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제가 선배 한두 번 보는 것 도 아닌데.”
그러더니 최서윤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순간 깜짝 놀라서 얼굴 을 뒤로 뺐다.
“야야. 누가 보면 오해한다.”
“앗, 죄송해요.”
순식간에 뒷걸음쳤다. 그러곤 턱에 손을 얹으며 추리하둣 내 얼굴을 살 폈다.
“어…… 진짜로 좋아진 거 같은데. 얼굴에 뭐 했어요?”
“아니, 아무것도……
그 순간 뇌리에 한 생각이 스쳤다.
이거 설마 영약 때문인가?
그때 최서윤이 내게서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뭔가 키도 아~주 살 짝 커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둥도 좀 넓어진 거 같기도 하고. 흐으음. 혹시 깔창이나 뽕 낀 거 아니죠?”
“무슨 깔창이야. 나 그런 거 안 해.”
“음. 역시 그렇겠죠? 제 착각인가 봐요.”
최서윤이 밝게 웃었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본관 앞에 도착했다.
최서윤은 살짝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어어. 그래라.”
“선배님 오늘도 화이팅!”
최서윤이 힘차게 주먹을 보이며 자 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 이 나왔다.
“그래, 너도 화이팅.”
김선우와 헤어진 최서윤은 혼자 복 도를 쭉 걸었다. 그러다가 아까 보 았던 김선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늘따라 얼굴에서 빛이 났다. 화 장한 건 아니던데 어떻게 짧은 시간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건지 의문스럽 다. 평소 안 씻다가 오랜만에 씻은 건 아닐 거고.
드르륵.
최서윤은 1학년 A반 교실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서자 평소와 같이 많은 학생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윤아~ 보고 싶었어
“아이, 왜 이래.”
“안아줘!”
“아침부터 어리광이야.”
최서윤은 장난스레 그들의 관심을 받아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그녀 주변으로 수많은 여학생이 함께 앉았다.
“아, 맞다. 서윤아. 나 큰일 났어!” 그녀의 앞에 앉은 한 여학생이 호
들갑을 떨며 말했다.
“응. 나 어제 태현이랑 만나서 영 화관 갔단 말이야.’’
아침부터 연애 얘기. 또 시작이다. 하지만 최서윤은 밝게 웃으며 관심 있는 척 연기했다.
“영화관? 뭐야. 안 간다더니 결국 갔네?”
“응. 근데 나 첨에 걔 되게 별로였 다고 했잖아.”
“알지. 질리도록 들었으니까.”
“아니, 근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정태현 걔가 막 잘생겨 보이고. 그 러는 거 있지? 나 왜 이러지?”
“......응?”
순간 최서윤의 사고가 정지했다. 무언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분 명 방금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던 한 여학 생이 까르륵 웃었다.
최서윤은 웃는 여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휴. 얘 좀 봐. 그거 콩깍지 쓴 거잖아!”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
실전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의 이름은 ‘2인 특수 스테이지 탈출’.
1학기 중간시험으로 나왔던 스테이 지 탈출의 심화형으로 스테이지에 숨겨진 단서를 모아 보스를 쓰러트 리는 훈련이다.
참고로 보스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장치를 파괴하지 않으면 어떤 수를
써도 처치할 수가 없다.
“자, 그럼 조를 나누겠습니다. 참고 로 조원의 순위에 따라 스테이지 난 이도가 바뀌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정체를 숨긴 마인 교사, 정현이 조 를 발표했다.
그리고 시간이 홀러 조가 정해졌다. 각 조는 인공 스테이지에 입장 했다.
우우우웅…….
스테이지에 입장하자 새하얀 공간 이 눈에 들어왔다. 탈출 스테이지가 늘 그렇듯 주변에 알쏭달쏭한 특이
한 장식과 물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와. 잘 만들었다.”
나와 같은 조에 걸린 윤하영이 주 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되게 신경 써서 잘 만들 었네.”
이곳은 정현이 직접 설계한 인공 스테이지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인공 던전 말고도 이 정도 퀄리티의 새로 운 스테이지 훈련장을 하나 설계했다.
빌런인 것을 떠나 직업 정신 자체
에 존경심이 들었다.
“아, 맞다. 선우야 같은 조 됐는데 잘 부탁해!”
윤하영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 기분 좋은 미소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2인 1조라 잘 안 친한 녀석이 걸 리면 좀 불편했을 거 같은데 꽤 만 족스러운 조 구성이었다.
물론 윤하영의 순위가 상당히 높아 져서 그만큼 스테이지의 난도가 상 승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외부자의 혜택이 있는 한 이곳 스 테이지 훈련은 나한테 놀이터나 마 찬가지니까.
“음. 뭐부터 해야 하지?”
“일단 단서부터 찾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스테이지 이 동을 위한 단서를 빠르게 찾기 시작 했다.
외부자의 혜택이 있었기에 탈출 단 서를 찾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 리지 않았다.
방에 숨겨져 있는 미완성된 마법진 을 모아 형태를 완성하니 빛이 번쩍 이며 문이 열렸다.
“와. 진짜 볼 때마다 신기하네…… 어떻게 저리 잘 찾지.”
윤하영이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 얼거렸다.
“관찰력이 중요해. 잘 관찰하면 너 도 할 수 있어.”
외부자의 혜택 빨이지만 그럴싸한 대답을 하고는 다음 스테이지에 입 장했다.
다음 스테이지는 몬스터+함정 필 드였다.
입장과 동시에 마법진이 환하게 빛 나며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쏟 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윤하영은 빠르게 얼음 화살을 쏘아 내며 주변의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나 역시 마법을 구현해 앞의 몬스 터들을 하나씩 처치해 나갔다.
그럼에도 몬스터는 끝도 없이 나왔다. 그렇다는 건 어딘가에 몬스터를 공급해주는 특수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해 둘러보니 멀리 기다란 다리 건너편에 푸른 빛 으로 빛나는 어떤 장치가 눈에 보였다.
“혹시 모르니까 내 뒤 보조해줘.”
“웅, 알았어.”
나는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며 다 리 쪽으로 달려갔다. 몸은 평소보다 가볍고 빨랐다.
근력 능력치가 큰 폭으로 상숭해서 그런 걸까.
차오른 자신감과 함께 그대로 쭉 달렸다.
그때 숨겨져 있던 함정들이 내 접 근을 감지하며 수많은 마법을 쏘아 내기 시작했다.
불의 화살, 얼음 가시, 바람의 창. 등등.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을 만 큼 수많은 마법이었다.
하지만 스텟 상숭으로 날카로워진
순발력은 그 공격이 눈에 느리게 보 였다.
크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최소한 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휴.”
신체 능력의 변화가 확실히 체감된 다.
—크어어어어!
그때 다리 끝에서 거대한 백색 털 을 가진 이족 보행 늑대, ‘백색 늑 대 인간’이 등장했다.
늑대 인간 같은 몬스터는 근접 전 투에 특화되어 있는데, 내 근접 전 투 능력이 향상했다고 하나 굳이 저
런 녀석과 근접에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적정량의 마나를 손위로 압축 해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방출했다.
파아앙-!
압축된 마법 구체는 푸른 잔상을 남기며 쏘아지더니 녀석의 머리를 정확히 맞추며 폭발했다.
“......흐음.”
나는 멍하니 내 손바닥을 내려보았 다.
단순한 착각일까. 오늘따라 뭔가 마법 구현이 잘 되는 느낌이다.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날카로워졌 다고 해야 하나? 방금 구현도 평소 보다 0.5초 정도는 더 빠르게 된 것 같았는데.
“좋네.”
다리를 건넌 나는 주변의 특수 장 치들을 빠르게 파괴했다.
추가로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나를 공격했지만 손쉽게 쓰러트렸다.
어느덧 소환 마법진이 사라지더니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윤하영이 뒤늦게 내 쪽으로 달려왔다.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웅. 그런 거 같아. 뭔가 평소보다 잘 되네.”
“그러게. 오늘따라 얼굴에 생기가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최서윤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 은데. 역시 영약이 나에게 어떤 변 화를 가져다준 것 같다.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의 셀프 카 메라 기능을 이용해 내 얼굴을 살폈 다.
“흐으음.”
……여기서 더 잘생겨진다고?
나는 윤하영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나 평소보다 잘생겨 보 이냐?”
내 물음에 윤하영이 살짝 당황했다.
“어, 어? 으음. 그냥 생기 있어 보 이고 좋아!”
오전 스테이지 탈출 훈련이 끝났 다.
결과는 여유롭게 1등.
2둥은 이서준 조가 되었다.
내가 32분 04초였는데 이서준은 53분이 넘었다.
이서준 역시 이런 결과를 어느 정 도 예상했는지 그저 허허 웃으며 넘 어갔다.
3위는 유아라. 4위는 나도 잘 모른 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정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훈련의 결과에 당황 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1등과 2둥의 격차가 상당했으니 놀랄 법도 하다.
아무튼 오전 훈련이 끝나자 점심시 간이 되었다. 나는 유아라와 윤하영 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또 압도적이네. 진짜 어떻게 하는 거야?”
“잘.”
“아씨.”
유아라가 찌릿 나를 노려봤다. 윤 하영은 눈치를 살피며 웃다가 유아 라에게 오늘 내 활약을 풀기 시작했다.
바로 코앞에서 칭찬을 듣자 괜히 낯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유아라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더니 힐끔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너 오늘 뭔가 분위기가 다르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 아서 먼저 말했다.
“피부 좋아졌지?”
“아니, 그거 말고도 태가 달라졌는 데.”
“태?”
“어. 골격이랑 키 좀 크지 않았 어‘?”
아마 커지긴 했을 거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그런데 웬만해서는 이걸 눈치채기 힘들 텐데. 최서윤도 그렇고 유아라 도 그렇고 눈치가 빠르다.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아는 건지.
“조금 크긴 했는데 티나?”
“아니, 전혀 안나.”
“근데 어떻게 알아?”
“그야.…”
유아라가 잠시 말끝을 흐린다.
그러면서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말 했다.
“학교에서 자주 보잖아.”
그렇기는 한데, 이서준 정도의 녀 석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전혀 관 심을 갖지 않는 애라 의외로 느껴지 기는 하다.
“맞다. 너 그래서 지도 교사는 어떻게 됐어? 최일현 마법사한테 받는 거야?”
“최일현 마법사라면, 괴짜?”
윤하영이 끼어들며 물었다.
“어. 맞아.”
“헉. 이번에 외부 교사로 온다고 듣기는 했는데 선우 너 때문에 온
거였어?”
“그런 거 같긴 한데. 내가 이희영 선생님으로 이미 등록해버려서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어.”
“아……
윤하영이 잠시 탄식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상황이 애매하게 됐네.”
“애매하다기보다는 뭔지 모르는 상황이 됐지.”
원작 흐름에 의하면 최일현은 좀 더 나중에 등장해야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등장해버려서 최
일현과 관련된 사건들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침 저기 계시네.”
유아라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정 말 그녀 말대로 최일현과 이희영이 있었다.
그 둘은 공원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보아하니 나를 아직 포기 못 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희영을 직접 찾아 갈 줄이야. 원작의 사교성 없던 최 일현을 생각하면 지금 모습은 상당
히 의외였다.
방과 후. 이희영의 호출에 교무실 로 향했다. 교무실 문을 열자 모든 교사가 관심과 흥미에 찬 눈으로 나 를 바라본다.
“크~ 주인공의 선택 시간이네.”
“잘 선택해라.”
아직 이희영에게 말도 못 들었는데 왜 나를 호출했는지 벌써부터 주변 에서 복선을 뿌려주고 계신다.
결국 나보고 선택하라는 거네.
뭔가 부담되는 상황인데.
이희영의 자리에 도착하자 종이컵 을 입으로 물고 있는 최일현의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오늘 스테이지 탈출하는 거 잘 봤 다.”
“아, 네.”
“관찰력은 나보다 훨씬 낫더라. 나 도 관찰력에선 어디 가서 밀리지 않 는데.”
그때 이희영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선우 학생. 여기 앉으세요.”
“넵.”
나는 자리에 앉았다.
내 맞은편에 두 사람이 내 눈을 지긋이 바라봤다.
“어떤 이유로 불렀는지 선우 학생 도 눈치챘을 거예요.”
“네.”
“사실 이미 교사 등록을 마쳐서 변 경할 수 없는 건데 그래도 선우 학 생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서 저도 학과장님에게 따로 양해를 드렸어 요.”
이건 좀 감동이다. 안 그래도 나랑 함께하게 돼서 엄청 기뻐하던 것 같 았는데.
“괜찮아요. 편하게 말해주세요. 선 우 학생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나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 었다.
“.…”저는.”
나는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내 뒤를 따라 최일현도 함께 나왔
다.
“훌륭한 교사다. 잘 해드려라.”
“그러려고요.”
나는 결국 최일현을 선택했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힘들지 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이희영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기는 했지만 나도 욕심이 생겨 어 쩔 수 없었다.
우선 최일현의 마법 스타일은 나와 흡사한 점이 많다.
발현계를 주특기로 삼으면서 강화
계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스 타일이 다.
거기다 보조계 마법에서도 꽤 뛰어 난 실력을 보이기도 하니 ‘김진우’ 의 모습일 때도 꽤 큰 도움이 될지 도 모른다.
물론 내 마법 재능이 그렇게 특출 난 게 아니라 배운다고 해서 실력이 확 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실전 감각을 익히는 데는 훨씬 좋을 거라 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를 생각했을 때, 최일현과 미리 가깝게 지내면 여러 가지 득을 볼 상황을 염두해 두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겨 최일현 에게 물었다.
“근데 왜 저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최일현은 자신의 한 목적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최일현이 연구를 잠시 쉬고 나를 가르치려 한다는 건 무언가 이 유가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