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어디 가시나? 버튼 대신 눌 러주게.”
“……2층입니다.”
“2충? 나도 2충 가는데. 아 그쪽도 마법사야‘?”
“네, 그렇습니다.”
여성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반갑네〜 나도 마법사인데. 그쪽은 주특기가 뭐야?”
“……발현계입니다.”
“흐음. 발현계라. 주 속성이랑 형태 는 뭐 쓰는데? 아, 호구조사 하는 건 아니고. 마법사들끼리는 원래 이 런 거 가끔 물어보잖아.”
“그건…… 비밀입니다.”
“비밀이라. 뭐, 이해는 하지.”
띵!
문이 열렸다.
나와 여성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2층에 도착하자 거대한 마법 훈련 장이 보였다.
근력 훈련장부터 시작해서 마력 훈 련장까지 다양한 고급 시설이 갖춰 져 있었다.
이 정도면 마법사관학교의 시설에 도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내가 잠시 감탄하자 여성이 나를 바라봤다.
“형씨. 입주 첫날이라 감동했나 보
네. 나도 이곳 처음 입주할 때 그래 서 그 기분 알지 하하!”
여성이 크게 웃더니 내 앞으로 다 가섰다.
“아 근데 옆집 주민인데 얼굴 좀 보자. 왜 자꾸 숨기는 거야?"
“……제가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개소리 말고 이웃끼리 통성명이나 나누자고. 같은 업종 사람이기도 하 고. 이름 뭐야?”
여성이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김진우입니다.”
“김진우? 처음 들어보는데. 등급 은‘?”
“B 급입니다.”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얼굴 을 빤히 바라봤다.
“……그 얼굴 뭔가 낯이 익은데.”
“제가 혼하게 생겨서 그렇습니다.”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여성은 한참 내 얼굴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아, 내 소개를 안 했네. 난 정윤 슬이야. 혹시 알려나?”
“와씨.”
정윤슬과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소파에 앉았다.
“옆집에 산다는 게 정윤슬이었어?”
정윤슬.
보조계 마법사 길드, ‘깨달음의 룬’ 길드 마스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조계 마법사.
그런 거물이 내 옆집에 살다니.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단순히 유명인이 옆집에 사는 거면 사실 이렇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정윤슬이 과거 나, 김선우 에게 관심을 갖던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1차 중간시험 테러 사건 당시, 마인이 펼쳐낸 대결계를 내가 해제했 을 거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안 걸리게 조심해야겠네.”
정윤슬은 은근 눈치가 빠른 사람으 로 유명하니까.
어쩌면 지금쯤 벌써 의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내가 김선우라는 걸 정윤슬이 알게 된다면.
어떤 귀찮은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정윤슬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엄 청난 괴짜로 통하니까.
“ 에휴.”
입주 첫날부터 이렇게 꼬이다니.
괜히 기분 좋다 말았네.
이래서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거
구나.
시간이 흘러 다시 월요일이 되었다.
방학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
학교 분위기는 지난주보다 더 어수 선해졌다.
방학을 즐길 생각에 다들 하나같이 들뜬 분위기다.
“선우야! 넌 방학 때 뭐할지 일정
정했어?”
윤하영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글쎄. 훈련이나 알바 같은 걸 하 지 않을까.”
방학 중에도 마법 훈련은 꾸준히 할 것이기에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우리 비밀 특훈은 방 학 동안 쉬는 건가?”
윤하영이 말하는 비밀 특훈은 던전 에서 진행하는 멸마의 힘 훈련을 말 하는 것이다.
“잠깐 쉬어야지.”
“음. 뭔가 아쉽네.”
윤하영이 아쉬움에 찬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한 학생이 소리쳤다.
“이번 기말시험 결과 나왔대!”
“어 정말?”
“야! 바로 확인해보자!”
시험 결과가 나왔다는 말에 학생들 은 서둘러 스마트 학생 수첩을 확인 하기 시작했다.
윤하영은 그 말을 듣더니 스마트 학생 수첩을 꺼내 바로 성적을 확인 했다.
“대박. 선우야! 나 이번 실기 11위 까지 올랐어!”
윤하영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 게 외쳤다.
“정말? 축하해. 지금까지 노력한 보람이 있네.”
“웅. 나 이번에 최종 26위로 마감 됐어. 전부 네 덕이야.”
기뻐하는 윤하영의 모습을 보자 나 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저번에 밥 사준다더니. 언제 사줄 거야?”
내가 장난식으로 말하자 윤하영이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그럼 오늘 사줄까?”
“아냐. 됐어. 그냥 해본 말이야.”
“아니야. 진짜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음, 그럼 오늘 사주던가.”
“헤헤. 그럼 오늘 사줄게!”
그렇게 말하던 윤하영이 생각났다 는 둣 내게 말했다.
“맞다. 선우야. 너도 성적 확인해봐 야지.”
“어, 그래야지.”
나도 주머니에서 스마트 학생 수첩 을 꺼내 종합 정보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러자 윤하영이 내 옆에 딱 달 라붙었다.
[2-기말 평가 성적]
[김선우][2-A]
[실기 - 3위]
[이론 - 1위]
[최종 합산 - 28위]
“와 대박! 선우야!”
내 성적표를 확인한 윤하영이 놀란 둣 외쳤다.
“실기 3위? 축하해!”
[‘최종 성적 탑 30’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실기 3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나는 멍하니 내 성적표를 확인했다.
실기 3위에 이론 1위.
그리고 최종 합산 28위.
드디어 상위권이라 불릴만한 성적 을 달성했다.
수요일.
길었던 1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 이 찾아왔다.
지금 대강당에는 15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딘가 설레고 신난 표정이다.
이렇게 있으니 입학식 날이 떠오른 다. 그날도 이렇게 전교생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홈. 어디 앉지……
“선우야!”
빈자리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 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앞자리에 앉은 윤 하영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유아라가 앉아 있고.
“여기 자리 맡아놨어.”
윤하영의 부름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걸어갔다.
입학식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달라 진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거겠 지.
그때는 지금처럼 나에게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선우야 여기 앉으면 돼.”
윤하영이 자신의 옆 빈자리를 툭툭 쳤다.
내가 자리에 앉자 윤하영의 반대 옆자리에 앉은 유아라가 내게 인사 를 걸었다.
“안녕.”
“어, 안녕.”
인사를 마치자 윤하영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게 말했다.
“아~ 드디어 방학이다. 뭔가 실감이 안 돼.”
“그러게. 입학식이 엊그제 같은데.”
“그래? 난 시간 가는 게 되게 느 리게 느껴졌는데.”
윤하영이 웃으며 답했다. 나는 피 식 웃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넌 방학 때 뭐 할 예정이야?”
“집에서 가족이랑 지내려고. 심심 하면 놀러 와. 강원도라 좀 멀긴 하 겠지만.”
윤하영은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여러 복잡한 가정사가 있지만, 윤하영이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 유 중 하나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 와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녀가 되고 싶어서였다.
“바빠서 될지 모르겠네.”
“방학 때 뭐 하는데 바빠?”
“훈련도 해야 하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그래?”
내 대답에 윤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 놀러 오면 진짜 맛있는 거 해줄 수 있는데. 이틀 전에 사준 밥보다 훨씬 맛있는 거로.”
윤하영이 말하는 맛있는 거는 아마 할머니의 요리를 말하는 걸 거다.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윤하영 의 할머니가 요리 솜씨가 좋다는 설 정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윤하영은 그렇게 말하다가 유아라 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라는 놀러 오기로 했는데.”
유아라가?
나는 힐끔 유아라를 바라봤다. 유 아라가 윤하영의 집에 놀러 간다니.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다. 아무래도 둘 사이가 내 생각보다 더 가까워진 모양이다.
내가 미묘한 시선으로 유아라를 바 라보자 유아라가 불편한 기색을 내 비쳤다.
“……표정이 왜 그래?”
“아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방학식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다.
멀리 단상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서준과 최서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호리호리한 남성, 3학년 1위. 김창현이 조용히 혼자 서 있었다.
입학식 때와 같이 학년 대표 인사 진행을 위해 대기하는 모습이었다.
“흐음.”
그나저나 오늘따라 최서윤의 얼굴 에 빛이 난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 앞에서야 하 는 만큼 평소보다 외적인 모습에 힘 을 준 모양이다.
아까부터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밝은 이미지를 심 어주기 위해서인 것 같고.
……쟤도 참 피곤하게 사네.
슬쩍 시선을 돌려 유아라를 바라봤 다.
너무 내 예상대로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아라는 특유의 불편한 ‘그 표정’ 을 지으며 이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짧았던 방학식이 끝났다.
장안철이 A반 학생들을 모아 잠깐 의 공지와 인사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장안철의 ‘방학 동안 잘 지내라’라는 말과 함께 방학식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얘들아 잘 지내.”
“그래. 연락해!”
“잘 있어!”
학생들은 각자 인사를 나누더니 하 나둘씩 어디론가 사라졌다.
“드디어 끝났네.”
“그러게. 빨리 집 가서 쉬고 싶다.”
“너네 밥 안 먹냐?”
“먹어야지. 같이 먹자고?”
몇몇 학생들은 기념 파티를 한다며 단체로 어디론가 나가기도 했다.
“선우야! 그럼 잘 지내! 연락하고!”
“응. 너도 잘 지내.”
“잘 지내.”
“그래.”
“김선우! 2주 뒤에 보자!”
윤하영, 유아라, 신영준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이서준은 어디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학년 대표 일정 때문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 다.
“흠.”
어차피 조만간 볼 텐데 굳이 인사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가볼까.’
나는 천천히 대강당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몇몇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이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 갔나 했더니 학생들에게 잡혀 인사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쟤도 참 바쁘네.’
나라면 엄청 귀찮았올 거 같은데.
그렇게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고 교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이었다.
“김선우!”
나를 부르는 이서준의 목소리가 들 렸다.
“섭섭하게 인사도 안 하고 가냐?”
이서준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이서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 했다.
“바빠 보이길래.”
내 대답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그때 이서준의 뒤에 있던 4, 50대 로 보이는 노안의 남학생이 초롱초 롱한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1학년 2위 전민기.
최서윤의 라이벌이자 이서준의 열 렬한 추종자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1학년 전민기 라고 합니다! 김선우 선배님 맞으시 죠?”
“……어, 맞는데.”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김선우 선 배님의 팬입니다. 다큐도 전부 챙겨 봤습니다!”
전민기가 힘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살짝 놀랐다.
얘가 내 팬이라고?
내가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자 이서준이 킥킥 웃었다.
“김선우 팬도 생겼네?”
“시끄러.”
“선배님! 다큐에서 선배님이 하신 말씀 하나하나가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자신과의 싸움. 과정의 외로 움. 전부 공감합니다! 프로 마법사 의 길을 걷는 우리는 언제나 늘 고 독하죠!”
다큐를 보던 시청자들이 나를 저런 시선으로 본 걸까.
괜히 거부감이 들어 속이 안 좋아 졌다.
그러고 보니 전민기에게 저런 오글 거리는 말을 좋아한다는 설정이 있 었는데.
[‘팬미팅’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야 이건?
진짜 별 이상한 업적이 다 있네.
갑작스러운 업적달성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