 것.

그것이 그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한 내 계획이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한 바퀴 돌려 발차기를 했다.

그리고 최일현 역시 나의 변화를 느낀 듯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발이 최일현의 머리카락을 스쳤 다.

어찌 보면 내 공격을 최소한의 움 직임으로 피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 지만, 방금은 ‘겨우’ 피해낸 것이 옳 은 표현일 것이다.

다음으로 ‘순간 가속’을 발동했다.

일순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최일현의 움직임이 전보다 느리게 보이고 작은 빈틈이 눈에 들어왔다.

“하앗!”

나는 손 위로 마법 구체를 새롭게 구현했다.

구현된 마법 구체가 최일현의 배를

향해 쏘아졌다.

“큭!”

달라진 내 움직임에 놀란 최일현은 당황하며 장막을 펼쳤다.

동시에 내 몸이 장막에 크게 밀려 나갔다. 그 타이밍에 맞춰서 대자연 의 손아귀를 이용해 자연의 마력으 로 최일현의 한쪽 다리를 살짝 밀쳤 다.

그리고 그의 신체 균형이 예상치 못한 힘에 살짝 흐트러지자.

빠악!

“억!”

마력의 원기둥이 바닥에서 솟구치 며 최일현의 배를 강타했다.

주말 간 유아라와 함께 연습해온 나의 보조 형태인 ‘원기둥’.

내가 이런 걸 사용한다는 건 몰랐 을 거다.

최일현의 표정에 잠시 당황이 일었다.

“……엉?”

“휴. 드디어 성공했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 좋

은 떨림을 느꼈다.

“제가 이긴 거 맞죠? 방금 억! 소 리 낸 거 다 들었어요.”

내 대답에 최일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엉? 이라고 했는데?”

추일현이 최하게 말했다.

“뭔 소리예요. 억. 소리 똑똑히 들 었구만.”

“엉? 이라고 했다고. 억! 이 아니 라.”

추일현이 눈을 찌푸리며 우긴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와. 진짜 추하네.”

내가 정색하자 최일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다. 네가 이겼다. 됐냐?”

최일현이 드디어 패배를 인정했다.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소원이 뭐냐?”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무슨 소원을 말하려고. 쯧.”

최일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낭패라 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방과 후.

이서준과 이현주는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서울로 향했다. 유령의 섬을 다녀오고 그들은 어떤 단체에 일 하 나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서울 외곽의 한 정보 길드.

문을 열자 직원이 그들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의뢰하신 이서준 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직원이 이서준의 얼굴을 보더니 살 짝 놀랐다.

“어? 이름 보고 혹시나 했는데 마법사관학교 이서준 님?”

“네. 맞습니다.”

“이야. 의뢰인이 이런 유명인이실 줄 몰랐네.”

직원이 싱글벙글 웃었다.

“자자, 여기 앉으시죠.”

이서준과 이현주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부탁하신 ‘이윤경’의 신상

정보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최일현 과 동시대에 마법사관학교를 재학했 던 이윤경이라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서준은 서류를 받았다.

“별다른 정보는 없었습니다. 눈에 띄는 특별한 배경도 보이지 않았고 요.”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내 용을 확인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이윤경’의 정 보에는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평범했다.

마법사관학교 성적은 4위로 최상위 권에 속하긴 했지만.

“……그리고 원래라면 조사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 게 나와 야 합니다만, 생각보다 이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조금 특이한 케이스긴 합니다.”

2006년 마법사관학교 졸업

2007년 서울 특무팀 활동

2009년 사망

사망 당시 나이는 23세.

“……잠깐.”

이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2009년 사망이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또 특이한

게 정확한 사망 원인이 나오지 않습니다. 특무팀에서는 사고사라고 하 고 있긴 합니다만.”

이서준의 표정에 의문이 깃들었다.

그 옆의 이현주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정보 길드면서 제대로 조사 된 게 없어요?”

“하하. 저희도 이런 케이스는 거의 없어서. 하지만 ‘조사해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정보가 될 수가 있기도 하죠.”

일단 알겠습니다.”

이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현주도 그를 따라갔다.

“아무래도 나랑 관련 없는 사람인가 보네. 그냥 나랑 닮은 사람인가 봐.”

“응? 어떻게 확신해? 그렇다고 하 기엔 너무 닮았는데.”

“2009년에 사망했다잖아.”

“그게 왜?”

“우리 2015년생이야.”

“……아!”

이현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네. 시기가 맞지 않는구나.”

“아니면, 최일현 님에게 직접 물어 보는 것도 방법이고.”

사실 다른 길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이윤경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은 가 까이에 있으니까.

금요일 밤.

모두가 즐거워하는 주말을 앞둔 지 금.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고 공허함과 꿀꿀한 기분만 들었다.

그새 불면중이라도 생긴 건가. 최 근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괜히 혼자 어이없어서 코웃음을 치

다가 슬쩍 스마트 학생 수첩을 보았 다.

3분 전 최서윤에게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선배님 자요?]

[요즘 바쁘신가 보다]

답장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만두 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불꽃 축제에서의 일 이후, 은근히 그녀를 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티 나게 피하고 다닌다거 나 그런 건 아니고, 본인이 눈치채 지 못할 정도로만…….

최서윤이 싫어졌다거나 불편해졌다 는 게 아니다. 그냥 그 애를 보고 있으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머리가 복잡해져서 나도 모르게 피 하게 됐다.

그리고 나도 눈치가 있다. 최서윤 이 최근 내게 대하는 태도며, 친근 한 행동.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 빛.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겠 지.

이렇게 피하는 게 비겁하다고 생각 할 수 있겠으나 나로서는 이것 외에 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의문도 생겨났 다.

내가 이 세계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여유를 가져도 되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세계 에서.

이서준의 죽음으로 리셋 될지. 멸 망할지도 모르는 이 불안정한 세계 에서.

주변 사람마저 진짜인지 가짜인지 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정을 준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만약 이서준의 죽음으로 세계가 리셋 되어 버린다면.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런 복잡한 생각에 휩싸여서 괜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보면 철학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구는 중2병에 걸렸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원래 내가 살 던 세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부모님, 가족, 친구들.

마법 따위 없는 원래 나의 세계.

고향의 그리움은 1회차 때 이미 졸업했지만 최근 여러 일을 겪다 보 니 나도 모르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 리게 된다.

“후우.…”

우울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자 그레텔이 잠시 잠에서 깨더니 내게 다가왔다.

“웅애

졸린 목소리로 내게 안긴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레텔의 등 을 쓰다듬었다.

그레텔은 다시 잠들었다. 조심히 침대에 눕혔다.

“……잠깐 밤공기 좀 쐴까.”

그러자. 기분도 싱숭생숭한데.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니까 조금 늦 게 자도 괜찮겠지.

그렇게 밖으로 나와 공원을 쭉 걷 는데 벤치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 을 마주쳤다.

“김 선우?”

이서준이었다.

“이서준, 뭐하냐?”

“그냥. 머리가 복잡해서 바람 좀

쐬러 나왔어.”

나는 피식 웃었다.

머리가 복잡하다라.

사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장면이 묘사된 적이 없다.

이럴 때 나는 이 세계가 진짜라고 믿고 싶게 된다.

“무슨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뭐, 여러 가지......

보나 마나 이윤경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한 거겠지.

나는 이서준 옆에 털썩 앉았다.

“이윤경이라는 사람 때문이냐?”

내 직설적인 물음에 이서준의 표정 이 살짝 굳었다.

어차피 이윤경은 유령의 섬에서 나 도 보았으니 굳이 모른 척할 필요는 없었다.

“독심술이라도 쓰냐?”

“얼굴에 다 쓰여있어.”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윤경, 아마 네 어머니가 맞을 거야.”

내 말에 이서준이 의문에 찬 시선

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근거로?”

“내가 촉이 진짜 좋은데. 그런 느 낌이 와. 그리고 둘이 그렇게 닮았 는데 아닌 게 말이 안 되지.”

“그게 뭐야. 그렇게 따지면 너도 똑같이 생긴 사람 있잖아. 김진우 마법사. 너도 그럼 그 사람이랑 가 족이냐?”

어?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는 데.

“아니, 나랑 너랑 같냐? 나는 혼하 게 생겼는데 너는 혼하지 않잖아.”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유

야? 뭐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 야지.”

“에휴. 맘대로 생각해라.”

그때 이서준이 잠시 입을 다물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 었다.

“그리고 그 사람, 2009년에 죽은 사람이래. 시기상 내 어머니일 수가 없어.”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서준에게 힌트를 어디까지 줘도 되는 걸까.

1회차를 겪은 지금의 나는 원작의 흐름대로 한가롭게 엔딩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의 개입으로 엔딩을 앞당길 수 있을까.

“2009년에 죽은 사람이지만 네가 2015년에 태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 이 아니야.”

“그게 뭔 소리야?”

“신비.”

내 말에 이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신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어.”

“너는 이윤경이란 사람과 내 사이 에 신비가 개입되었다는 얘기야?’’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말하는 거 야.”

이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당 장 내가 줄 수 있는 힌트는 여기까 지다.

너무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신비라.”

이서준은 내 말에 깊은 고민에 빠 졌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 었으니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질 테 지.

“이서준.”

이서준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런 그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네 부모님이 누군지 알고 싶은 거지?”

나는 이서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같이 찾자. 내가 도와줄게.”

지난 주말은 이서준에게 꽤 힘든 시간이었다. 이윤경과 관련하여 생 겨난 여러 의문으로 정상적인 생활

을 할 수 없었다.

역시 최일현에게 묻는 게 정답이었지만 연락할 수단이 없어 방법이 없었다.

김선우 역시 연락처를 모른다 해서 방법이 없기도 했고. 결국 이서준은 오늘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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