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535)

“아마 여러분들은 이 사내가 누군 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학생들은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양진혁은 쭉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과거 전 세계를 공 포에 떨게 했던 자운의 전 리더, 진 천우입니다.”

진천우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진천우의 존재는 그 당시의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도 공 포의 대상이었다.

“그거 아시나요? 진천우도 신비를 쫓던 신비 연구가였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지만, 슬슬 강의의 내용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신비의 힘에 매료된 인간의 정신 은 점점 탁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 록 더 강한 신비의 힘을 원하게 되 고, 그것을 쫓는 것에 집착하게 되

죠. 진천우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신비를 탐했 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신비에 매 료된 자들을 모아 ‘자운’이라는 단 체를 만들었습니다.”

자운의 탄생 배경.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으며 수많은 신비를 홈치고 빼앗았 습니다. 그들이 훔친 그 수많은 신 비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요.”

양진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처럼 신비가 가진 매료의 힘은

위험합니다. 모든 마법사가 신비가 담긴 도구들을 사용하지만, 너무 의 존하려 하면 안 됩니다. 늘 경계해 야 하고 집착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진, 준비 다 했어?”

“어. 너는?”

“나도 준비 다 했어. 아공간 키트, 신분증, 여권, 인피면구. 완벽해.”

“근데 오늘 한국 뜨면 당분간 한국

에는 못 가는 거지?”

“그렇지. 이서준 감시할 한 명만 빼고.”

서울 어딘가에 숨겨진 자운의 아지 트.

자운의 일행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 출국까지 2시간 남았어. 빨리 움직여.”

“아 기다려봐. 여권 어디 갔지?”

“자, 여기.”

“아, 땡큐.”

모두가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때, 베르트는 흔자 소파에 누워 스 마트 폰으로 어떤 영상을 보고 있었다.

스카는 그 모습을 보더니 베르트에 게 물었다.

“베르트? 혼자 뭐해?”

“마법사관학교 이번 공개 순위 테 스트 영상 보고 있어.”

“그걸 뭐하러 봐? 어차피 애들이잖 아.”

“아냐. 이거 엄청 재밌어.”

베르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 졌다.

“재밌네 진짜.”

영상 속에는 한 남성이 표적 앞에서 마법을 구현하고 있었다.

이내 마법 구체가 아주 잠깐 사이, 은빛으로 물들더니 쏘아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짧은 시간.

하지만 베르트는 마법 구체에 담긴 은빛의 마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 그때 강원도 별장 기억나?”

뜬금없는 베르트의 말에 진은 짐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별장? 아, 그때 갑자기 마인이 쳐 들어온 거?”

“어. 그때 웬 의문의 마법이 마인 어깨 반쪽을 날렸었잖아.”

“웅. 기억나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그 의문의 마법이 아니었으면 이서준에게 어떤 위험한 일이 생겨날지 몰랐으니까.

“그게 누군지 이제야 확신이 드 네.”

“확신?”

진의 물음에 베르트는 미소를 짓더 니 영상을 종료했다.

“으. 아쉽다. 지금 당장 한국을 떠 야 한다는 게.”

“야! 너네 시끄럽고 짐이나 옮겨. 일정 촉박한 거 몰라?”

멀리서 화를 내는 백은성의 말에 베르트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등장인물 ‘베르트’가 당신에게 강 한 흥미를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약 2시간의 강의가 끝나자 눈앞에 의문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베르트?

베르트라면 자운의 멤버?

예고도 없이 떠오른 메시지라 순간 깜짝 놀랐다.

근데 얘가 왜 나한테 흥미를 느끼 지?

아, 테스트 영상 때문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 학생들이 대

강당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오기 시 작했다. 나 역시 정신을 차리고 그 들을 따라 대강당 밖으로 나왔다.

“아, 강의 재밌었다.”

“뭐래. 난 푹 잤는데.”

“재미는 있었는데 결국 ‘신비란 무 엇인지 밝힐 수 없다.’가 결론이잖 아. 똥 싸다 끊긴 느낌이던데.”

학생들은 각자 방금 있었던 강의의 감상을 나눴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풀 었다.

그때 학생들 사이에서 다른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 같이 복도 끝 을 향해 있었다.

뭔가 싶어서 나도 그들을 따라 시 선을 돌렸다.

저 멀리 복도 끝에서 10명의 사람 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깔끔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었는데 비지니스 관련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천 상의 그릇’은 신비 보관실에서 보관 하고 있습니다. 근데 대여 기간은 그대로 가는 건가요?”

“네, 대여 기간은 5년. 그 외에도

협회에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때 그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어느 정도 나이대가 있는 사람 들이었지만 익숙한 젊은 얼굴도 있었다.

특히 목에 걸린 수정 목걸이가 내 시선을 끌었다.

“학생들이 많네요.”

“아, 오늘 마법사관학교에서 견학 을 왔다고 합니다.”

“……마법사관학교?”

그들의 시선이 잠시 우리를 향했다.

“음. 조만간 마법사관학교와의 일 정도 있는데.”

“그러십니까? 마법사관학교랑은 무 슨 일로?”

“아, 행사 후원 관련해서 일이 있 거든요.”

“아하.”

그리고 약 1초.

눈이 마주쳤다.

나는 서둘러 시선을 피해 뒤를 돌 았다. 그때 발소리가 멈추었다.

“저, 본부장님?”

“……아, 죄송해요. 아는 분이랑 잠 시 착각해서. 계속 가죠.”

뚜벅뚜벅. 그들은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와. 대박! 야 방금 한세연 맞지?”

“와. 실물 대박이다.”

대한민국 최고 유명인 중 하나를 실물로 봤다는 것에 학생들 사이에서 잠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 다.

한세연이 왜 여깄어?

마법사 협회와의 일을 마친 한세연 은 ‘한성제약 개발연구실’로 돌아왔다.

바쁘게 출장을 다녀온 직후라 잠시 쉴 법도 했지만, 한세연은 곧바로 연구실의 물건들을 집어 옮겼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신약 개발 1팀장, 정 팀장이 나오더니 웃으며 인사했다.

“아이고 본부장님, 언제 오셨습니

까? 미리 연락주시지. 오늘도 수고 하셨습니다.”

“네, 정 팀장님도 수고하셨어요.”

“어휴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정 팀장이 허허 웃었다.

한세연은 그 웃음에 미소로 대응해 주고는 흰 가운을 몸에 걸쳤다.

단순한 가운을 걸쳤음에도 늘씬한 몸매 때문인지 멋이 느껴졌다.

“어? 본부장님, 바로 연구하시게 요?”

“네, 그래야죠. 시간도 촉박하니까 요.”

“그래도 늦은 시간인데 내일 하셔 도 되지 않을까요?”

“전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한세연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연구원들은 다 퇴근했는 데.”

“혼자 하죠.”

한세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한세연은 케이스 가방에서 협회에서 대여한 유물, ‘천상의 그릇’을 꺼 내 들었다.

금빛으로 만들어진 이 그릇은 액체

에 담긴 성분을 투명하게 보거나 나 눌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새로운 도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여하게 되었다.

정 팀장은 그것을 보더니 눈을 빛 냈다.

“이야. 이게 그 천상의 그릇입니 까?”

“네, 엄청 빛나죠?”

“특이한 마력이 느껴지네요. 그나 저나 이걸 이용해서 신약 개발할 생각을 하시다니. 늘 놀랍니다. 하하!”

정 팀장은 진심을 다해 말했다.

한세연의 집안이 어떻든, 어린 나 이에 어떤 자리에 올랐던 그녀가 가 진 천재성만큼은 진짜였으니까.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본부장이 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것에 불 만을 품었던 직원들도 시간이 지나 면서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능력은 엄청났다.

“아니에요. 이번엔 제 능력은 아니 고 운이 좋았어요.”

“운이요?”

뜬금없이 나온 운이라는 말에 정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약 개발에 운이 개입할 요소가 있기는 한가?

의문에 찬 시선으로 한세연을 바라 보자 그녀는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 를 지을 뿐이었다.

“누구한테 도움을 받았거든요.”

“음. 그렇습니까?”

“네.”

사실 이번 신약 개발은 김진우가 이전에 선물해준 ‘일월약학서’를 연 구하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어 진행 된 것이었다.

제약 명가의 비급서라는 이름답게

일월약학서에는 그녀의 지식으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특별한 제조법 이 가득했다.

덕분에 한성제약이 더 크게 날아오 를 발판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아버 지의 병을 고칠 단서가 생길지도 모 른다.

이 모든 게 김진우의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그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한세연은 오늘 마법사관학교에서 보았던 한 남학생을 떠올렸다.

솔직히 짧은 시간이라 얼굴을 제대 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그 학생에게서 김진우와 비 숫한 느낌을 받았다.

얼굴, 체형 이런 것보다는 분위기 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가진 분위기라는 게 주관적 이라 말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 만,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홈.”

그래도 역시 단순한 착각이겠지?

김진우가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으 니까.

그리고 애초에 최근 일월약학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유도 모르게 김진우를 떠올리곤 했으니. 그것의 영향이겠지.

“본부장님?”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정 팀장이 말을 걸었다.

“아, 네.”

“……무슨 생각을?”

“아, 별거 아니에요. 정 팀장님도 퇴근하세요.”

한세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선택 체험 활동과 야간 개인 훈련 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늘 좀 열심히 체력을 단련했더니 몸이 상당히 피로하다.

빨리 씻고 자고 싶네.

그렇게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 벅 거실 안으로 들어가자 괴상한 자 세로 누워있는 그레텔의 모습이 보 였다.

……자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저 러고 있는 거지?

“그레텔?”

내 부름에 그레텔이 몸을 움찔거리 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돌아봤 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표정이 어둡 다.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 었나?

“왜 그래?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웅애.”

[그레텔이 우울해합니다.]

[‘신비한 마계수 열매’의 효과가

3% 감소합니다.]

“......우울?”

그레텔은 나에게 걸어오더니 내 발 에 몸을 기댔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리텔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레텔, 왜 우울해?”

그레텔은 내 대답에 나를 올려보았 다. 대답은 없었다.

“배고파서 그래?”

그레텔이 고개를 저었다.

배고픈 게 아니라…… 그럼 뭐가 있지?

“혹시 심심해서 그래?”

내 말에 그레텔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심심해서 그렇구나?”

그레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홈.”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서 혼자 10시간 넘게 혼자 있으면 심 심하긴 하겠지. 백번 이해한다.

이걸 어쩌지.

나는 수업을 나가야 해서 얘랑 놀 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자니 우울함

만 늘어날 테니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티비라도 볼래?”

그레텔이 고개를 갸웃했다. 티비가 뭔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다. 직접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삐빅.

[한대현 회장의 건강이 완화되었다 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세 연 한성제약 본부장은 한대현 회장 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단서를 얻었

다면서 신약 개발에 힘을 쓰고 있다 고 전했습니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성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대현 회장의 건강 완화. 그리고 한세연이 신약 개발에 힘쓰고 있다 는 내용이었다.

건강 완화와 신약 개발이라…….

나는 그 소식에 의문을 느꼈다.

원작의 흐름과는 조금 달라졌다.

한세연의 신약 개발은 꾸준히 이루 어지고 있긴 했지만, 지금 타이밍에

한대현 회장을 위한 신약 개발은 없 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신비관 견학 중 에 한세연을 마주친 것도 원작과는 다른 흐름이었다.

이서준과 한세연의 만남은 더 나 중……

그러니까, 몇 달 뒤 마법사관학교 에서 진행될 축제이자 중요 행사인 ‘태휘제’에서 처음 만나게 되기 때 문이다.

아까 듣기로는 천상의 그릇이라는 물건을 대여하러 온 것 같긴 했는 데.

“ 으음......

나의 개입으로 무언가 변화가 생겼 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한대 현 회장의 병이 치료된다면 이건 지 금까지 있던 그 어떤 변화보다 큰 변화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권력을 쥔 한세진이 벌일 수많은 사건과 싸움 역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으음.”

그렇게 심각한 생각에 빠져있는데 발에서 투박한 촉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니 그레텔이 내 다리를 콕콕 건들고 있었다.

“아, 미안. 보고 싶은 거 있어?”

나는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렸다. 어린이 애니메이션부터 시작해서 드 라마 영화, 예능 등이 지나갔다.

하지만 티비를 보는 그레텔의 표정 에는 딱히 홍미가 없어 보였다.

“다 재미없나 보네.”

그렇게 채널을 돌리다가 ‘자연 다 큐’가 나왔다.

그 순간 그레텔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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