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현의 말에 유아연은 입을 다물
었다.
과거 2년 전.
유아연은 특무팀 소속의 마법사였다.
젊은 나이에 전 세계 마법사들 사 이에서도 손꼽히는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특무팀 내부에서도 그녀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유아연이 특무팀의 운영 방식에 불 만을 품은 것이다. 유아연과 특무팀 간의 의견 충돌은 계속해서 일어났 고, 결국 유아연은 자신을 따르던 인재들을 데리고 특무팀에서 나왔
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여명의 칼날’.
물론 현 여명의 칼날 소속 마법사 들은 대다수가 자운에게 강한 증오 심을 가진 피해자들이었다.
하지만 김덕현 입장에서는 특무팀 소속의 마법사를 빼돌렸다고 생각했 기에 좋은 감정이 생길 수가 없었다.
유아연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선배님.”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넌 나
랑 남이다.”
“……김덕현 씨?”
“야이…… 그냥 선배님이라 불러.”
김덕현의 말에 유아연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저번에 물어보신 그건 뭐 예요?”
“아, 테리사를 잡은 마법?”
“네. 신원불명의 인물한테 지원받 았다면서요.”
“맞아. 근데 그거 진짜 너희 소속 마법사 아니냐?”
김덕현의 질문에 유아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희 소속에 보조계 마법사가 있긴 하지만 선배님이 설명 한 빛줄기 속박 마법 같은 걸 다루 는 애는 없어요.”
“……그래? 그럼 대체 누구지?”
김덕현은 생각에 잠겼다. 유아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운을 노리는 또 다른 세력이 있 나 보네요.”
“응‘?”
“정황상 그렇잖아요. 자운의 핵심 멤버를 잡았음에도 사라진 것도 그 렇고.”
“여러 가지 수상한 점이 많기는 하 지.”
유아연은 고민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봐야겠어요. 그런 특이한 마법을 사용하는 자라 면 뭔가 흔적이 나오겠죠.”
개학 이틀 전.
김진우로 분장한 나는 서울에 소재 한 사설 종합 마법 훈련 센터를 찾 았다.
다름 아니라 전기 내성 특성을 키 우기 위해서였다.
이곳 종합 마법 훈련 센터에서는 마법사를 위한다양한 훈련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속성 적응 훈련 역시 예외는 아니 었다.
안전 시스템도 확실히 구비되어 있 기에 전기 속성 적웅력을 키우기 위 해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었다.
물론 1일 이용권이 20만 원으로 조금 비싼 게 홈이지만 돈은 얼마든 지 있다.
삐빅!
나는 개인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섰다.
네모난 낯선 기계가 보였다. 기계 치는 아니었기에 사용 방법은 단번 에 알 수 있었다.
화면에 [전격 적응 훈련]을 터치했다.
무서우니까 강도는 최하로.
파지직. 파지직.
기계에 달린 기다란 막대의 끝에서 전기가 튀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단 순한 만큼 효과도 확실하다.
나는 ‘형태 없는 정령의 유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반지가 빛을 뿜 어내자 나는 그것을 막대에 가져다 대었다.
파지직.
투명한 빛의 반지가 점점 노란빛으 로 물들기 시작했다. 제대로 전기 속성이 담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걸로 전기 속성은 완성 되 었고.”
이제는 막대를 이용해 전기 내성을 키울 차례다.
나는 전류가 흐르는 막대에 천천히 몸을 가까이 대었다.
“후.”
막상 하려니 좀 떨리네.
아니, 좀 많이 무서운데.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내 마 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망설이면 안 된다. 앞으로의 전개에는 이것 보다 힘든 일이 수두룩 할테니.
“흡!”
나는 망설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막 대에 몸을 가져다 대었다.
파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전기 속성 적웅 훈련’ 업적을 달 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전기 내성’ 특성의 등급이 D에서 C로 상승했습니다.]
[당신의 육체가 고통에 적응합니 다!]
[적웅형 특성, ‘고통 내성(F)’이 추
가됩니다.]
“으어 억……
길고 괴로웠던 전기 고문…… 아 니, 전기 적응 훈련 1일 차가 끝났 다.
업적을 달성하며 포인트를 벌고 또 새로운 적응형 특성의 획득과 진화 를 얻어냈다.
아직도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 다. 왜 마법사들이 많은 장점에도 전기 속성을 기피하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적응형 특성이 있어도 이 정도인데
어릴 적부터 훈련받은 애들은 진짜 뭐 하는 애들이지.
“후.”
그래도 일단 특성을 획득했으니 확 인해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전기 내성 특성만 생각하고 왔는데 고통 내성이라는 특성을 추 가로 얻게 되어 조금 기분이 좋다.
[고통 내성(F)]
분류 : 특성
설명 : 당신의 육체가 고통에 적웅
합니다.
[지속 효과]
►고통 적응
체감하는 고통이 15% 줄어듭니다.
체력 회복속도가 10% 상승합니다.
« Q 99
효과는 무난했다.
고통 감소 15%.
낮다고 생각하면 낮을 수 있겠지만
높다고 생각하면 높다고 느낄 수도 있는 수치였다.
무엇보다 고통 내성은 전기 내성과 도 중첩이 된다는 점.
그것만으로 이 특성은 엄청난 가치 를 갖고 있었다.
나는 다음 특성을 확인했다.
[전기 내성 (C)
[지속 효과]
►전기 인간
마력이 1 상승합니다.
전기 속성 내성이 20% 상승합니다.
특성의 등급이 D에서 C로 올랐다.
하지만 달라진 건 전기 속성 내성 이 10%에서 20%로 상승한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10%는 꽤 큰 수치다. 10% 에서 20%면 두 배의 상승이니까.
미미해도 이게 쌓이고 쌓이면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럼 구현해볼까.”
나는 손을 들어 마력을 끌어모았 다. 동시에 전류가 흐르는 구체가 내 손위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가끔 구체의 전기가 살짝 밖으로 터지며 손바닥에 따끔한 느낌을 주 었지만 참아내었다.
확실히 전기 속성이 다루기가 까다 롭다.
빛 속성은 얌전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전기 속성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튄다.
“ 후.”
[‘전기 속성 구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그래도 구현에 성공했다.
예상했던 대로 마나 소모량이 엄청 나긴 했지만 대자연의 심장이나 마
나 엘릭서를 사용한다면 마나 소모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겠 지.
파지지지직一!
그때 였다.
손 위의 전기가 크게 스파크를 튀 기더니 내 손바닥을 강하게 지졌다.
“아뜨뜨! 악! 따가!”
나는 곧바로 마법의 구현을 취소했다. 끔찍한 고통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생각 이상의 강한 전력에 손바
닥이 빨갛게 부었다.
“아윽......
아무래도 전기 속성을 제대로 다루 는 데 꽤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개학 하루 전.
나는 기숙사에 짐을 풀기 위해 오 랜만에 마법사관학교로 돌아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 내부엔 꽤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에 짐을 풀기 위해 돌아와 있었다.
표정이 하나 같이 밝은 게 다들 잘 쉬고 논 모양이다.
“김선우!”
“선우야 안녕.”
누군지도 모르지만, 괜히 내게 아 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1학기 기말시험 이후에 겪었 던 일이기에 크게 당황하거나 하지 는 않았다.
그보단 성적에 따라 사람에 대한 관심과 대우가 달라진다는 게 참 웃 기면서도 쓸쓸한 현실이다.
“선배님!”
그때 최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최서윤이 자기 몸만 한 거대한 케이스 가방을 질질 끌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짐 풀러 왔냐?”
“넵. 선배님도 짐 풀러 오셨어요?”
“그렇지.”
“아하.”
그러더니 최서윤이 내 몸을 훑어봤 다.
“근데 짐은 어딨어요?”
“내 짐?”
내 짐은 전부 아공간 안에 넣어놨 기에 따로 가방을 챙기지 않았다.
“저번에 기숙사에 한번 들려서 짐 을 좀 풀어놨었거든. 그래서 크게 풀 건 없어.”
“ 아〜”
대충 지어낸 말이었지만 최서윤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저번에 선배님이 양보해 주신 악몽의 안개 던전 보상이요. 진짜 효과 좋더라고요.”
“그러냐. 다행이네.”
“넵. 자 봐봐요.”
최서윤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마력 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손 위로 작은 얼음 덩어리가 구현되 었다.
“이게 방학 전에 제가 구현하는 마 법이었으면, 지금은요.”
흐읍!
최서윤이 작게 기합을 지르며 새로 운 얼음 덩어리를 구현했다.
겉으로 보기에 크기와 형태는 이전 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 법을 익히며 예민해진 감각은 그 차 이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차이 느껴지세요?”
“온도 차이네.”
“네, 전보다 훨씬 차가워졌어요. 구 현 속도도 훨씬 빨라졌고요.”
최서윤이 빙긋 웃었다.
“잘됐네. 양보한 보람이 있다.”
“네네. 선배님 덕이에요. 언젠가 꼭 보답할게요.”
최서윤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 했다.
그때 최서윤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 왔다.
“야! 최서윤! 너 여태 어디…… 앗. 김선우 선배님? 아, 안녕하세 요.”
최서윤의 절친인 송승아였다. 그녀 는 나를 보더니 놀란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90도도 아니고 거 의 100도 인사다. 인사성이 과하게 좋은데.
“어, 그래. 안녕.”
송승아는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뭔가 싶어서 그녀를 마주 보는데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왜? 뭐 할 말 있어?”
“아뇨. 아무것도 아니…… 아앗!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네! 잠깐 어 디 좀 가볼게요.”
송승아가 어색한 말투로 그렇게 외 치더니 툭툭 최서윤의 팔뚝을 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최서윤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
개를 갸웃했다.
“뭐야? 쟨 또 왜 저래?”
나도 의문이다. 송승아가 저런 캐 릭 터였나.
“그러게. 니 친구 왜 저러냐? 관리 좀 해라.”
“어? 지금 제 베프 욕한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게 최서윤과 한가롭게 떠 들고 있던 때.
우리 앞에 금발 머리의 백인 남성이 다가왔다. 저절로 내 시선이 그 를 향했다. 최서윤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남성이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엄청 잘생겼다. 지나가면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네, 안녕하세요.”
최서윤은 남성의 인사에 따라 얼떨 결에 인사했다. 남성은 나와 최서윤 을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마법사관학교 학생분들인가 요?”
“네.”
“길을 여쭤보려고요. 혹시 2학년
교무실이 어딘가요?”
남성의 말에 최서윤이 손가락으로 본관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 8층에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친절한 학생들.”
남자가 우리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본관을 향해 걸어 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 참고로 저는 이번에 부임하게 된 교사에요. 이름은 크리스고요. 혹 시 제 수업 듣게 된다면 잘 부탁해 요.”
“아, 선생님이셨구나.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최서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남 자는 우리를 향해 빙긋 웃고는 다시 본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이름 : 정현
나이 : 28
종족 : 마인 상태 : 평안 마력 둥급 : A
관심도 : 0
두 학생과 헤어진 남성은 흔자 본 관을 향해 걸었다.
아직 방학이라 사람이 없어 한적한 계단을 쭉 올랐다.
교무실은 8충에 있다고 했다. 하지 만 남성은 8층이 아닌 4층으로 향 했다. 4층에 도착하자 3학년 교실들 이 보였다. 남성은 쭉 복도를 걷다
가 3학년 A반 교실 문 앞에 섰다.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계단식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빈 책상들을 바라보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눈에 낙서로 가득한 한 책상이 들어왔다. 낙서는 저주와 욕 설로 가득했다. 남성은 낙서를 손으 로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장예……
크리스, 아니 정현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교실 밖으로 나왔다.
삐빅!
오랜만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한 달 만에 보는 풍경이 뭔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낯섦은 금세 사라 지고 익숙함이 느껴졌다.
“청소 좀 해야겠네.”
한 달 사이에 먼지가 좀 낀 것 같 다.
손으로 쓰윽 테이블을 만지는데 희
뿌연 한 먼지가 손에 묻었다.
“그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