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535)

딸랑.

서울 어딘가의 작은 고급 술집.

룸의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안으 로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늘의 약 속 상대를 반겼다.

“한세연 씨.”

“미안해요. 일이 바빠서 조금 늦었 네요.”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한세연은 내 맞은편에 앉더니 이마 에 맺힌 땀을 살짝 닦아 냈다.

“어후. 에어컨이 시원하고 좋네요. 밖은 너무 더워서.”

“10년 만에 최고 폭염이라잖아요.”

“그렇죠. 요즘 마법사들도 덥다고 일 쉬고 그런다면서요.”

“마법사만 쉴까요? 몬스터 필드의 몬스터들도 폭염에 다들 숨어서 안 보인다는데.”

“아, 맞아. 그거 들었어요.”

한세연이 킥킥 웃었다.

그러더니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 다.

“오늘도 뭔가 사건을 해결하셨다면 서요?”

오늘 사건이라고 하면 마인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항상 느끼지만 이 바닥은 소문이 참 빠르다.

“네, 그렇죠. 뭐.”

아무렇지 않은 내 반웅에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너무 무리하 는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나는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한세 연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한세연은 술잔을 내려보다가 품 안 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자, 받으세요.”

황금빛 문양으로 고급스럽게 포장 된 카드 봉투였다.

“부탁하셨던 선구자의 밤 초대장이 에요.”

“아, 감사합니다.”

사교 행사 선구자의 밤.

이번 여름방학에 있을 사건 중 가 장 큰 사건이 터질 장소이다.

이날 한세진이 주축으로 진행하는 선구자의 밤과 하령이 진행하는 지 하 경매가 같은 날 진행하게 된다.

원래는 각자 진행돼야 할 행사지 만, 평소 마인들과 교류하는 한세진 이 하령의 지하 경매에 흥미를 느끼 고 하령과 협업하게 되었다.

물론 지하 경매는 불법 행사인 만 큼 선구자의 밤과 달리 아주 비밀스 럽게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지하 행사는 저랑 동반 입장해야 해 요.”

“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부탁 합니다.”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얼 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무슨 꿍꿍이에요?”

“뭐가요?”

“아니, 그쪽이 뭔가 하려고 하면

사건이 터졌잖아요. 이번에는 또 무 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나 싶어서 요.”

“지하 경매에 경매하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칫

한세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술을 마셨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나는 한세 연을 바라봤다.

“뭐가요?”

“그쪽이 던전 사업 때려치우라고 했잖아요. 그쪽이 아니었으면 아마 얼마 없던 한성가의 제 입지가 더 줄어들었겠죠.”

“ 아.”

나는 그저 툭 던진 말이었지만 한 세연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한세진과 달리 그룹 내 입지가 적 은 그녀에게는 이런 실적 하나하나 가 중요했을 테니까.

“한세진 부회장은 어떻게 됐습니 까?”

“어떻긴요. 아버지한테 된통 혼났

죠. 병 때문에 몸져누우신 분이 어 찌 소리를 그렇게 잘 지르시던지. 참.”

나는 피식 웃었다. 한세연의 아버 지인 한대현 회장.

피도 눈물도 없는 한성가의 수장답 게 아주 차갑고 잔인한 성격을 지닌 자였다.

물론 지금은 병으로 몸져누운 상 태.

그의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 다. 한대현 회장이 죽는 순간 한성 가의 경영 승계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오빠는 지금, 이번 사교 행사인 선구자의 밤에 아주 목숨을 걸고 있어요. 단순한 행사지만 일단 한성가의 이미지가 걸린 일이잖아 요?”

“그렇죠. 높으신 분들도 대거 모일 테니 특히 더 신경 쓰겠죠. 거기다 이번 선구자의 밤은 역대 최고 규모 로 치른다면서요.”

“네. 맞아요. 꼭 성공시키겠다고 아 주 눈에 불을 켜고 있어요. 이것마 저 실패하면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 면서요.”

나는 한세연의 말을 들으며 술을

쭉 들이켰다. 단맛과 쓴맛이 입안에 퍼졌다. 동시에 기분이 좋아졌다. 고 급술이라 확실히 다르네.

“한세연 씨, 다시 한번 축하해요.”

“네?”

한세연이 의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번 선구자의 밤 행사. 아주 난 장판이 될 테니까요.”

“......네?”

김진우와 헤어진 한세연은 집으로 돌아왔다.

터벅터벅. 술기운의 영향인지 몸이 나른했다.

원래는 술을 남 앞에서 그렇게 편 하게 마시는 성격이 아닌데 왠지 모 르게 들떠서 조금 과음해버렸다.

생각해보니 저번 김진우의 집들이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어째 그 남자 앞에서만 못 볼 꼴을 보여주는 것 같다.

“후우우……

한세연은 소파에 앉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검은 화면의 텔레비전을

보다가 김진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번 선구자의 밤 행사. 아주 난 장판이 될 테니까요.

-……네? 난장판이요?

-네, 보통 난장판도 아닌 아주 큰 난장판이요. 한세연 씨에게는 큰 기 회죠. 한세연 씨라면 이 정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 겁니다.

한세연은 생각에 잠겼다.

이 정보를 이용하라니.

김진우가 말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

했다.

아마 한성그룹 중요 인사들 앞에서 선구자의 밤 행사 진행을 반대하라 는 말이겠지.

만약 행사가 그대로 진행되다가 정 말 김진우의 말대로 실패로 끝난다 면 자신의 안목이 재평가될 테니 말 이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한성그룹 내부 의 입지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였다.

늘 그렇둣 김진우의 말을 따르는 것은 큰 리스크가 있을 수도 있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이번에도 김진우의 말을 믿어보기 로.

그리고 김진우의 말이 지금까지 틀 린 적도 없었으니까 믿을 수 있다.

한세연은 스마트 폰을 쥐어 번호를 입력했다.

띠리링.

전화 알람음이 들렸다. 방금의 술 기운은 달아난 지 오래다.

—웬일이냐. 네가 전화를 다 하고.

스피커 너머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세연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요.”

나른한 주말.

방학 동안 열심히 달린 탓인지 체 력이 방전되어 집에서 쉬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도 빠짐없이 해왔던 개 인 훈련도 쉴 생각이다.

이제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 해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 다.

나는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사교 행사, ‘선구자의 밤’ 8월 10 일 개최. 역대 최대 규모로 유명 인 사들 대거 참가 예정]

[자운의 전 리더, 진천우의 물건. 사교 행사 ‘선구자의 밤’에서 특별 전시]

슬슬 사건이 다가오고 있다.

사교 행사 선구자의 밤과 지하 경 매.

이번 여름방학에 일어날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려 자운의 전 리더인 진천우의 물건이 이날 전시되며 수많은 주요 인물들의 관심을 끌게 될 테니 말이 다.

날짜는 다음 주 토요일.

아직 13일의 시간이 남았다.

“그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야겠지.”

그러나 지금 내 능력으로는 앞에 일어날 사건에 조금의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사건 때 아무것도 하 지 않고 구경만 하는 것은 바보 같 은 짓이다.

“능력이 없으면 능력을 만들면 되 겠지.”

나는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평소와 같다면 특성이나 아이템 창 을 확인했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이번에 내가 확인하려는 것은 이른 바 ‘스킬(Skill)’이라는 것이다.

[룬의 속박(S)]

분류 ’ 결계

설명 : 마력을 이용해 상대를 속박 한다.

[지속 효과]

►속박

마력을 소모해 상대를 가둡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3일

가격 : 100,000

룬의 속박.

상대를 가두는 보조계열 마법이다. 보조계열의 결계 마법과 비슷하지만

룬의 속박이 마법이 아닌 ‘스킬’에 분류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마법은 특정 제한이 있는 자만 이 다룰 수 있는 마법이기 때문이 다.

예전 1차 중간시험 때 마인이 사 용했던 ‘마의 대결계’가 이것과 비 슷한 원리였다.

마의 대결계는 마인만이 사용 가능 한 기술이었으니까.

하지만 외부자의 혜택으로 구매한 ‘스킬’은 이 특정 사용 제한을 없애 준다.

만약 내가 마의 대결계라는 스킬을

구매하게 된다면 종족이 마인이 아 니더라도 마의 대결계라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스킬’은 사용자에게 손쉽게 너무 강한 힘을 쥐여줄 수 있기 때 문에 판매 포인트가 무진장 비싸다 거나, 혹은 사용 시 필요 마나가 엄 청나다거나 하는 페널티가 있다.

그래도 룬의 속박은 내 기억에 의 하면 보조계열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속박 마법이었다.

앞에 있을 사건을 생각했을 때, 분 명 이 스킬은 내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홈.”

그러나 문제가 있다.

[16,000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아직 구매할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것.

그래도 사건까지 아직 2주 정도 남았으니 그사이에 포인트를 열심히 벌면 되겠지.

그리고 다행히 이번 주에 포인트를 대량 획득할만한 또 하나의 작은 이 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확인했다.

[방학 특별반 수업 공지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1학기 마지막 특별반 수업인 여름 합숙이 진행됩 니다. 오전 10시까지 마법사관학교 앞 포탈 게이트 앞에 모이시면 됩니다.]

1학기의 마지막 특별반 수업.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합숙 훈련 처럼 보이지만 몇몇 등장인물들을

놀라게 할 깜짝 사건이 터지게 된 다.

물론 이번 에피소드가 원작 스토리 에 큰 비중을 차지하거나 하지는 않 다.

단순히 등장인물 간의 관계 개선과 이서준의 정신적 힐링을 위해 사용 되었던 에피소드니까. 그래도 중간 에 잠깐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니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 다.

“스카!”

“얘들아! 나왔어!”

경기도 어딘가의 자운의 아지트.

거대한 덩치의 사내, 스카가 들어 오자 자운의 일행들이 그를 반겼다.

“이서준은 잘 감시했어?”

베르트가 양치를 하며 물었다.

“내가 감시할 게 뭐 있어. 걔 본가 가 김진철 집인데. 거기다가 걔가 집 밖으로 나와도 가는 곳이 마법사 협회 본부밖에 없고.”

“아, 그러네.”

베르트가 납득했다는 둣 고개를 끄

덕였다.

자운의 천적이 마법사 협회인 만큼 지금 시점에서는 이서준 감시를 조 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됐어. 당분간 이서준 감시하는 것 도 그만두자.”

“어? 그래도 돼?”

베르트의 말에 백은성이 반응했다.

“어차피 김진철 회장 집이랑 마법사 협회만 다니는데 이서준한테 뭔 가 위험한 일이 생기겠어?”

베르트의 말에 자운의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긴 하지. 그리고 괜히 무 리하게 이서준 근처에 있다가 걔들 한테 걸리면 더 골치 아프기도 하 고.”

“맞다. 이서준 이번에 무슨 합숙 훈련한다며?”

“아, 응. 조사해보니까 무슨 섬에서 합숙한다는 거 같던데.”

“그래? 재밌겠네. 나도 다시 학교 다니고 싶당.”

스카가 부러움에 찬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나타샤는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됐고. 슬슬 준비나 하자. 명단 가

져와.”

어느새 양치를 끝낸 베르트가 말했다. 진은 어딘가에서 커다란 종이를 가져오더니 벽에 붙였다.

“이번 선구자의 밤 초대장을 받았 다고 알려진 기업인 목록이야.”

종이에는 수많은 사람의 신상정보 가 적혀있었다.

한 명 한 명이 유명 기업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뭐, 한세진이나 한세연 같은 거물 들은 제외하고 만만한 사람들을 따 로 추려봤어.”

진의 브리핑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

였다. 진은 명단의 몇몇 사람을 손 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번에 우리에게 필요한 초대장은 9개. 그리고 여기부터 여기까지 9명 이 가장 적당한 거 같아. 얘들은 유 명 기업 출신이지만 배경이 별 볼 일 없거든.”

조용히 진의 말을 듣던 나타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 9명을 죽이고 쟤들 신분으로 선구자의 밤에 참가하자는 거지?”

“맞아. 초대장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이상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 말에 나타샤가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

“좋아. 재밌겠네. 그래서 언제부터 움직일 건데?”

방학 3주 차 목요일.

드디어 1학기의 마지막 특별반 수 업 당일이 되었다.

나는 늘 평소와 같이 정확한 시간 에 마법사관학교 앞에 도착했다.

6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대

기하고 있었는데 기대, 귀찮음, 설렘 등둥 제각각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선우!”

그렇게 아는 얼굴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딱 맞춰왔네.”

이서준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 뒤로 다른 멤버들이 있었다.

“늘 그렇지 뭐.”

“방학 동안 뭐 하고 지냈냐?”

이서준이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물 었다. 아마 ‘김진철 회장의 가르침

을 거절하더니 어떤 대단한 일을 했 느냐’라는 의미겠지.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기에 적당히 지어내서 대답했다.

“개인 훈련도 하고 돈도 벌고.”

“돈? 뭐 알바했냐?”

뒤에서 지켜보던 신영준이 끼어들 며 말했다.

“……알바 비슷한 거지. 안전 요원 같은 거.”

마법사 지망생들이 방학 때 가장 많이 하는 알바가 안전 요원이다. 하는 일에 비해 시급이 쌔기도 하 고, 또 학교에서 인명구조를 자세하

게 배우기 때문이다.

너무 정석적인 대답이라 신영준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요원이라. 단기 알바로 나쁘 지 않지. 나도 작년에 수영장 안전 요원했었는데 엄청 편했거든. 흐흐.”

내가 직접 해본 일이 아니라 공감 해줄 수 없어 대답 대신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게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 가 5분쯤 지나자 특별반 담당 교사, 박정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 은 긴장된 얼굴로 박정완을 바라봤 다.

“모두 모이신 것 같군요. 다들 방 학 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중에는 방학 중간에 훈 련을 받아야 해서 불만스러운 학생 도 있겠죠.”

박정완의 말에 몇몇 학생이 찔린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본론으로 넘어가죠. 다들 오늘 특별반 일정에 대해 궁금중이 많을 겁니다. 1박 2일의 특별반 수 업이 어디서 진행될지 전혀 알려주 지 않았으니까요.”

학생들도 그 점이 궁금했는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당연하겠지만 나는 이번 수업이 어 디서 진행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박정완은 주머니에서 홀로그램 마 도구를 꺼내더니 3D 형태의 지도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동그란 섬과 같은 모형이었다.

“이번 특별반 훈련을 진행할 장소 는 바로 이곳입니다. 태평양 가운데 에 있는 거대한 무인도, 안개의 섬.”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