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535)

유아라가 궁금증에 찬 시선으로 내 게 물었다.

“그냥 이것저것 할 일이 있어서.”

“외박이라도 했나 보네.”

외박이라. 어느 정도 맞긴 하다.

“어어. 맞아.”

그러자 나를 향한 유아라의 시선이 묘해진다.

“학생이 외박할 일이 뭐가 있다 고.”

“할 수도 있지. 자세히 묻지 마라.”

“……흠. 그래.”

유아라의 표정이 잠시 생각에 잠기 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디 여자랑 밤늦게까지 술 마시거나 그러진 않았을 테니까.”

뭐야. 어떻게 알았지?

물론 뉘앙스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 괜히 찔렸다.

“어, 어어. 그렇지.”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진짜야?”

“……그럴리가 있냐?”

“흐음…… 수상한데.”

유아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암튼, 할 말 없으면 간다.”

그렇게 뒤를 돌아 기숙사로 걸어가 려는 때였다.

“김선우.”

뒤에서 유아라가 다시 나를 불렀다.

내가 뒤를 돌자 유아라가 입을 열 었다.

“아니, 다음 주 시험 같이 힘내자 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같이 잘해보자.”

그렇게 유아라와 헤어지고 기숙사

로 돌아왔다.

삐빅 문이 열리자 멀리 대자로 누 워있던 그레텔이 잠에서 깬 듯 비몽 사몽 일어났다. 마치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를 보는 듯한 모습 이다.

“그레텔. 잘 있었어?”

그레텔이 아장아장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발목을 안는다.

나는 쪼그려 앉아 그레텔의 몸통을 쓰다듬었다.

강아지처럼 부드러우면 좋겠는데 딱딱하고 거칠어서 손바닥이 아프 다.

시간이 흘러 중간시험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필기시험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외부자의 혜택 효과 가 있었기에 순식간에 완벽한 정답 을 써 내리고는 푹 잠들었다.

덕분에 컨디션도 최고다. 다음 시 험인 인공 보스전의 기록을 0.3초는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김선우! 밥 같이 먹자!”

이서준이 반갑게 내게 다가왔다. 웬일로 단짝처럼 같이 다니는 신영 준과 이현주는 어디 갔는지 혼자 있 다.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자 이서준이 먼저 말했다.

“영준이랑 현주는 교무실 갔어. 후 원 관련해서 면담이 있거든.”

“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먹자.”

외롭게 흔자 먹는 것보단 나으니 까.

그렇게 이서준과 둘이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밖에는 수많은 사람이 보 였다.

이 증 70%가 시험을 관람하러 온 외부인이다. 기자, 스카우터 둥등.

그리고 남은 30%는…… 마법사 협회 소속의 안전 요원이다.

1학기 때 마인들에게 테러를 당하 는 수치를 겪었으니 학교 나름 대비 를 한 것이겠지.

그렇게 쭉 걷는데 이서준이 뜬금없 이 내게 말했다.

“시험은 잘 봤어?”

“당연하지. 만점 확정이야.”

“……자신감 대단하네. 하긴, 3번 연속 이론 만점이니 뭐.”

“그럼 뭐해. 정작 중요한 건 실기 인데 뭐.”

“뭐래. 너 실기도 잘하잖아. 이번 대장전 기대하고 있어.”

이서준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생각 에 잠기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잘하면 너랑 싸울 수도 있겠네.”

대장전은 기본적으로 상대와 싸워 쓰러트려야 숭리하는 룰이다.

이서준의 말대로 아마 이번 시험 때 이서준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분 명 올 것이다.

거기다 나는 이번 시험의 ‘대장’이 기도 하니까.

“봐줘.”

내 말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그때 멀리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 고 있는 기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을 따라 다른 기자들도 우리를 발견하고는 뛰어왔다.

당연히 모두 이서준을 보고 찾아왔 나 생각했는데.

“김선우 학생! 인터뷰 부탁드립니 다!”

이서준이 아닌 내게 말을 걸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포인트를 획득할지도 모르니 인터뷰를 받아주 기로 했다.

이서준 역시 웃으며 기다려 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다.

“네. 괜찮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선우 학생. ‘스타 50’에서 이번에 반드시 주목 해야 할 유망주 50명에 선정되셨습니다. 알고 계시나요?”

스타 50.

전 세계유망주의 순위를 매기는 권 위 있는 마법 관련 잡지 회사였다.

순위는 17세부터 19세까지 모든 유망주의 순위를 매기는데 아마 지 금 시점에서 1위는 이서준, 5위는 유아라, 6위는 릴리 로즈, 9위는 최 서윤일 것이다.

물론 유아라가 5위에 선정된 건 이서준에게 패배해 항상 2위를 했기 에 저평가된 것이었다.

릴리 로즈는 저번 기말시험 때 성 적이 크게 떨어져서 그럴 것이고.

그나저나 2학년 유망주만 뽑는 게

아닌, 전 세계 1, 2, 3학년을 합친 유망주에 내가 선정되었다는 것에 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네, 몰랐습니다.”

내 대답에 기자가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하. 그럼 오늘 릴리 로즈가 내 년에 있을 ‘성무제’에 가장 경계되 는 학생으로 김선우 학생을 뽑은 것 도 모르시겠네요?”

그날 밤.

릴리 로즈는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 로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 안에는 오늘 한국 마법사관학교의 시험 결과가 나와 있었다.

1인공 보스 타임 어택 시험J

1위. 이서준(4분 21초)

2위. 유아라(4분 26초)

3위. 김선우(4분 27초)

“ 역시.”

예상대로 김선우는 이번에도 최상 위권 성적을 달성했다.

물론 1위, 2위도 아닌 3위인 것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20위 학생이 3위를 했다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다.

릴리 로즈는 시험 내용을 확인했다.

“강화 골렘이네.”

정확히는 ‘강화 흑색 골렘’이라는 이름이다.

몸을 두르고 있는 방어 갑옷이 5

겹이 겹쳐있어, 이 5개의 갑옷을 모 두 파괴해야 쓰러트릴 수 있는 극강 의 방어력을 가진 보스 몬스터였다.

이런 몬스터들은 보통 기교형이나 컨트롤계 마법사보다는 선천적으로 마력이 강하고 많은 체급형 마법사 에게 유리하다.

아마 그런 점에서 이서준과 유아라 에게 유리한 게 많았겠지.

그리고 이전에 김선우와 직접 겨루 었을 때 느꼈던 점은 김선우는 확실 한 기교형 마법사라는 것이다.

물론 당시 상황을 복기하자면 단순 한 기교형 마법사라고 하기보다는

세계에 몇 안 되는 ‘만능형 마법사’ 에 가깝긴 했지만.

시험 영상을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김선우의 활약은 엄청났다.

댓글에서도 김선우와 관련된 내용 이 거의 30%를 차지할 정도.

그것을 보자 릴리 로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한국이나 가볼까.”

내일모레 한국에서 메인 시험인 ‘대장전’이 시작된다.

영국과 한국의 시차가 있기에 시간 만 잘 이용하면 일정에 무리 없이 시험에 참관도 가능했다.

“흐으음.”

그래, 간만에 한국에 가서 시험이 나 구경해봐야겠다.

릴리 로즈는 미소를 지으며 포탈 게이트를 예약했다.

이틀 뒤, 다목적 가상 훈련장에서 예고했던 ‘대장전’이 시작됐다.

대장전은 저번 인질극 훈련과 같이 가상 훈련장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직접 관람이 불가능하다.

대신 실시간 방영되는 모니터로 경 기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모니터가 설치된 영상 관람용 시험장에 많은 기자와 스카우터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이서준과 유아라. 그리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가득한 A반의 전투 시험 인데 이 재밌는 걸 안 볼 수는 없 겠지.

“자, 팀끼리 모이자.”

“그래.”

그렇게 시험이 시작하기 20분 전.

각 팀끼리 모였다.

우리 팀, 그러니까 1팀을 둘러봤 다.

다들 표정에서 하나같이 불안감이 느껴졌다.

“아, 이거 이길 수 있냐?”

“그러게. 상대 팀에 이서준 있는데 뭔 수로 막아?”

“왜. 우리도 유아라 있잖아.”

“아니 그래도 이서준이랑 비교하 면……

“뭐라고?”

그때 유아라가 불쑥 나타나더니 물 었다.

유아라가 이서준과 비교당하는 것 을 싫어한다는 건 모든 전교생이 알 고 있는 사실이었다.

괜한 보복이 두려워 떠들던 학생들 은 사과하며 뒤로 물러섰다.

유아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모두 에게 말했다.

“모여봐. 전략 회의하게.”

리더의 부름에 25명이 빠르게 모 였다.

유아라는 힐끔 저 멀리 열심히 떠 들고 있는 이서준 팀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전략 회의를 하기에 앞서, 대장이 누구인지는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의 문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돼? 상대 팀도 모르니까 괜찮긴 한데. 우리도 대장을 지킬 수가 없잖아.”

“괜찮아. 그리고 아마 배신자는 무 조건 나올 거야. 차라리 이게 나아.”

대장전의 룰.

시험 시작 후 20분 뒤, 선착순 3명 은 ‘배신’ 시스템을 이용해 팀을 바

그리고 유아라는 학생들이 얼마나 이서준을 신뢰하고 인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분하지만 아마 이서준과 같은 팀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팀을 배신할 애 들이 있을 것이었다.

“대장은 정하긴 했어?”

“어. 대장은 이미 정했어. 대장 등 록도 이미 마쳤어.”

“그래? 그럼 대장은 자기가 대장인 걸 아는 거지?”

유아라는 모두를 둘러보는 척하면 서 나와 슬쩍 눈을 마주쳤다.

“그렇지.”

“흐음. 대장은 누구려나. 설마 유아 라 본인 아니야?”

“큭큭. 그러면 반전이긴 하다.”

잠시 소란이 일자 유아라가 찌릿 모두를 노려봤다. 그러자 그 시선에 홈짓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동급생 상대로 저런 압박감을 줄 수 있다니.

카리스마가 대단하네…… 라고 하 기에는 사실 그냥 공포 정치 느낌이 기는 하다.

“추측은 그만하고 모두 조용히 해

봐. 이제 진짜 우리 전략을 설명할 거니까.”

유아라가 다시 말했다.

“우리 전략은 단순해.”

모두가 유아라를 바라봤다.

“무조건 공격이야.”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무조건 공격하는 거야. 누굴 지킨다거나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 상대의 숫자를 줄이는 것에만 집중해.”

“그럼 대장이 너무 위험하지 않나? 모두 공격만 하면 대장도 들키지 않

게 따라서 공격에 집중해야 할 텐 데.”

“괜찮아.”

유아라가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서 나를 향한 신뢰가 느 껴졌다.

그때 시험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중간시험 메인 종목, ‘대 장전’을 시작합니다.]

“악! 늦었다一!”

한국 마법사관학교 정문.

낯선 타국의 땅에서 릴리 로즈는 헐레벌떡 바쁘게 뛰고 있었다.

오늘 있을 한국 마법사관학교의 메 인 이벤트. 2학년 대장전이 이미 시 작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핵 심 전력인 이서준과 김선우 이 둘이 오늘 맞붙게 될지도 몰랐다. 이런

빅 이벤트를 안 보면 무조건 손해였다.

“비켜요!”

갑작스럽게 등장한 화려한 금발의 여인이 뛰어다니자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저거 릴리 로즈 아니야?”

“어? 맞는 거 같은데?”

몇몇 기자는 그녀를 알아보고는 인 터뷰를 요청하려 했다. 하지만 릴리 는 상황이 급했기에 전부 무시하고 시험장을 향해 쭉 달렸다.

그러다가 잠시 멈춰 섰다.

“근데 영상 참관실이 어디였지?”

릴리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야 하나 고민 하는데 그때 가까운 곳에서 갈색 머 리의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갈색 머리도 시선을 느낀 듯 뒤를 돌았다.

릴리는 그 얼굴을 보자 두 눈의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네가 왜 여깄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갈색 머리를 멋들어지게 뒤로 넘긴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릴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루크. 너도 시험 보러 온 거야?”

“뭐, 그렇지.”

루크 팰런 (Luke Fallon).

미국 마법사관학교 2학년 1위이자,

세계 유망주 랭킹 2위로 꼽히는 학

생이었다.

주특기는 이서준, 릴리와 같은 검

을 다루는 강화계.

“그나저나 여기서 널 마주치게 될

줄은 생각 못 했는데.”

루크의 말에 릴리가 코웃음 쳤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그나저나

남의 시험 홈쳐보면서 분석하려는 음흥함은 여전하네.”

“음흉은 무슨. 그러는 너는?”

“나는 순수하게 재밌을 거 같아서 온 건데? 아무튼 너도 지독하다. 작 년에 이서준한테 발리고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쯧.”

릴리의 도발에 루크가 눈을 찌푸렸다.

작년 여름 방학.

한국 마법사관학교와 미국 마법사 관학교 간에 연합 훈련을 진행한 적 이 있었다.

훈련 중에는 학생끼리의 대련 훈련

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루크와 이서준이 1:1로 붙게 되었다.

루크는 자신이 있었다.

동 나이대에서 자신이 세계 최고라 고 믿고 있었고, 자신보다 평가가 높은 이서준 또한 아직 자신과 붙어 보지 않았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서준과의 1:1 대련 이후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서준의 실력은 자신의 상상을 초 월해 있었다.

단순한 유망주 수준이 아니라, 지

금 당장 중상위권 프로 마법사와 붙 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실 력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결과는 이서준의 완승으로 끝 났다.

루크 입장에서는 살면서 처음 겪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는 너는? 너도 기말 시험에서 이서준에게 졌잖아.”

그렇게 말하던 루크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 이서준이 아니라 김신우라는 애였나? 지금 순위가 20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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