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알려진 자신의 명성이 있으 니 당연히 기뻐하며 수락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리고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최일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또 원작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까지 말이다.
……하지만.
“저 근데 이미 지도 교사 등록 마 쳤는데요.”
김선우와 헤어진 최일현은 허망한 발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뭐여 진짜.”
접촉 기간 때 연락이 안 돼서 뭔 가 싸하긴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설마 지도 교사 등록을 이미 마쳤 을 줄이야.
“……너무 자만했나?”
최일현이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
적였다.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연구에 몰두 하느라 몇 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살았는데 세상 물정 모르고 너 무 까불긴 했다.
반성 좀 해야지.
그나저나 이걸 어쩌지.
김선우가 아니면 이 학교에 올 이 유가 없는데.
김선우는 오랜만에 연구가 아닌 것 에 홍미를 느끼게 만든 인물이었다.
영상으로 본 전투 방식도 그렇고, 발현계를 주특기 삼으면서 강화계 마법사에게 발길질하는 대범함도 상
당히 마음에 들었다.
마치 어릴 적 자신을 떠올리게 만 든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발길질의 상대가 이서준이 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김 선우……
실제로 만나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묘하게 어른스러운 듯한 분위기 도 좋았고, 자신이 누군지 알았음에 도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웅도 독특 해서 마음에 들었다.
역시 뭔가 끌린다.
‘이렇게 포기할 내가 아니지.’
김선우의 말로는 이희영이라는 교 사에게 지도를 받게 되었다고 들었다.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이희영이라 는 사람한테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 해보면 뭔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김선우도 나에게 딱히 거부감은 없 어 보였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잡고 다시 갈 길을 걷는데 골목에서 훤칠한 키의 한 남 학생을 발견했다.
최일현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남학생을 바라봤다. 최근 김 선우의 전투 영상에서 본 얼굴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이 그의 실물을 보자마자 잘생겼다며 크게 놀랐을 것이지만, 최일현은 그 얼굴을 보고 는 강한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때 남학생도 그의 시선을 느끼고 는 최일현을 바라봤다.
그렇게 의문스러운 눈으로 최일현 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혹시 최일현 마법사님?”
최일현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할아버지한테 이야기 많이 들 었습니다. 외부 교사로 온다는 소식
은 들었는데. 설마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남학생은 다름 아닌 그의 사제(師 弟)라고 할 수 있는 이서준이었다.
최일현은 입을 다문 채 이서준의 얼굴을 샅샅이 관찰하다가 말했다.
“영감님은 잘 계시냐?”
“네, 할아버지야 늘 건강하시죠.”
“하긴, 그 영감탱이. 앞으로 100년 은 더 건강하겠지.”
어찌 보면 비하 발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애정을 이서준은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은근히 보고 싶어 하 시는 거 같던데. 한번 찾아뵈러 오 세요.”
“……보고 싶어 하기는. 됐다. 뭐, 언젠간 때가 되면 만나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 었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가본다.”
“아, 네! 들어가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 둘은 각자 갈 길을 걸었다.
혼자남은 최일현은 방금 보았던 이서준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쓸데없이 빼닮았네.”
유아라와의 보조 형태 훈련을 마친 나는 기숙사에서 그레텔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레텔은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내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그레텔 조금만 참아봐.”
“응애!”
그레텔이 고개를 크게 젓더니 내 품에서 벗어났다. 그러더니 짧은 다
리로 호다닥 도망쳤다.
나는 서둘러 자연의 마력을 이용해 그레텔의 발을 살짝 붙잡았다. 그러 자 그레텔의 몸이 앞으로 콩. 하며 고꾸라졌다.
“아이고.”
그 모습을 보자 미안함에 절로 눈 이 찌푸려졌다.
“그레텔 괜찮아?”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레텔이 처 량한 뒷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 러더니 다시 도망을 치려는 움직임 을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레텔
을 품에 끌어안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레텔이 놀라운 점프 력을 보이며 피해냈다.
“아씨.”
나는 다시 그레텔을 붙잡기 위해 달렸다. 그레텔도 쉽게 당해줄 생각 이 없는지 마력을 사용하여 바닥에 나무줄기를 소환했다.
나무줄기는 내 발을 단단히 묶었다.
“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레텔이 몸을 움찔하며 속박을 풀어냈다.
그때 빠르게 그레텔의 몸을 낚아챘
다. 내게 붙잡힌 그레텔은 내 품 안 에서 발버둥 쳤다.
“자자. 그레텔. 한순간이야. 눈 감 고 딱 한 번만 참으면 돼. 응?”
“옹애!”
그레텔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레텔의 머리에 달린 열매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쥐었다.
그러자 그레텔이 다시 한번 발을 허공에 흔들었다.
“안 아프다. 하나도 안 아프다〜”
마치 어린아이의 유치를 때듯. 나 는 그레텔을 살살 달랬다.
그렇게 그레텔이 방심하던 틈을 타 나는 머리의 열매를 확 따버렸다.
“휴.”
그레텔은 내 품에서 나와 머리의 나뭇가지를 만지며 원망스러운 눈으 로 나를 바라봤다. 이내 두 눈에 작 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 하나도 안 아프지?”
그레텔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힘차게 다섯 번이나.
정말 아프긴 하나 보다. 괜히 미안 하네.
“그레텔.”
나는 그레텔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품에 안으며 등을 토닥 여줬다.
“미안해.”
진심이었다. 물론 다음에 열매가 또 생기면 다시 이럴 거긴 하다.
그때도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뭐.
다음 열매 때까지 포함해서 미안 해.
그레텔은 내 진심(?)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화가 풀린 모양이다.
나는 그레텔의 입에 소시지 몇 개
를 물려주고는 소파 위에 앉았다.
그리고 손에 쥔 열매를 확인했다.
[신비한 마계수 열매(S)]
분류 : 영약
설명 : 복용 시, 근력과 순발력이 5% 상승합니다.
체질이 개선됩니다. 성장판이 열리 며 전투에 적합한 골격으로 천천히 변화합니다.
몸의 노폐물이 배출되며 마력에 민 감해집니다.
“와.”
아까도 보고 놀랐지만 다시 봐도 놀랍다. 설마 s등급의 영약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사실 B등급 정도의 영약을 예상했 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거기다 효과를 보면 단순히 능력치 만 상승시켜주는 것도 아니었다.
무려 체질올 개선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거기다 성장판이 열린다니.
그렇다면 혹시 여기서 키가 더 커 지는 건가?
나는 기대감을 가득 품고 열매를 물로 깨끗이 씻겨냈다.
“이대로 삼키면 되나.”
……아니지.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복용 시, 근력과 순발력이 5% 증 가.
이 효과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 해서는 기존 스텟이 높을수록 좋다.
그렇다면 섭취하기 전에 스텟을 포 인트로 미리 구매하는 게 좋지 않을
까.
“홈.”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아직 여유 포인트도 있으니까.
[포인트 상점에 입장합니다.]
[기본 스텟 상점]
►체력 0.1 - 100포인트
►근력 0.1 - 100포인트
►마력 0.1 - 180포인트
필요한 스텟은 근력과 순발력.
각각 10스텟 정도 구매하는 게 괜 찮을 것 같다.
필요 포인트는 두 개 합쳐 29,000 포인트.
꽤 부담되긴 하지만 고정 능력치 10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값이 아 니다.
[근력을 구매했습니다.]
[순발력을 구매했습니다.]
[기본 스텟 상점의 ‘근력’이 0.1 당
200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기본 스텟 상점의 ‘순발력’이 0.1 당 200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됐다.”
본능적으로 내 육체에 무언가 변화 가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몸에 힘이 느껴지고, 감각도 예리 해졌다.
곧바로 능력치를 눈으로 확인해보 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아냈다.
영약을 먹은 뒤 드라마틱하게 바뀐 능력치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 다.
“포인트 좀 남았는데 마력이나 더 살까.”
능력치의 불균형이 생기는 것도 안 좋으니 마력에 더 투자하는 것도 괜 찮을 것 같다.
너무 많이는 말고 5 정도만.
[마력을 구매했습니다.]
[기본 스텟 상점의 ‘마력’이 0.1 당
230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한순간에 39,000포인트나 사용했다. 힘들게 벌었지만 사용하는 건 한순간이다.
그럼 이제 열매를 먹어볼까.
나는 신비한 마계수 열매를 입에 물었다.
아삭. 입으로 씹자 달콤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식감은 토마토인데 맛은 수박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레텔이 하도 소시지를 먹어대서 소시지 맛이 나면 어쩌나 걱정했는
데 이건 다행이다.
[‘마계수 열매 섭취’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적웅형 특성, ‘약성 증폭’의 효과 로 능력치를 추가 획득합니다.]
[근력 0.69, 순발력 0.67를 추가 획득합니다.]
“……됐나?”
나는 몸을 살폈다. 지금 당장은 무 언가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 지만 이제 곧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때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서 터지면서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허 억!”
나는 과거 금선과를 섭취했을 때처 럼 자세를 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금선과를 섭취했을 때는 몸속의 마력이 날뛰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뼈와 근육이 분리되는 듯한 느 낌이 었다.
“크으윽!”
고통을 참을 수 없던 나는 결국 소파에 드러누워 몸을 웅크렸다. 끔 찍한 고통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 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띠리링! 띠리링!
번뜩 정신이 들었다. 소파 위 스마 트 학생 수첩에서 시끄러운 알람 소
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넓은 거실. 그리고 소파 위.
그러다 문득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 영약 먹고 기절했었지.
나는 알람을 끄고는 곧바로 능력창 을 확인했다.
[능력치] 체력 : 70.8
근력 : 74.77
마력 : 62.5
속도 : 37.9
순발력 : 71.12
손재주 : 29
“......대박.”
능력치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근 력과 순발력이 무려 70을 넘어섰다. 이제는 체력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세상 그 누가 이 능력치를 발현계
마법사의 능력치라고 생각할까.
“아, 맞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서둘러 일 어났다. 오늘은 월요일. 등교해야 한다.
나는 서둘러 몸을 씻고는 교복을 입었다.
“음?”
뭔가 교복 느낌이 이상한데. 뻣뻣 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서둘러 교복 안을 살펴봤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착각인가?”
나는 테이블의 빵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대자로 누워 자고있는 그레 텔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레텔, 다녀올게.”
그레텔은 알겠다는 둣 몸을 뒤척이 더니 다시 잠들었다. 그 귀여운 모 습에 피식 웃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느끼며 등굣길 을 걸었다.
하루 사이에 등굣길에 뭔가 변화가 느껴졌다.
형형색색의 장식품. 그리고 여러 설치 마도구와 현수막.
내일모레 있을 태휘제 때문에 길거 리를 꾸며놓은 모양이다.
“선배님!”
그때 저 멀리서 최서윤이 반가운 얼굴로 내게 뛰어왔다. 내 코앞까지 다가온 최서윤은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와〜 여기서 또 만나네. 등교하시 는 거죠?”
“어. 그렇지.”
“헤헤.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
그렇게 나와 최서윤은 함께 등굣길 을 걸었다.
최서윤은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신 나는지 옆에서 주절주절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번 태휘제에 자 기가 무슨 역할을 맡았고 뭘 해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는데 최서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최서윤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의문 에 찬 시선을 보냈다.
콕.
그때 그녀의 손가락이 내 뺨을 찔 렀다. 나는 그 상태로 눈알만 굴려
최서윤을 바라봤다.
“뭐냐?”
최서윤은 내 볼을 누른 손가락 떼 더니 자신의 손가락 끝을 바라봤다.
“아뇨. 혹시 화장이라도 했나 싶어 서요.”
“화장?”
갑자기 웬 화장?
최서윤은 다시 내 얼굴을 빤히 바 라봤다.
“네, 오늘따라 뭔가 잘생…… 이 아니라 피부가 엄청 좋아 보여서.”
“태양 빛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아침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