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535)

“……김신우가 아니라 김선우야.”

“아무튼, 괜히 진 게 부끄러워서 언론에 억지로 그놈 띄워주는 거 진 짜 추하니까 그만둬. 강자에게 졌다 는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거잖아. 속이 다 보인다고.”

강자에게 졌다는 자기 합리화.

릴리는 그 말에 조금 찔렸다. 확실 히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SNS나 언론에 김선우의 강함을 남 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이유 역시 그 런 이유였고.

하지만 김선우는 자신이 언론을 이 용해 만든 강자가 아닌 진짜 강자였

다.

그것도 자신의 추측이지만 이서준 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진 강자.

릴리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자신이 겪었던 김선우에 대한 경험 을 루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내년 성무제에서 김선우에게 패배 하며 좌절감에 빠진 루크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웃겨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김선우라면 분명 5위 안 에 들어서 성무제에 참가할 테니까.

“그래, 내 실력이 허접하고 못나서 그런 애한테 졌다. 됐냐?”

“순순히 인정하니 좋네. 하긴, 유망 주 랭킹 3위였는데 지금은 6위니까. 그쯤 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지. 자기 발전을 하려면 말이야.”

그 말에 릴리가 눈웃음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야. 그냥 여기서 한 판 붙자. 넌 진짜 뒤졌어.”

“미안한데 한가하게 그럴 시간 없

거든?”

“……그렇지. 아! 늦었다! 아씨 너 때문에 늦었잖아!”

릴리는 서둘러 어디론가 달리기 시 작했다. 루크 역시 그녀의 뒤를 따 라 달렸다.

그렇게 둘은 영상 참관실에 도착했다.

몇몇 기자들은 그들을 보고든 빠르 게 셔터를 눌렀지만, 그들은 무시하 고 참관실 안으로 입장했다.

“와. 엄청 넓다.”

거대한 원형 시험장.

수많은 사람이 모여 거대한 화면에서 나오는 시험을 관람하고 있었다.

영상은 약 15개 정도로 분할되어 있는데 밑에 시험 시간 25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씨 너랑 떠들다가 25분이나 늦 었잖아!”

릴리가 버럭 화를 내며 현 상황판 에 시선을 돌렸다.

[생존 인원]

[1 팀 : 17명] [2 팀 : 12명]

“……뭐야 1팀이 압도적인데?”

자신의 기억에 의하면 2팀에는 이서준, 신영준, 이현주가 있다.

1팀에는 김선우, 유아라가 있고.

1위, 3위, 4위가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데 저런 결과라니 대체 무슨 일 이 일어난 거지?

릴리는 영상에 시선을 돌렸다.

피 터지는 혈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다수와 의 전투에 특화된 유아라였다.

유아라는 흔자서 수많은 화염 구체 를 뿌리며 2팀의 멤버들을 처치해

나가고 있었다.

“.…”뭔데.”

치밀한 전략과 정보전. 그리고 대 장을 알아내기 위한 심리 싸움을 기 대했건만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난 전 이루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세계 최고의 명문 마법 학교의 시험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실망스러웠다.

릴리는 영상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 며 김선우의 위치를 쫓았다.

이내 발견했다.

발현계 마법사라고 믿기 힘들 정도 의 속도로 달리는 김선우.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이서준, 신영 준과 3명의 학생.

한참 추격전이 진행 중이었다.

시험 시작 40분.

나는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달 리기.

마치 이전에 백은성을 상대로 도망 치던 그때와 같이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현재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 다.

시험 시작 초반, 팀원들에게 섞여 마나를 아끼며 전투를 하고 있었는 데 살기 감지 특성이 발동되었다.

살기의 정체는 이서준이었다.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아차리고 나를 대장이라 판단한 것 이었다.

결국, 이서준은 신영준을 데리고 나를 계속 쫓고 있었다.

아마 다른 팀원들은 나를 처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나선 거 겠지.

물론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도 계획의 일부에 있었으 니까.

그래도 최근 마력 스텟을 구매한 덕인지 40분 내내 마력을 사용하며 달리고 있음에도 크게 마력이 부족 한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서준의 달리기가 학교 최 고 수준이긴 해도 나 역시 달리기만 큼은 이서준에게 크게 밀리지 않으 니까.

콰아아앙!

그렇게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거 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런 폭발 음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유아라 밖에 없다.

다행히 유아라가 상대의 숫자를 빠 르게 줄여주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의 무식한 전략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내가 강자들의 시선을 끌고, 그 틈 에 유아라가 최대한 빠르게 상대의 숫자를 줄이는 것.

유아라와 나의 장점을 살린 계획이 라 할 수 있었다.

“쟤 뭐 이리 빨라!”

뒤에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서준과 신영준이 아닌 뒤에서 따라오는 다른 3명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와 이서준의 거리는 조금 씩 좁혀지고 있었다.

내가 이서준에게 달리기 속도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다고 하나, 어디까 지나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기 에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내 등 코앞까지 다가온 이서준이 내게 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쾌속의 검.

나는 고개를 숙이며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달리는 도중에 검을 휘둘러서 자세 가 불안정했을 텐데도 엄청난 속도 였다.

전투광 특성의 동체 시력 효과가 없었더라면 분명 지금쯤 내 머리는 바닥에 굴러떨어졌을 테지.

이서준은 곧바로 다음 공격 자세를 취했다. 나는 빠르게 마법 구체를 구현했다.

내 손 위가 아닌 이서준의 시각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파앙—!

마법 구체는 이서준의 사각에서 날 아들었지만, 이서준은 눈으로 좇기 도 힘들만큼 빠른 속도로 몸을 회전 하더니 공격을 피해냈다.

갈 길을 잃은 마법 구체는 그대로 소멸되었다.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사각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직감으 로 피해낸다고?

후우우우웅!

그때 이서준이 몸의 회전력을 이용

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어서 이서준의 뒤에 신영준이 나 타나더니 마력이 가득 담긴 창으로 나를 향해 길게 찔러왔다.

빼도 박도 못하는 위기의 상황.

나는 ‘순간 가속’을 발동했다.

동시에 내 주변의 시간이 느려진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육체만 가속하는 것이 아닌 두뇌도 함께 가속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빠르게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확인했다.

이서준의 검, 신영준의 창. 그리고

그 뒤에서 나를 향해 날아드는 3가 지의 마법들.

순간 가속의 지속시간은 고작 2초 였지만, 나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빠르게 피해야 할 것의 우선 순위를 생각했다.

가장 먼저 피해야 할 것은 당연 이서준의 검이었다.

고개를 숙여서 피하는 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다음에 이어질 신영준의 창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조금 위험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뒤로 이동해 피해야 한다. 그래도

순간 가속이 육체의 움직임을 폭발 적으로 늘려주니 불가능하지는 않 다.

나는 발끝에 마력을 집중해서 빠르 게 백스텝을 했다.

이서준의 검이 허공에 휘둘러지며 내 가슴을 살짝 베었다.

옷이 잘리며 가슴에 일자의 상처가 생겼지만, 이 정도 피해면 계산 영 역이었다.

일순 이서준의 표정에 놀라움이 드 티웠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슈우우웅!

길게 뺃어지는 신영준의 창.

백스텝으로 몸의 균형이 살짝 무너 진 상태였지만 이것 역시 피하지 못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회전해 옆으로 피했다. 신영준의 창은 내 팔뚝에 작은 상처를 그으며 허공을 찔렀다.

그다음은 쉽다. 내게 날아드는 3개 의 마법. 마법 3개를 구현해 그대로 방출해서 허공에서 격추시켰다.

콰아아앙!

“……뭐, 뭐야?”

2초라는 짧은 시간.

모든 공격을 홀려내는 데 성공하자 신영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서준과 그 뒤로 따라오는 3명 모두 마찬가지였다.

모두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순간 가속이 아니었으면 방금 무조 건 죽었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마나를 소모해 마력 방전 직전까지 왔지만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었다.

“바, 방금 뭐냐?”

“와. 무슨 순신(痛身) 보는 줄.”

s등급 강화계 마법사 순신, 렌.

‘순간 가속’은 그자가 사용하는 능 력이 맞았다.

몇 가지 차이가 있다면 오리지널과 달리 2초의 시간밖에 유지할 수 없 고 마나 소모량 역시 엄청나다는 점 이다.

이건 B등급 스킬로 책정된 만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페널티가 더 적었으면 아마 A등급 이나 S둥급이었을 테니까.

나는 손을 쥐었다 펼쳤다.

이제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안 그래도 40분 내내 뛰어다녀서 슬슬 한계기도 했는데 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까.

“하아.”

우리 팀은 대체 뭐 하는 건지. 원 래 계획대로라면 진작 상대 팀 대장

이 처치당했어야 정상인데.

이러다 지는 게 아닐까 괜히 걱정 이 든다.

그때 이서준이 씨익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뒤에 다른 녀석들은 내 모습에 살 짝 쫀 것 같지만 이서준은 오히려 지금 상황에 더 자극을 받은 모양이 다.

그 미소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야야. 좀만 쉬었다 하자.”

내 말에 이서준은 즐겁다는 눈빛으

로 미소를 지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무슨 악 당…… 그러니까 최종 보스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천천히 눈을 굴려 천장의 실 시간 상황판을 바라봤다.

[1 팀 : 15명] [2팀 : 5명]

뭐야. 남은 인원이 다섯 명?

지금 내 앞에 다섯 명이 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대장은?

그렇게 수많은 의문에 차오를 때였

다.

멀리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곳을 확인했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이글이글 타오 르며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압도적인 마력. 이런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건 마법사관학교 내에서도 단 한 명뿐이다.

“김선우. 수고했어.”

눈이 부시는 인공 태양 빛 아래에서 유아라가 내게 말했다.

유아라의 뒤로 13명이 모습을 드

러냈다. 마치 만화나 영화 속에서 극적인 순간에 둥장하는 지원군을 보는 듯한 감동을 일으켰다.

사악한 악당 무리, 이서준과 신영 준. 그리고 나머지 3명의 표정이 천 천히 굳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제야 깨달았다.

“이서준.”

내 부름에 이서준이 다시 나를 바 라봤다. 그 표정엔 황당함, 놀람 둥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대장이었구나.’’

유아라와 다른 팀원들이 참전하자 상황은 급속하게 변했다.

15 vs 5

숫자의 차이는 압도적. 이서준 팀 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이서준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 진 천재라고 한들, 유아라와 같은 강자를 포함한 압도적인 숫자 차이 는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

이서준과 신영준, 그리고 남은 3명

은 서로 눈을 마주 보더니 무언가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파앗!

신영준과 3명은 유아라를 포함한 14명에게 달려갔다.

보아하니 4명이 나머지 14명을 상 대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작 전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서준은 나를 향

해 돌진했다.

숫자에 밀리고,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결국 이 시험의 최 종 목적은 상대 팀의 ‘대장’을 처치 하는 것.

즉 대장인 나를 처치할 수만 있다 면 저들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그때 이서준의 몸이 번쩍이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내 내 등 뒤 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검을 휘둘 렀다.

나는 몸을 꺾으며 공격을 피해냈 다.

검의 궤적이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

카락을 스쳤다. 아까는 전력이 아니 라는 듯 확연히 빨라진 움직임이었다.

그렇다고 이서준이 여태 나를 봐줬 다거나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 이서준의 속도가 빨라진 건, 말 그대로 ‘주인공’이라서 가능한 ‘위기 순간의 각성’이니까.

[‘우격다짐’。]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그리고 이서준의 각성을 감지한 듯

전투광 특성의 지속 효과, ‘우격다 짐’이 발동되었다.

우격다짐은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 와 겨룰 때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켜 준다.

즉, 전투광 특성이 이서준은 나보 다 더 강한 강자라고 인식한 것이다.

후우우웅!

“큭!”

나는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꺾으며 공격을 피해냈다.

모든 능력치 10% 상승 덕에 겨우 겨우 공격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렇 다고 완벽한 회피도 아니었다.

이서준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몸 에 크고 작은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 났다.

고통에 괴로웠지만 아파할 틈은 없었다.

“조금만 버텨!”

멀리서 다급한 유아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원들은 나를 돕고 싶어 했지만 남은 4명이 끈질기게 접근을 막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어 하는 모습이 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대자연의 심장’ 을 발동했다.

두근!

심장이 크게 뛰며 거의 바닥났던 마나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력으로 육체를 한 단계 더 강화했다.

이서준도 나에게 무언가 변화를 감 지했는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다시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와 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나는 모든 마력을 발에 집중해 뒤

로 다시 빠졌다. 그리고 손에 마법 구체를 구현해 이서준을 향해 쏘아 냈다

콰아앙-!

강한 굉음이 울렸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잠시 뒤 호신강기로 완 벽한 방어에 성공한 이서준이 모습 을 드러냈다.

다른 학생이었으면 분명 치명타를 입혔을 공격. 하지만 이서준에게는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역시 일반적인 학생과는 확연히 다 르다.

그때 이서준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고 날카 로워졌다고 해야 하나? 이서준에게 서 보기 힘든 감정이었다.

하지만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이서준은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나 역시 마법을 계속해서 방출하며 뒤로 빠르게 이동했지만, 이서준의 움직임은 나의 ‘전력’보다 빨랐기에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코 앞까지 다가온 이서준이 내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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