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황당한 시선으로 나무를 내 려보는데 나무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옹애.”
[그레텔이 허기를 느낍니다.]
한편, 정현은 모니터로 오늘 있었 던 시험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압축되는 마력. 그리고 완벽한 형 태로 방출되는 마법 구체.
그가 보는 건 다름 아닌 김선우의 평가 테스트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벌써 인터넷에 유출되어 5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반응은 당연하겠지만 이서준과 김 선우.
이 둘이 지분을 나누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정현은 영상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성장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차라리 이서준이나 유아라처럼 시작 부터 괴물 같은 성장력을 보였으면 모를까.
이렇게 뒤늦게 미친 성장력을 보이 는 건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봤다.
물론 뒤늦게 재능을 개화하며 엄청
난 성장력을 보이는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김선우는 그 정도를 넘어섰 다.
거기다 확신할 순 없지만, 마법 구 체가 방출 직전에 은빛으로 물든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숨겨진 비밀 같은 게 있 는 건가?”
비밀이라…….
혹시 장예를 죽인 범인이 김선우?
“......아니야.”
장예의 상흔에는 빛속성 발현계 구
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김선우는 구체 형태를 다루지만 무 속성을 사용한다.
참고로 빛속성도 무속성도 쉽게 다 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빛속성은 타고난 자만이 다룰 수 있고, 무속성 역시 빛속성과 같이 적웅 훈련이 불가능해 오직 상상력 에 의존해야 하는 고난도의 마법에 속한다.
물론 이중 속성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극소수지만 이중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중 속성을 사용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다루기 어려운 두 개의 속 성을 능숙히 다루는 것은 더더욱.
마법사가 마법의 4계통 중 하나를 주특기로 삼아 익히는 것처럼 속성 역시 주속성 하나를 선택해 쭉 단련 하는 것이 상상력이나 형태에 있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18살의 학생이 이중 속성을 다룬다고?
현실적으로 납득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 김선우 의 실력도 믿기 힘들긴 하지.”
18살에 압축 구현술.
거기다 미친 성적 상승 폭까지.
“역시 뭔가 수상해.”
정현은 품 안에서 네모난 형태의 통신 마도구를 꺼냈다.
이 마도구는 추적이 불가능해 수많 은 범죄에 사용되는 통신기기였다.
화면을 켜자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정현, 임무에는 이상 없나?]
메시지의 주인은 천해였다.
정현은 글자를 입력했다.
[2학년 A반 김선우. 예의주시할 것.]
[89명의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되었 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금요일 아침.
눈을 뜨니 웬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 팬?”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만 왜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인지는 금방 깨 달았다.
보나 마나 어제 있었던 공개 순위 평가 때문일 것이다.
저번과 같이 시험 영상이 유출되었 고, 꼴찌의 반란이라며 사람들의 관 심을 끌었겠지.
이런 관심은 언제나 나쁘지 않다. 메인 빌런들의 관심을 끄는 게 아니 라면 말이다.
“흐아암.”
나는 기지개를 크게 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몸을 가볍게 씻고 말린 뒤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스마트 학생 수첩을 보니 의문의 메시지가 몇 개 도착해있었다.
괜히 친한 척하는 학생들의 메시지 였다.
평소보다 많기는 하지만 이런 일은 가끔 있었으니 별생각 없이 무시했다.
힐끔 고개를 돌리니 나무…… 그러 니까 그레텔이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소환수라는 게 원래 소환자의 마력
공급이 끊기는 순간 소환 해제되며 사라져야 정상인데 쟤는 이상하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더 웃긴 게 뭐냐면 나와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어제 허기를 느낀다고 해서 물을 뿌려줬더니 까르륵거리며 잠들더니 계속 저 모양이다.
“죽은 건 아니겠지?”
나는 그레텔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에서 보니 마치 사람이 잠든 것처럼 얕게 호홉하고 있었다.
잘 들리진 않지만, 코까지 골고 있 다. 아무래도 잘 살아있는 것 같다.
뭔가 여러 가지로 의문이 들게 하 는 소환 수(樹)지만 일단 저대로 놔 두기로 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는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흐아암.”
나는 아침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힐끔힐끔 나 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공개 테스트의 영향인 건 알겠는데 오늘은 좀 과하네.
“선배님?”
그때 최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최서윤과 송승아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식당 가냐?”
“네. 선배님도 식당가요?”
“어.”
“오〜 그럼 같이 먹어요.”
최서윤이 웃으며 말했다. 송승아는 그런 우리를 보더니 발걸음을 멈췄 다.
“어, 어어? 아 참. 나 갑자기 할 일이……
그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사라졌
다. 최서윤은 그 뒷모습을 보며 눈 을 찌푸렸다.
“쟤 진짜 요즘 뭐 잘못 먹었나?”
“그러게. 원래 저런 애가 아닐 텐 데.”
“그게 무슨 의미예요?”
최서윤이 나를 획 돌아보며 물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말한 건데.”
김선우와의 식사를 마친 최서윤은 1학년 A반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평소와 같이 많은 학생 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서윤아! 오늘 김선우 선배님이랑 같이 밥 먹더라?”
“어? 어. 웅. 우연히 만났거든.”
“오……
학생들이 그녀에게 묘한 시선을 보 냈다. 뭔가 부러움에 찬 눈빛이다.
“그건 갑자기 왜?”
“아니, 요즘 그 선배님 핫하잖아.”
최서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선우 선배님이 핫하다고?
하긴, 어제 보여줬던 마법이 대단 하긴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김선우 선배님 진짜 실력 은 어느 정도래? 김선우 선배님이랑 친하니까 너는 알 거 아니야.”
최서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웅? 진짜 실력?”
최서윤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다른 학생 이 다가왔다.
“아, 얘네 또 그 얘기 하네. 서윤 아 그냥 무시해.”
“야, 뭘 또 무시하라고 하냐?”
두 학생이 투닥거리자 최서윤이 물 었다.
“그 얘기라니?”
“별거 아니야. 요즘 학교에서 떠도 는 김선우 선배님 관련 소문 있잖 아.”
“소문?”
“어제 학교 커뮤에서 꽤 시끄러웠 는데 몰라? 신흥 사이비 종교 같은 건데.”
……신흥 사이비 종교?
어젯밤 훈련에 집중하고 있어서 전
혀 모르고 있었다.
“그게 뭔데?”
“김선우 선배님이 사실 실력을 숨 기고 있고, 본 실력은 이서준 선배 님보다 뛰어나다는 그런 말도 안 되 는 주장하는 애들이지.”
“엥?”
“마법법…… 12조 5항. 여기는 꼭 체크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첫 수업은 이론 수업인 ‘법 학’이었다.
시작부터 지루한 이론 수업에 학생 들이 불만을 토해냈지만 금세 잠잠 해졌다.
수업이 시작되자 법학 교사의 목소 리에 담긴 잠재 개성, ‘졸음 유발’이 학생들을 재워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A반 교실엔 이서준, 유아라를 제외하면 모두 책상에 엎 드려 자고 있다.
……가 아니네.
1학기 때와 달리 잠들지 않은 학 생들이 몇 보인다.
이현주, 박인환, 윤하영.
이 셋은 1학기 때와 달리 잠들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학기 사이에 저들의 마력 능력이 꽤 향상됐을 테니, 잠재 개성에 저
항하는 힘도 자연스레 길러진 거겠 지.
그 증거로 나도 잠들지 않았으니 까.
“다음은…… 불법 마도구과 소지죄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외부자의 혜택의 힘 을 빌리는 나와는 다르게 저 학생들 은 순수한 자신의 재능으로 저렇게 성장하는 거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참고로 저 구석에서 꿀잠 자는 신영준은 법학 교사의 잠재 개성 때 문이 아니라 그냥 자는 거다.
“……통신 마비 마도구 역시 1급 불법 마도구에 속합니다. 소지 적발 시 5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합니 다……
나는 따분하게 수업을 듣다가 창밖 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학생들, 빈 토지에서 훈련장 설계를 지휘하는 정현.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마법사관학 교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면 좋겠 지만 세계가 정상적인 세계가 아니 니 그럴 일은 없겠지.
앞으로 있을 사건과 테러에 뭔가 대비를 해야 할 텐데.
“……사회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는 분장 마도구, 인피면구도 1급 불법 마도구에 속합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수업이나 듣기 위해 교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참고로 분장 마도구 같은 경우는 …… 상대방에게 얼굴을 빌려준 것 만으로도 방조죄에 해당하여 처벌 대상이 됩니다……
법학 수업답게 불법 마도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불법 마도구라…….
이 세계에는 협회에 지정된 몇 가 지 불법 마도구가 존재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외형 을 바꿀 수 있는 분장 마도구인 ‘인 피면구’이다.
사실 분장 마도구라는 게 사용하는 방법이 까다로워서 그렇지 잘 사용 할 수만 있으면 앞으로의 전개에 엄 청난 이점이 되기는 한다.
외형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만 큼 무슨 깽판을 치고 다니든 내 정 체를 들킬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장 마도구에는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사용해 분장 마도구를 검색했다.
[인피면구(유물)]
분류 : 가면
설명 : 외형을 바꿀 수 있다.
[사용 효과]
►외형 저장
타인의 외형을 저장합니다.
►외형 변화
저장된 외형으로 변화합니다.
*지속시간 최대 7일
(지속시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돌아
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4시간
►외형 되돌리기
원래의 얼굴로 되돌아옵니다.
가격 : 100,000포인트
우선 등급이 유물이기에 가격이 상
당하다.
물론 변장 마도구는 세상에 단 하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물치고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10만 포인트를 덜 컥 내자니 내게는 조금 부담이 큰 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분장 마도구쯤이야 포인트 가 아니더라도 현금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현금으로 구하자니 1급 불법 마도구답게 정상적인 루트로는 얻을 수 없다.
아마 가끔 지하 경매로 올라올 때 나 구매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또 다른 제약으로는 타인의 외형을 저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장 마도구가 이 세계에서 1급 불법 마도구로 지정된 가장 큰 이유 이기도 하다.
이 마도구는 외형을 창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외형을 저장해 잠 시 빌리는 방식이다.
자운도 이 타인의 외형을 저장하는 힘을 이용해 선구자의 밤에 참가했 었다.
하지만 이걸 내가 사용하기에는 누
구의 외형을 훔쳐야 하나 그것이 고 민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다가가서 불 법이지만 얼굴 좀 빌리겠습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자운처럼 상대방을 죽여 서 얼굴을 떼앗자니 그것도 좀 그렇 다.
“흐음.”
그래도 어떻게 방법만 잘 찾으면 이 분장 마도구를 이용해서 뭔가 이 득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애초에 외부자의 혜택의 ‘새 프로 필 추가’는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니까.
한 번 고민을 해봐야겠네.
띠리리리링~
수업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 두 수고하셨습니다……
법학 교사가 교실 밖으로 나가자 학생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흐아암. 잘 잤다.”
“이상하게 법학 수업만 되면 잠이 오더라.”
“어? 나돈데.”
“야야. 다음 수업 뭐냐?”
“부특기 수업.”
“오. 좋아.”
다시 원래의 활기찬 교실의 분위기 로 돌아가려는 그때였다.
“야! 테스트 결과 나왔대!”
한 학생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 진짜‘?”
“바로 확인해야지.”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켜기 시작했다.
순위 평가 테스트는 단순하고 쉬운 시험에 속했지만 성적에 반영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거기다 단순히 성적순으로 나열되 는 것이 아닌, 파괴력을 점수로 계 산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종합 순위의 변화가 엄청나다.
내가 1학기 때 0점올 받으며 단번 에 꼴찌가 된 이유도 바로 이것 때 문이다.
[성적 정보]
[2-기초 평가 성적]
[김선우][2-A]
[종합 20위]
[‘종합 성적 탑20’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20위.
상위권 층이 워낙 단단해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듦에도 성적이 크게 상승했다.
평가 테스트에서 몇 점을 기록했는 지는 공개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20위권에서 8등이나 상승했다는 건 아마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증거 일 거다.
그렇다고 해도 1학기 만에 20위라 니.
내가 생각해도 성적은 빠르게 상승 하고 있다.
물론 상위권에 오른 만큼 이제 앞 으로 순위를 올리는 건 더더욱 힘들
어지겠지만.
“흐아암. 김선우 몇 위 됐냐?”
그렇게 조용히 성적을 확인하고 있 던 내게 신영준이 하품하며 다가왔다.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