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535)

그때 최일현이 말했다.

“마음에 들었다.”

“네?”

“시험에서 이서준에게 발길질 한

방을 먹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 어.”

“……네? 그게 끝이에요?”

“어. 그냥 정말로 딱 그게 마음에 들었어. 가장 결정적이었지.”

어이없는 이유였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데 숨기는 건가.

“그리고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나 이서준 별로 안 좋아해.”

그건 원작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최일현이 이서준을 진짜로 싫 어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꺼림직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최일현은 복도 끝을 멍하니 웅시하 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고.”

시간이 홀러 수요일.

드디어 학교 축제라 할 수 있는 태휘제 당일이 되었다.

학생들은 들뜬 얼굴로 태휘제 개막 식을 위해 대강당에 모였다.

최서윤은 그곳에서 전 학생 대표로 행사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기자와 각종 후원사. 그리고 방송 국까지.

수많은 외부인이 지켜보는 자리였 기에 학교 대표로서 좋은 모습을 보 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최서윤은 손에 쥔 대본을 읽으며 진행을 연습했다.

그렇게 한 10분쯤 했을까.

“후우.”

잠시 피곤함이 생겼다. 잠깐 단상 옆의 빈공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멀리 자리에 앉은 김선우를 발견했다.

양옆에는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있는데 뭔가 쓸쓸해 보인다는 느낌 이 들었다.

마치 고독한 늑대…… 는 아니고 고양이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최서윤은 잠시 정신을 놓고 김선우 를 바라봤다.

이상하게 요즘 김선우가 빛나 보인 다. 얼굴도 빛나고 체격도 뭔가 전 보다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막상 자세히 뜯어 보면 이전과 뚜 렷한 차이는 없는 거 같은데.

……이게 정말 콩깍지라는 걸까.

이게 콩깍지가 맞다면 나는 김선우 를..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흑발의 아름다운 여성이 그녀를 바 라보며 웃고 있었다.

최서윤은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 아봤다. 동시에 입이 벌어졌다.

“……한세연 님?”

한성가의 막내딸이자 이번 태휘제

의 메인 후원사인 한성 제약의 실질 적 주인.

갑자기 그런 거물이 말을 걸자 최 서윤은 깜짝 놀랐다.

한세연은 그런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알아봐 주시니 고맙네요. 최서윤 학생 맞죠?”

“네, 이번에 학생 대표를 맡은 최 서윤입니다.”

최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꾸 벅 고개를 숙였다.

한세연은 그 모습에 귀여움을 느끼 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인사 안 해주셔도 되 는데.”

“티비 속으로 보던 분을 뵙는 게 신기해서……

최서윤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아, 앉아요. 아직 시간 남았잖아요. 저도 옆에 앉아도 되 죠?”

“네. 물론이죠.”

그렇게 한세연과 최서윤은 나란히 함께 앉게 되었다.

유명 인물과 함께 앉고 있다는 것 에 설렘을 느낄 법도 했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싸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긴장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 나?

……뭐지?

결국 그녀는 그 기분의 정체를 깨 달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최서윤은 김선우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해서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선우는 아까와 달리 고독하지 않 았다.

비어있던 그의 양 옆자리에는 유아 라와 윤하영이 앉아 있었다.

최서윤의 진행은 깔끔했다. 부드럽 고 정갈한 목소리로 모두를 집중하 게 만들었다.

그렇게 교사들의 인사와 후원사 소 개. 그리고 위대한 마법사 태휘의 업적 낭송이 끝났다.

나는 멀리 조용히 앉아있는 한세연 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학교에서 보 니 뭔가 두근거리면서도 긴장된다.

그때 한세연의 시선이 주변을 돌다

가 내 쪽에 멈췄다. 무감정한 시선.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관찰하려는 둣한 시선으로.

나는 괜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 렸다. 신경 쓰지 않는 척 옆의 윤하 영에게 말을 걸었다.

“윤하영.”

“응?”

“이번에 이벤트 몇 개 참가할 거 야?”

“음. 일단 최소 5개? 상황 보고 더 하려고.”

“그래?”

“선우 너는?”

“나도 뭐, 상황 보고……

그때 박수 소리가 터졌다. 드디어 개막식이 끝난 모양이다.

성공적으로 자기 일을 마친 최서윤 은 밝은 미소를 보이더니 그대로 퇴 장했다.

다음엔 발현계 교사, 이희영이 단 상 위로 올라왔다.

“자, 그럼 태휘제 진행 방식에 대 해 설명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들 도 아시다시피 태휘제에는 ‘코인’이 라는 특별 점수가 있습니다.”

코인. 다른 학교 축제와는 차별화 된 마법사관학교의 악질문화의 이 름이 었다.

태휘제 때 진행하는 여러 이벤트에서 개인 코인을 지급하여 경쟁을 부 추기는 시스템이었다.

“3일간 획득한 코인으로 등수를 정 합니다. 그리고 폐막식과 시상식 때 1등부터 약 450등까지 나열해 둥수 에 맞는 상품이 지급됩니다.”

이희영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이었다.

“상품은 10등 단위로 달라집니다. 기본적으로 한성제약에서 지원하는

영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5등 이내에 점수를 기록한 학생들에 게는 특별 상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상품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더니 단상 위에서 무언가가 떠 올랐다.

푸른 보석이 박힌 얇은 팔찌였다.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팔찌 아이템,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학생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 가 들려왔다. 상품이 걸려있다고 하 니 바로 흥미를 갖는 모습이다. 이 희영은 설명을 이었다.

“영혼의 안식처는 집중력 향상 효

과가 있습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 라 세계적인 보석 세공의 거장, ‘장 베른’의 작품이기 때문에 예술품으 로서의 가치도 뛰어납니다.”

영혼의 안식처는 1등부터 5등에게 공통으로 지급되는 상품이다.

일종의 트로피라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이희영은 등마다 주어지는 상품을 소개했다.

1등 상품인 ‘투신의 반지’.

2둥 상품인 ‘증폭의 목걸이’.

그렇게 5등에게 주어지는 아이템까 지 설명이 이어졌다.

참고로 1등부터 4등까지는 원작의 주요 인물들이 전부 차지하게 된다.

그들의 성장과 관련된 상품인 만큼 괜히 내가 넘봐서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5둥을 노려보려 한다.

“추가로 5둥까지의 학생들에게 ‘수 련의 방’ 입장권이 주어집니다.”

수련의 방 입장권.

이것을 노리기 위해서.

하지만 딱 5등을 노린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 될 수도 있 다.

그야 당연한 게 원작에서 5등은 완전 의외의 인물이 차지하게 되었 으니까. 그것도 일반적인 등장인물 도 아니다.

무려 새롭게 등장하는 빌런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2학년 B반 자리 로 시선을 돌렸다.

한 남학생이 홍미에 찬 시선으로 단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만 보면 그냥 평범한 엑스트라처럼 생 겼다.

나는 그에게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이름 : 원혁

나이 : 82 종족 : 마인 상태 : 평안 마력 등급 : S 관심도 : 0

무려 S등급의 마인.

다음 중간시험에 둥장하는 2차 마인 침략의 메인 빌런이다.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학생들은 강당 밖으로 우르르 빠져 나갔다. 이제 곧 태휘제의 첫 이벤 트, ‘구현 예술 대회’가 펼쳐진다.

구현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지 미적 감각을 시험하 는 대회였다.

나름 보는 재미가 있어 축제를 관 람하러 온 외부 관광객들이 많이 모 이는 이벤트기도 했다.

원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 러보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 었다.

“혜찬아. 이벤트 어디 나간다고 했 지?”

김혜찬. 원혁이 연기하고 있는 학 생의 이름이었다.

어젯밤 왕이 지시한 ‘예언의 아이 처단 계획’을 위해 학생을 죽이고 ‘인피면구’를 이용해 얼굴을 빼앗았 다.

“몰라.”

“엉? 왜 몰라.”

“……말 걸지 마라.”

“뭐야? 너 뭐 잘못 먹었냐?”

그때였다. 그의 옆으로 금발의 한 남성이 웃으며 다가왔다. 학생들은 그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크리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하. 네, 안녕하세요.”

크리스, 아니 정현이 웃으며 인사 를 받아줬다.

그러더니 원혁에게 시선을 슬쩍 돌 렸다.

“혜찬 학생.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요?”

정현의 말에 원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그렇게 그 둘은 마법사관학교의 외 진 골목으로 향했다.

단둘이 남자 정현은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원혁님. 학생의 역할을 제대 로 연기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 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살갑게요.”

“내 원래 성격이 이런 걸 어쩌란

거지?”

살기가 담긴 원혁의 말에 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원혁은 십마회 내부의 마인들 중에서도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 으로 유명했다.

거기다 오만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성격 때문에 십마회 안 에서 수많은 분란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마인도 원혁에게 아 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82세라는 나이답게 그는 십마회의 최고령자였기 때문이다.

유대감이 강한 마인들답게 마인 사 회에서는 연장자를 대우해주는 문화 가 자리잡혀 있었다.

“……계획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원혁님, 의심받는 상황은 무조 건 피해야 합니다.”

“알고 있다. 그나저나 이렇게 귀찮 을 줄 알았으면 네 말대로 처단 계 획 전날에 신분을 땟을 걸 그랬군.”

원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처음엔 홍미로 시작했지만, 막상 해보니 귀 찮기만 하다.

그리고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걸던 인간 꼬맹이. 순간 홧김에 죽일 뻔

했다. 겨우겨우 살심을 참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계획 전날까지 다른 자에게 역할을 맡기는 게 어떻습 니까?”

“됐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해결하겠다. 이건 신경 쓰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재밌는 걸 하더군. 태휘제라.”

“네, 마법사관학교의 축제입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축제 중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원혁은 입을 다물었다. 아까 설명 으로 들었던 5등에게까지 지급되는 푸른 보석의 상품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안에 담긴 능력 자체는 별 볼 일 없었지만, 능력과 별개로 하나의 예 술품으로서 탐이 났다.

“내 알아서 하지.”

알아서 하기는 뭘 알아서 해.

정현은 입 밖으로 나오는 원혁을 향한 욕설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는 오늘 죽고 싶지 않았다.

원작과 같이 s둥급의 마인이 투입 된 걸 직접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당연하겠지만 S등급은 전 세계에서 도 몇 안 될 만큼 강하다.

이제야 마인 에피소드가 본격적으 로 시작하려고 한다.

원혁은 자칫 평화로웠던 마법사관 학교에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게 만 드는 인물이다.

녀석 특유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력적인 성격도 있었지만, 그 외에 도 자존심이 강하고 똥고집도 강한 면이 특히 그랬다.

이런 애매한 타이밍에 끼어든 것 역시 원혁이 얼마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녀석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왜 이리 표정이 심각해?”

그때 내 옆의 유아라가 말했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유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사람 많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구경하러 온 일반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아이들의 손에는 음식이 들려있다.

“다들 즐거워 보이네.”

“나름 축제니까. 내일 밤에는 불꽃 놀이도 한다며.”

“웅. 하영이가 기대 많이 하더라.”

유아라가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바 라봤다.

“그래서 이번 태휘제 목표는 몇 둥 이야? 1둥 노릴 거야?”

“아니.”

1둥 하면 좋기는 하지만 굳이 이서준의 물건을 빼앗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상대가 이서준인 만큼 쉽지도 않고.

“5등이면 돼.”

“……뭐야. 생각보다 목표를 시시 하게 잡았네.”

“시시하기는. 5둥이 얼마나 어려운 데.”

내 경쟁자가 될 원혁을 생각하며 한 말이지만 유아라는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한 듯 쿡쿡 웃었다.

“ 엄살은.”

“아, 맞다. 너 나랑 단체전 하나 참가하자.”

“단체전?”

“내일 2인조 사냥 시험 있는데 그 냥 시간 내로 몬스터만 많이 잡으면 승리하는 거거든.”

“단순해서 좋네. 알았어.”

유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로 이벤트 하나는 1둥 확정이 다. 사냥에서만큼은 유아라를 따라 을 사람이 없으니.

삐이 익一

[10분 뒤, 미래관에서 구현 예술 대회가 시작됩니다.]

[참가하시거나 관람하실 분들은 빠 르게 미래관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이벤트 시작한다.” 유아라가 말했다. 구현 예술 대회.

마법의 구현으로 아름다운 미술품 같은 걸 만들어내는 대회이다.

난 그만큼 상상력이 좋지 않기에 진작 포기했다.

“난 슬슬 가볼게.”

유아라가 내게 말했다. 이번 구현 예술 대회에 참가하려는 모양이다.

“넌 달리기 시합 나가지?”

“응.”

어느 정도 자신 있는 분야라 무조 건 나갈 생각이다.

“잘해봐. 너 달리기 빠르잖아. 아, 그리고 이서준도 그거 참가한다더

라.”

그것도 이미 알고 있다.

아마 이서준이 참여한 이상 1둥은 꽤 힘들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2 등은 하겠지. 최근 내 신체 능력이 더 좋아졌으니까.

“아무튼 난 이만 가볼게. 예술 대 회 참가하러 가야 해서.”

“어어. 잘해라.”

내 말에 유아라 미소를 지었다.

“너도.”

한국 마법사관학교의 최상충 공간.

이곳은 마법사관학교에서 가장 높 은 직책을 맡은 총장이 사용하는 ‘총장실’이다.

최일현은 그곳을 걸으며 벽에 전시 되어있는 수많은 마도구와 신비 장 식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멋지게 꾸며놨구만.”

그렇게 쭉 걷다가 거대한 벽장을 발견했다. 최일현은 본능적으로 이 벽장에 담긴 마력을 감지했다.

슬쩍 마력을 불어넣자 벽장이 크게

열리며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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