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535)

“목 안 마르세요? 마실 거라도 사 을까 해서.”

마실 거라. 뭔가 한강 축제 나온 기분이라 맥주가 살짝 당기기는 하 지만 이 신분으론 그럴 순 없으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됐어.”

“으음. 알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자꾸 가

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서늘한 밤공기.

은은한 풀 내음.

시끌시끌한 음악 소리.

사이 좋게 폭죽이 터지기를 기다리 는 모습까지.

무슨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아 서. 괜히 더 간질간질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유령을 봤었잖아요.”

그때 최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느꼈는데 선배님들한테

특이한 과거가 하나씩 있는 거 같더 라고요.”

갑자기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무 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궁금해서 최서윤을 바라봤다.

“가끔 선배들끼리 대화하는 걸 듣 는데 무슨 대화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선배님이랑 유아라 선배님이 대화하 는 걸 볼 때라던가.”

나는 다문 입을 열었다.

“너 저번부터 뭔가 오해하는데, 나 걔랑 별거 없어. 그리고 그걸 뭐하 러 궁금해하냐?”

내 대답에 최서윤이 힐끔 나를 바 라봤다.

“왜요. 궁금할 수도 있지. 이렇게 불꽃도 함께 볼 만큼 친해졌는데.”

최서윤이 작게 웃으며 자신의 양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러다 보니 뭔가 섭섭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죠. 선배님들은 저랑은 다 르게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거잖아요.”

그러더니 담백한 목소리로 한마디 를 덧 붙였다.

“그냥 그렇다고요.”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증얼거렸다.

“나도 1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좋았 을 텐데.”

피융-

폭죽이 쏘아지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이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 부신 불빛이 밤하늘을 환하게 밝 혔다.

나와 최서윤은 말없이 폭죽을 감상 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빛의 향연은 마력이 담겨있어 일반적인 폭죽과는 감동이 다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최서윤을 바라보 았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라지는 폭죽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기숙사 문을 열자 그레텔이 짧은 다리로 내게 뛰어왔다. 나는 그레텔 의 몸통을 잡고는 들어 올렸다.

“그레텔. 기다렸어?”

그레텔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아까 불꽃 축제 봤어? 엄청 멋졌 는데.”

“응애.”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목소리 톤 이 활기차니 봤다고 해석하면 되려 나.

“아, 맞다. 그레텔 먹으라고 맛있는 거 사 왔어.”

나는 축제 기간에 길거리에서 판매 하는 음식들을 꺼냈다.

닭꼬치, 떡볶이, 오징어볶음 둥둥.

그레텔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신 난 손짓으로 닭꼬치를 집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입에 물었다.

우물우물. 그레텔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맛있어?”

“응애!”

힘찬 대답에 절로 기분 좋은 미소 가 지어졌다.

그렇게 식사에 열중하는 그레텔을 놔두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멍한 눈으로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데 주머니 속 스마트 폰이 진동을 울렸다.

[진우 씨, 뭐해요?]

한세연이었다.

어제는 전화를 걸더니 오늘도 어김 없이 메시지가 왔다. 뭐, 한세연은 요즘 이 시간대만 되면 연락하니 이 제는 익숙하다.

[쉬는 중..]

답장을 보내자 10초도 안 되어 메 시지가 도착했다.

[뒤에 .. 이거 점 두 개 뭐예요? 어울리지 않게 아련하네..]

[점 하나 쓰려다가 실수로 하나 더 누른 겁니다.]

[네네 알았어요흐흐 그리고 잠깐 할 말 있는데 전화해도 돼요?]

“ 전화?”

뭐, 상관은 없다. 굳이 답장할 필 요성을 못 느껴서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도 전에 한세 연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가 전화 걸려 했는데 먼저 거셨네.]

“무슨 일이에요?”

[아뇨.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되 나 해서요.]

“다음 주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닌데, 그냥 한 번 만날 때 됐잖아요.]

이유 없는 만남이라.

뭐, 만나는 건 상관없다. 나도 한 세연과 만나서 대화하는 걸 좋아하

니까. 특히 술 마실 때 은근 대화가 잘 통한다.

솔직히 말해 꽤 즐겁다.

“네, 그건 상관없어요.”

[아 참고로 어디 파티 갈 생각이에 요.]

“파티요?”

[네. 선구자의 밤같이 큰 사교 행 사는 아니고. 그냥 적당한 친목 행 사에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만 모이 는 것도 아니라서 부담 없이 오셔도 될 거예요.]

뭐야. 그런 곳에 왜 나를 데려가?

“음. 그건 좀 고민되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고요. 몇 안 되는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날 이라서 혹시나 불러본 거예요. 저 바쁜 거 알잖아요.]

스피커 너머에서 한세연의 시무룩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마음이 약해진 다. 결국 결정했다.

“그럼 만나죠. 거기가 어디예요?”

강원도 어딘가의 작은 별장.

한세진을 주축으로 모인 15명의 용병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어제와 오늘 간단한 실력 테스트를 보았다.

마법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또 첩 보전에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지 둥을 테스트했다.

참고로 테스트는 실제 범죄 조직을 습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상대 조직의 괴멸이다.

“다들 테스트 보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결과는 모두 합격입니다.”

한세진의 수행비서, ‘곽병진’이 차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여기 분들로 점수를 나눴 습니다. 최고 득점자는 엘린입니다.”

“……엘린이 누구야?”

S등급 용병, 정경원이 주변을 둘러 보며 말했다. 그러더니 그의 시선이 후드 여성을 향했다.

“아, 너냐? 이름이 좀 의외네.”

“닥쳐.”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 엘린이 사 납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까 나한테 관심 꺼.”

“……너 무슨 병 있냐?”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곽병진이 말했다.

“엘린 님은 잠시 저를 따라와 주시 길 바랍니다.”

엘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곽병진을 따라갔다.

별장의 긴 복도를 지나 어떤 방에 도착했다.

방의 문을 열자 창밖의 자연을 바 라보는 검은 정장의 남성이 서 있었다.

“부회장님, 불러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검은 정장의 남성, 한세진이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곽병진은 고개를 숙이더니 방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이제 한세진과 엘린만이 남았다.

엘린은 한세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보스인가?”

“네, 맞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 군.”

엘린의 말에 한세진이 고개를 갸웃 했다.

“혹시 저를 처음 봅니까?”

“처음 본다.”

“흐음. 뉴스 같은 걸 아예 안 보고 사시나 보군요. 이래 봬도 꽤 유명 한데.”

“뉴스는 테러 관련 뉴스만 봐.”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개인 임무를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한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쪽에겐 첫 임무겠죠. 뭐, 임무는 간단합니다. 다음 주에 사교 회에 참가하는데 호위를 해주시면 됩니다. 요즘 어떤 미친 인간이 저 를 노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서요.”

한세진의 말에 엘린은 고개를 끄덕 였다.

“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태휘제의 마지막 날인 3일 차.

나는 이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려 11개의 이벤트가 남아있었지만 하나도 안 했다.

당연하겠지만 순위는 6위까지 떨어 졌다. 그러나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 았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5위였 으니까.

나는 때를 기다렸다.

마지막 이벤트 차례가 오기를.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지막 이벤트 인 ‘스테이지 탈출’이 시작되었다.

자신 있는 종목이었기에 압도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사회자도, 관객들도 모두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태휘제의 마지막 이벤트를 내가 화 려하게 장식한 셈이었다.

결국 나는 내 목표 등수인 5둥을 확정 지었다. 마인, 원혁은 6등.

……그리고 시간이 홀러 폐막식이 시작되었다.

대강당에 학생들이 다시 모였다.

개막식 때와 같이 최서윤이 진행을 맡았고, 여전히 뛰어난 진행으로 폐 막식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홀러 갔다.

마지막으로 최서윤이 꾸벅 인사를 하며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자, 그럼 시상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이희영이 단상 위로 올라와 말했다.

“1등부터 5등까지 학생을 호명하 겠습니다.”

1등. 이서준

2둥. 유아라

3둥. 최서윤

4둥. 신영준

5둥. 김선우

[‘태휘제 5등’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나를 제외하면 원작과 순위가 동일

한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가 들려왔다.

참고로 순위권에 3학년이 없는 건 참여율이 저조해서 그렇다.

지난 3년간 태휘제에서 즐길 건 다 즐겼으니 적어도 순위권은 후배 들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호명된 학생들은 단상 위로 올라 와 주시길 바랍니다.”

단상 위에 오르자 학생들의 웅성거 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선우가 5위? 뭐냐? 최소 2등은 할 줄 알았는데. 나가는 이벤트마다 2등 안에 들었잖아.”

“김선우 쟤 이벤트 7개 밖에 안 나갔어. 그러고 5둥인 거야.”

“7개 밖에 안 나갔다고? 와. 돌았 네.”

우리는 단상 위로 올라와 태휘제의 트로피라 할 수 있는 팔찌 아이템, ‘영혼의 안식처’를 받았다.

팔찌를 착용하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최서윤은 내 옆에서 는 팔찌가 이쁘다며 좋아하고 있다.

나는 슬쩍 내 손목의 팔찌를 바라 봤다. 팔찌에 박힌 푸른 보석이 이 쁘기는 하나 내 취향은 아니다.

이어서 한세연이 단상 위로 올라왔

다. 김선우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되자 괜히 알 수 없는 긴 장감이 들었다.

한세연은 우리에게 한성제약 특제 영약을 주었다.

그 외 장학금이라던가 다른 상품들 도 받았다. 예를 들면 ‘수련의 방’ 입장권이라던지.

그리고 이어지는 악수 타임.

한 명 한 명 지나서 내 차례가 왔다.

한세연이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

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순위권 시상식이 끝났다. 단상 아래로 내려오자 멀리 원혁의 원망이 담긴 시선이 느껴졌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팔찌가 탐 났으면 안전하게 4위권을 유지했었 어야지.

[등장인물 ‘원혁’。] 당신에게 얕은 분노를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수요일이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실전 지도 시간이 왔다. 무려 최일현에게 1:1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개인 지도실 문을 열자 최일현이 나를 바라봤다.

“왔냐?”

“네.”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최일현이 말했다.

“음. 자기소개 이런 건 필요 없을 거 같고. 네 수준도 정확히 모르니 일단 한 번 붙어 붙자.”

다짜고짜 붙자니.

원작의 최일현다워서 웃음이 나왔다. 하긴,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보다는 이쪽이 확실하기는 하지.

“흠. 그럼 바로 공격하면 돼요?”

“그래. 100%로 덤벼라.”

안 그래도 100%로 덤빌 생각이었다.

최일현의 실력은 세상에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보다 강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김진철 회장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니까.

그리고 그런 강자를 연습 상대로 삼을 기회는 흔하지 않다.

과연 내 전력으로 그를 얼마나 상 대할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아둬야지.

물론 전기 속성이라던가 룬의 속박 같은 능력은 사용할 순 없어 완전한 100%라고 하기는 힘들기는 하겠지 만. 한 85%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나는 헛둘헛둘 몸을 풀다가 기지개 를 켰다.

“그럼 갑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말인데 실수로라도 진심으로 반격하시면 안 돼요. 저 죽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최일현이 조금이라도 진심을 보 인다면 진짜로 뒤진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 정돈 안다. 준비됐으면 와라.”

“넵.”

대답과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 올랐다.

[‘우격다짐’이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나는 숨을 한번 내쉬고는 곧바로 구체를 구현해 속사했다.

파앙-!

웬만한 마법사였다면 피하기 힘들 만큼 반 타이밍 빠른 방출.

하지만 최일현은 여유롭게 몸을 꺾 으며 공격을 피해냈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고 마법의 속 사를 이어나갔다.

우선 최일현 같은 마법사 상대로는 압축 구현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다 피해버릴 테니, 방출의 속도를 최대한 늘려 어떻게든 맞추 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구현보다는 방출에 신경 쓰는 건 좋네. 확실히 센스는 있어.”

최일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더니 바닥을 박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파앗!

나는 그것과 동시에 함께 뒤로 물 러났다. 그러나 최일현은 빠른 속도 로 다가와 금세 나를 따라잡았다.

후웅!

최일현의 주먹이 내게 휘둘러졌다. 나는 고개를 숙여 아슬아슬하게 공 격을 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발차기가 날라왔다.

퍼억!

“크억!”

내 몸이 붕 떠오르며 바닥을 굴렀다.

최일현이 힘 조절을 했기에 큰 고 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압도감은 오랜만이라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발현계 마법사치고는 맷집 도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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