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전민기의 얼굴을 살피니 눈을 반짝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고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선배님과 함께 훈련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전민기는 내게 꾸벅 인사하더니 어 디론가 사라졌다.
시간이 홀러, 나와 이서준은 단둘 이 남았다.
“이제 가냐?”
“어. 가야지. 방학인데 여기 있어서 뭐 해.”
내 말에 이서준이 웃었다.
“그러네. 방학 때 뭐 하고 지내?”
“글쎄. 뭐, 훈련도 하고 미뤘던 일 도 하고 그래야겠지.”
“흐음.”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우.”
“왜?”
“방학 잘 지내라고.”
이서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너도 잘 지내. 그리고 어차 피 2주 뒤에 특별반 모임 있어서 또 볼 텐데 뭐.”
“홈…… 그렇긴 하지.”
“아무튼, 잘 지내라. 어디 무리하다 가 다치지 말고.”
“어어. 너도.”
“그럼 간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 겼다.
그때 다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김선우!”
“또 왜?”
“너 혹시 방학 때 나랑 같이 특훈 할 생각 있냐?”
“특훈?”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세계 마법사 협회 회장님 알지?”
“어, 알지.”
김진철 회장.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방학 동안 그분한테 훈련받을 거 거든. 혹시 함께 받을 생각 있나 해 서. 아마 내가 잘 말씀드리면 너도 배울 수 있을 거야.”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놀랐다.
김진철 회장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니.
세상 그 누구도 받을 수 없는 아 주 특별한 제안이다.
……하지만.
“미안. 안 될 거 같네. 내가 좀 바 빠서.”
방학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가르침을 받는 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날 만큼 재능 이 뛰어나지 않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포 인트를 벌어 특성을 획득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효율적이다.
내 거절에 이서준은 살짝 놀란 표 정을 짓더니 씨익 웃었다.
“그래? 알았어. 그건 좀 아쉽게 됐 네.”
“제안은 고맙다.”
“아니야. 그럼 방학 동안 잘 지내.”
“너도.”
학교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나는 김진우로 분장해 아파트에 도착했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서 기다리 는데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 옆집?”
정윤슬이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괜히 뭔가 불안감이 느껴져 일단 고 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어. 그래.”
정윤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인 사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 게 뭔가 피곤해 보였다.
“흐아아암. 어우 밤새 일 했더니 피곤하네. 그쪽은 오늘 뭐 했어?”
“……일하다가 왔습니다.”
“일? 으음. 그래? 다들 바쁘게 사 는구먼.”
정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와 정윤슬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근데 그쪽은 마법사인데. 하는 일 이 뭐야?”
“……주로 몬스터 필드에서 사냥을 합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놨던 대답을 했다. 정윤슬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 필드라. 특별한 일거리 없 을 때 돈 벌기 딱 좋긴 하지.”
그러면서 힐끔 내 얼굴을 살핀다.
“형씨. 그런데 내가 그쪽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아서 좀 찾아봤 거든?”
“네?”
“어어. 김진우. 그쪽에 대해 찾아보 니까 뭔가 나오긴 하더라고. 최근에 범죄 사건도 여럿 해결하기도 했고.”
무슨 떳떳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내 정보를 개인적으로 조사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4달 전인가 중명의 탑의 숨겨진 층을 공략했던 마법사가 그쪽이었다며?”
증명의 탑의 숨겨진 층?
아…….
그러고 보니 정윤슬은 증명의 탑 27충을 1년 넘게 공략에 시도하다 가 실패하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 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내게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네, 맞습니다.”
“증명의 탑. 거기 난해한 함정이 많아서 보조계 마법사들도 꽤나 애 먹는 곳인데 숨겨진 층은 어떻게 찾 아낸 거야?”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기는. 발현계 마법사라더 니 보조계에도 재능 좀 있나 봐?”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정윤슬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 더니 나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본 다.
“……재밌네. 다음에 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정윤슬은 집 안으 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 았다. 문득 나를 바라보는 정윤슬의 표정이 생각났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 무슨 꿍 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정윤슬은 원작 내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어떤 행동을 벌일지 전혀
예측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움직이고 관심 있는 것에는 또 엄청난 관심을 갖기 도 했다.
아무래도 증명의 탑의 숨겨진 층을 발견한 것 때문에 내게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설마 내 정체를 알아차린 건 아니 겠지?”
만약 정윤슬이 내가 김선우라는 것 을 의심하고 있다면 그게 더 골치 아파지긴 한다.
“……이사 가야 하나.”
에휴.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텔레비전을 켰다.
[속보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거대 한 던전이 생겨났습니다.
전문가들 의 말에 따르면 던전의 크기는 역대 최고 규모로 던전을 완전 공략하는 데에 약 3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 하고 있습니다.]
“오.”
서울의 초거대 던전이 드디어 모습 을 드러냈다.
물론 원작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던전이다. 단지 한성 그룹의 경영 승계 다툼의 수단으로 언급되 는 정도니까.
원작의 한세연은 이 던전의 등장으 로 지방의 던전 사업에 큰 실패를 했었다.
그리고 좁아진 그룹 내의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한세연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때 내게 스마트 폰에서 전화 알 람이 울렸다.
—김진우 씨, 당신 대체 뭐예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한세 연이었다.
“뭐가요?”
—저번에 던전 사업 말린 거요. 서 울에 던전 생겨날 거 미리 알고 말 리신 거 아니에요?
맞긴 하다. 그것 때문에 한성가의 던전 호텔 사업이 크게 망했으니까.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할 순 없으니 대충 돌려 말해야겠지.
“그건 아닌데, 잘됐네요. 덕분에 한 세진 부회장의 던전 호텔 사업이 망할 테니까요.”
—안 그래도 지금 난리에요. 오빠 가 지방 던전 쪽에 투자를 엄청나게 했거든요. 내일모레가 오픈이었는데.
“덕분에 한세진 부회장의 입지가 조금을 줄어들겠네요.”
—네, 결과적으로 저에게 좋은 상황이 되긴 했죠. 아무튼, 그쪽 말은 항상 틀린 게 없네요. 정말 뭐 하는 사람인지 참.
나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부탁할 게 있습니다. 4 주 뒤 8월 10일에 사교 행사와 지 하 경매가 하나 열립니다.
제가 그 곳에 참가할 생각인데 입장권을 구 해줬으면 합니다.”
-아, 예전에 말씀하신 거요? 알았 어요. 사교 행사는 선구자의 밤을 말씀하시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알았어요. 오빠가 진행하는 행사 니 금방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네네. 그럼 바쁘니 이만 끊을게 요.
뚝.
“……이걸로 됐겠지.”
나는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때 였다.
[등장인물 ‘최서윤’이 당신에게 섭 섭함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여.”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눈을 찌푸렸다.
이건 뭐지?
그때 스마트 학생 수첩이 알람을 울렸다.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이전 메시지 가 꽤 쌓여 있었다. 부재중 전화도 있고.
[선배님 어디세요?]
[혹시 인사도 안 하고 가신건 아니 죠?커 거거]
[전화도 안 받으시네.]
[서준 선배님한테 들었어요. 인사 도 안 하고 혼자 가셨네. 대박이다.]
[진짜 섭섭하다.]
어두운 달밤.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강한 마력의 파동이 주변을 울리고 괴로 운 비명이 내 귀를 찔렀다.
“끄아아악!”
내 앞에 한 남성이 몸을 꿈틀이며 괴로워했다. 남자의 어깨에 피가 흘 렀다. 인간의 붉은 피가 아니었다. 검은색 피.
눈앞의 사내는 마인이었다.
“너 뭐야아악!”
남자는 내게 소리쳤지만 나는 대답 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마법을 새 로 구현해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크으윽! 너 뭐야? 내가 마인인 걸 어떻게 알고!”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그러나 대답해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대로 마법을 방출했다.
콰아아앙!
[B급 빌런, ‘천석’을 쓰러트렸습니다.]
[인과율이 0.1 상승합니다.]
[표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승전보의 효과로 근력이 0.4, 마력이 0.4, 마력 제어 능력의 숙련도 가 3%, 빛 속성 숙련도가 8% 상승 합니다.]
“휴우.”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이것 으로 빌런을 하나 더 처치했다.
표적과의 승리로 여러 스텟을 얻은 것은 덤.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을 한 것인 지 마력의 부족함도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대자연의 심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마나 엘릭서 하나로 B급 빌런은 충 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몇 달 사이 나도 꽤 성장한 거겠 지.
[‘현상금 사냥꾼’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정의의 집행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쏠쏠하네.”
눈앞에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 창을 치우곤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켰 다.
뉴스란에 들어가자 각종 범죄자와 마인을 잡아낸 ‘김진우’에 대한 뉴 스가 나오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2주.
나는 여름방학 대부분을 빌런 사냥 으로 시간을 보냈다.
포인트와 명성. 그리고 인과율을 위해 범죄자들을 잡아냈고, 그 결과 는 곧 나의 성장이 되었다.
물론 스토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한 빌런들은 아직 내 실력으로 처 치할 수 없기에 이런 자잘한 잡빌런 위주로 사냥했다.
빌런 사냥이 계속되면서 ‘김진우’ 의 명성은 계속 상승했다.
이제는 가끔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 말을 거는 수준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진 우’가 자주 뉴스에 노출되다 보니 전만큼 많은 포인트가 벌리진 않는 다는 것이다.
조금 아쉽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해 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여기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 급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더 니 내게 크게 소리쳤다.
“꼼짝 마!”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서 강한 마력 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마법을 구현해 나를 조준하고 있는 모양이 다.
나는 양손을 들어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어필했다.
“방금 마력의 기운, 그쪽인가?”
다시 한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 뒤의 인물들은 아마 특무 요원 들일 것이다.
나와 마인의 전투 중에 일어난 강 한 마력을 감지하고 출동한 거겠지.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네, 맞습니다. 별다른 범죄 행위를 저지른 건 아닙니다. 눈앞에 쓰러진 마인과 전투가 있었습니다.”
“……마인이라고?”
내 말에 누군가가 의문의 목소리를 내었다.
“확인해봐.”
“네!”
두 사람이 내 앞에 쓰러진 마인에 게 달려갔다.
나는 양손을 든 채 가만히 기다렸다.
“팀장님! 마인이 맞습니다!”
“.....이런.”
내 뒤에서 당황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 손 내려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나는 손을 내렸다. 뒤를 돌아보자 한 남성이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며칠 사이에 꽤 익숙해진 얼굴 이다.
30대 중반의 마른 남성.
남성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뒷모습이 뭔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김진우 마법사님이셨군요.”
“신 팀장님.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나저나 또 마인 사건을…… 2주 동안에만 5번인가 요?”
“뭐, 그렇죠.”
정확히는 마인 2번에 수배자 3번 이지만.
덕분에 꽤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특무팀이 아닌 개인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범죄 사건을 해결한 사 례는 드무니까.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나저나 마인은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내시는
지. 누가 보면 마인 구분이 되는 줄 알 것 같습니다.”
순간 살짝 찔렸다.
그의 말대로 나에게 마인을 구분할 수단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 러나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 로 대답했다.
“하도 마인 사건에 휘말리다 보니 이제는 원한을 가진 마인들이 작정 하고 저를 노리는 거 같더군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항상 조 심하셔야겠네요.”
“네. 그래야죠. 갑작스러운 기습에 죽으면 저만 손해니까요.”
나는 빙긋 웃었다.
그러다가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다 가 말했다.
“음. 이만 가봐도 될까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