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535)

“……응, 그러네.”

“혼자 몬스터 필드를 돌아다니는 짓은 절대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윤하영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뭔 가 처량해 보인다.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어깨를 토닥였다. 윤하영이 나를 올려다보 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헤헤. 혼났네.”

“웃는 걸 보니 아직 정신 못 차렸 네.”

“남한테 혼나본 게 오랜만이라 신

기해서.”

어째 표정이 들떠 보이는데.

“......됐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럼 훈련이나 시작하자.”

한편, 한세연은 한성그룹 회장 한 대현의 호출을 받고 본가로 돌아왔다.

최근 있었던 선구자의 밤 사건으로

그녀는 하루하루 바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김진우가 예고했던 것처럼 선구자 의 밤은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덕분에 한성그룹의 이미지가 나빠 지고 세간에 온갖 욕을 먹게 되었다.

한성가의 일원인 그녀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번 행사를 위해 큰 공을 들였던 오 빠, 한세진을 생각하면 오히려 크게 이득을 봤다라고 할 수 있었다.

한세진의 입지가 크게 줄어드는 만

큼 자신의 입지가 상승할 테니까.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김진우. 이 사람의 정체는 대체 뭘 까.

하도 놀랄 일을 자주 보여줘서 이 제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데 도 항상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자운의 테러를 예 상했다. 자운 관련 정보는 세계 최 고의 정보 길드를 소유한 한성그룹 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정보였다.

그런데 일개 개인이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걸까.

“ 에휴.”

그런 사사로운 생각을 할 때가 아 니다.

이번 일로 너무 많은 사람이 다쳤 다.

비록 자신과 엮인 일이 아니라고 해도 같은 한성가의 일원으로서 마 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연아.”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30대의 잘생긴 남성. 한세진이었다.

“어, 오빠.”

“너도 아버지가 불러서 왔어?”

“웅.”

“……그러냐.”

한세진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세연은 속으로 웃었다. 이내 욕망을 숨기며 걱정하 는 척 입을 열었다.

“아쉽게 됐네. 오빠가 열심히 준비 한 행사였는데.”

한세진은 한세연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운이 나빴지. 설마 자 운 놈들이 이렇게 각 잡고 난리 칠

줄은 누가 알았겠어.”

“맞아. 운이 나빴어.”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하고 는 한성가 회장실의 서재에 들어갔 다.

“왔느냐.”

안으로 들어가자 중후한 목소리가 그들을 반겼다.

한세연은 천천히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다.

침대에 누워 몸에 의료 마도구를 잔뜩 부착한 쇠약해진 나이 든 남성.

하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섬뜩하게 살아있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한성그룹의 주 인.

한대 현이었다.

한대현은 언성을 높이며 한세진에 게 화를 냈다. 한세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자운이나 마인마저 두려워하지 않 는 그였지만, 그의 아버지 한대현만

큼은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 재였다.

“쓸모없는 녀석. 사업 하나를 말아 먹고 큰소리 뻥뼁 치더니 이번에는 아주 개 박살을 냈구나.”

“아버지! 이건 불가항력이었어요. 행사 도중에 테러를 당할지 어떻게 예측해요?”

“홍! 세연이가 행사 주최를 말렸던 것은 벌써 잊은 것이냐?”

한대현의 말에 한세진은 힐끔 한세 연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저번 가족 모임 때 한세연이 행사 주최를 반대하긴 했

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기가 안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근거 가 빈약했기에 한세진은 그녀의 의 견을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네가 한성 그룹의 이미지를 망쳤 다. 아주 온 세상에 광고를 다 하더 니 이렇게 쪽팔릴 수가 없어.”

“아, 아버지.”

“됐다. 꼴도 보기 싫다. 이만 가봐 라!”

단호한 한대현의 말에 한세진은 고 개를 숙이더니 방에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눈치를 살피던 한세연 은 한세진을 따라 방에서 나가려 했

다.

그때 였다.

“세연이. 너는 남아라.”

“네?”

뭘까.

갑자기 남으라니. 한세연은 순간 의문이 들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세진은 의아함과 불안함이 섞인 시선으로 한대현과 한세연을 바라봤 다.

“……그럼 아버지 가보겠습니다.”

쿵.

한세진이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갔 다.

넓은 저택의 공간. 이제는 한세연 과 한대현. 단둘이 남았다.

“듣자 하니 네 무능력한 오빠와 달 리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더구나.”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됐다. 네게 물려준 한성제약도 날 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들었다. 듣자 하니 세연이 네 공이 크다 하 더군.”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칭찬에 한세

연은 의아함을 느낌과 동시에 가슴 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나의 진가를 알아보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나저나 신기하구나. 마치 망할 거라도 알고 있던 것처럼 던전 사업 을 오빠에게 넘긴 것도 모자라 네 오빠의 쓰잘데기없는 허세로 가득한 이번 행사를 반대했던 것 말이다.”

한대현이 의구심에 찬 눈으로 그녀 를 살피더니 말했다.

“그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이냐?”

그 말에 한세연은 속으로 당황하면

서 놀라워했다.

역시 아버지.

단순 대기업이었던 한성 그룹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건 단순 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한대현의 날카로운 촉 과 판단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세연은 시치미를 떼며 말 했다.

“질문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어요.”

“세연이 네가 똑똑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지. 하지만 최근 네가 한 행동들을 보면 그런

게 보이지 않더구나.”

정곡이었다.

아파서 하루의 대부분을 방에 누워 지내고 있었지만, 그룹과 자식의 일 은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한세연은 고민했다. 아버지에게 어 설픈 거짓말은 분명 들통난다. 똑바 로 대답하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서 라도 알아내려 하겠지. 그렇다면 사 실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 을 말하는 것으로 아버지가 자신에 게 실망하진 않을까. 그게 걱정이 들었다.

“……친분이 있는 한 마법사의 조 언을 받았어요.”

“마법사?”

“네.”

“던전 사업을 포기한 것도 그 마법사의 조언이냐?”

“네, 맞아요.”

한대현은 고민하는 둣 턱을 매만졌다.

“그러냐. 세연이 네가 믿는다는 건 뭔가 그자에게서 특별함을 본 것이 겠지?”

“네.”

“재밌구나. 그자의 이름은?”

“김진우요.”

잠시 생각에 잠긴 한대현.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혼자 중얼 거렸다.

“그래? 재밌군. 한번 만나보고 싶 구나.”

성난 발걸음으로 한세진은 한성가 의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동생인 한세연과 아버지가 어떤 대 화를 나눌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아버지, 한대현이 동생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건 그룹 내 한세연의 입지 가 상승한다는 것이고 그건 먼 훗날 한성가를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큰 변수가 될 수가 있었다.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지금까지 보아온 한세연은 똑똑하 지만 단 한 번도 경영에 욕심을 보 인 적이 없었다.

야망 역시 보인 적 없었고 늘 회 장이 되려고 하는 나를 웅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생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그 전에 가장 열 받는 일은 따로 있었다.

“ 자운......

빌어먹을 녀석들 때문에 몇 주간 공들여 준비했던 일을 모두 망쳤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정비서.”

한세진의 부름에 한 남성, 정비서 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의 신체 강화를 이용한 빠른 움직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장님.”

“자운, 그 자식들에 대해 조사해 요.”

“자운이라 하시면 테러 단체 말씀 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조직들 전부 풀 고. 목숨 걸고 일할 수 있는 쓸만한 용병들도 고용해요.”

“넵. 알겠습니다.”

남성은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혼자 남은 한세진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일개 테러리스트 주제에 한성가를 건드려?”

용서하지 않겠다. 이번 일은 반드 시 갚아주마.

하지만 그전에.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진 정시킬 필요가 있다.

한세진은 그윽한 골목으로 향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한세진의 비 밀스러운 취미.

오랜만에 비밀스러운 사냥을 할 차 례 였다.

몬스터 필드에서 열심히 훈련했다 는 윤하영의 말은 사실이었는지 한 달 사이에 그녀의 실력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역시 마법은 아무리 훈련해봤자 실 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다는 것을 다 시금 체감하게 해주었다.

특히 윤하영이 가진 멸마의 힘이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이제 악마족 몬스터는 웬만하면 다

한방에 쓰러지는 수준…….

아니, 악마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멸마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한데.

“하앗!”

쾅!

끼에에엑!

“핫!”

쾅!

끼에에엑!

“하하핫!”

거의 차력을 부리는 수준이다. 윤

하영이 지나가는 길에는 악마족 몬 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씩 죽 어 나갔다.

진짜 뭐야? 얘 뭐 이리 세졌어?

불과 한 달 전의 윤하영을 생각해 보면 비교 안 될 정도의 성장이다.

이 정도면 악마족 몬스터 입장에서 윤하영이 악마로 보이지 않을까.

“……진짜 많이 늘긴 했네.”

“거봐. 나 엄청 늘었다니까?”

“아니,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늘 었는데?”

“엣헴.”

“근데 멸마의 힘은 어떻게 훈련한 거야?”

“그야 당연히…… 어?”

몬스터를 처치하던 윤하영이 몸을 움찔하며 당황했다. 그 수상한 모습 에 나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잠깐, 몬스터 필드에서는 멸마의 힘을 훈련할 수 없을 텐데?”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멸마의 힘은 악마나 마인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악마족 몬스터 는 필드에서 볼 수 없으니까.

내 말에 윤하영은 땀을 삐죽 홀리 더니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우리 할머니가 가끔 악마로 변신하셔.”

“오. 정말?”

“으응. 내가 밥 남길 때 특히 무섭 게 변하시거든. 대악마로 말이야.”

……한번 받아주니까 진지하게 속 은 줄 아네.

“시끄럽고 제대로 해명해.”

“힝.”

“어서.”

“사실 몇 번 이곳 던전에 왔었어. 너무 근질근질해서.”

설마 했는데. 여길 혼자 기어들어

갔다고?

“너 정말……

“그래도 정말 안전하게 했어. 알잖 아. 우리 평소 훈련 방법.”

윤하영이 속사포를 내듯 빠르게 말 했다.

윤하영의 말대로 우리 훈련 방법이 안전한 건 사실이다. 멀리서 악마족 몬스터를 유인한 뒤 1:1 상황에서만 전투하니까.

그렇긴 해도 뒤를 봐줄 사람이 있 으니 안전한 거지 던전은 어떤 사고 가 터질지 모르는 장소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원작의 윤하영도 성장 의 재미를 알아차리는 순간 무모할 정도로 훈련을 많이 하긴 했었지.

덕분에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단번 에 최상위권 성적에 등극했지만. 그 래도 안전이 최우선이다.

“앞으론 위험한 훈련은 독단적으로 하지 마. 알았어?”

“으웅. 알았어. 진짜로 안 할게!”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흘겨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말 했으면 그녀도 알아들었겠지.

나와 윤하영은 다시 앞으로 걸었다.

윤하영에게는 잠시 쉬라고 한 뒤 빛 속성을 이용해 몬스터를 처치했다.

사실 방학 동안 빛 속성 숙련도를 70% 이상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는 데 워낙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속성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다.

오늘이라도 뽕을 뽑아야겠다는 마 음가짐으로 나도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그렇게 1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꽤 많이 들어간 거 같지 않 아?”

“응. 생각보다 깊게 들어왔네.”

나나 윤하영이나 둘 다 악마형 몬 스터에게 상극인 힘을 사용할 수 있 었기에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리고 몇 달간 틈틈이 공략해왔기 에 꽤 깊은 곳까지 도착했다.

내 생각에는 보스 방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로 던전 끝까지 공략해버 릴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금 윤하영의 힘은 내 기대 이상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

으니까.

왜 마인의 왕이 멸마의 힘에 벌벌 떨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상극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살벌했다.

한 2년쯤 더 지난다면 분명 지금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 으로 변하겠지.

윤하영은 내 중얼거림에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괜찮지 않아? 이대로 끝까지 가버 리자.”

얘는 나보다 겁이 없다. 그 때문에 가끔 무모해지지만 그래도 단점보다

는 장점이 많은 성격이다.

윤하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난이도를 모르는 던전을 공 략한다는 게 조금 위험한 일이지만 이곳은 악마족이 주를 이루는 던전.

나와 윤하영이라면 난이도가 조금 높다 하더라도 충분히 공략을 시도 해볼 만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렇게 우리는 던전을 빠르게 공략 했다.

던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더욱 강해진 악마족 몬스터가 계속 해서 등장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윤하영의 마법을 견디지 못했다.

지칠 줄 모르는 윤하영의 모습에 나도 이제는 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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