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535)

마치 저번에 편의점 봉투 속 음식

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반짝임이었다.

눈코입이 달렸든, 역시 나무는 나 무라는 건가.

나는 쪼그려 앉은 채 그레텔을 바 라봤다. 그레텔은 여전히 빛나는 눈 으로 방송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숲. 자연의 풍경.

멍하니 다큐를 함께 보는데 문득 혹시 그레텔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레텔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까.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열매를 위해 내 옆에 두어야 하는 걸까.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레텔은 그런 내 심정도 모르고 다큐 관람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 폰에 알람이 울렸다.

본능적으로 누가 연락한 것인지 깨 달았다.

[뭐해요?]

내 예상대로 한세연이었다.

최근 바쁘다더니. 잠깐 여유라도 생긴 모양이다.

[쉬고 있습니다. 한세연 씨는요?]

[저도 야근하다가 잠깐 쉬는 중이 라 심심해서 연락했어요.]

그 답장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야근이라니.

시간이 10시가 넘었는데 참 대단

하다. 오늘 협회에서 마주친 거 보 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거 같 던데.

[벌써 10시인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과로로 쓰러지시면 어쩌 려고요.]

[여기 널린 게 약이에요. 쓰러지면 약 먹죠 뭐. (킥킥 웃는 이모티콘)]

마인드가 대단하다. 존경을 넘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

[사진]

그때 사진이 도착했다.

새하얗고 넓은 방의 풍경이었다. 보아하니 연구실로 보이는데.

그런데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혼자 있는데 귀신 나올 거 같아 요]

한세연답지 않은 엄살에 잠시 손가 락이 멈칫했다. 뭐라고 답장해야 할 까 고민하다가 대충 답했다.

[퇴근하면 되겠네]

[농담하시는 걸 보니 그쪽도 심심 한가 봐요? 심심하면 놀러 와요]

[그 정도로 심심하진 않습니다]

[쳇. 그래도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 화를 하는 거 같아서 좋네요. 요즘 비즈니스 관련 대화만 나누다 보니 까 우울했거든요]

뭔가 메시지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느껴졌다. 안쓰러운 기분이 든 다.

[전 이만 다시 일하러 가볼게요]

[유데이]

[7,250,000,000원을 입금했습니다.]

토요일.

경매로 판매한 검의 낙찰가가 통장 에 들어왔다.

80억에서 기타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한 72억.

이것으로 내 전 재산이 110억에 가까워졌다. 한순간에 큰돈이 들어 오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세연한테 돈도 빨리 갚아야 하는 데.

나는 김진우의 옷들을 아공간에 챙 겨 놓고는 그레텔에게 말했다.

“그레텔, 가방 안에 가만히 있어야 해.”

그레텔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레텔을 가방 안에 넣었다. 아공간에는 생명체가 들어가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주말이었지만 오늘도 바쁜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늘 그렇듯 ‘승전보’의 능력을 사용 해야 했으며 그리고 미리 봐둔 땅도 구매해야 했다.

나는 김진우의 모습으로 땅을 먼저 보러 가기로 했다.

게이트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 화천.

수많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맑은 공기, 짙은 자연의 마력이 느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기도 좋고 자연 의 마력도 느껴지는 살기 좋은 곳으 로 보이나 이곳은 수많은 고둥급 몬 스터가 숨어있는 고위험 지역이다.

그러니 위기 상황에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나는 가방을 열어 그레텔을 꺼냈 다.

밖으로 나오자 그레텔의 눈이 반짝 였다. 자연환경에 도착하자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좋아?”

그레텔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조심해서 따라와.”

나는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내가 사려는 땅의 위치가 안전 구 역이 아니었기에 만들어진 길이 아 닌 험난한 산길을 이용해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몇 번 몬스터를 마주 치기도 했다.

[전기 속성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대자연의 축복’ 효과로 전기 속성 숙련도를 추가 획득합니다.]

“후.”

물론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크게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오히려 전기 속성 숙련에 도움이 되어 더 좋다고 할까.

아직 제대로 다루기는 힘들었지만 갑자기 튀는 전기에 놀라지 않을 정

도는 됐다.

“꾸준히 단련한 보람이 있네.”

전기 속성 제어술도 어느덧 10% 를 넘어서기도 했고.

그때 였다.

타다다닥!

뒤에서 몬스터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 반격하려는 찰나, 예상치 못한 일에 깜짝 놀랐다.

나를 기습하려는 몬스터, 그러니까 늑대 몬스터의 다리가 바닥에서 솟 아오른 나무줄기에 묶여 있던 것이다.

— 컹컹!

늑대는 발 하나가 묶인 채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레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레텔이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박.”

역시 소환수답게 그레텔에겐 열매 말고도 다른 능력이 있었다.

바로 나무줄기를 소환해 상대의 발 을 묶는 보조계열 마법이었다.

발이 묶인 늑대는 계속해서 나무줄 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나무줄기의 강도가 꽤 강한 것인지 발버둥 치는 늑대의 몸 을 더 강하게 조일 뿐이었다.

“……대단한데.”

— 컹컹!

늑대는 침을 질질 홀리며 나를 노 려보았다. 나무줄기는 점점 늑대의 목까지 다가가 조였다.

늑대는 숨이 막히는지 눈을 뒤집히 더니 잠시 후 입에 거품을 물며 쓰 러졌다.

바닥에서 뻗어 나온 나무줄기는 다 시 땅 속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소환수와 협동 전투’ 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대박.”

나는 그레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레텔은 늑대가 쓰러지는 것을 보 자 바닥에서 손을 떼었다.

“그레텔 잘했어.”

내 칭찬에 그레텔이 밝게 웃었다. 이내 내게 다가오려나 싶더니 몸을 비틀거리며 툭. 하고 바닥에 주저앉 았다.

마력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마치 마력 탈진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여기 올라와.”

나는 손을 뻗어 그레텔을 내 손위 로 올려놨다.

그레텔의 눈이 피곤한 둣 솔솔 감 기려 한다.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트 리더니 이내 잠들었다.

아무래도 나를 지키려다가 무리하 게 마력을 사용한 모양이다.

아직 성장기라 마력이 부족한 거겠 지. 그 모습이 기특해서 미소가 지 어졌다.

그레텔의 재발견이다.

나는 그레텔이 떨어지거나 불편해 하지 않도록 가방 안에 잘 넣어놨 다.

새근새근 잠이 들었는데 깨지 않도 록 아공간에서 옷을 꺼내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산을 올랐다.

“후.”

만들어진 등산로가 아니라 길은 험 난했지만 꾸준히 육체를 단련해 왔 기에 크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홀러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 했다.

산속 정상 어딘가의 드넓은 땅.

바로 이곳이 약 두 달 뒤, 어마어 마한 천연 마정석이 매장된 던전이 생겨날 황금의 땅이었다.

내게 엄청난 돈방석을 안겨줄 땅이 기도 했다.

“생각보다 넓네.”

수많은 나무와 풀이 보였다.

산 정상쯤에 위치해서 그런지 몬스 터도 보이지 않는다.

던전도 좋지만 이 주변에 그레텔을

위한 휴식 공간을 만드는 것도 괜찮 을 것 같다.

여긴 너무 머니까 적당히 가까운 산 일부를 사버려서 만드는 것도 괜 찮올 수도 있고.

« Q 99

이건 천천히 고민해봐야겠다.

확실한 건 그레텔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럼 땅도 보았으니 슬슬 땅 주인 을 만나러 가볼까.

나는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온 서 류들을 살폈다.

토요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기숙사 로 돌아왔다.

토지 계약도 마쳤고, 빌런을 처치 하며 승전보 효과도 얻어냈다.

토지 같은 경우는 아직 몇몇 절차 가 남아 있기 때문에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하지만 계약은 완료했으니 거의 끝 났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서둘러 가방 안의 그레텔을

꺼냈다.

가방 밖으로 나오자 그레텔은 홀가 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고생했어.”

내 말에 그레텔이 나를 올려다보더 니 양손을 흔들었다. 마치 나보고 더 고생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 앉아 오늘 획득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토지 계약’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표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숭전보의 효과로 근력이 0.4, 마력이 0.4, 마력 제어 능력의 숙련도 가 2%, 전기 속성 숙련도가 4% 상 숭합니다.]

[인과율이 0.1 상승합니다.]

오늘 숭전보 효과는 아쉽게 특성 획득이 없었다.

그래도 자잘한 능력치 상승과 인과

율을 획득했으니 이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나저나 내 힘도 꽤 강해졌는지 B등급 빌런도 이제는 대부분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빠른 성장을 위해 슬슬 A등급 빌런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 지 않을까.

지금 내 마력 제어 능력은 B와 A 사이. 하지만 이건 발현계에만 한정 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강화계와 보조계 둥 다른 계열도 제 법 잘 다루는 편이다.

대자연의 심장, 마나 엘릭서, 투쟁 심 등을 함께 사용한다면 종합적인 전투 능력은 A등급에도 쉽게 밀리 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조금 무섭긴 한데.”

조만간 한세연을 만나보긴 해야겠 다. 내게 가진 빌런의 정보가 대다 수 B와 C등급인 만큼 새로운 빌런 들의 신상 정보를 얻어내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티비 를 켰다.

「한국 시각 약 오후 5시경,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 불리는 영국

의 신비 박물관에서 테러가 일어났 습니다. 25명이 숨지고 6개의 물건 이 도난됐습니다.」

「도난된 물건 중에는 성유물, ‘신 의 황금 열쇠’가 있는 것으로 밝혀 졌습니다. 세계 마법사 협회에서는 테러 단체, 자운의 범행으로 추측하 고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j

티비에서는 테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자운은 오늘도 성유물을 훔치며 자 신들의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나왔던 전개였지만 직 접 이 세계에 살다 보니 이런 걸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기도 한다.

세계 3대 박물관은 온갖 마도구를 이용한 테러 방지 시스템이 구축되 어 있기 때문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자운이 저런 고난도의 테러에 성공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 이 아니다.

미래, 원작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그 사건’에서도 자운은 극악의 난

이도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두 었으니까.

그때 스마트 학생 수첩이 알람을 울렸다.

[선우 학생〜 뭐해요?]

누군가 했더니 다큐 PD였다.

오랜만에 연락 오는 거 같은데.

[그냥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아하. 최근 선우 학생 활약상 잘

듣고 있어요! 너무 대단하던데요.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다짜고짜 나를 칭찬한다.

그 이유는 보나 마나 뗀하다. 다큐 후속작 찍자는 이야기겠지.

저번에 끈질기게 부탁하는 걸 단칼 에 거절했는데 또 이런다.

[선우 학생 근데 아직 생각 안 바 뀌었어요? 다큐 후속작 찍는 거.]

[죄송한데 촬영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은 성적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편집 방향 좋게 해줄게요. 네?]

“거참. 귀찮게 구네.”

[아무튼 죄송합니다. 2학기는 아무 튼 좀 그렇습니다.]

[그럼 3학년은 괜찮다는 말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홀러.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2학기 5주 차 월요일이다.

고작 3주의 시간이었지만 주변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자운이 해외의 두 곳을 추가 로 테러하며 성유물과 유물을 홈쳐 내었다.

물론 자운의 소행이라는 것이 확실 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테러 방식이 자운과 상당히 흡사했기에 협회는 자운이 벌인 짓 이라고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는 상 태다.

“응애.”

그리고 그레텔이 성장하며 몸집이 아주 약간이나마 커졌다.

머리의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도 첫 날에 비해 2배는 커졌고, 색깔도 녹 색 빛에서 점점 붉은 빛이 감돌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얼마 안 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을까 싶다.

그레텔의 기분도 잘 관리했기에 열 매의 상태도 좋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다녀올게. 잘 놀고 있어.”

나는 그레텔에게 작은 퍼즐을 쥐여 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레텔은 내게 인사도 안 하고 퍼 즐 조각을 맞추는 것에 빠져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약간이지만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 끝나가고 있 다.

물론 더위 내성이 있기에 남들보다 는 폭염에 잘 견디긴 했지만, 그래 도 더위를 남들보다 덜 느낄 뿐이지 못 느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날씨의 변화 역시 마 음에 들었다.

여름보다는 역시 시원한 가을이 좋 으니까. 여름보단 겨울. 겨울보단 가 을. 가을보다는 봄.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그렇게 감상에 젖은 채 아침 등굣 길을 쭉 걷는데 익숙한 얼굴을 마주 쳤다.

“김선우?”

밝은 미소를 짓는 남성.

이서준이었다.

“이서준 일찍 등교하네?”

“오늘 좀 일찍 일어났거든. 덕분에

아침 운동 열심히 하고 씻고 밥 먹 고 그랬지.”

라고 말하지만, 살짝 눈에 피로가 느껴졌다. 다크서클도 미세하게 보 이는 것 같고.

아무래도 잠을 못 잔 것 같은데.

“잠 못 잤냐?”

“……뭐야. 어떻게 알았냐?”

“딱 봐도 피곤해 보이는구만. 다 티나.”

“그래? 눈치가 좋네.”

이서준이 쓸쓸한 미소로 웃었다.

“……쯧.”

대충 보아하니 최근 뉴스에서 방영 된 자운의 테러 사건을 보며 잠을 설친 모양이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