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라의 말에 이서준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게. 아까 과거의 환영들이 유 적지를 발견했었잖아.”
“……공략에 실패했나?”
“음.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일단 앞으로 가보자. 가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나와 이서준은 앞장서서 다 시 걸었다. 긴 통로를 5분쯤 걷자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미라 몬스터 가 등장했다.
— 키에엑!
내 뒤의 인원들은 전투를 위해 서 둘러 마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내가 마법을 구현해 녀석 을 향해 방출했다.
파앙-!
마법 구체는 새하얀 잔상을 남기며 미라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마법 구체는 이내 정확히 녀석의 머리에 적중하며 강한 굉음을 울렸다.
미라는 형체를 잃으며 그대로 사라 졌다.
“오. 나이스 샷.”
검을 반쯤 뽑았던 이서준이 다시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덧 우리는 유적지의 한 지점에 도착했다.
“뭐야. 길이 막혔는데?”
특이한 문양이 그려진 막다른 길 목
유아라와 이현주가 길을 막고 있는 벽을 만졌다.
그때 였다.
—길이 막혔어.
유령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 했다.
-뭐야. 설마 길 잘못 들어온 건 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이내 막다른 벽을 만지는 두 명의 유령이 등장했다.
아까 보았던 이서준을 닮은 여성과 어린 최일현이었다.
하지만 들리는 목소리를 보았을 때 아마 이곳엔 이 둘을 제외하고도 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이게 여기서 갑자기 막히네.
—여기 봐봐. 문구가 있어.
—그러네? ‘죽음을 품어본 자만이 이 문을 열 수 있다.’ ……라는데?
—이건 또 뭔 개소리여? 죽음을 품다니? 우린 자격 없다는 건가?
유령은 다시 사라졌다. 공간에 섬 뜩한 적막함이 감돌았다.
“……으. 뭔가 소름돋네.”
송승아가 최서윤의 팔을 끌어안았 다. 최서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깃
들었다.
나는 벽을 어루만졌다.
마력은 느껴지지는 않았다. 외부자 의 혜택을 이용해도 마찬가지.
이 벽이 ‘마력’이 아닌 ‘신비’로 만 들어졌다는 증거겠지.
그때 이서준이 나섰다.
“보니까 과거 사람들은 결국 이 문 을 열지 못했나 보네.”
“응. 왜 유적지가 공략되지 않았나 했는데……
유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를 쳤다. 그러더니 벽에 적힌 문구
를 살폈다.
“무슨 단서 같은데. 죽음을 품어본 자라……
“혹시 아까 미라 몬스터를 이용해 서 열라는 게 아닐까요? 미라도 죽 음을 품은 몬스터잖아요.”
“그럴싸한데?”
최서윤의 추리에 유아라가 눈을 반 짝였다.
나는 이서준을 바라봤다. 이서준은 여전히 고민에 찬 시선으로 벽을 바 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원작과 같이 이서준 이 알아서 벽의 문을 열기는 할 것
이다. 하지만 굳이 그들이 스스로 방법을 알아차리게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서준에게 말했다.
“이서준. 이리 와봐.”
“왜? 뭔가 알아냈어?”
이서준이 기대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서 나를 향한 신뢰가 느껴졌다.
“벽에 마력을 주입해봐.”
“……마력? 에이, 설마 그렇게 쉬 울 리가 없잖아.”
“혹시 모르잖아. 속는 셈 치고 해
봐.”
“네가 하면 되는 걸 왜 나한테 시 켜?”
“말대꾸하지 말고.”
내 말에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이서준은 벽을 어루만지더니 마력 을 주입했다. 그러자 이서준의 푸른 마력이 벽 전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우우웅‘
공간 전체에 강한 진동이 울렸다.
“뭐야?”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놀란 반 응을 보였다.
벽은 점차 환한 빛으로 빛나기 시 작했다. 이내 번쩍! 하더니 벽이 완 전히 사라졌다.
“……진짜 마력만 주입하면 된다 고?”
이서준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 다.
“야. 너 뭐냐? 어떻게 알았어?”
“던전이나 유적지에서 막힌 길이
나오면 마력을 주입해보는 게 기본 인 거 모르냐?”
“아니, 그렇기는 한데. 이렇게 쉽게 열린다고?”
이서준이 다시 한번 의심에 찬 눈 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 유아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방금 마력을 주입해서 연 거야?”
“어. 바로 반웅하던데?”
“뭐지? 아까 내가 마력 주입할 때
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 진짜?”
“어. 진짜로.”
이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근데 나는 왜 열린 거지?”
그때 유아라가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아까 벽에는 죽음을 품어본 자만 이 문을 열 수 있다던데…… 너 혹 시 언데드야?”
“그거 농담하는 거지?”
“선배님 언데드였어요? 대장전 시 험 보니까 뭔가 좀비 같기는 하던데 이유가 있었네.”
송승아가 끼어들더니 농담하듯 말 했다. 하지만 이서준은 농담으로 받
아들이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무슨 언데드야. 빛 속성 다루는 언데드 봤어?”
그렇게 말하곤 이서준이 나를 바라 봤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왜 자신에게 마력을 주입하라고 했 는지에 대한 해명.
나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사람마다 마력 성질이 다 달라서 가끔 이런 일이 있잖아. 한 번 시도 해볼 만했어. 근데 진짜 될 줄은 몰 랐네?”
유적지의 벽이 열리고.
우리는 빠른 속도로 유적지를 공략 해 나갔다.
처음 벽에서 잠깐 막혔을 뿐이지 그 뒤부터는 일반적인 유적지와 다 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와 함정 해제. 이 두 가지를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유적지의 마지막 장소 앞에 도 착할 수 있었다.
“후우. 벌써 마지막 방이네.”
“축제를 즐기러 왔는데 어쩌다 이 렇게 된 건지.”
“그러게. 나도 당황스럽네.”
나는 앞장서서 문에 손을 대었다.
“바로 진입하자.”
“그래.”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거대하면서 넓은 공간 이 눈에 들어왔다.
[‘경계의 유적’의 마지막 방에 입장
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유적지의 마지막 방.
이끼가 끼어있는 바위와 여러 동상 이 보였다.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 있 었고 주변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유적지’라는 느낌이 들 만큼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다.
“와. 진짜 멋지다. 인공 유적지는
몇 번 와봤는데 실제 유적지는 처음 와봐.”
“저도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실제 유적지는 처음인 둣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아, 이건 사진 찍어놔야겠다. 서윤 아 너도 찍어줄까?”
송승아가 스마트 학생 수첩을 쥐며 말했다.
“됐어. 놀러 온 것도 아니잖아.”
“에이. 그러지 말고. 아, 김선우 선 배님! 서윤이 옆에서봐요. 같이 찍 어드릴게요.”
“사진은 무슨. 됐어.”
내 말에 최서윤이 송승아에게 말했다.
“저 봐. 싫으시다잖아."
그러자 송승아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서준 선배님이랑 현주 선배 님 찍어드릴게요.”
“우리?”
당연히 거절하겠지 생각했는데 의 외로 그 둘은 얼씨구나 하고 함께 멋들어진 동상 앞에 섰다.
심지어 사이좋게 착 달라붙어 포즈
까지 취한다.
스마일. 찰칵.
……쟤들도 참 태평하구나.
촬영이 끝나자 이현주는 송승아에 게 달려갔다.
“사진 잘 나왔네? 이따 유적지에서 나오면 사진 보내줘.”
“넵. 보정 해서 보내드릴까요?”
“아냐. 그건 됐어.”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소풍 온 것처 럼 변하자 이서준이 먼저 나섰다.
“근데 보상은 어디 있으려나?”
“저기 저거. 제단 아니야?”
유아라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 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 했다.
“오. 그러네? 저거 맞는 거 같은 데?”
우리는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예 상대로 제단 위에는 새하얀 빛으로 빛나는 투명한 보석이 있었다.
[생명의 돌(성유물)]
설명 : 생명의 힘이 담긴 돌
[사용 효과]
►생명의 기적
돌에 마력을 주입하여 생명의 기적 을 일으킵니다.
모든 질병이 치유됩니다.
모든 상처가 회복, 재생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3,650일
내구 : SSS
생명의 돌.
원작에서 본 그 보상이 맞았다.
그것도 무려 이 세계에서 가장 불 가사의한 힘으로 알려진, ‘신비’의 결정체라 불리는 성유물이다.
생명의 돌은 당장 쓰일 일이 없겠 지만 먼 흣날 스토리가 전개됨에 있 어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될 물건 이었다.
이것으로 메인 시나리오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돌? 보석? 음. 이게 뭐지? 유물인
가?”
“유물로 보이기는 하는데. 확실히 는 모르겠네.”
모두가 생명의 돌을 바라보던 사 이. 이현주가 한층 진지해진 목소리 로 말했다.
“이거 일반 유물이 아니야.”
“그럼 뭔데요?”
“성유물이야.”
“서, 성유물?”
역시 신비에 관심이 많다는 설정이 있는 그녀답게 원작과 같이 이 물건 의 정체를 알아챘다.
“응. 예전에 성유물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거든. 겉에서 은은한 하 얀 빛 같은 게 돌지? 저게 바로 성 유물이라는 증거야. 그리고 뭔가 특 이한 기운도 느껴지잖아.”
성유물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란 표 정을 지었다.
“우와.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성유물이구나. 뭔가 안 믿기네.”
“오늘 일은 우리만의 비밀로 하 자.”
이현주의 말에 모두가 의문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세상엔 성유물을 노리는 사람이
많거든. 그런 물건이 우리한테 있다 는 얘기가 돌면 아마 좋은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을걸?”
나는 이현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가 아니라 그냥 맞 는 말이었다.
성유물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굳이 세상밖에 알릴 필요는 없었다. 이 세상에는 자운이 아니더라도 ‘신비’ 를 광적으로 탐하는 자들이 많으니 까.
그리고 유아라도 거들었다.
“이현주 말이 맞아. 세상엔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
을 자들이 많거든.”
유아라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아마 자신의 가문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한 말이겠지. 송승아 와 최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분위기가 어두워 지려 하자 이서준 이 환기하려는 듯한 밝은 목소리로 나섰다.
“그럼 슬슬 보상을 챙길까?”
“그러자. 보상은 누가 갖고 있을 래?”
이현주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성유물이라는 보상에 누군가 탐낼 법도 했지만, 방금 전 이야기 때문 인지 다들 부담을 느끼는 듯 보였다.
나는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서준. 네가 갖고 있어.”
“내가?”
“응. 애초에 막다른 길도 네가 열 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애초에 이서준이 소유할 물건이기 도 했고.
“그렇기는 한데…… 음. 일단 알았 어. 대신 갖고만 있다가 이 중 누군
가에게 물건이 필요해지면 그때 쓰 는 거로. 괜찮지?”
“그래.”
그렇게 이서준이 생명의 돌을 집으 려는 순간 나는 이서준을 멈춰 세웠다.
“야야 잠깐. 기다려 봐.”
“응?”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다들 미리 전투 준비해 놓으라 고.”
대개의 유적지가 그렇듯 마지막 방
의 보상을 회수하는 순간 유적지의 수호자가 깨어난다.
우리에겐 아직 마지막 싸움이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 수호자를 생각 못 했 네.”
“또 전투야? 으. 수호자는 얼마나 강하려나. 던전 보스보다 강하다던 데.”
그렇게 모두가 마력을 끌어모으며 전투 준비를 마치자 이서준이 말했다.
“그럼 뽑는다?”
“응.”
이서준이 생명의 돌을 손에 쥐었다. 동시에 돌에서 환한 빛이 뿜어 지더니 유적지 전체가 진동을 울리 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천장의 모래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쿠웅!
어둠 속에서 푸른 안광이 빛났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거대한 창을 쥔 동상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 크기는 거의 10M에 달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크기가 조금 더 작은 동상이 하나 더 등장했다.
“전투 준비해!”
그때 였다.
쿠웅!
또다시 거대한 발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