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천우와 비슷한 기운과 마력을 풍기는 건, 아마 네 몸에 그자
의 피가 흘러서겠지.]
탑의 말에 이서준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시간이 홀러. 3일간의 기말시험이 모두 끝났다.
지금 시각은 금요일 오후 3시.
탑의 마력이 모든 학생을 감싸 안 으며 탑 어딘가에 있는 한 공간에 모았다.
“진짜 힘들었다.”
“그러게. 엄청 고생했네.”
“난 이번 시험 망했어. 막판에 약 탈당해서.”
학생들은 각자 시험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등은 누가 되려나?”
“일단 릴리 로즈는 아니야. 걔는 막판에 누군가한테 약탈당했잖아.”
“그거 보고 좀 꼬시더라. 그럼 1위 는 유아라인가?”
“유아라 맞는 거 같은데? 이서준 걔는 이번 시험 내내 순위표에 보이
지도 않았고.”
“와. 그럼 유아라 첫 1등 아니야?
걔 항상 2등이었잖아.”
그렇게 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커 져들 때쯤.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렸다.
[학생 여러분, 3일간 수고하셨습니
다.]
[그럼 기말시험 최종 순위표를 공
개합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 있던 거대한 전
광판에 불이 켜졌다.
[최종 순위]
[1 위. 이서준 - 30충 정복]
[2위. 유아라 - 10,115포인트]
[3위. 김선우 - 8,225포인트]
[4위. 루이스 브라운 - 7,995포인 트]
“♦.....뭐야?”
“와 대박! 이서준 뭐야?!”
“30충까지 오른 거야? 진짜 미쳤 네.”
“야! 3위에 김선우는 뭐냐?”
순위표가 공개되자 다시 한번 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50년간 단 한 명만이 올랐던 탑의 정상에 새로운 인물이 오르자 모두 가 흥분하며 놀라워했다.
유아라는 그들 사이에서 착잡한 심 정으로 순위표를 올려보고 있었다.
정말로 탑 정상을 등반해 버리다 니. 황당함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이서준을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서준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이 탑의 정상 등반은 역사상 단 한 명 밖에 이루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서준은 보기 좋게 탑 정 상에 등반했고 결국 1위에 오르게 되었다.
2위라는 높은 순위를 달성했음에도 강한 무력감이 그녀의 안을 가득 채
웠다.
그리고 멀리 구석에서 있던 릴리 로즈 역시 유아라와 비슷한 심정이 었다.
“……진짜로 30층에 올랐다고?”
만약 김선우에게 포인트를 약탈당 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패배한 싸움 이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자 고민하다가 3위에 적힌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김선우……
저 녀석 때문에 이번 최종 순위는 34위라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최악의 순위에서 마감됐 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은 아마 평 생 어디 가서도 말 못 할 것 같았 다.
김선우.
한국 마법사관학교 종합 60위.
그런 애한테 패배했다는 사실이 알 려지면 이것만 한 국가 망신이 없었 으니까.
“하……
릴리는 괜히 악감정이 담긴 시선으 로 멀리 순위표를 올려다보고 있는 김선우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순위표를 올려다 보는 모습이 크게 기뻐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저게 어떻게 종합 60위인 것인 지……
“……쟤는 대체 뭐야.”
한국, 영국 마법사관학교의 합동 시험 결과는 세상에 빠르게 퍼져나 갔다.
이서준이 탑 정상에 올랐다는 소식
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이서준의 천 재성에 대해 극찬하기도 했다. 반대 로 그런 이서준을 저격했다가 34위 라는 순위로 마감한 릴리 로즈에게 는 비판과 조롱을 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괜히 자긍심에 차올라 이서준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국가 전에 승리한 국민 영 웅이 되어버린 셈이다.
물론 이번에 새롭게 3위로 마감한 ‘김선우’라는 인물에 관한 기사도 아주 약간이지만 있었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이론 1위, ‘김
선우’. 기말시험 종합 3위. 새로운 유망주의 등장?]
나에게 기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무래도 다큐 촬영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소소하게 포인트를 벌어냈 다.
[‘기말시험 3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등장인물 ‘릴리 로즈’가 당신에게 무력감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8,200명의 사람이 당신의 성적상 승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8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당신을 예 의주시합니다.]
[보상으로 4,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나는 탑 안에서 보지 못했던 메시 지들을 확인했다.
이번 시험으로 무려 1만 5천 포인 트를 획득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마 시간이 지난다면 기사가 더 많이 퍼질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양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겠지.
“ 흐흐.
호텔 침대에 누워 조용히 혼자 옷 자 내 옆 침대에서 스마트 학생 수 첩을 하던 이서준이 내게 시선을 돌 렸다.
“뭐야. 왜 혼자 웃어?”
“아, 아니. 인터넷에 웃긴 게 있어 서.”
“......그래?”
핑계에 가까운 내 대답에 이서준은 별 의심 없이 다시 스마트 학생 수 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영국에서의 첫 자유시간 임에도 이서준은 어디 나가지 않고 숙소 안에서 계속 저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탑 29충 히든 스테이지 인 ‘관리자의 땅’에서 들었던 진천 우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겠지.
아마 이번 일을 기점으로 이서준은 진천우라는 인물에 관해 흥미를 갖 게 될 것이다.
나는 멀뚱히 이서준을 바라보다가 흥미를 끄고는 다시 스마트 학생 수 첩을 바라봤다.
“아, 맞다. 선우야.”
갑작스러운 이서준의 부름에 고개
를 돌렸다. 이서준은 나를 빤히 보 더니 말했다.
“……아니, 너 이번에 3위 했잖아. 기분 좋겠네. 축하해.”
“ 아.”
그것 때문이었나.
갑작스러운 축하에 기분이 좋았지 만 겸손하게 굴기로 했다.
“축하는 무슨. 넌 1위잖아. 네가 더 축하받아야지.”
내 말에 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나야 뭐, 늘 1위니까.”
서울, 자운의 아지트.
진은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며 감탄 하고 있었다.
“와. 베르트 이것 봐. 이서준이 30 충에 도달했다는데?”
진의 말에 베르트가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이서준이네. 근데 이서준이 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런가? 하긴, 네 말을 들으니 그
런 것 같기도 하네. 만약 실패했다 면 실망스러웠을 거 같긴 해.”
“그분도 해냈던 일이니까……
그렇게 대답한 베르트는 스마트 폰 을 이용해 무언가를 검색했다. 이번 합동 시험의 순위표였다.
1위와 2위는 예상했지만, 3위에 의 외의 인물이 적혀있었다.
“김선우 이번에 3위 했네?”
베르트의 작은 중얼거림에 진이 고 개를 돌렸다.
“정말? 걔도 뭔가 신기하긴 하네. 몇 달 전만 해도 꼴찌였던 애인데.”
“그러게. 설마 3위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요즘 눈에 많이 띄는 걸 보니까 그냥 일반 학생이 맞나 본데? 조사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진의 말에 베르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마법사 협 회나 여명의 칼날에서 심어놓은 첩 자라면 저렇게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정말 일반 학생인가.”
하지만 그냥 일반 학생이라고 하기 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일단 성장 속도가 말이 안 될 정 도로 빨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마법사용 도중 마력 방전을 겪었던 녀석이 합 동 시험에서 3위를 한다고?
“흠…… 이상하긴 한데.”
고민하던 베르트는 한숨을 푹 내쉬 었다.
“아, 모르겠다.”
일단 보류.
베르트는 김선우를 잠시 생각에서 지웠다. 지금은 이서준에 집중하자.
서울 마법사 협회 본부 최상충.
세계 마법사 협회장 김철진은 김덕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회장님, 서준이가 이번 탑 둥반 시험에서 30층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김덕현의 보고에 김철진은 복잡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자신이 아끼는 제자가 뛰어난 성적 을 거뒀다는 이야기에도 크게 기뻐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냐.”
그 짧은 대답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김덕현은 김철진의 대답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혹시 과거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
“회장님, 좀 더 기뻐하셔도 됩니다. 제자가 좋은 성적을 거뒀잖습니까.”
김덕현의 말에 김철진이 획 고개를 돌렸다.
“누가 안 기쁘대? 제자가 뛰어난 성적을 거뒀는데 당연히 기쁘지.”
김철진은 그렇게 말하고선 터벅터
벅 걸어가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녀석 이 탑 끝까지 오를 거라는 걸. 최대 한 숨기고 있었지만, 서준이의 몸에 그 녀석의 피가 흐르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하던 김철진은 잠시 생각 에 잠겼다.
“하지만 그놈은 그놈. 서준이는 서 준이지. 그 둘은 아예 다른 사람이 다.”
“네, 맞습니다. 그건 당연하죠.”
“그렇지…… 그나저나 서준이가 보
고 싶구나. 기말시험도 끝나서 이제 곧 방학이라지?”
“네. 아마 2주 뒤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방학이 시작되면 찾아오 라 해라.”
수학여행 4일 차인 금요일 오후 7 시.
호텔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서준과 신영준이 어디 가냐고 물 었지만 대충 밖에 둘러보고 오겠다 고 말하고 나왔다.
오늘 주어지는 자유시간을 이용해 들릴 장소가 있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빨리 다녀와야 한다.
“김선우.”
그렇게 호텔 밖으로 나오자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입구의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화 려한 금발의 여성.
릴리 로즈였다.
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설마 여
태 나를 기다린 건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릴리 로즈가 입을 열었다.
“내년 봄.”
“옹?”
“내년 봄까지 5위 안에 들어.”
릴리 로즈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성무제에 참가하라고.”
“ 아.”
성무제.
3년마다 5대 마법 학교가 한곳에 모여 실력을 겨루는 대회의 이름이 었다.
별들의 싸움이라는 뜻에 걸맞게 교 내 종합 성적 5위 안에 드는 최상 위권 학생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릴리 로즈는 나에게 패배한 것의 복수를 위해 성무제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글쎄. 미래 일은 모르는 거라.”
“시끄럽고. 무조건 5위 안에 들어 서 성무제에 참가해. 어제의 굴욕 그대로 담아서 복수해줄 테니까.”
나는 조용히 웃었다.
원작에서 본 자존심 더럽게 강한 릴리 로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그럼. 이만 간다. 내년에 보 자.”
릴리 로즈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 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나 도 발걸음을 옮겼다.
릴리 로즈와 헤어진 나는 아무 건 물 안으로 들어가 김진우의 의상으
로 옷을 갈아입었다.
신분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기 때 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진우의 모습 은 또 아니었다.
이번 일은 자운의 눈에 띌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마스크를 써서 얼 굴을 더 가렸다.
나는 런던의 랜드마크, 빅 벤이 세 워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영국에서 마법과 관련된 것들은 보 통 빅 벤 주변에 몰려있었다.
“여긴가.”
내가 향한 곳은 작은 마도구 판매 점인, ‘신비의 잡화점’.
원작에서도 한번 등장한 적 있던 곳으로 다양한 아이템들이 숨겨져 있어 눈썰미가 좋다면 특별한 아이 템들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다.
띠링.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민머리의 한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원하시는 물건이 있 습니까?”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인물 간 파를 사용했다.
이름 : 닉 스미스
나이 : 42
종족 : 인간 상태 : 평안
마력 등급 : C-관심도 : 0
내가 아는 그 이름이 맞았다.
닉 스미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자연스러운 발음의 영어가 내 입에서 나왔다.
“거래를 원해서 왔습니다.”
“거래요?”
“네.”
“무슨 거래를 말씀하시는 거죠?”
“제게 그쪽이 관심 가질만한 골동 품들이 있습니다.”
내 말에 닉은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가 골동품을 수집한다는 걸 어 디서 들었죠?”
“그건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거래는 필요 없습니다.”
나는 닉의 말을 무시하고 미리 가 방에 넣어뒀던 골동품들을 꺼냈다.
자운의 아지트에서 홈쳐 왔던 물건 들이었다.
천일의 서, 미얀 족의 석판, 사율 족의 항아리, 샤칸의 황금상.
테이블 위로 골동품들이 올라오자 멍한 표정이었던 닉의 얼굴이 확 바 뀌었다.
골동품에 환장한다는 설정 그대로 라 속으로 웃었다.
“한번 살펴보시죠.”
내 말에 닉은 고개를 숙이더니 밑 의 서랍에서 작은 돋보기를 꺼냈다.
평범해 보이는 돋보기지만 아이템 을 감정할 수 있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닉은 돋보기를 이용해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골동품들을 살펴보더니 내게 말했다.
“이 물건들 어디서 구하신 거죠? 제가 알기로는 모두 강탈된 물건들 로 압니다만.”
“역시 물건의 가치를 바로 알아보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