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구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것으로 나는 스킬을 얻게 되었다.
늦은 밤.
나는 김진우의 모습으로 강화도의 몬스터 필드로 향했다.
다름 아니라 이번에 새로 얻은 스 킬을 하루라도 빨리 실험해보고 싶 어서다.
몬스터 필드 입구에 도착하자 평소 와 같이 길게 늘어진 캠핑장이 보였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마법사가 장비
를 옮기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폭염이 시작되고 몬스터 들이 숨다 보니 선선해지는 야간 시 간대를 노려 사냥을 준비하는 모양 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사람이 많아 보인다. 기분 탓일까?
“거 형씨도 마법사여?”
그렇게 눈앞의 풍경을 지켜보고 있 는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50대로 보이는 투박한 외형의 남 자. 등 뒤의 거대한 장창을 보아하 니 강화계 마법사다.
“네, 맞습니다.”
“그래? 처음 보는 얼굴이길래 혹시 나 해서 말을 걸었지. 그럼 그쪽도 ‘그걸’ 사냥하러 온 건가?”
“그거요?”
“아, 모르는 건가?”
남자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거? 그게 대체 뭐지?
“오늘 강화도 필드에 출현하는 필 드 보스말이야.”
……필드 보스라고?
필드 보스라고 하면 특정 지역에서 등장하는 특수 몬스터를 말한다.
의문도 모르게 등장하는 던전처럼
이 세계에서는 새로운 몬스터가 자 연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당연하겠지만 필드 보스라고 불리 는 몬스터들은 보통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하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이 파티를 이뤄 전투를 치루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오늘 사람이 많이 모인 거 구나.’
슬쩍 주변을 살피니 익숙한 문양의 깃발이 보였다.
거대한 방패를 가로지르는 검 문 양.
세계 10대 길드 중 하나로 알려진
투왕(聞王) 길드의 상징이었다.
오늘 필드 보스 사냥을 위해 거대 길드도 참여한 모양이다.
“정말 모르고 왔나 보네?”
“네, 전혀 몰랐네요.”
“3일 전에 이 부근에서 강한 생명 에너지가 감지되고 있다고 뉴스에서 계속 난리였는데.”
3일 전이면 안개의 섬에 있을 때 다. 그래서 몰랐구나.
“3일 전에 좀 바빠서 몰랐네요.”
“홈. 뭐, 그럴 수 있지. 아참. 그쪽 은 일행 없어?”
“아, 네. 혼자입니다.”
“혼자라고?”
남자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 라봤다.
“보아하니 젊은 친구인 거 같은데 야간 사냥은 좀 위험해.”
“압니다. 안전하게 해야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흘 겨 봤다.
“그쪽 마법사 등급이 뭐야?”
“저요? B요.”
“……B? 뭐야. 생각보다 꽤 하네?”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소속 길드는 있나?”
방금 대화를 나눈 남자는 투왕 길 드의 간부였다.
이름은 전찬원.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었는데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전찬원은 내게 이번 필드 보스 레 이드에 참가해서 길드 테스트를 보 지 않겠냐며 권유했다. 하지만 어딘
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에 결국 거절했다.
무엇보다 첫 만남에 반말까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진철이나 정윤슬처럼 자신만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면 또 몰 라.
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 몬스터 필 드를 걷고 있었다.
중간중간 몬스터를 마주쳤지만 손 쉽게 쓰러트렸다.
“후우.”
필드 보스는 언제 나타나려나.
원래는 아무 몬스터를 골라 실험할 예정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필드 보스라는 강한 상대가 곧 나 타날 텐데 이런 좋은 실험체를 두고 다른 몬스터에게 실험할 수는 없었 으니까.
그렇게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필드 보스의 출현을 기다릴 때였다.
어디선가 강한 마력이 느껴지더니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 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우우우웅……
150m쯤의 거리에서 마력의 에너 지가 한곳에 모이며 거대한 생물체 의 형상을 띄우고 있었다.
주변에서 놀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왔다!”
“준비해!”
“뭐 이리 커?”
—우어어어어!
필드 보스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뒷 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필드 보스가 소리를 크게 내지르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귀를 찢는 듯한 거대한 소리에 귀를 꽉 막았다.
“끄으윽!”
멀리서 본 필드 보스의 모습은 마 치 고릴라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그 크기는 일반적인 고릴라 와 달리 4m쯤 되어 보일 정도로 거 대했다.
“1번 대열 마법 구현!”
하늘 위로 형형색색의 마법이 밝게
떠올랐다. 필드 보스는 마법이 눈이 부신 둣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공격!”
콰아아앙!
강한 굉음이 울리며 마력의 파동이 몬스터 필드 전체를 휩쓸었다.
“2번 대열도 공격!”
콰아아아앙!
—크어어어어!
필드 보스는 몸을 웅크리며 공격을
계속 막아내었다.
이내 열이 받은 둣 마법사들을 향 해 팔을 휘둘렀다.
“끄아악!”
5명의 마법사가 그 공격의 여파에 휩쓸리며 쓰러졌다.
나는 멍하니 그 전투를 지켜보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 달았다.
서둘러 스킬, 룬의 속박을 발동했다.
후우웅……
내 손 위에서 푸른 빛의 마나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몸의 모든 마력이 급속 도로 빠져나갔다.
“읏?”
순간 현기중이 핑 돌며 몸의 균형 이 무너졌다. 바닥에 쓰러질 뻔했지 만 이내 정신을 집중했다.
룬의 속박은 내 생각보다 마나 소 모량이 엄청났다.
이렇게 급속도로 신체의 모든 마나 가 사라지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일 이었다.
결국 나는 급하게 대자연의 심장을 발동했다.
두근!
대자연의 심장을 발동하자 방전되 려는 마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엄청난 마나가 몸에서 빠 져나왔다. 말이 안 되는 마나 소모 량이다.
“흐읍!”
나는 이를 악물고 필드 보스를 노 려봤다. 손에 뭉쳐진 특수한 문양의 빛올 녀석을 향해 조준했다.
우우우웅……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필드 보스가 서 있는 바닥에서 10
개의 푸른 빛의 빛줄기가 생겨나더 니 녀석의 몸을 타며 팔과 다리를 묶기 시작한 것이다.
—크어어억?!
필드 보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 란 듯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녀석이 저항할수록 빛의 줄 기는 녀석의 몸을 더욱 강하게 압박 했다.
“......뭐지?”
“저게 무슨 마법이야?”
“보조계 마법 같은데?”
“저런 보조계 마법도 있었나?”
전투를 하던 마법사들은 갑작스러 운 지원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 내 정신을 차린 듯 다시 마법을 구 현했다.
필드 보스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 며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때 였다.
“옷?”
대자연의 심장을 사용했음에도 내 신체의 마력이 바닥나며 룬의 속박 이 풀렸다.
동시에 필드 보스의 몸이 자유롭게 풀리며 앞으로 기울어졌다.
“지금이다! 공격해!”
마법사들은 재빠르게 공격을 다시 시도했다.
하늘 위에 떠오른 수많은 마법이 녀석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동시에 들려오는 거대한 굉음. 그 리고 눈부신 섬광.
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필드 보스 처치’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스킬 사용’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후우.”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신체의 마나가 방전돼버렸다. 속박 의 유지 시간은 고작 3초쯤이었는데
도 마력 소모량이 어마어마했다.
대자연의 심장이 따라가지 못할 정 도의 마나 소모량이라니.
“……그래도 나쁘지 않네.”
룬의 속박.
잡아먹는 마력의 양이 말이 안 되 지만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역시 보조계 마법으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거의 사라져버린 ‘룬 의 일족’의 비전 마법이라 할 만하 다.
일반적인 보조계의 속박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인 성능이었다.
물론 마나의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 에 전투 중에 섞어서 사용한다거나 하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를 3초라도 붙잡을 수만 있 다면 특정 상황에서는 판을 뒤엎을 만큼 위력적일 테니까.
특히 온갖 S등급 마법사가 모이는 선구자의 밤에서는 더더욱.
필드 보스 처치 다음 날.
마법사 커뮤니티에서 작은 소문이 퍼졌다.
투왕 길드의 필드 보스 레이드 도 중 의문의 보조계 마법이 큰 활약을 했다는 것.
괴담처럼 이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마법사의 숲 익명 게시판+
[아니 내 눈으로 봤다고거 키
[그런 마법 없다. 망상 자제해라.]
[얘네는 필드 보스 덩치가 얼마나 큰지 모르네. 그 큰 덩치를 몇 초간
묶는 속박 마법이 어딨어거 거]
[저 B등급 보조계 마법사라 아는데 불가능한 건 아님. 대신 마나 소모 가 어마어마할 뿐이지. 정윤슬 정도 면 충분히 가능함]
|丄그럼 그게 정윤슬이라는 거냐? 거거게
[소수 일족의 비전 마법일 수도]
다양한 의견이 오갔지만 대부분은 쉽게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내 정체를 밝힌다면 사람들의
큰 관심과 함께 포인트를 벌 수 있 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평소와 같은 일상이 지나갔다.
숨은 빌런을 사냥하며 포인트를 벌 고 숭전보 효과로 각종 스텟을 벌어 냈다. 방학 동안 모은 인과율은 0.8 에 달했다.
그리고 다큐가 드디어 완결이 났 다.
원래는 5부작이었지만 좋은 반옹에 힘입어 2화를 추가해 7부작으로 끝 났다.
담당 PD는 2학기가 시작하면 또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했지만 아직 미래의 일이니 확답은 못 하고 생각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선우’의 방송 출연은 당 분간 없을 예정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포인트를 쌓는 것도 좋지만 또 미디어 매체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대중들에게 익 숙해져 관심을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진우’의 이름이 알려지 는 지금 시점에서 ‘김선우’까지 얼 굴을 널리 알리게 된다면 김선우와 김진우의 관계를 의심하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김선우와 김진우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무조건 피해야 했다.
‘김진우’는 어디까지나 원래의 신 분인 ‘김선우’를 숨기고 편하게 활 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분이니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건 김진우 하 나면 족하지.”
포인트를 두 배로 벌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대신 김진우 가 김선우의 몫까지 크게 이름을 알 리면 만사 해결이다.
내게 김진우란 그런 의미였다.
가면 뒤에 숨어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특별 신분.
“그나저나 뭔가 인기가 없단 말이 지.”
지난 몇 주간 김진우로 많은 범죄 를 해결하며 꽤 자주 언론에 노출됐 었다.
이 정도쯤 되면 개인 팬충도 생길 만 한데 대중들의 반응은 그저 ‘호 감 마법사’ 수준에서 그쳤다.
오히려 인기도만 따지면 ‘김선우’ 가 더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포인트를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홈.”
김진우가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는 역시 스타성이 없어서겠지.
남들처럼 개성이 뛰어난 마법을 사 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적 인 면에서 특별한 것도 없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스타성이라……
나는 마법사의 스타성에 대해 곰곰 이 생각했다.
선구자의 밤과 지하 경매 날짜까지 3일이 남은 지금.
나는 한세연과의 만남을 위해 서울 의 한 브랜드 카페로 향했다.
딸랑.
나는 카페의 문을 열고 주변을 둘 러보며 한세연을 찾았다.
멀리 구석 창가에 혼자 앉아있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꽁꽁 싸맨 여 성이 보였다.
그 모습이 괜히 웃겨서 피식 웃음 이 나왔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한세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순간. 한세연 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진우 씨?”
한세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 을 불렀다.
“아니, 머리 색이 왜 그래요?”
“아, 이거요?”
나는 갈색빛이 감도는 웨이브 진 앞머리를 슬쩍 만졌다.
“그냥 개성이 필요한 거 같아서 염
색했어요. 머리 스타일도 좀 바꾸고. 어때요?”
개성도 있지만, 김진우와 김선우를 좀 더 차별화하기 위함도 있었다.
앞으로 김진우로 활동하면서 많은 적이 생기게 될 텐데 아무래도 걱정 이 돼서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 이 머리는 진짜 내 머리가 아니다. 포인트 상점을 이용 한 특수 분장이었다.
“……그런 거에 크게 신경 안 쓰시 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조금 의 외네요.”
한세연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
니 그렇게 말했다.
“저도 기분 내고 싶을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어울려요?”
“흠……
심각한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 라보던 한세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계속 보니까 괜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