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535)

괜히 흔자 죄책감도 느끼고 그랬겠 지. 애가 너무 착해서 그렇다.

독해질 줄도 알아야 하는데.

물론 이서준의 정신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성장할 것이다.

그의 주변엔 이현주와 신영준부터 시작해서 정신적 힘이 되어줄 사람 이 넘쳐나니까.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네 몸이나 챙겨.”

“그래야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 말을 듣고 쓸쓸한 미소가 지어 졌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여러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남들은 생각 없이 넘겼을 말이지 만, 이서준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아, 맞다. 선우야. 너도 등교하는 거지? 그럼 같이 가자.”

“어어. 그래.”

그렇게 나와 이서준은 함께 등굣길

을 걸었다.

이렇게 둘이 있는 것도 어째 오랜 만인 것 같다.

1학기 초반 던전 탐험 수업 때나 같이 다니고 그랬으니까. 거의 반년 만인가?

그렇게 길을 걷자 식사를 마친 학 생들이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이서준 선배님이다.”

“김선우 선배님도 있네.”

“안녕하세요!”

“어, 안녕.”

“벌써 등교하시나 봐요!”

“웅, 오늘 일찍 일어났거든.”

이서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인사하 는 학생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귀찮을 법도 한데 이서준은 밝은 미소로 학생들의 관심을 받아줬다.

슬슬 사람이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이서준이 말했다.

“맞다. 이제 곧 시험이네.”

“그러게. 다음 주였나?”

“어, 맞아. 이번엔 어떤 시험이 나 오려나?”

내 기억에 의하면 이번 1차 중간

시험은 팀전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팀 구성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 만 팀전 특성상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기에 조금 부담이 되긴 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서준이 적팀으 로 배정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 찍하다.

앞을 보며 걷던 이서준이 다시 입 을 열었다.

“이번 시험 뭔가 긴장되네.”

“뭔 소리냐? 네가 왜 긴장해.”

내가 장난식으로 말하자 이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흘겨봤다.

“……누구 때문인데.”

그때 이번에 새롭게 올라가는 신설 인공 던전이 눈에 들어왔다.

3주 사이에 제법 그럴싸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정현은 그 밑에서 건축용 중력 마 도구를 이용해 직접 건축을 지휘하 고 있었다.

“어? 서준 학생이랑 선우 학생?”

정현이 반가운 얼굴로 우리에게 말 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정현에게 꾸벅 인사했다.

“와. 벌써 훈련장 형태가 그럴싸하 게 바뀌었네요.”

이서준의 말에 정현이 미소를 지었다.

“네, 쉬지 않고 만들었으니까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수업도 하셔 야 해서 되게 바쁘실 텐데.”

정현은 칭찬에 어색하다는 듯 머리 를 긁적였다.

“하하. 고맙습니다. 뭔가 부끄럽네 요.”

마인의 저런 태연한 연기는 언제봐 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으로 혼자 조용히 감탄하고 있는데 정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 연기력이 마인 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최선의 밝은 미소를 지 어 보였다.

“다음 주부터 중간시험 기간이다.”

“아!”

아침 조회.

장안철의 첫 마디에 학생들 사이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또 엄살을 부리는군. 말로는 그렇 지만 다들 틈틈이 준비하고 있었겠 지?”

장안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고 투덜거리며 괴로움을 표출했다.

“자자. 모두 조용히 하고. 그럼 시 험 종목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번에 는 2차 중간시험 때처럼 보조 종목 하나와 메인 종목 하나로 시험이 치 러질 것이다.”

보조 종목과 메인 종목.

평소와 같은 기본적인 시험 구성이 다.

1학기 2차 중간시험 때로 예시를 들자면 ‘2인 스테이지 탈출’이 보조 종목이고 무인도에서 치러졌던 ‘몬 스터 헌터 시험’이 메인 종목이다.

참고로 기말시험 때의 ‘탑 등반’은 이 두 가지 종목이 합쳐진 시험이 다.

“2학년 2학기의 보조 종목은 ‘인공 보스전 타임 어택’이다.”

“인공 보스전 타임 어택? 그냥 보 스 빨리 잡는 시험인가 보네.”

“아, 이건 단순해서 좋네.”

학생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자 장안 철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들었

다.

“2인 인공 보스전 타임 어택은 말

그대로 다. 룰

보스를 빠르게 잡는 시험이 자체는 간단하니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메인 시험 종목은 ‘대장 전’이다.”

대장전.

대장 하나를 정해 대장을 지키는 팀 전투 시험이다.

단순해 보여도 이 시험은 올해 기 말시험 때 또다시 등장할 만큼 마법사관학교에서 전통적으로 자주 나오

는 시험 중 하나이다.

물론 기말시험 때 치러질 대장전은 몇 가지 변경된 룰로 스케일이 훨씬 거대해질 예정이다.

“대장전의 정확한 룰은 이따 제공 하는 룰북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 다.”

대장전의 가장 기본적인 룰은 적팀 의 대장을 처치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몇 가지 함정이 있다면 상대팀의 대장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대장의 정체가 적 팀 에 유출된다면 상당히 불리한 싸움

이 될 것이다.

“그럼 팀을 정해 주겠다. 단순히 성적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교사들이 직접 느낀 각자의 실력을 토대로 팀을 나눴으니 불만 갖지 않 도록.”

장안철의 시선이 잠시 나를 향했다. 그리고 몇몇 학생들도 그 말에 나를 바라봤다.

“참고로 승패도 중요하지만 각자 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개인 점수가 주어질 테니 말이다.”

장안철은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입

을 열었다.

“자, 그럼 팀원을 공개하겠다!”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 5시.

종례가 끝나자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팀 모여!”

“1팀은 여기로 모여!”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팀으로 이동 했다. 나는 1팀으로 이동했다. 이번 중간시험, 대장전 팀이었다.

“다 모였지? 그럼 가자.”

25명의 1팀은 본관 6층 빈 교실에 모였다.

나는 팀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주요 인물이라고 하면 유아라, 윤 하영, 박인환 정도가 있다.

그렇다는 건 상대 팀에 이서준, 신 영준, 이현주가 있다는 의미기도 하 다.

그렇게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거기다 원작과 팀 구성이 완전히 뒤 바뀌어 상대 팀 대장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도 하고.

이거 좀 많이 불안한데.

“그래서, 대장은 누가 할래?”

한 학생이 나서서 말했다.

“제일 순위 높은 애가 하는 게 좋 지 않아? 상대 팀에 이서준, 신영준 있는데 제일 강한 애가 아니면 못 버틸걸?”

“그럼 유아라?”

학생들의 시선이 유아라에게 향했다. 유아라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대장 되면 누가 공격하게? 난 공격조에 있는 게 나아.”

“그런가? 하긴, 그렇긴 하다.”

“그럼 제일 약한 애 시켜서 지키는

게 어때?”

“그래도 제일 약한 애는 좀 그렇지 않냐?”

“야야. 김선우 네가 할래?”

누군가의 외침에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오. 선우 괜찮은데?”

“그러게. 요즘 평가도 제일 좋잖 아.”

“나도 찬성. 김선우면 믿을 만하 지.”

“그치. 선우 정도면 이서준 공격에 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거 같

고.”

……뭐야 이 신뢰는?

내 평판이 좋아진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과한 거 같은데.

“선우야. 네가 할래? 나도 네가 하 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윤하영이 불쑥 나타나더니 내게 말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나야. 됐어. 그리고 대장 지 금 정하지 마. 당일에 정해.”

내 말에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보 냈다.

“왜? 지금 안 정하면 어쩌려고.”

“룰북 안 봤어? 이 시험에 배신도 있는 거.”

실제로 대장전에는 배신이라는 악 독한 룰이 있다.

배신해서 상대 팀으로 옮길 수 있 다. 물론 배신을 할 시 몇 가지 페 널티가 주어지겠지만 잘하면 많은 승자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장점 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심심하면 팀원 배 신 때리는 박쥐 같은 놈이 있거든.”

나는 박인환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자 박인환이 괜히 몸을 움찔거 렸다.

“야야. 바, 박쥐라니. 그런 애가 어 딨어? 허허.”

박인환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정곡에 찔렸다는 듯한 표 정이다.

쯧.

“암튼 그런 음흥한 녀석이 있을 수 있으니까 조심하자는 거야.”

실제로 박인환은 원작에서 시험 3 일 전에 팀의 대장을 유출시켜 팀을 패배로 몰아넣었다.

저 녀석은 그냥 적팀이라 생각하고 팀의 전략을 알려주면 안 된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리더를 뽑자. 그리고 리더가 시험 당일에 대장을 뽑는 거야. 그 외 전 략들도 리더가 정하고.”

“리더?”

“음. 괜찮은데?”

“반대하는 사람 있어?”

없다. 다행히 모두가 찬성하는 분 위기였다.

“그래, 리더부터 뽑자. 그럼 투표로 뽑는 거?”

“투표로 뽑아야지. 바로 투표하자.”

그렇게 투표가 시작되었다. 리더를 추천해 찬성하는 사람이 손을 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결과는 유아라 13명, 나 12명.

한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유아라 가 리더로 선정되었다.

유아라 상대로 어떻게 내가 12표 나 받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그럼 유아라가 리더인 거로.”

“와아!”

다들 유아라에게 박수를 쳤다.

유아라는 잠시 굳은 표정으로 있다 가 입을 열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어쩔 수 없네. 아무튼 내가 리더가 됐으니 열심히 해볼게. 일주일의 준비기간 이 있는데 우리가 지면 안 되잖아?”

“오. 믿음직스러운데?”

몇몇 학생들이 웃으며 말했다. 유 아라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말 을 이었다.

“대장은 당일에 정하든 이따 정하 든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일단 배신의 위험이 있으니 대장이 누구 인지는 내가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알려줄 거고.”

“뭐냐? 팀끼리 신뢰가 벌써 없는

거 아니야?”

“신뢰가 없긴. 아까 했던 대화 못 들었어?”

처음엔 작은 불만이 있었지만 금세 잦아들었다.

유아라는 그 이후로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리더 역할 을 잘 수행하는 모습이다.

“음. 일단 여기까지. 시간도 늦었으 니 이만 돌아가자.”

유아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래.”

“내일 보자!”

“다들 고생했다.”

학생들은 인사를 각자 인사를 하고 는 복도로 빠져나왔다.

나 역시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

“선우야. 같이 가자!”

윤하영이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

“이제 뭐 할 거야? 훈련?”

“훈련해야지. 아직 시간 여유도 있 으니까.”

“발현계 훈련장 갈 거지?”

“웅.”

“오. 쭉 같이 가면 되겠네〜”

그때 윤하영이 뒤를 돌았다.

“아라야 넌 안 가?”

“난 잠깐 남아서 포지션 정리를 더 하려고. 너네 먼저 가 있어.”

유아라의 말에 윤하영이 고개를 끄 덕였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 봤다.

“나중에 해도 될 텐데.”

내 말에 유아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리고 어차피 훈련하러 가 야 해서 금방 갈 거야.”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냐. 암튼 무리하지 마라.”

내 말에 유아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팀이 정해지고 3일 뒤.

교실 분위기는 이전과 달라졌다.

같은 팀 사람끼리 다니기도 했으 며, 전략이 유출될 것을 걱정하며 상대 팀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화를 내는 학생도 있었다.

“이야. 분위기 왜 이러냐?”

신영준이 내 책상 위에 걸터앉아 빵을 씹어 먹으며 말했다.

“배신 걱정 때문이겠지. 배신자가 한 명만 나와도 엄청 불리해지니 까.”

“그래도 그렇지 애들 너무 예민한 데.”

그때 신영준의 빵 부스러기가 내 책상 위로 떨어졌다. 나는 눈을 찌 푸렸다.

“야. 니 책상 가서 먹어.”

“어? 김선우도 예민해졌네?”

“……뭔 소리야.”

“아무튼, 빨리 중간시험 좀 끝났으 면 좋겠다. 분위기도 안 좋고 이게 뭐냐 진짜.”

“1, 2주만 버텨. 시험만 끝나면 쭉 쉬잖아.”

“하긴, 다음 일정이 바로 태휘제니 까.”

태휘제.

150년 전 마법의 4계통을 정립한 위대한 마법사, ‘태휘’의 탄생을 기 념하는 행사였다.

말이 태휘를 기리는 행사이지, 그 냥 학교 축제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 하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이서준이 들어왔다. 신영준은 이서준에게 반 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서준!”

이서준이 피식 웃으며 우리에게 다 가왔다.

“교무실에 끌려가더니 뭔 얘기 했 냐‘?”

“후원 관련 얘기했어.”

“후원?”

신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작의 내용을 아는 나는 무슨 얘기인지 단 번에 눈치챘다.

“응. 상위권 학생들 대상으로 무슨 후원 같은 걸 해준다나 봐. 그거 관 련으로 얘기 좀 나눴어.”

“오. 그거 나도 받을 수 있나?”

“3위인데 너도 되지 않을까? 음. 잘 모르겠네.”

“어디서 해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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