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535)

우리는 포탈 게이트를 타고 강원도 의 한 항구에 도착했다.

특별반 훈련의 목적지가 태평양 가 운데에 있는 무인도인 만큼 배를 타 고 이동해야 했다.

물론 육지에 가까운 일반적인 섬이 라면 포탈 게이트를 설치해 쉽게 이 동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특별반 훈련의 배경이 되는 ‘안개의 섬’은 육지와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포탈 게이트가 설치되지 않았다.

“모두 배에 타시면 됩니다.”

우리는 배에 올라탔다.

몇몇 학생은 배를 탄다 하니 신난

표정으로 들 떠 있었다.

마력을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배이 기 때문에 이동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가 거리인 만큼 못해도 1시간은 움직여야겠지.

배는 계속 이동했다.

다들 배 안에서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잠을 자는 등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갑판 위 난간에 기대 바다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시원하네.”

나는 멍하니 푸른 빛의 파도를 보 았다.

이러고 있으니 나증에 있을 시험 중 하나인 해양 몬스터 퇴치 시험이 생각난다.

몬스터는 육지뿐만이 아니라 바다 에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재앙급 해양 몬스터, ‘크라켄’이 있다.

회귀 전, 이서준을 죽음에 몰아넣 은 악룡 크루아스가 이것과 비슷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숨은 위험 요소는 마인, 자운과 같은 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재앙급 몬스터같은 미지의 괴물들 까지 생각하면 과연 내가 앞으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 에휴.”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먼 수평선 을 바라봤다.

저 멀리 섬 하나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회색빛의 안개가 아주 살짝 서려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이 번 특별반의 훈련 장소인 ‘안개의 섬’이었다.

나는 안개의 섬 위의 하늘을 올려 보았다.

하늘 역시 은은한 회색빛이 감돌며 구름이 끼고 있었다.

이건 앞으로 있을 전개의 복선이었다.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만 원작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에게는 이런 작은 요소 하나하나 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때 갑판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느 껴졌다. 작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 군가가 비틀거리며 내 옆 난간에 둥 장해 몸을 기댔다.

“으…… 우욱.”

고개를 숙여 밑으로 쏟아진 갈색빛 의 긴 머리카락.

여성은 몸을 들썩이며 괴로운 숨을 내쉬었다.

“최서윤.”

“서, 선배님. 여기 있으…… 우욱.”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둥을 두들겼다.

“도착했습니다.”

1시간가량의 이동을 마치고 우리는 육지를 밟을 수 있었다.

거대한 해안가.

학생들은 휴양지라도 놀러 온 것처 럼 신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보면 다들 영락없는 10대 학생이다.

“선배님,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 요.”

최서윤이 퀭한 눈으로 내게 다가오 더니 말했다.

아까 배 위에서 등을 두들겨주고 미리 아공간에 챙겨놓은 멀미약을 줬더니 지금은 괜찮아진 모양이다.

“지금은 괜찮냐?”

“네, 선배님 덕에 많이 좋아졌어 요.”

“다행이네.”

“헤헤.”

최서윤이 조용히 웃었다.

“자! 이제 숙소로 이동할 겁니다. 모두 제 뒤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

다.”

박정완을 따라 10분가량을 걷자 3 충짜리 나무 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별장 3 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오랜 시간 사 용되지 않았는지 먼지가 끼어 있었다.

“여기서 하루를 지내라고?”

“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그렇지. 먼지가 저리 끼었 는데.”

“침대는 있으려나.”

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자 박정 완이 말했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 짐을 푸 시면 됩니다. 시간은 약 20분 드리 겠습니다. 이 시간 동안 자유롭게 휴식을 하시다가 이곳으로 다시 집 합하면 됩니다.”

약 20명씩 나눠 3개의 별장에 나 눠 들어갔다. 남자용, 여자용, 하나 는 남녀 혼숙용.

나는 남녀 혼숙용에 들어갔는데 의 견 조율 끝에 2층은 여학생, 3층은 남학생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잠깐 휴식을 갖고 다시 별장 앞에

모였다.

“이제 오늘 훈련의 일정과 어떤 훈 련을 하게 될 것인지 간단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반드시 지 켜야 할 중요 사항에 대해 먼저 말 씀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 사항이라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 돌았다.

“이곳 안개의 섬은 여러분들도 아 시다시피 섬 중앙에 펼쳐진 마력 재 해, ‘악몽의 안개’ 때문에 생겨난 이 름입니다.”

박정완의 말에 학생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다들 소문을 들어 악몽의 안 개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악몽이라는 이름처럼 안개 에 닿는 사람에게 최고로 끔찍한 악 몽을 보게 한다고 하죠.”

그 말에 학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절대로 안개에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나요?”

“넵!”

몇몇 학생의 힘찬 대답에 박정완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일정에 대해 설명

하겠습니다.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지금부터 약 6시까지 체력 훈련 및 마력 적웅 훈련을 진행할 겁니다. 6 시 이후로는 저녁 식사. 그리고 8시 부터 야간 몬스터 사냥 훈련을 시작 합니다.”

이번 안개의 섬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바로 8시에 있을 야 간 몬스터 사냥 훈련이다.

그전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으니 긴 장을 풀고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럼 훈련을 시작합니다!”

“허억! 허억!”

긴장을 풀어도 될 것이라 생각했지 만 2시 훈련은 생각보다 고통으로 다가왔다.

쉴 틈 없이 굴리는 훈련에 다들 기절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실 제로 체력이 부족한 몇몇 학생들은 그대로 기절했다.

“후우.”

그래도 나는 여러 체력 회복 능력 특성으로 무장한 상태였기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예전부터 이런 극한 훈련을 꾸준히 해오며 어느 정도 적응되기도 했고.

박정완은 그런 내가 신기했는지 중 간에 몇 번이고 나를 바라봤다.

물론 나를 향한 신기해하는 시선은 박정완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훈련을 따라오는 몇몇 강화계 마법사들이 나를 질린 눈으로 바라 봤다. 마치 발현계 마법사가 왜 저 런 체력을 갖고 있느냐는 듯한 표정 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6시.

길고 길었던 첫 적웅 훈련이 끝났 다.

하늘은 어느덧 붉게 물들었고 이제 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와! 고기다!”

화르륵. 불이 피어올랐다.

화염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학생들 이 장작을 태웠다.

그 위에 올라온 철판에 박정완이 미리 준비해온 고기가 올라갔다. 훈 련 직후 허기에 찬 상태였기에 고기 향이 평소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선배님! 아까 체력 훈련하는 거 봤습니다! 아무리 뛰어도 안 지치시 던데 비결이 있습니까? 아니면 특별 한 운동 루틴이라도?”

나와 같은 불판에서 식사하게 된 전민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원작에서는 이서준의 열렬한 팬이 었었는데 이서준은 놔두고 왜 나한 테 이러는 건지.

나는 슬쩍 다른 불판 위에서 고기 를 먹는 이서준과 신영준을 보았다. 밥공기에 밥을 산처럼 쌓아놨는데 무슨 푸드 파이터를 보는 것 같다.

“저, 선배님?”

“아, 미안. 뭐 물어봤더라?”

“안 지치는 비결에 대해 여쭸습니

다.”

“그거 별거 없어. 그냥 매일 극한 으로 단련하면 돼.”

늘 그렇듯 대충 지어내서 말했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또 아니기도 했고.

하지만 전민기는 내 말에 ‘그렇군 요……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로 진지해서 독특한 녀석이다.

“너는 안 먹냐?”

내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최서 윤에게 말했다. 최서윤은 나를 보더 니 빙긋 웃었다.

“전 바짝 익혀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러냐.”

“선배님은 안 드세요?”

“이제 먹어야지.”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었다.

일반적인 평범한 고기지만 훈련 직 후라 그런지 그 안에서 터지는 육즙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하게 느껴

졌다.

아, 술 땡기네.

약 1시간의 식사 시간.

그리고 1시간의 추가 휴식 시간이 끝나고 오후 8시의 야간 몬스터 사 냥이 시작되었다.

조는 2인 1조.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는가. 그리고 또 얼마나 강한 몬스터를 사 냥했느냐에 따라 5등까지 특별한 상 품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같은 조인 최 서윤은 의욕이 넘치는 상태다.

벌써 사냥한 몬스터만 6마리.

“저기로 가죠!”

최서윤은 앞장서서 섬 중앙 깊숙이 들어갔다.

몬스터 필드의 특성상 깊은 곳일수 록 더 강한 몬스터를 마주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섬 중앙에 있는 ‘악몽의 안개’를 피해야 하므로 신경 써서 들어가긴 했다.

“아 왜 이리 느려요. 이왕 하는 거 5등 안에 들어야죠.”

“야, 그거 등수 의미 없다.”

“의미가 없기는요. 어떤 상품이 걸 릴 줄 알고요.”

안타깝지만 정말로 이번 훈련에 등 수와 상품은 의미가 없다.

오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며 훈련이 중단될 예정이니까.

그나저나 이번 사건은 이서준과 최 서윤이 한 조가 되어 진행될 에피소 드였는데 내가 개입되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선배님‘?”

그렇게 잡념에 빠져있는데 최서윤 이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그 녀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 왜?"

“아뇨. 갑자기 멍 때리시길래. 무슨 생각 하나 했죠.”

휘이잉.

그 순간, 거센 바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최서윤은 살짝 추위를 느 꼈는지 양팔을 감싸 안았다.

“으, 바람이 이상하게 강해지네요. 밤이라서 그런가.”

나는 한 손을 들어 바람을 느꼈다. 확실히 전보다 바람이 강해지긴 했다.

하늘 위를 올려보니 구름이 아까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이제 슬슬 시작될 모양이다.

툭툭.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의 양이 점차 빠르게 늘어나더니 어느덧 소나기처럼 강한 비가 쏟아 졌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당황스러 워하는 최서윤에게 말했다.

“일단 비부터 피하자.”

“네!”

나는 최서윤을 이끌고 어디론가 쭉 뛰었다.

중간중간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 려 긴장감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 고 계속 뛰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섬 어딘가에 있는 거대한 나무 밑이었다. 아까 지나가면서 봐두었던 장소였다.

휘이이잉!

바람은 점차 강해졌다. 근처의 나 무 하나가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 고 쩌저적 혼들리더니 쓰러졌다.

“……태풍인가?”

최서윤이 혼자 중얼거렸다.

“맞아. 태풍이야.”

“왜 하필 오늘 태풍이……

휘이이잉.

또다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비는 점차 거세지고 숲에 안개가 스멀스 멀 피어올랐다.

섬 중앙에 있는 ‘악몽의 안개’가 태풍에 휩쓸려 넓게 퍼졌다.

“어? 안개가?”

이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최서윤 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악

몽의 안개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다 가오고 있었으니까.

“서, 선배님. 이거 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서윤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외 쳤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안개는 도망쳐서 피할 수 없을 만 큼 빠른 속도로 퍼져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가 악몽의 안개는 우리를 덮칠 것이다.

원작에서도 악몽의 안개가 섬의 80%를 집어삼켰었으니까.

이제 내가 할 일은 그녀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과 빗속에서 나는 최서윤 의 눈을 바라보았다.

“최서윤. 잘 들어.”

자칫 진지해진 부름에 최서윤은 의 문에 찬 얼굴로 나를 올려보았다.

“이제 곧 안개가 우릴 덮칠 거야. 그리고 안개는 너에게 가장 끔찍한 악몽을 보여줄 거야.”

“......네?”

“어떤 악몽이 나오더라도 마음 약 해지지 마. 눈 꼭 감고 마법 한 방

만 제대로 날리면 돼.”

이 악몽의 안개는 ‘자연의 마력 재 해’의 일종이지만 단순한 마력 재해 가 아니었다.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바로 이 안개 자체가 ‘필드 던전’ 의 일부라는 것.

악몽의 안개는 이 섬에 있는 필드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첫 조건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악몽을 겪은 뒤 두 려움에 도망을 쳤겠지만, 원작의 사 건을 본 나는 이 안개의 악몽을 극 복한 뒤 숨겨진 던전에 입장해야 한

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개가 우리를 덮칠 것을 알고 있음에도 피하지 않았다.

바로 악몽의 안개의 필드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서.

최서윤은 내 눈을 응시하다가 강해 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래. 이따가 보자.”

동시에 안개가 우리를 덮쳤다.

시야가 바뀌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악몽의 안개는 사람이 마음속에 품 고 있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눈에 보여준다.

이서준에게는 진천우. 유아라에게 는 자운. 최서윤에게는 최씨가문에 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나타났 었다.

나에게는 어떤 악몽이 나타날까.

괜히 긴장감이 들면서도 정신 마법 의 영향 때문인지 정신이 약간 몽롱 해졌다.

그래도 내가 가진 적응형 특성 중 정신 마법 저항력이 있어 어느 정도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저자가 바로 내가 두려워하는 무언 가겠지.

과연 무엇이 나올까.

그리고 그 무언가를 확인한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전혀 예상 못 한 인물이 서 있었다.

“……이서준?”

“김선우.”

이서준이 나를 불렀다.

얘가 왜 여기에 있지?

...아니다. 이건 진짜 이서준이 아니다. 악몽의 안개가 보여주는 나 의 두려움이다.

하지만 의문이 생겼다.

나는 이서준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아니, 생각해보니 그게 문제가 아 니다.

악몽의 안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서는 자신의 악몽과 싸워서 승리해 야 한다.

그렇다는 건, 나는 이서준의 환영 과 겨뤄야 한다는 이야기다.

“쓰읍.”

이서준의 환영과 싸우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인지…….

물론 눈앞에 이서준은 진짜가 아닌 환영이기에 진짜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스르/릉.

이서준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내 었다.

나 역시 몸을 낮추고 마나를 끌어 모아 집중했다.

정신 마법의 영향으로 평소와 같은 온전한 마법 구체를 구현할 순 없었

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투를 하기 에는 충분하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