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이 너무 뻔해서 최일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책. 그리 고 사진들이 보였다.
역대 총장들의 사진도 있었고 학교 에 기념이 될 만한 사건의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졸업생들의 단체 사 진들도 있었다.
학교의 역사가 담긴 일종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공간인 것 같았다.
최일현은 졸업생들의 사진을 쭉 바 라보다가 2006년 졸업생 사진에서 멈췄다.
잘생긴 얼굴의 한 남학생이 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학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그 둘보다는 외모가 떨어지지만 밝게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일현이 왔나?”
뒤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최일현은 뒤를 돌았다.
“학교 외부 교사로 온다고 했을 때 나부터 보러 올 줄 알았더니. 쯧.”
“선생님.”
“언제까지 선생님이라 부를 거냐?”
“그럼 뭐라 드릴까요?”
최일현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총장님이라 불러.”
“그건 싫은데요.”
“쯧. 망나니 같은 녀석. 나이를 먹 어도 그 똥고집은 여전하구나.”
마법사관학교 총장, 장봉진이 중얼 거렸다.
최일현은 피식 웃더니 방에서 나왔다.
장봉진은 차를 타오더니 최일현에 게 넘겼다. 최일현은 차를 홀짝였다.
“태휘제 때문에 시끌벅적하네요.”
“뭐, 그렇지. 관람하러 온 외부인들 이 많이 왔어. 방송국인지 기자인지 뭔지 이상한 사람들도 잔뜩 왔고.”
최일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태휘제의 이벤트 중 하나인 ‘달 리기 시합’。] 한참 준비 중이었다.
“그나저나 깜짝 놀랐다. 설마 네가 교사를 하겠다고 와서. 뭔가 연구한다더니 그건 때려치운 거냐?”
“아뇨. 때려치운 건 아니고 잠시 쉬는 거죠. 제 관심을 끄는 학생이 있어서요.”
최일현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김선우와 이서준이 달리 기 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옆에서 서로 계속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꽤 친한 사이인 듯했다.
“……이번 2학년이 흥미롭기는 하 지. 역대급 세대라 불리는 세대니까. 잘 지켜봐라. 재밌을 거다.”
장봉진의 말에 최일현이 웃었다.
“역대급 세대. 그거 우리 세대도 그렇게 불렸는데. 요즘은 아무한테 나 다 붙여주나 보네.”
“흥. 너네는 역대급이 아니라 최악 의 세대겠지.”
최악의 세대라.
최일현이 피식 웃었다.
“근데 이번 세대랑 저희 세대랑 이 상하게 겹치는 게 많더라고요.”
“이서준도 그렇고 유아라인가? 지 호 딸도 있고. 아, 걔는 지 아빠 성 격이랑 완전 똑같던데.”
최일현의 말에 장봉진은 생각에 잠 겼다.
최일현은 창밖의 달리기를 지켜봤 다. 선두를 달리는 이서준과 김선우.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을 만큼 치열
하다.
“그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흐르긴 하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 세대의 자식들이 꽤 모이기도 했으니까. 뭐, 다른 점이 있다면 너 같은 망나니가 없다는 거겠지만.”
나 같은 학생이 없더라.
최일현은 조용히 웃었다.
“망나니는 몰라도 어릴 적 제가 생각나는 학생은 있어요.”
—골인!
이서준과 김선우는 골대 안으로 들 어왔다. 간발의 차이로 이서준의 승 리로 끝났다.
김선우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발현계 마법사의 몸으로 정말 이길 생각이었나 보다.
최일현은 김선우의 얼굴을 빤히 바 라봤다.
강원도 어딘가에 숨겨진 작은 별 장. 그곳에 15명의 사람이 모여 긴 장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15명이나 모였군.”
“그러게. 의외인데. 제법 대단한 사
람들도 모인 것 같고.”
S등급 용병으로 활동하는 정경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더니 맞은편에 앉은 눈 밑이 검은 남성에 게 말을 걸었다.
“당신, 나 그쪽 알고 있어. 검마(劍 魔) 맞지?”
“......맞다.”
“이야. 한세진 그 양반도 대단하네. 이런 사람도 데려오고. 그쪽은 뭘 받기로 했어?”
“몰라도 된다.”
이들의 정체는 한세진이 비밀리에 마법사들을 끌어모아 만든 자운 토
벌단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용병들은 한명 한명이 마법사 세계에서 최고의 몸 값을 자랑하는 자들이었다.
“흐음. 몇몇 사람들은 알겠는데. 거 기 후드. 너는 누구야?”
정경원의 물음에 후드를 뒤집어쓴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말 걸지 마라.”
미성의 목소리. 후드 때문에 입 밖 에 보이지 않지만 여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정경원의 시선이 후드 여성의 손을 향했다.
“문신? 그거 설마 마법진이야?”
후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와. 진짜로 몸에 마법진을 그리는 녀석이 있구나. 너 보조계 마법사 맞지? 마법진은 결계류야?”
여전히 대답이 없자 정경원은 머쓱 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대단하네. 문신 마법. 그거 아무나 못 하던데. 그거로 마법 쓰 면 엄청 뜨겁잖아. 대부분 못 견디 고 지운다고 들었어.”
“진통제나 다른 약을 잔뜩 먹으면
버틸 만해.”
후드가 대답했다.
“……그걸 약으로 버틴다고?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정경원이 질렸다는 눈빛으로 중얼 거렸다. 그러면서 잘 보이지 않는 후드의 얼굴을 살폈다. 염색이라도 한 것인지 머리카락이 붉었다.
“……잠깐. 문신도 하나가 아니네? 거기다 귀에 마도구 피어싱까지? 너 진짜 몸 막 굴리는구나?”
“내게 신경 끄시지?”
후드가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정경원은 신경 쓰지
않는 둣 말을 이어나갔다.
“너 소수 일족이지?”
“......뭐?”
순간 후드가 몸을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후드로 가려져 있어 눈이 보이지 않지만 노려보고 있다는 것 이 느껴졌다. 정경원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소수 일족 맞구나.
“보통 이런 정상적이지 않은 애들 보면 전부 소수 일족이라고.”
“입 닥쳐.”
후드가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
다.
“……어, 그래. 미안.”
진짜로 열 받은 것 같아서 정경원 은 일단 사과했다.
[1 등 이서준 32초 40]
[2등 김선우 32초 52]
달리기 시합의 결과가 사회자의 마 이크 소리를 통해 울려 퍼졌다.
모두의 예상대로 1등은 이서준이 차지했다.
2등은 김선우.
예상된 결과였지만 정작 내용은 끝
까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을 만큼 의 접전이 이루어졌었다.
이서준은 이서준답게 미쳤고, 김선 우는 왜 요즘 가장 핫한 유망주로 불리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모든 관중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다.
과연 소문난 ‘중간시험 대장전’의 주역들이라 불릴 만하다.
그리고 한세연은 멀리서 그 치열했 던 달리기 시합을 전부 지켜보았다.
한성제약의 주력 후원 대상인 이서준과 김선우의 대결이라고 하니 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선우.
비록 패배했지만, 역대 최고의 천 재라 불리는 이서준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마법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였지만 김선우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 는지는 그녀도 알 수 있었다.
“팀장님. 잠깐 구경 좀 하죠.”
“네? 본부장님. 다음 일정이……
“3분이면 돼요.”
한세연은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 관람
객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 다.
“하, 한세연?”
“뭐야. 진짠가? 대박.”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골인 지점에 주저앉아 거칠 게 숨을 몰아쉬는 김선우에게 다가 갔다.
김선우는 그녀의 시선을 알아챈 둣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세 연은 사고가 정지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사람과 더 닮 았다. 단순히 얼굴뿐만이 아니라 체 격, 분위기까지.
아니, 이 정도면 같은 사람 아닌 가? 솔직히 김진우가 수염만 밀면 딱 저런 얼굴일 것 같은데.
그리고 갑작스러운 한세연의 등장 에 김선우의 표정에도 잠시 당황이 일었다.
한세연은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당 황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김선우 학생 맞죠? 방금 경기 잘 봤어요.”
한세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경계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세연은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갑자기 말 걸어서 당황하셨죠? 사 실 김선우 학생을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거든요. 후원 대상으로 선정 할 만큼.”
“……네, 알고 있습니다.”
김선우의 짧은 대답. 목소리는 평 범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가진 앳 된 느낌의 목소리였다.
다만 그녀는 김진우의 목소리를 상
상했었기에 그 목소리가 조금 어색 하게 느껴졌다.
김진우의 목소리는 상당히 굵었으 니까.
그때 김선우가 엉덩이를 탁탁 털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한세연은 그런 김선우를 가까이에서 올려봤다.
일어난 모습을 보니 김진우보다 아 주 약간 키가 더 큰 것 같았다.
골격도 뭔가 더 단단해 보이기도 하고. 물론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아 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혹시 더 할 말씀이 있으신가요?”
김선우가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
그 말투에 한세연은 번뜩 정신을 차 렸다.
이 사람은 김진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확 들었기 때문이다.
“네? 아, 아뇨. 그냥 경기 잘 봤다 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한세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김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자, 잠깐만요!”
한세연이 김선우를 불러세웠다. 김 선우는 의문에 찬 눈으로 한세연을 바라봤다.
“더 할 말씀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요.”
“궁금한 거요?”
한세연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의 가족 관계. 그것이 궁금했다.
김선우의 서류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김선우의 얼굴을 보니 잠깐 내려놓았던 김진우와의 관계가 또다시 의심되었다.
하지만 보는 시선이 많았기에 이곳 에서 물어보기가 그랬다.
그때 였다.
[10분 뒤, 멀리 던지기 대회가 시 작됩니다.]
[참가하시거나 관람하실 분들은 빠 르게 제2 종합 운동장으로 모여주시 길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다음 이벤트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이벤트가 있네요. 바로 가봐 야 하는데.”
“네‘?”
한세연이 눈을 깜빡였다.
“아. 네. 그러세요.”
한세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웃으며 김선우를 보내줬다.
김선우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어 디론가 사라졌다.
김선우가 떠나자 한세연은 혼자 남 았다.
‘……생각보다 붙임성이 없네.’
쳇. 뭔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향해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도 그렇고. 경계하는듯 한 눈빛도 그렇고.
김진우와 닮은 외모 탓에 너무 기 대가 컸던 걸까?
그녀는 괜히 김진우가 그리워졌다.
김진우는 겉으론 무뚝뚝해 보여도 자신에게 은근히 친절했다.
바쁜 척하면서 막상 메시지 보내면 꼬박꼬박 빠르게 답장하기도 하고.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도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또 단둘이 술 마실 때 은근 자상 한 말투며, 그것 외에도 츤데레 같 은 귀여운 면도 있어서……
“흠흠.”
역시 짝퉁(?)은 진짜를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이따 퇴근하면 전화라도 해야지.
[인명 구조 대회가 종료되었습니다.]
[순위를 발표합니다.]
[1 등 김선우]
[김선우 학생에게는 600코인이 지 급됩니다.]
“ 후.”
달리기 이후로도 여러 이벤트에 참 가했다. 멀리 던지기, 마법 명중 대 회, 인명 구조 대회 등. 대부분 1위 나 2위를 차지했다.
태휘제의 점수라고 할 수 있는 ‘코 인’ 역시 꽤 많이 쌓였다.
“1둥을 차지하신 김선우 학생. 소 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와아.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음……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기
쁘네요. 감사합니다.”
내 대답에 사회자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네네. 담백한 소감이네요! 그럼 내려가시면 됩니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보유 코인 : 2,600]
[현재 등수 : 1위]
현재 내 둥수는 1위다.
2위가 2,200포인트니 꽤 큰 격차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들이 자신의 주특기에서만 승부 를 볼 때, 나는 강화계와 발현계. 두 분야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달성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쯤 할까.”
어차피 내 목표는 5위에 드는 것이다.
이쯤에서 쉬는 것도 괜찮겠지. 그 리고 내일 단체전이자 꽤 중요한 이 벤트가 될 ‘사냥’도 있으니까. 거기 서 또 어마어마한 코인을 벌어낼 테
니 마지막 날인 3일 차 때 쭉 놀면 된다. 계획은 완벽하다.
근데 나의 개입으로 원작과 순위가 뒤바뀌진 않을까 조금 걱정되는 것 도 있다.
그렇게 되면 괜히 내가 다른 애들 의 성장을 방해하는 꼴이 되는 건 데.
“흐으음.”
나는 터벅터벅 기숙사 방향으로 걸 었다.
“……벌써 저녁이네.”
하늘이 노올로 붉게 물들며 어두워 졌다. 학교를 가득 채우던 외부인들
도 많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아까 한세연과의 만남을 떠 올렸다. 나를 향한 관심 어린 시선.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긴장되어 심 장이 떨렸다.
김선우를 아는 사람에게 김진우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라고 할까.
폐막식 때 또 볼 텐데 그땐 어쩌 지.
그렇게 혼자 사념에 잠기며 길을 걷는데 기숙사 앞에서 익숙한 얼굴 을 발견했다.
최서윤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발견하더니 반갑게 웃었다.
“벌써 들어가세요?”
“응. 코인 짭짤하게 벌었거든.”
“오~ 몇 등인데요? 아까 달리기 시합은 봤는데.”
“1 위.”
그러자 최서윤이 화들짝 놀란다.
각 순위의 포인트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통해 공개되어 있지만 정작 누구인지는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와. 역시……
최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어디 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