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535)

“제 딸입니다.”

“어머, 따님이세요? 너무 이쁘다.”

“안녕하세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 렸다.

익숙한 얼굴.

최서윤과 그의 아버지 최재형이 있었다.

저번 선구자의 밤도 참가하더니 이 번에도 참가한 모양이다.

애초에 원작에서도 이날 최씨 가문 이 참가하긴 했었으니 그리 놀랄 일 은 아니다.

“맞다.”

최서윤도 참가했으니 원작대로라면 그 녀석도 참가했을 텐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찾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서준이었다.

기말시험 이후, 진천우에게 관심이 생긴 이서준은 그의 혼적을 쫓다가 선구자의 밤에 참가하게 된다.

진천우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 이 전시된다고 하니 혹시 무언가 단 서를 얻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그때 행사장에 사건이 터지며 어떤 일에 휘말리는 게 원작의 이야기.

‘안 마주치게 조심해야겠네.’

이서준은 김선우와 김진우의 관계 에 대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지금 괜히 마주쳐서 의심받으면 골치만 아파진다.

나는 인물 간파를 사용하며 인파를 가로질렀다.

정체를 숨긴 빌런들을 미리 파악해 두기 위해서였다.

‘안 보이네.’

다들 어디 숨었는지 빌런으로 보이 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도 사람이 많아서 내가 못 찾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쭉 둘러보며 길을 걷는데, 홀 중앙에 거대한 유리관이 보였다.

그 유리관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파 가 몰려 있었다.

호기심에 천천히 인파 쪽으로 가까 이 다가갔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목소리 가 들려왔다.

“이야. 이게 그 역사 속의 그 물건 인가?”

“한세진 부회장도 대단하네요. 소 문에 의하면 3천억에 구매했다는 데.”

“와. 3천억이요? 망가진 검을요?”

유리관 안에는 부러진 검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부러진 혹검 (F)]

분류 : 검

설명 : 부러진 흑검. 신비의 힘이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흑검올 바라보다가 밑 에 적힌 문구로 시선을 돌렸다.

[역대 최악의 마법사, 진천우가 사 용하던 검]

“♦.....홈.”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 아이템은 진천우의 아이템이었다.

지금은 부러지고 원래의 힘을 잃었지만, 이 혹검은 본래 SS등급의 무 기였다. 이름은 ‘흑천(黑天)

잠시 감상에 젖어있다가 내 맞은편 에서 익숙한 얼굴의 남성을 발견했다.

검은 정장으로 멋지게 꾸며 입은 이서준이었다. 머리는 살짝 가르마 를 타 이마가 보이는데 더럽게 잘생 겼다.

이서준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이서준은 전시장에서 나와 복도를 쭉 걸었다.

진천우에 대해 뭔가 알아낼 수 있 지 않을까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뭔 가 힌트가 될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 후우

이서준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천우와 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 까.

정말 탑이 말했던 것처럼 나와 피 가 이어져 있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진천우가 내 가족인 건 가?

그렇다면 몇 가지 의문도 해결이 된다. 저번 용병 체험 때 자운이 접 근했던 이유라던가. 아니면 어릴 적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유라던 가.

그렇게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이서준은 혼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의 여성을 발견했다.

“최서윤?”

“어? 선배님!”

최서윤이 반가운 얼굴로 이서준에 게 다가갔다.

“선배님도 여기 오신 거예요?”

“응. 설마 여기서 마주칠 줄 몰랐 네.”

“헤헤. 그러게요. 와. 근데 선배님 머리 누가 해준 거예요?”

“아, 이거?”

이서준은 부끄러운 미소와 함께 꼼 지락 머리를 만졌다.

“협회 사람들이 해줬어. 여기 행사 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니까 꾸며야 한다면서 이렇게 해주더라고."

“오. 선배님 엄청 어울려요.”

이서준은 피식 웃었다.

“넌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전 아버지 따라온 거예요.”

“ 아.”

이서준은 최서윤의 집안을 떠올렸다. 5대 마법 명문가 중 하나인 최 씨가문의 딸.

상류층 인사들의 사교 행사인 만큼 그녀가 참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 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서준은 잠시 최서윤과 시 답지 않은 잡담을 나누었다.

그때 였다.

이서준의 시야에 갈색 머리 남성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째 많이 낯이 많이 익다.

분명 처음 보는 뒤통수인데도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뭐지?”

“왜요?”

이서준이 멍하니 있자 최서윤이 물 었다.

이서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둣 고 개를 저었다.

역시 뭔가 착각한 거겠지.

행사는 계속 진행됐다. 어느덧 시 간이 흘러 지하 경매 시작까지 20 분가량 남게 되었다.

나는 한세연을 찾기 위해 호텔 내 부를 돌아다녔다.

한 2분가량을 찾아다녔을까. 계단 근처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세연을 발견했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들 모두 언론에서 본 적이 있는 유명 기업가 사람 들이었다. 아마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미용실에서 풀 세팅을 받 기라도 한 건지 헤어스타일과 화장 이 엄청 우아하다. 저번에 선물한 수정 목걸이가 오히려 그녀의 외모 에 묻히는 느낌이다.

주변 남자들이 힐끔힐끔 그녀를 바

라보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됐다.

나는 잠시 시간을 확인했다. 지하 경매까지 약 20분이 남았다.

슬슬 움직여야 하는데. 한세연은 대화를 그만둘 생각이 보이지 않는 다.

내가 저기 끼어들어 한세연을 데려 을 수도 없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한세연이 나를 발견하더니 반가운 미소를 지 었다.

“김진우 씨!”

한세연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에 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내게 다가왔

다. 한세연이 내게 다가오자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죄송해요.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 어서.”

“아뇨. 오히려 저 때문에 중간에 대화를 끊은 거 같은데 괜찮아요?”

“아, 괜찮아요.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라서.”

한세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잠깐 내게서 한 발짝 떨어지며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오. 옷 잘 어울리시는데요?”

“그래요?”

“네. 누가 골랐는지는 모르겠는데 잘 골랐네요.”

한세연의 유머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누굴까요.”

“아! 지금 몇 시죠? 시간 안 늦었 죠?”

“20분 정도 남았어요. 여유롭게 가 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바로 가죠.”

한세연과 합류한 나는 호텔의 복도 를 쭉 걸었다.

이번 경매는 호텔 내부의 숨겨진

지하 공간에서 진행된다.

불법적인 일도 많이 저지르는 한성 그룹이기 때문에 여러 특수한 목적 을 위해 이런 비밀 지하를 만들어 놨었다.

물론 일반적인 지하가 아니기에 평 범한 방법으로는 입장할 수 없다.

“여기로 가면 돼요.”

한세연은 당당하게 앞장서서 길을 걷더니 호텔 어딘가의 은밀한 복도 로 이동했다.

주변에는 관계실 외 출입 금지라는 문패가 잔뜩 걸려 있는 방들이 보였다.

한세연은 그중 문 하나를 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가구와 거대한 침대가 보였다. 마 치 일반적인 호텔 룸을 보는 듯했다.

원작에서 자운 시점으로 묘사되었 던 그 장면과 완전히 같았다.

“진우 씨, 가면 챙겼죠?”

“물론이죠.”

지하 투기장과 같이 하령이 주최하 는 지하 행사에서는 가면이 필수다.

나는 품 안에서 토끼 가면을 꺼냈 다.

저번 지하 투기장 때 구매했던 토 끼 가면이었다. 한세연은 그것을 보 더니 조용히 웃었다.

“이러니까 지하 투기장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한세연이 추억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그때 한세연 씨, 도박으로 돈 날 린다고 엄청 투덜거렸잖아요. 그때 돈 따고 나서 한세연 씨 표정 진짜 웃겼는데.”

“……시끄러워요.”

한세연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토라 진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가볍게 웃고는 다른 토끼 가 면 한 짝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가면을 착용한 한세연이 내게 말했다.

“그럼 가볼까요?”

끼이익.

한세연이 룸 구석에 있는 벽장의 문을 열었다. 벽장의 벽을 두들기자 벽이 열리며 숨겨진 계단이 나타났 다.

“이런 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되 는 거 알죠?”

“ 당연하죠.”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단 을 타고 내려갔다.

중간중간 다른 계단도 보였다. 아 마 지하 경매장으로 향하는 또 다른 입구인 것 같았다.

그렇게 2분가량을 내려갔을까. 우리는 넓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앞에 보이는 거대한 입구. 그리 고 가면을 쓴 사내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입장권을 확인하겠습니다.”

우리가 다가가자 덩치의 사내가 말 했다. 한세연은 품 안에서 카드 하 나를 꺼내 내밀었다.

덩치의 사내는 카드를 보더니 고개 를 끄덕였다.

“VIP 회원이시군요. 뒤에는 일행입 니까?”

“네.”

“확인했습니다. 보유 자금 확인 없 이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덩치의 사내는 우리를 어디론가 안 내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꺼먼 복

도.

하지만 적응형 특성의 효과로 내부 가 환하게 보였다. 둘러보니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각 방마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덩치의 사내는 쭉 걷더니 ‘18’이라 고 적힌 방 앞에 멈췄다.

“VIP 회원을 위해 주어진 방입니다. 이곳에 들어가셔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세연이 말하자 덩치의 사내는 다 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와 한세연은 방 안으로 들어갔

다.

방의 넓이는 그렇게 넓지 않았다. 소파 하나와 경매장 풍경이 훤히 보 이는 거대한 유리창 하나가 보였다.

원작에선 이 경매가 자세히 다뤄지 지는 않았지만, 대충 어떤 방식으로 경매가 진행되는지 예상이 갔다.

테이블에 있는 마도구 패드를 이용 해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이겠지.

“그래서 뭘 사려고 이곳 지하 경매 장까지 찾으신 거예요?”

토끼 가면으로 표정이 가려진 한세 연이 내게 물었다.

그러더니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세연이 다시 말했다.

“아, 혹시 이번 경매 상품으로 올 라온다는 성유물 노리시는 거예요?”

나는 테이블 위의 경매 상품 리스 트와 경매 순서를 확인했다.

원작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이번 경매의 핵심 상품인 ‘마나의 핵’이 첫 번째 순서다.

“아니요.”

이번 경매의 핵심 상품인 ‘마나의 핵’은 앞으로의 전개를 생각했을 때 분명 탐나는 물건이긴 했지만 내가 가진 자금으로는 노릴 수 없다.

성유물인 만큼 상상도 못 할 금액 에 낙찰될 예정이니까.

내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물론 원작대로라면 이것 역시 자운 의 손에 떨어질 물건이겠지만, 내가 개입한 이상 자운은 이 물건을 포기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제가 노리는 건 따로 있어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지하 경매가 시작됩니다.]

유리창 밖 무대 위에 사회자로 보 이는 남성이 올라왔다.

남성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했다.

[지하 경매에 참여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귀한 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셨는데요. 첫 번째 경매 상품이자 핵심 상품부터 경매를 시 작하겠습니다.]

남성이 손짓하자 바닥이 열리더니 작은 테이블과 함께 새하얀 빛의 구 슬이 올라왔다.

[성유물, ‘마나의 핵’입니다.]

—오오.

감탄하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방음이 완벽한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나는 멍한 눈으로 마나의 핵을 바

라봤다.

성유물.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나의 핵’이라는 이름답게 응축 된 마력의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300억부터 출발합니다.]

사회자의 말에 나는 입찰 패드를 집었다.

“어? 구매 안 한다면서요.”

한세연이 놀란 눈으로 내게 말했다.

“아뇨. 입찰금만 올리게요.”

“네?”

지하 경매는 원래 입장 전 계좌와 보유 현금을 반드시 확인한다.

가진 돈 없이 거짓 입찰로 경매를 방해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중에 예외도 있었다.

바로 지하 경매의 VIP 회원이다.

한성가와 같은 거대 기업에게만 주 어지는 VIP 회원권은 계좌나 현금 확인 없이도 원하는 금액을 입력할

수 있었다.

내가 한성가가 가진 지하 경매의 VIP 회원권을 원한 이유가 바로 이 혜택 때문이었다.

가진 돈 없이 자운의 돈을 털어먹 기 위해.

나는 패드에 1,000억을 입력했다.

[18번, 1,000억 나왔습니다!]

한세연이 놀란 얼굴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천억? 김진우 씨. 천억 있어요?”

“아뇨. 없습니다.”

“아니, 돈도 없으면서 천억씩이나 불러요? 그러다 낙찰되면 어쩌려고 요?”

나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여유 로운 미소를 보였다.

“걱정 마요. 낙찰 안 됩니다.”

“네‘?”

[26번, 1100억 나왔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이 다시 들렸다.

26번 방. 자운 녀석들이 속한 방이 분명했다. 역시 녀석들은 마나의 핵 을 노리고 경매에 참가했다.

마나의 핵은 어차피 녀석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곱게 내줄 의향 은 없었다.

나는 다시 금액을 입력했다.

[어어? 18번, 1700억 나왔습니다!]

한세연의 얼굴이 다시 경악으로 물 들었다.

“1700억? 잠깐만요. 입찰금을 올리

더라도 너무 크게 올린 거 아니에 요? 이거 진짜 낙찰되면 우리 한성 가만 욕먹어요.”

“거참. 괜찮다니까요.”

[18 번, 1700억 최고가입니다.

1700억. ……26번 방 18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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