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마력 을 끌어모으며 신체를 강화했다. 그 리고 침착하게 소량의 마법을 구현 해 나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하 나씩 처리했다.
콰앙! 콰앙!
몬스터들의 등급은 D등급 정도였 기에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데 큰 문
제는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는 마나 엘릭서를 함 부로 사용할 수 없기에 마나를 잘 분배해서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 다.
콰앙! 콰앙! 콰앙!
— 커어엉!
몬스터들은 하나둘씩 내 앞에서 쓰 러졌다.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 나오는 몬
스터들을 전부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벅찼다.
내 마법의 특성상, 많은 마나를 필 요로 하는 다수와의 전투에서는 불 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나를 아끼기 위해 근접전 도 섞으며 전투를 진행했다.
……그렇게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벤트, ‘배치 고사’가 종료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리는 탑의 의지와 함 께 이 공간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순위를 발표합니다.]
[1 위 유아라 (처치 수 : 102)]
[2위 이서준 (처치 수 : 85)]
[3위 Lilly Rose (처치 수 : 74)]
[43위. 김선우 (처치 수 : 32)]
눈앞에 떠오르는 기다란 순위표.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대로 광역 전투에 특화된 유아라가 이서준보다 무려 20마리 의 몬스터를 더 처치하며 1위에 등 극했다.
릴리 로즈는 3위.
모두 원작과 동일한 흐름이었다.
그리고 내 순위는…… 43위.
“43위라……
조금 아쉬운 성적이긴 했지만, 전 체 인원수가 300명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순위는 아니었다.
300명 중에 43등.
충분히 상위권이라 불릴만한 성적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금 이벤트는 나에게 불리 한 조건이었지만 앞으로 나올 이벤 트 중에는 내게 유리한 이벤트들도 분명 있었다.
상황을 기다렸다가 그때를 노리면 되겠지.
그때 탑의 의지가 다시 들렸다.
[‘김선우’ 님의 순위는 43위입니
다.]
[몬스터를 32마리 처치하셨으므로 32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순위 보너스로 120포인트를 추가 획득합니다.]
[8층으로 이동합니다.]
동시에 환한 빛이 번쩍였다.
한편, 릴리 로즈는 이번 첫 이벤트
인 ‘배치 고사’의 결과로 탑의 15층 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웬 녹색 빛의 나 무가 우거진 공간에 있었다. 마치 숲을 보는 듯했다. 하늘을 올려다보 니 눈 부신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탑 안에서 태양이 떠올라 있다는 것에 잠시 신기함을 느꼈지만, 탑이 가진 수많은 ‘신비의 힘’은 이미 익 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변화한 새로운 풍경에 신기해하다가 방금 보았던 순위표를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내가 3위라고?”
릴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 렸다.
물론 첫 이벤트에서 이서준에게 밀 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긴 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2위를 예상 했지, 3위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조 차 하지 않았다.
설마 1위를 이서준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될 줄이야.
“……유아라.”
이서준과 함께 역대급 천재라고 불 리더니 과장은 아니었나.
예상외의 복병이다.
“ 쳇.”
조금 아쉽긴 했지만 사실 그녀에게 첫 이벤트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 다.
그녀는 30층에 도전할 생각이 전 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50년간 이 시험에서 30충 에 도달한 사람은 단 한 명.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30층에 도전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슬슬 포인트를 벌어야 하는데.”
역시 포인트 벌이를 위해서는 약탈 만 한 게 없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시험의 2일차.
다른 학생들의 포인트가 점점 쌓여 가는 그 순간.
그때를 노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도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사냥부터 해볼까.”
역시 그게 가장 좋겠다.
릴리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꺼내 탑의 지도를 확인했다.
이곳 15충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
는 거대한 몬스터 구역…….
“찾았다.”
14충의 ‘바위 필드’.
배치 고사를 통해 15층까지는 미 리 뚫어 놨으니 탑 어딘가에 있는 포탈을 이용하면 14층으로 별도의 시험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럼 포탈로 가볼까.”
릴리는 탑의 지도를 확인하며 발걸 음을 옮겼다.
시험이 시작한 지 약 4시간이 흐 른 지금.
나는 14층에 도달했다.
배치 고사로 8층에서 시작했으니 4시간 만에 무려 6층이나 오른 셈 이었다.
사실 내가 빠르게 충수부터 올리려 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리 층을 뚫어 놓으면 탑의 층을 이동하기 위한 ‘포탈’을 이용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이벤트와 사건들을 생각 했을 때 최대한 많은 탑의 충을 뚫 어 놓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
다.
“흐아암…… 피곤하네.”
나는 하품을 하며 스마트 학생 수 첩을 바라봤다.
시간은 어느덧 오전 12시 10분.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슬슬 잠을 자야 할 것 같기는 한 데…….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자자니 다른 학생들의 약탈이 걱정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전투가 금지되 어 있는 10충의 ‘중간 안전 구역’에 가는 것이지만, 10층은 입장하기 위
해서 300포인트를 소모해야 한다.
100점 단위로 순위가 크게 뒤바뀌 는 이곳에서 수면을 위해 300포인 트를 소모하는 건 너무나도 비효율 적인 행위겠지.
“역시 거기가 좋겠네.”
아까 이곳을 지나치면서 봐두었던 작은 동굴이 있었다.
그곳이라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잠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14층을 쭉 걷는데 멀리 풀 숲 사이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몸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시 눈앞의 상대가 나를 약탈하기 위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문의 인기척은 점차 내게 다가왔다. 이내 풀을 헤집으며 내 앞에 모 즙을 드러냈다.
“김선우?”
내 이름을 부르는 금발의 여성.
릴리 로즈였다.
릴리 로즈가 둥장하자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력을 끌어모 았다.
릴리 로즈는 원작에 따르면 이 시 험의 잠재적 ‘레드 플레이어’였다.
갑자기 나를 공격해올지도 모르니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릴리 로즈는 한 손에 거대 한 고깃덩어리를 흔들며 반갑게 나 를 맞이했다.
“이야. 이런 우연이 다 있냐.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네.”
친한 척 내게 다가오는 릴리 로즈.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물론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아, 내가 너 약탈할까 봐 긴장했 구나? 큭큭. 걱정 마. 지금 당장은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릴리 로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너 정도는 바로 약탈할 수 있지만, 자비를 베풀겠다 는 듯한 뉘앙스다.
조금 어이가 없지만 원래 그런 캐
릭터니 그러려니 넘어갔다.
“왜.”
“아니 그냥. 탑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 반가워서.”
그러더니 허리를 쭉 펴며 기지개를 켠다.
“슬슬 잘 시간인데 넌 어디서 잘지 생각해놨어?”
“뭐, 대충은.”
“그래? 아, 너 이론 만점이랬지? 똑똑하니까 이런 쪽은 확실하겠네. 그럼 너 나랑 잠깐 협력할래?”
협력? 예상 못 한 그녀의 제안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협력?”
“내가 이 고기 나눠줄 테니까 너는 잘 공간을 제공해줘. 불침번은 번갈 아서 하기로하고. 어때?”
U 으 99
식량과 불침번이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마침 준비한 식량이 없기 도 했고.
그리고 릴리 로즈의 실력은 확실하 니 불침번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녀석 이 나를 배신하고 약탈하려는 것이
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걱정은 하 지 않기로 했다.
만약 녀석이 나를 약탈할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나를 공격했겠지.
“그래, 좋아.”
내 말에 릴리 로즈가 밝게 미소를 지었다.
“대화가 잘 통해서 좋네.”
그렇게 릴리 로즈와의 갑작스러운 협력이 시작되었다.
아까 봐두었던 동굴로 안내하자 릴 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용케도 이런 곳을 알아뒀네.”
“잠이나 자자. 불침번은 누가 먼저 설레?”
“어? 고기는 안 먹게?”
“시간이 늦었잖아. 내일 먹어야지.”
지금 시각은 12시 15분.
야식도 좋지만, 바쁜 일정이 기다 리고 있으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내 대답에 릴리 로즈가 고개를 끄 덕였다.
“알았어. 그럼 불침번은…… 내가 먼저 설게. 상관없지?”
“상관없어. 그럼 나 먼저 잔다?”
“어어. 나만 믿고 편하게 자. 한 4
시간 뒤에 깨운다?”
“그래.”
나는 곧바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땅바닥이 조금 딱딱해 불편함이 느 껴졌다. 주변 나뭇잎들을 끌어모으 니 조금은 나아졌다.
곧바로 잠이 쏟아진다.
내일 있을 이벤트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야지.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멍한 얼굴로 자리 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 동굴의 입구 방향을 보아하니 쨍쨍한 아침이었다. 내 앞 맞은편에서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자 는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보 았다.
머리에 잠깐 혼란이 생겼다.
원래라면 중간에 불침번으로 나를 깨웠어야 했는데 얘가 나를 깨운 기 억이 없었다.
분명 불침번은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었는데.
설마 나 대신 쭉 불침번을 선건 가?
“그럴 리가 없지.”
불편하게 벽에 등을 기대고 자는 모습이 딱 봐도 불침번 도중 몇 분 만 눈 좀 붙일까. 하다가 그대로 잠 든 것이다.
안 봐도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 그 려져 어이가 없었다.
“쯧.”
얘도 참 세상 편하게 사네.
습격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지 하마 터면 크게 위험한 상황을 겪을 뻰했다.
그때 릴리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했다.
“......음?”
릴리는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듯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이, 일어났네?”
“너 너무 피곤해 보여서 내가 불침 번 대신 섰어. 하하. 고마워하진 않
아도 돼.”
이제는 뻔뻔하게 티 나는 거짓말까 지 하신다.
조금 황당하지만 그래도 별일 없었 으니 그냥 넘어가야겠지.
그리고 그만큼 잠을 푹 자기도 했 으니까 결과적으로 이득인 상황이기 도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 했다.
내 눈치를 살피던 릴리가 옆의 커 다란 고깃덩어리를 집으며 내게 말 했다.
“너 근데 아침은 안 먹어?”
“먹어야지.”
“배고픈데 지금 먹자. 구워 먹을 거지?”
“당연히 구워야지. 구워놓고 있어.”
내 대답에 릴리는 손가락을 튕기더 니 화염 마법을 일으키며 장작을 태 웠다.
“오……
내가 작게 감탄하자 릴리가 피식 웃었다.
“무슨 이 정도로 감탄하냐? 내 본 실력 보면 깜짝 놀라겠네.”
짧은 시간이 홀러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고기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 려 배고픈 상태에서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기분이었다. 릴리는 식사 중간중간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너는 오늘은 뭐 할 예정이 야?”
“포인트 벌어야지.”
“몬스터 사냥하게?”
“몰라도 돼.”
“……저 싸가지.”
내 성의 없는 대답에 릴리가 눈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를 다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슬슬 가본다.”
“ 벌써?”
릴리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어, 너도 오늘 바쁘잖아. 이럴 시 간 없을 텐데.”
“……그렇긴 하지.”
릴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럼 조만간 다시 보자.”
내 말에 릴리가 피식 웃었다.
“조만간 다시 보자니. 다음에 만날 땐 적일 텐데. 괜찮겠어?”
나를 겁주려는 둣 릴리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가볍게 웃 었다.
내가 그녀에게 말했던 조만간 다시 보자는 의미.
당연히 적으로 보자는 의미였다.
시험 종료까지 약 18시간 남은 오 후 6시.
릴리는 18층의 숲 지대에서 한창 4번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벤트의 이름은 ‘숨은 보물찾기’.
말 그대로 각 필드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 포인트를 얻는 이벤트 였다.
숨은 보물찾기 이벤트 같은 경우 모든 층에 다양한 환영과 결계가 생 겨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숨겨진 보 물을 찾기란 꽤 힘든 일이었다.
“찾았당〜”
하지만 릴리는 그 열악한 환경 속 에서 꽤 빠른 속도로 보석들을 찾아 내고 있었다.
예전부터 이런 특수한 환경 속에서 적웅하는 훈련을 집안의 교육을 통 해 따로 해왔기에 가능했다.
“와. 이쁘네.”
릴리는 반짝이는 보랏빛의 보석을 들여다보았다.
이것으로 12개다.
이벤트가 시작된 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됐으니 무려 5분에 한 개를 찾은 셈이었다.
이 정도면 1등은 확정이네.라고 릴 리는 웃으며 생각했다.
“몇 분 남았지?”
릴리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