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답에 닉은 눈을 찌푸렸다. 그 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습니다. 이 골동품들에 홍미가 있습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돈이 아니라 물물거래를 원합니다.”
“물물거래라. 어떤 물건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그쪽이 판매하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물건이 있는 거 로 압니다.”
내 말에 닉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어떻게……
“그 물건들을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내 말에 닉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 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따라오시죠.”
닉은 그렇게 나를 작은 뒷공간으로 안내했다.
그 공간에는 특이한 골동품과 마도 구들이 가득했다.
“오……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해 주변 을 둘러보았다.
아이템들의 효과가 눈앞에 떠오르 며 어떤 숨겨진 능력이 있는지 전부 보였다.
골동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B급 과 A급 사이의 아이템들이었다.
그렇게 둘러보는데 한 아이템이 내 시선을 끌었다.
[망가진 국자(유물)]
설명 : 망가진 국자. 고치면 신비
의 힘이 다시 깃든다.
……유물?
유물이 왜 여기에 있지?
나는 국자를 쥐었다.
보아하니 유물이지만 망가져서 유 물의 힘을 잃은 아이템인 것 같았 다.
‘망가진 유물이라……
망가진 유물을 고치는 방법에 대해 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방법이 조금 귀찮긴 하지만 그렇다 고 막 어렵거나 한 건 또 아니었다.
애초에 몇 주 뒤에 있을 ‘한 사건’ 에서 망가진 아이템을 고치는 힘을 가진 한 유물이 등장할 예정이기도 하다.
“흐음.”
이거로 할까.
어떤 효과를 가진 유물인지는 정확 히 알 수 없지만 고칠 수만 있다면 되팔아도 이득이니까.
“이거로 하나 하겠습니다. 그렇게 가치가 높은 아이템은 아닌 거 같은 데 몇 개 더 골라도 되겠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툭 말을 던져 봤다.
닉은 의아한 시선을 보내다가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으아〜”
4박 5일의 수학여행을 끝내고 드 디어 기숙사로 돌아왔다.
최고급 호텔 이런 거 다 필요 없 고 역시 내 집이 가장 편하다.
물론 이 기숙사가 내 진짜 집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어우 좋다.”
기말시험도 이제 끝났으니 방학만 남은 건가.
방학은 2주 뒤 수요일…….
방학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를 떠나 본가로 돌아가게 된 다. 하지만 나는 본가가 없다.
이 세계의 ‘김선우’라는 인물의 설 정이 그렇다.
이 세상에 없던 ‘김선우’라는 인물 만 달랑 추가되었기에 이름, 나이.
이런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그 어 떠한 설정도 없었다.
“집을 구해야겠네.”
이전 삶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숙 사 생활을 하긴 했지만, 이번 삶에 선 다르다.
돈이 넘치고 나름 거물급 인맥도 있다.
특수한 마도구나 아이템 같은 게 아니라면 내가 원해서 얻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한세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주 내로 서울에 거주할 집을 구 해주실 수 있습니까?]
메시지를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못할 건 없죠. 그런데 왜요?]
[서울에 거주할 공간이 필요해서 요. 돈은 바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한세연답지 않게 메시지가 끊 겼다. 한 2분쯤 지나자 다시 메시지 가 왔다.
[네네, 알았어요.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이랑 동거하는 건가요?]
“……동거?”
[아뇨. 혼자 삽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어요. 혹시 다른 사람이랑 동거해야 해서 집을 구하 는 거면 좀 넓은 거로 구해야 하잖 아요?]
“음. 그렇긴 하네.”
합리적인 질문이다.
[혼자 사니까 그렇게 큰 집은 필요 없습니다.]
[음, 알겠어요. 근데 진우 씨, 지금 은 어디 살아요?]
예상못한 질문이 들어왔다.
[서울이요.]
[서울이요? 그런데 집이 왜 필요해
요?]
[제가 고시원에 살거든요.]
기숙사나 고시원이나 크게 다르진 않으니까 이 정도면 훌륭한 대답이 겠지.
답장을 보내자 예상대로 한세연의 놀란 반응이 날아왔다.
[고시원에 산다고요? 정말요?]
[네. 그래서 집을 구하려는 겁니다.]
[와. 전혀 생각 못 했어요. 돈도 꽤 모으신 거로 아는데 생각보다 검소
하시네요.]
상상은 자유니까. 그렇다고 흐}자.
[네, 근데 고시원 생활도 불편해서 이사하려고요.]
[알았어요. 구하면 바로 연락 드릴 게요.]
“……집은 해결한 것 같고.”
나는 스마트 폰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공간에서 중간 크기의 화분 하나를 꺼냈다.
화분 위에는 단단한 나무 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조금 투박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화분의 외형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투박함 마저 뭔가 고급스러운 미술 품처럼 보였다.
“이걸 어디에 둬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적당히 보이는 창가 옆에 놔두었다.
살짝 떨어져서 풍경 전체를 보니 나름 느낌이 괜찮다.
“좋네.”
이 화분은 ‘신비의 잡화점’에서 골
동품과 교환해 얻은 특수한 화분이 었다.
정순한 마나를 뿜어내는 효과가 있 어 방 안의 마나 농도를 높여주고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효과에는 24시간에 0.005의 마력 을 상승시켜준다고 하는데 옆에 오 래 두면 언젠간 체감이 되지 않을 까.
“서울에 집 새로 구하면 가져가야 겠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다 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수첩을 하나 꺼냈다.
그럼 방학 계획을 짜볼까.
월요일이 되었다.
모든 시험도 끝났겠다 학교 분위기 는 조금 퍼질러져 있었다.
교사들도 이런 분위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수업시간에도 자유시간 을 주며 알아서 잘 놀게 놔두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학교의 분위기에 뭔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런 변화는 내게 생긴 다른 변화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크게 변한 부분 이 있다면, 바로 나를 향한 학생들 의 시선이었다.
“선우야! 시험 3위 축하해!”
“이야. 너 진짜 어떻게 그렇게 빠 르게 성장할 수 있는 거야? 비결 좀 알려줘!”
복도에서 마주치는 학생마다 괜히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이서준의 탑 정상 등반의 관심이 슬슬 끝나가자, 그 관심이 나를 향 한 것이었다.
“와〜 선우야! 축하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다큐 잘 보 고 있어요! 오늘도 꼭 본방사수 할 게요!”
지금 나는 이서준의 삶을 간접 체 험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관심이 하도 심해지니 이 제는 귀찮음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인기인의 삶……?
“……홈. 인기인도 귀찮구만.”
2학기에도 이런 상위권 성적을 받 게 된다면 이런 주변의 관심은 더 강해지겠지.
어우. 벌써부터 피곤하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는데 누군가 와 마주쳤다.
최서윤이었다. 최서윤은 약 3초간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웃으며 고개 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인기인 선배님!”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나 보다.
민망함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월요일 늦은 밤.
야근을 마친 한세연은 집으로 돌아 왔다.
옷을 대충 집어 던지고 소파에 몸 을 던졌다. 쉬지 않고 주말까지 쭉 일했더니 피로가 쌓여 피곤했다.
고요한 분위기.
갑작스럽게 외로움을 느낀 한세연 은 고요함을 깨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삐빅.
-과제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죠. 저는 늘 포기하지 않아요.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대본이라도 읽는 듯한 어 색한 말투다.
하지만 한세연은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비결이 있을까요?
—비결이요? 비결이라…… 별거 없 어요. 항상 탐구하는 거죠. 그 과정 이 가끔 외롭긴 하지만…….
……과정의 외로움이라. 뭔가 공감 이 되는 말이다.
한성가를 차지하기 위한 외로움 싸 움.
나는 언제까지 이 외로움 싸움을 해야 하는 걸까.
—이겨내야죠. 세상은 녹록지 않으 니까요.
“……말투가 왜 저래.”
한세연은 누가 저런 말을 하는 걸 까 궁금해져 눈을 뜨고 고개만 돌려 텔레비전을 확인했다.
화면 안에서 교복을 입은 한 남학 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학생이네.”
학교를 보아하니 한국 마법사관학 교.
1년에 약 150명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엘리트 학교였다.
“말투만 보면 무슨 인생 다 산 것
같네.”
저 아이도 저 아이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겠지.
그렇게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데 남학생의 얼굴이 묘하게 낯익었다.
눈…… 코…… 입…… 체형…….
누구였더라? 그렇게 혼자 생각하던 사이 프로그램이 끝났다.
—4화에서 계속.
이어지는 예고편.
아쉽게도 남학생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음 착각이겠지?”
한세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텔레비 전을 껐다.
방 안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멍하니 누워있다가 씻기 위해 소파 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녀의 스마트폰에 전화 알람 이 울렸다.
발신인은 서울에 집 좀 알아봐 달 라고 부탁했던 수행비서였다.
—4화에서 계속.
다큐 3화가 끝이 났다.
최근 기말시험에 종합 3위에 오른 영향인지 이론보다는 실기 방향으로 급하게 편집된 것이 보였다.
예고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 도 최근 내게 생긴 주목도를 이용해 시청률을 더 끌어올리려는 속셈이 눈에 보여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42,560명의 사람이 당신에게 흥미 를 갖습니다.]
[보상으로 2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4만 명? 전보다 반응이 훨씬 뜨거 워졌다.
2화에서는 1만 명 정도로 기억하 는데 거의 4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번 기말시험 3위의 여파가 이렇 게나 강할 줄이야.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슬쩍 확인했다.
[야 김선우. 다 좋은데 말투 진짜 너무 역겹다. 이거 언제까지 이러 냐? 에반데.]
[컨셉 진심 이건 좀 아닌듯요..]
나를 잘 알고 있는 주변인들의 반 응은 저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왜 이리 오바들인지. 정작 시청자 게시판에선 내 말투와 관련된 얘기 는 하나도 없던데.
“쯧.”
그때 였다.
[등장인물 ‘릴리 로즈’가 당신의 방 송 컨셉에 황당함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웅?”
예상 못 한 메시지에 살짝 놀랐다.
릴리 로즈?
얘도 다큐를 챙겨봤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저번에도 나를 만나려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기까지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멀리 한국의 다큐까 지 직접 챙겨보다니.
정성이 대단하네.
릴리 로즈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원작이나 회귀 전에도 이서준 에게 패배하고 난 뒤, 몇 번 한국에 찾아오기도 했었으니까.
“흐으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도 근질근질한데 가볍게 운동이
나 다녀올까.
그때 스마트 학생 수첩에 전화가 왔다.
한세 연이었다.
“네, 여보세요?”
—아,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서 죄 송해요. 통화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다름 아니라, 부탁하셨던 집 구 했거든요.
오. 벌써 구했다고?
집 위치라던가 마법 훈련 시설 등 여러 조건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을 텐데 역시 빠른 일 처리다.
한세연에게 부탁하기를 잘했네.
—이번 주 금요일에 입주하실 수 있을 거예요. 주소는 제가 찍어드릴 게요.
“수고하셨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하셨네요.”
-아뇨. 그런데 한 가지 더 말씀드 려야 할 게 있어요.
평소의 한세연답지 않게 말투가 조 심스럽다.
대체 뭘까.
“ 뭔데요?”
-옆집 사람이 조금 문제가 있어 요.
“옆집이요?”
—네, 성격이 예민해서 시끄럽게 구는 걸 엄청 싫어한다고 하더라고 요.
..옆집 사람이라.
전혀 생각 못 한 말이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집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애초에 집에서 시끄럽게 구는 성격 도 아니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집에서는 워낙 조용히 지내서 요.”
—그럼 다행이네요. 사실 다른 집 을 구해보려 했는데 진우 씨가 말한 조건 중에 2주 내로 입주할 수 있 는 집이 없더라고요.
충분히 만족한다. 나 대신 귀찮은 일을 처리해줘서 시간도 벌기도 했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무래도 옆집 사 람에게 뭔가 문제가 많아서 그 집 입주자들이 나가는 것 같거든요.
얼마나 문제가 많길래?
의아함이 들었지만 나는 집에서 정 말 조용히 지내는 편이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옆집과의 문제면 정말 신경 안 쓰 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유 없이 먼 저 시비를 거는 것만 아니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