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535)

—……네?

—이서준 님은 어려서 잘 모르시겠 지만, 저 검은……

백은성은 이서준에게 진천우에 관 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서준은 모르는 사람의 갑작스러 운 관심에 당황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지 만, 이서준은 정체를 숨긴 백은성에

게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 명 한 명에게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잘 찾아보니 백은성 말고도 다른 주요 인물들이 보였다.

자운의 멤버인 나타샤, 스카, 에밀 리, 진, 테리사, 헤더……

여명의 칼날 멤버인 유아연, 정재 원, 클레이, 최정원……

몇 안 되지만 협회 소속인 김덕철 과 정현수까지. 이들은 아마 이서준 의 호위를 위해 몰래 따라왔을 거 다.

그리고 이만큼 사람들이 모였다는 건, 슬슬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 59분.

테러가 10시에 시작될 예정이니 이제 곧인가.

번쩍!

“어어?”

“뭐야?!”

건물의 모든 조명이 꺼지며 짙은 어둠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혼란 에 빠졌다.

나에겐 적웅형 특성이 있었기에 어 둠 속에서도 어느 정도 앞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자운의 멤버들이 있었 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그때 였다.

어디선가 강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 졌다. 동시에 강한 굉음이 터지더니

호텔의 벽이 폭발했다.

콰아아앙!

“꺄아아악!”

“뭐야!”

사교장은 한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이서준에게로 시선을 돌 렸다.

이서준과 대화를 나누던 백은성 역 시 다른 자운의 멤버들처럼 어디론

가 사라져 있었다.

혼자 남게 된 이서준은 어느 정도 상황을 눈치챈 듯 허리춤에서 보조 용 검을 꺼내며 주변을 경계했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폭발이 터졌다.

화르륵. 강한 불길이 사교장 안에 번졌다.

“여러분! 여기로 대피하세요!”

입구 쪽에서 경호 인력들이 큰 소 리로 외쳤다.

그들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따라 빠르게 사교장 밖으로 나갔다.

“당장 범인을 찾아!”

“누구지?! 누가 이런 마법을?”

나머지 경호원들은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뛰어가며 테러의 원인을 찾아내려 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마 법의 폭발은 자운이 테러용으로 사 용하는 마법 병기를 이용한 것이었다.

설치용이기 때문에 폭발의 진원지 를 찾아가도 자운의 위치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혹검이 전시된 유리관 주변에 20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부러진 혹검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A등급의 정예 마법사들이었다.

그리고 원작대로 그들의 앞에 한 여성이 등장했다.

외형을 바꿨지만, 그녀의 손에 들 린 거대한 낫을 보자 그 정체를 바 로 알 수 있었다.

나타샤.

자운의 멤버였다.

“네놈은 누구냐? 지금 이 테러를 일으킨 녀석이냐?”

경호 인력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러나 나타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쥔 낫을 크게 휘두를 뿐 이었다.

서걱!

동시에 경호 마법사 두 명의 몸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기분 나쁜 피가 바닥을 적셨다.

A등급의 마법사라고는 믿을 수 없 을 만큼 허무한 최후였다.

“뭐, 뭐야?!”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남은 경호 마법사들은 잠시 당황하 더니 나타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힘의 격차가 분명한 지금, 그들의 공격이 나타샤에게 닿을 리 가 없었다.

“끄아아악!”

결국 나타샤의 공격에 모든 경호 인력들이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홍.”

살생을 했음에도 나타샤의 표정에 는 변화가 없었다.

침착한 움직임으로 품 안에서 네모 난 기계 장치를 꺼내 그것을 유리관

에 부착했다.

외부자의 혜택으로 효과를 보아하 니 마도구의 작동을 마비시키는 효 과를 지닌 유물이었다. 그리고 유물 이 부착되자 유리관이 쩌저적 금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유리관의 벽이 부실해지자 나타샤 는 주먹에 마력을 끌어모아 그대로 휘둘렀다.

쨍그랑!

나타샤는 부러진 흑검을 손에 쥐더 니 귀에 손을 얹고 혼자 말했다.

“물건은 확보했어.”

그렇게 자리에서 뜨려는 순간. 나 타샤의 바닥에 동그란 마법진이 생 성되기 시작했다.

이내, 그 위로 빛의 사슬이 튀어나 와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뭐야‘?!”

보조계 속박 마법이었다.

이런 사슬 형태의 보조계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내가 알기로는 단 한 명이다.

여명의 칼날 소속의 최정용.

“큭!”

나타샤의 몸이 묶이자 어디선가 강 력한 마력을 머금은 얼음의 가시가 나타샤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마법이 쏘 아지더니 얼음의 가시로부터 나타샤 를 보호했다.

나타샤는 신체의 마력을 끌어모았 다. 그리고 억지로 몸을 움직여 낫 으로 사슬을 끊어냈다.

“후!”

자유의 몸이 된 나타샤는 곧바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때 한 남성이 엄청난 속도로 그 녀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후웅!

검을 휘두른 남성는 여명의 칼날의 정재원이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꺼져!”

나타샤는 마력을 끌어모아 정재원 에게 발차기를 날리더니 빠르게 뒤 돌아 도망쳤다.

정재원은 잠시 고통에 이를 악물다 가 나타샤를 쫓았다.

또다시 어디선가 폭발음이 울렸다. 다른 곳에서 자운과 여명의 칼날 간 에 전투가 벌어졌다.

나는 슬쩍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 켜봤다.

원작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S등 급 괴물들간의 살벌한 전투.

그 장면을 직접 두 눈으로 보자 가슴이 떨렸다.

“……후.”

내가 저 전투에 끼어든다면 분명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겠지.

하지만 내게는 이번에 새롭게 얻은 힘이 있다.

이것을 이용한다면 자운의 멤버 중 하나의 발을 잠시나마 묶을 수 있겠

지.

그러나 이곳에서는 안 된다.

탁 트여있는 이곳에서 괜히 마법을 사용했다간 자운에게 찍힐 수도 있 다. 내가 이 상황에 끼어들기 위해 서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나는 바닥을 박차며 밖으로 향했다. 머릿속에 어느 정도 계획은 잡 혀 있었다.

혼란스럽고 끔찍한 사교 회장 안에

서 이서준은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그 는 알 수 있었다.

테러 단체, 자운이 벌인 일이었다.

그것도 그들의 전 리더였던 진천우 의 아이템을 훔쳐내기 위해서.

“여기로 도망가세요!”

그렇게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있던 도중 이서준의 눈앞에서 강력한 폭 발이 터졌다.

“으아악!”

한순간에 수많은 사람이 폭발에 휩

쓸리며 목숨을 잃었다.

이서준은 그 끔찍한 장면을 보며 손끝을 떨었다.

그때 이서준의 앞에 거대한 장창을 쥔 한 남성이 나타났다.

살육을 저질렀는지, 그의 얼굴엔 피가 묻어 있었다.

“여긴 위험하니까 날뛰지 않는 게 좋아.”

이서준은 잠시 멈춰서서 남자를 바 라봤다. 방금 전 자신에게 진천우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남성이었다.

“……자운인가?”

“그래, 맞아. 잘 알고 있네.”

예상외로 상대는 쉽게 인정했다. 이서준은 검에 마력을 끌어모으며 남자를 노려봤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널 공 격할 생각은 없거든. 지금만큼은 사 이좋게 지내자고.”

자칫 여유로운 남자의 말에 이서준 이 물었다.

“왜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거지?”

이건 전부터 이서준이 궁금했던 것 이었다.

방금도 그렇고 저번 용병 체험 때

도 그렇고.

사람을 벌레처럼 쉽게 죽이고 다니 는 것으로 알려진 테러 단체 자운은 은근히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서준의 말에 백은성은 잠시 생각 에 잠기더니 말했다.

“호의라…… 이서준 너는 그렇게 느낀 건가?”

백은성은 씨익 웃었다.

“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 지 금 당장은 말이야.”

“지금 당장은?”

이서준의 물음에 백은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우리들도 잘 모르거든. 미래 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잖아?”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의 일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태도 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야. 지금 당장은 네게 호의를 베풀고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의 적이 되기 싫으면 방해하지 않는 게 좋 아.”

그렇게 혼자 말을 하던 백은성이 실수했다는 둣 입을 벌렸다.

“아, 이거 너무 많은 걸 알려줬나? 이거 베르트한테 혼나겠네.”

백은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다음에 보자. 내가 지금은 좀 바빠서.”

그 말을 끝으로 백은성은 다시 어 디론가 사라졌다. 이서준은 그 뒷모 습을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 앞으 로 달렸다.

사교회에 참가한 마법사와 협회에서 출동한 마법사들이 움직이기 시 작하며 혼란은 점차 줄어들었다.

물론 자운의 목표는 테러가 아닌 혹검을 훔치고 달아나는 것이기에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은 덕도 있었다.

하지만 자운이 설치해둔 수많은 폭 발물로 인해 인명피해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런 위험이 계속 일어나는 호텔의 입구에서 최서윤은 일반 시민들의 대피를 돕고 있었다.

“이쪽으로 대피하세요!”

폭발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대체 이렇게 많은 폭탄이 설치될 동안 주최 측에선 무엇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콰앙!

그때 최서윤의 근처에서 강한 폭발 이 터졌다.

그 여파로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거대한 건축물이 혼들리더니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 했다.

하지만 최서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순간.

콰아아앙!

어디선가 새하얀 섬광이 쏘아지더 니 그녀의 위로 떨어지던 건축물을 산산조각 냈다.

최서윤은 놀란 눈으로 방금 자신을 구한 마법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갈색 머리와 안경. 그리고 수염을 가진 남성이 서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체형인데.

그때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크게 소리쳤다.

“너 미쳤어? 안 도망치고 여기서 뭐해?!”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는 일부러

변조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굵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상한 낌새를 느낄 새도 없었다.

“아, 아직 안에서 나오지 않은 사 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을 왜 네가 챙기는데. 네가 여기 보안 요원이야?!”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네 목숨은 네가 챙겨야지. 누가 누굴 돕는다고?”

갑자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혼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꽤 화가

난 듯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잔소리 를 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더욱 혼란이 가중됐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렇 게 혼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때 다시 한번 근처에서 폭발이 일었다.

반응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날 아드는 건물의 파편.

그 건물의 파편은 최서윤의 시야사 각에서 날아들었다.

그 순간 갈색 머리 남자가 그녀에 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반투명한 푸

른 막을 펼치며 파편을 막아냈다.

쾅!

방어막에 부서지는 건물의 파편을 본 최서윤은 순간 심장이 덜컥 떨렸다.

방금 날아온 파편을 이 사람이 막 아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땐했다.

그런데 방금.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위화감의 정체를 생각하려

는 순간 남자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 났다.

“ 괜찮아?”

“아, 네. 괘,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최서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마우면 여기서 떠나. 쓸데없는 정의감에 나서지 말고.”

“그치만 아직 안에 사람이……

“그건 여기 요원들한테 맡기라고.”

남자는 툭툭 최서윤을 어디론가 가 볍게 밀쳤다. 최서윤은 뒷걸음을 치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최서윤은 뒤를 돌고 한참을 달렸다. 그렇게 한 30초쯤 뛰었을 까. 안전거리에 도달한 최서윤은 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의 남자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부터 느끼고 있 었던 위화감의 정체를 그녀는 깨달 았다.

말투와 체형 그리고 눈빛.

그리고 위기에서 구해주는 모습까 지.

김선우와 상당히 홉사했다.

“어후. 식겁했네.”

최서윤을 떠나보낸 나는 가슴을 쓸 어내 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최서윤이 크게 다칠 뗀했다.

얘는 왜 지 몸은 안 챙기고 남을 챙기고 있던 건지. 참.

콰아앙-!

어디선가 폭발음이 다시 터졌다. 전부터 들려오던 폭발과는 다르게 누군가 마법을 일으켜 만든 폭발이 었다.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 도망치는 4 명의 자운 멤버가 보였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 다.

스카, 테리사, 이청, 나타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협회와 여명의 칼날 멤버들이 뒤쫓아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서준이 뒤늦게 모습 을 드러냈다. 이서준은 결연에 찬

눈빛으로 앞에 달리는 자들의 뒷모 습을 바라보다 쫓아갔다.

원작에서 보던 흐름과 완전히 동일 했다.

나도 한가하게 있을 수 없다.

내 계획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부러진 혹검을 회수한 자운 일당은 뒤를 쫓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쳇! 생각보다 끈질긴데?”

스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