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535)

그의 직책은 한세연보다 높지만, 한성제약의 실세는 한세연이다.

언젠간 한성제약의 가장 높은 자리

에 오를 것이니 회사의 중대한 사안 이 아닌 이상 그녀의 의견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정 이사의 말에 한세연은 손에 쥔 서류를 내려놨다.

“그럼 명단에 추가하죠. 다음 주에 학교에 통보하고 미팅 날짜는 태휘 제 당일로.”

시험이 끝난 다음 날인 금요일 오

후 12시.

2학년 시험은 끝나서 쉬지만 1학 년과 3학년은 오늘까지 시험을 본 다.

그 영향으로 기숙사 밖은 오늘도 시끄럽다. 수많은 기자와 스카우트. 그리고 구경하러 온 일반인들까지.

마치 축제가 벌어진 것만 같은 분 위기다.

정작 진짜 학교 축제인 태휘제는 2주 뒤인데.

나는 크게 하품하고 침대에서 일어 났다.

어제 있었던 시험의 흥분감이 밤늦 게까지 남아서 잠을 좀 뒤척였다.

덕분에 12시까지 내리 자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더 자고 싶기는 한데 생활 패턴이 망가질까 봐 억지로 일 어났다.

그리고 오늘 개인적인 약속이 있기 도 하고.

나는 잠든 사이에 생긴 외부자의 혜택 메시지를 확인했다.

[많은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되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아직 마주치지 않은 등장인물이 당신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명성 포인트 5,500포인트를 더 벌 어냈다.

조금 신경 쓰이는 건 최근 ‘마주치 지 않은 등장인물’과 관련된 메시지 가 최근 자주 떠오른다는 점이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만 있다면 좋 을 텐데 그걸 알 수 없으니 상당히

신경 쓰인다.

“으음!”

나는 보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 98,500]

9만 8천 500포인트. 뭔가 애매한 수치다.

물론 이번 중간시험의 활약으로 아 직 모든 포인트를 회수한 건 아니다.

어제 시험의 결과가 아직 크게 알 려지지 않기도 했고, 또 순위 상승

과 같은 업적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 이다.

새 특성을 구매하는 건 이 모든 포인트를 받고 난 뒤로 미뤄야겠지.

나는 대충 샤워를 마치고 스마트 학생 수첩을 확인했다.

거의 100개가 넘는 메시지가 도착 해 있었다.

그중에는 승리를 축하한다는 학생 들도 많았지만, 그것 말고도 대형 길드 스카우트들의 영입 메시지도 꽤나 많았다.

[안녕하세요. 매화 길드 영입팀장

성민혜입니다. 김선우 학생의 활약 상은 잘 보았습니다. 저희 길드에서 는……]

대충 읽다가 지쳐서 치웠다. 그보 단 다른 중요 인물들의 메시지를 확 인했다.

최서윤, 윤하영 신영준 등등 잡다 한 메시지를 읽다가 40분 전에 도 착한 유아라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오늘 승리 팀 기념 회식 있다는 데 갈 거지?]

승리 팀 기념 회식.

시간은 오늘 저녁 6시다. 시험도 끝났고 금, 토, 일 쭉 쉬니 제대로 놀자는 의미였다.

물론, 이건 유아라의 의견이 아니 라 다른 학생들의 의견이다.

[가야지]

그렇게 참가하라고 여기저기서 난 리를 쳐댔으니까.

답장을 보내고 그레텔에게 다가갔

다. 그레텔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 워 드르렁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웃겨서 조용히 웃다 가 머리의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열매가 거의 무르익었다.

아직 외부자의 혜택을 사용해도 효 과를 알 수 없었지만, 일주일 내로 따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네. 어떤 효과를 가졌을지.

나는 열매를 콕콕 손가락으로 눌렀다.

말랑말랑하면서도 딱딱한 게 토마 토랑 촉감이 비슷하다.

“응애.”

그때 그레텔이 몸을 뒤척였다. 혹 시 나 때문에 잠에서 깬 걸까 미안 함이 들었다. 다행히 잠에서 깨진 않았다.

한편, 이서준은 본가로 돌아왔다.

시험에서 패배한 뒤, 학교에 있으 면 뭔가 마음이 뒤숭숭했기 때문이 다.

거대한 저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흰 백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냐.”

“할아버지.”

이서준이 반갑게 김진철을 불렀다.

김진철은 이서준을 물끄러미 바라 보더니 말했다.

“밥은 먹었냐?”

“네, 먹었어요. 할아버지는요?”

“나도 먹었다.”

김진철의 대답에 이서준이 물었다.

“근데 할아버지, 오늘은 일 안 하

세요?”

“일은 무슨.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오늘 겨우 집에 왔는데.”

“아......

“그리고 이야기 들었다. 이번 중간 시험에서 평소와 같이 오만하게 굴 다가 추하게 패배했다며? 세상 밖에 아주 소문 다 났다. 쯧쯧.”

그 말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오만하긴요. 혼자서 선방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인데. 제 안티 카페 활동하세요?”

이서준의 말에 김진철이 낄낄 웃었다.

“사실 네 시험 영상은 이미 봤다. 그 상대 아이가 네가 말한 김선우라 지?”

김선우라는 이름이 들리자 이서준 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끄덕 였다.

“맞아요. 김선우.”

“꽤 재밌는 아이더구나. 전투 방식 도 내가 아는 한심한 누구와 꼭 빼 닮아서 재밌게 봤다.”

김진철이 아는 한심한 누군가.

이서준은 누구를 말하는지 눈치챘 다. 허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 았다.

“그래서, 시험의 패배로 무엇을 느 꼈냐? 패배에서 뭔가 배울 점이 있 었을 거 아니냐?”

이서준은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 었다.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 꼈죠. 그리고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도 느꼈고.”

“쯧. 한심한 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그렇게 당해놓고도 정신 을 못 차렸어.”

“이 멍청한 놈아. 힘으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강한 힘

을 지녔어도 혼자서는 그 한계가 명 확해.”

이서준은 입을 다물었다.

“이번 시험에서 패배한 원인은 네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동료를 신 경 쓰지 않는 네 이기심 때문에 진 거다.”

그 말에 이서준은 잠시 정신이 멍 해졌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리더로서 자질과 전략의 차이.

유아라는 팀의 리더로서 팀 전체의 전략을 준비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 했다. 이번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었다.

“동료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 누구 보다 강한 힘을 지녔어도 혼자선 의 미가 없다. 심지어 남의 목숨을 파 리 목숨같이 생각하는 범죄 집단들 도 동료의 목숨만큼은 소중히 생각 한다.”

김진철이 잠시 입을 다물며 고민하 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진천우 역시 마찬가지였지. 그 녀 석이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것도 그 녀석이 강해서가 아니야. 강한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진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 시험에서 나는 나의 역할만을

생각했다. 유아라와 김선우는 팀을 생각했고.

“너도 이제 어리지 않다. 이제는 네 동료를 만들어야 할 때다. 주변 을 둘러보면 반드시 네게 필요한 사 람이 있을 거다.”

내게 필요한 동료…….

이서준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떠 올렸다.

당장 생각나는 건 이현주, 신영준.

그리고 앞으로 동료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아라, 최서윤.

……그리고 김선우.

이서준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신이 번쩍 드네요.”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동료 가 생기거든 그들을 실망시킬 행동 은 절대 하지 마라.”

김진철이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그 말에는 다른 뜻이 담긴듯 했다.

“네.”

그때 이서준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 다.

“근데 아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한심한 누구요. 최일현 마법사님 말

씀하는 거 맞죠?”

“그래, 맞다.”

최일현.

이서준을 포함해 김진철이 키운 세 명의 제자 중 하나였다.

김진철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위대 한 마법사 ‘태휘’처럼 되고 싶다며 4 계통 마법을 모두 익힌 건 유명 한 일화이다.

그 외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세 상 밖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다는 점이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그의 별명은 ‘괴짜’.

“그분은 요즘 뭐하신데요? 항상 혼

자 다니시잖아요.”

“모른다. 그런 괴짜 녀석. 어릴 적 부터 말도 더럽게 안 들어 먹던 녀 석이니까. 뭐, 또 쓸데없는 거에 홍 미가 생겨서 연구나 하고 있겠지.”

김진철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러더 니 말을 이었다.

“내가 동료를 만들라는 건, 일현이 그놈처럼 되지 말라는 거다. 그 녀 석은 사교성이 나빠서 항상 혼자니 까.”

“네, 알았어요.”

시간은 빠르게 흘러 월요일이 되었다. 시험이 끝났기도 했고, 3일 동 안 휴식을 맛봐서 그런지 교실의 분 위기는 조금 퍼질러져 있었다.

나는 책상 구석에 앉아 스마트 학 생 수첩으로 인터넷을 보고 있었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2학년 ‘김선 우’, 이달의 유망주 선정]

[‘김선우’, STAR50에서 유망주 랭 킹 26위로 상승]

“선우야!”

인터넷에 올라온 반웅을 멍하니 살 펴보는데 윤하영이 반가운 말투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학생 수첩을 끄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하고 있었어?”

“그냥 인터넷 좀 봤어.”

내 대답에 윤하영이 귀엽게 의심하 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자기 이름 검색했구나? 맞 지?”

윤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정곡이라 조금 당황했다. 얘가 나도 모르게

독심술을 익혔나?

“뭐야. 어떻게 알았어?”

“딱 보면 알지. 내가 선잘알이잖 아.”

선잘알은 또 뭐야.

“아, 맞다. 선우야. 실전 지도 선생 님 정했어?”

“실전 지도 선생님? ……아.”

실전 지도.

2학년 2학기 1차 중간시험이 끝난 뒤 새롭게 추가되는 1:1 개인 지도 과목이다.

프로 현역 마법사들에게 1:1로 가

르침을 받을 수 있어 실전 감각을 키우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특 징이 있다.

참고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개 인 교사는 학교 내부의 교사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1:1 개인 지도를 위해 현역 마법사들을 섭외해오기 때문에 외부의 인물에게도 1:1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단, 외부 교사 같은 경우는 학생이 수업을 신청하고 교사가 받아줘야 한다.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이

희영 선생님으로 하지 않을까?”

굳이 외부인에게 가르침을 받을 필 요는 없으니까.

발현계 교사인 이희영도 교사로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래? 난 고민 중인데. 소문에 의 하면 이번에 외부 강사로 엘레나 마법사가 온다는 얘기를 들어서.”

엘레나 그린.

세계에서 손꼽히는 빙속성 발현계 마법사였다.

그리고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는 엘레나가 이번 외부 교사로 들 어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소문 맞아. 꼭 그 사람한테 신 청해. 같은 빙속성이니까 분명 도움 이 될 거야.”

“그래? 근데 그분이 나를 받아주시 려나……

“분명 받아줄 거야. 걱정마.”

지금보다 성장이 훨씬 느렸을 원작 에서도 받아줬으니까.

내 말에 윤하영이 밝게 웃었다.

“알았어. 선우 네 덕에 용기가 난 다.”

그때 앞문이 열리며 장안철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학생들의 시선이 동시에 그를 향하 며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자, 다들 주말 잘 쉬었나?”

“네에!”

학생들의 힘찬 목소리에 장안철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중간시험이 끝나서 다들 쉬 고 싶겠지만 앞으로 또 바쁜 일정들 이 기다리고 있다. 알고 있겠지?”

앞으로 바쁜 일정들.

2주 뒤에 있을 태휘제와 개인 지 도 과목을 위한 면접등을 말하는 거 다.

“태휘제는 다들 1학년 때 해봐서 알겠지만, 반마다 어떤 활동을 할지 정해야 한다. 시간이 널널하지 않으 니 빠르게 정하길 바란다.”

태휘제에는 문화, 예술, 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학교 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달리기 경주 같은 것도 있고, 퀴즈 대회 같은 것도 있다.

특히 내년 3학년 태휘제 때는 연 극 같은 미친 짓도 하게 되는데 그 때 보이는 이서준의 발연기는 그가 프로 데뷔한 이후에도 계속 언급되 며 놀림 받는 흑역사가 된다.

“뭐, 다들 알아서 잘 준비하리라 믿고…… 그리고 오늘 중간시험 결 과가 나왔다.”

“어? 벌써?”

“시험 3일 전에 끝났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자 장안 철이 책상을 두들겼다.

“결과는 종합 정보 시스템에 올라 왔으니 각자 스마트 학생 수첩을 통 해 확인하길 바란다. 그럼 조례를 마치겠다.”

장안철은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갔 다. 그가 나가자 학생들은 서둘러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켜고 성적을 확

인했다.

[2-중간 평가 성적]

[김선우][2-A]

[실기 - 2위]

[이론 - 1위]

[최종 합산 - 13위]

[‘최종 성적 탑 15’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실기 2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실기 2위.

그리고 최종 합산 13위.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왔다.

거기다 1만 5천 포인트를 얻어내 기도 했다. 역시 성적이 높아지니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의 양의 확 늘어났다.

나는 시선을 돌려 유아라와 이서준 을 바라보았다.

성적을 확인하던 둘의 표정이 이전 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유아라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 고, 이서준은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굳어 있었다.

대장전의 결과답게 유아라가 이번 실기의 1위를 차지한 거겠지.

그렇다고 해도 아직 종합 성적 1

위는 이서준일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점수가 있기 때문 이다.

그때 유아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유아라는 나를 바라보더니 기분 좋 은 미소를 지었다.

“보조 형태는 보통 창, 검, 화살, 가시, 구체 이런 공격적인 형태보다 는 벽, 기둥 같은 수비적으로 사용 할 수 있는 형태를 사용하는 게 좋 아요.”

오전의 주특기 수업.

넓은 발현계 훈련장에서 학생들은 옹기종기 바닥에 모여 앉아 이희영 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떠들기도 했지만 나는 귀를 기울이며 이희영의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래서 여기서 질문. 자신에 게 맞는 보조 형태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 있을까요?’’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이희영은 기특함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요즘 최고 인기인인 선우 학생. 대답해봐요.”

이희영의 농담에 몇몇 학생이 쿡쿡 웃었다.

심지어 내 옆에 앉은 유아라까지

조용히 웃는다. 얘가 웃을 정도면 진짜 웃기다는 건데.

“자신이 사용하는 주 속성과 형태 입니다.”

“아주 훌륭해요. ……라고 하기엔 모두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쉬운 질문이었죠?”

“네!”

학생들의 힘찬 대답에 이희영이 다 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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