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535)

부우웅.

그녀의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진동 이 울렸다.

“……누구야.”

더듬더듬 손을 뻗어 스마트 학생 수첩을 다시 쥐었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메시지를 읽던 그 녀의 두 눈에 순간 놀람이 깃들었다.

[릴리, 지금 한국 마법사관학교 애 들 영국 마법사 협회에 도착했대.]

한국 애들이 영국 마법사 협회에 있다고?

릴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었던 영국 마법사 협회 견학을 마치고 30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일정의 매끄러운 진행과 학생 들의 엇나감을 대비해 개인 활동은 금지되었다.

결국, 나와 이서준, 신영준, 유아 라, 윤하영, 이현주. 이렇게 6명이 같은 조가 되었다.

원작의 핵심 인물들만 있었기에 조 멤버 자체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서준아 이것 봐. 와. 이 정령 마 법 진짜 신기하지 않아? 어떻게 한

거지?”

슬쩍 이서준을 보는데 이서준은 이현주와 단둘이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마법사 협회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영준은 그들 뒤에서 은근 슬쩍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를 보여 줬다.

단순해 보이지만 은근 섬세한 구석 이 있다.

“선우야. 이것 봐.”

그때 윤하영이 내게 다가와 무언가 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전시되어 있

는 투명한 작은 덩어리가 있었다.

“극빙의 결정이래.”

빙속성 마법을 다루는 윤하영답게 빙 속성 관련 아이템이 나오자 신기 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걸 쥐고 있으면 빙속성 마법의 형태가 더욱 견고해진다는 다는데 고대 마법사들이 이걸 이용해서 훈 련했다고 하네. 신기하지 않아?”

“어, 신기하네.”

“뭐야 반응이. 별로 안 신기한가 보네.”

윤하영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런 그녀에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그냥 그래.”

회귀 전에 한 번 보긴 했었으니까.

“쳇. 됐어. 재미없네.”

그렇게 잠시 화내는 척하더니 장난 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아라에게 달려갔다.

“……홈.”

다시 혼자 남았다.

이참에 화장실이나 다녀올까.

아까 버스에서 콜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슬슬 반응이 오고 있 기는 한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같은 조원들은 각자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실내를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따로 이동할 때 미리 이야기해야 하지만 어차피 잠깐 화장 실을 다녀오는 거니 크게 상관없겠 지.

나는 뒤를 돌아 화장실을 찾기 위 해 자리를 이동했다.

협회가 워낙 넓기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조금 걸어야 한다.

그렇게 짧은 복도를 따라 쭉 걷는 데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몸을 부딪 쳤다.

“앗!”

“아, 괜찮으세요?”

나는 내 앞에 쓰러진 여성에게 말 했다.

그런데 머리가 금발이다. 영국인인 것 같은데 영어로 말했어야 했나.

“으…… 전 괜찮아요.”

쓰러진 여성이 유창한 한국어로 대 답했다.

너무 정확한 발음이라 깜짝 놀랐다. 같은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네, 제가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꾸준히 공부했거든요. 근데 힘이 세 시네요? 제가 웬만하면 힘에서 안 밀리는데.”

나는 여성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여성은 내 손올 맞잡았다. 손에 굳은살이 느껴졌다. 무기를 다 루는 강화계 마법사의 손이었다.

그리고 여성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얼굴에 나 는 온몸이 굳었다.

“어?”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 었다.

눈앞의 여성 역시 당황한 목소리를

내더니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 보고 있었다.

“김선우?”

뭐야. 얘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탁!

릴리 로즈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혼자서 일어났다.

탁탁 하의의 먼지를 털더니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히죽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담긴 감정이 비웃음 이라는 걸 알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한국 마법사관학교 이론 1위 맞 지?”

“어, 맞는데.”

“나 알아?”

“릴리 로즈.”

내 대답에 릴리 로즈는 만족한 듯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재수 없는 말투를 떠나서 인형같이 이쁘긴 하다.

“미튜브로 기초 마법 능력 테스트 하는 거 봤는데 재밌더라.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얘는 또 언제적 이야기를……

“ 에휴.”

한숨이 나왔다. 괜히 받아주는 것 도 귀찮고.

“할 말 없으면 간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화장실 방향 으로 다시 걸었다.

그때 뒤에서 나를 향한 릴리 로즈 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놀리는 거 아닌데. 힘내라

고!”

릴리 로즈는 혼자 걸어가는 김선우 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름 영국의 유명인사인데 관심 없는 척 무시하는 모습이다.

“진짜 놀리는 거 아닌데.”

물론 그 영상이 웃기긴 했지만, 음. 내가 말을 좀 얄밉게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상관없겠지.”

앞으로 자주 마주칠 것 같지도 않 으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마음가짐을 잡은 릴리는 다 시 이서준을 찾아 앞으로 걷기 시작 했다.

그런데 어깨 쪽에서 아까부터 은근 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아까 김선우와 부딪힐 때 가벼운 타박상이 생긴 모양이다.

“……뭐지. 내가 힘에서 밀린 적은 거의 없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이 알기론 김선우 는 발현계 마법사였다.

그리고 자신은 강화계 마법사였다. 강화계 마법사 상대로 어깨빵(?)을 이기는 발현계 마법사라니.

발현계 마법사치고는 신체가 너무 단단한 게 아닌가.

“체력 단련을 열심히 했나 보네.”

아니면 우연일 수도 있고.

최근 체력 단련을 열심히 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작은 부상 을 입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릴리는 김선 우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단 하나 이다. 바로 이서준을 찾기 위해서.

“어딨으려나.”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릴리 는 이서준을 발견했다.

“저깄다.”

그녀는 도도한 발걸음으로 이서준 에게 걸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는 런던 중 심에 있는 거대한 고급 호텔에 도착 했다.

간판에 보이는 이름은 ‘호텔 한성’.

한국에서 한번 묵은 적이 있었던 5성급 호텔, 그 한성 호텔이 맞았 다.

한성 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이다.

전 세계에 체인점쯤이야 당연히 있 었고, 영국 지점 역시 없을 이유가 없었다.

고둥학교 수학여행의 숙박 시설치 고는 상당히 사치스러워 보이지만,

한국 마법사관학교는 세계에서 돈이 가장 넘치는 학교였기에 학생들은 이런 복지를 누릴 수 있었다.

“김선우! 이리와!”

그렇게 신기한 눈으로 호텔 로비를 둘러보는데 멀리서 신영준이 나를 불렀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수학여행 방은 3인 1조, 나는 신영 준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됐다.

“야야. 김선우. 너 뭐 먹을 거 챙 겼냐?”

“아니.”

“쩝. 아쉽네.”

신영준이 아쉬운 듯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저기 온다. 야! 빨리와!”

신영준이 손을 혼들었다. 멀리서 호텔 카드키를 쥔 이서준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신영준과 같은 조라 당연하겠지만, 이서준 역시 나와 같은 조다.

“아 맞다. 김선우. 너 아까 못 봤 지? 릴리 로즈가 찾아왔었는데.”

신영준이 실실 웃으며 내게 말했다.

“ 알아.”

“진짜 대박…… 어? 알아?”

“아까 화장실 가는 길에 봤어.”

“그래?”

신영준이 흥이 식었다는 둣 중얼거 렸다.

“근데 진짜 이쁘긴 하더라. 실물 장난 아니던데.”

어느 정도 공감했기에 고개를 끄덕 였다.

확실히 이 세상 얼굴이 아니긴 했 지.

짧았던 수학여행 1일 차가 허무하 게 끝나고 2일 차가 시작되었다.

단체 여행은 오늘이 마지막이기에 이른 아침부터 바쁜 일정이 시작되 었다.

우리는 학교의 안내를 받아 다양한 관광명소와 유적지들을 견학했다.

이전 생에서도 와 보았지만, 신화 와 관련된 관광지를 보는 건 언제나 신기했다.

오후 6시. 여행 일정을 마친 우리 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일정은 오늘 밤에 있을 기말시험을 치르는 것.

당연하겠지만 여행 일정이 모두 끝 났다는 소식에 학생들 사이에선 강 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수학여행이야7!”

“여행을 하루도 안 하는 거 실화 냐?”

“와. 이건 좀 아닌데.”

교사들은 이런 불만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시험 종료 후, 4일 차와

5일 차에 약간의 자유시간을 주겠다 며 학생들을 달랬다.

물론 학생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 지지 않았다.

“자! 모두 모여라!”

그리고 시험이 시작되는 오후 7시.

우리는 영국 마법사관학교 앞에 있 는 외부 시험용 포탈 게이트에 집합 했다.

우리들의 옆에는 150명의 영국 마법사관학교 2학년 학생들이 있었다.

대충 둘러보는데 아는 얼굴도 몇 보였다.

특히 맨 앞 좌석에 앉은 두 남녀.

최근 SNS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영 국 1위 릴리 로즈와 2위인 루이스 브라운이다.

“이제 곧 시험을 시작할 것이다. 시험에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시험 의 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오늘 보게 될 시험은 무려 3일이 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다.

이름하여 ‘가상 탑 둥반 서바이벌’.

시험의 무대는 50년 전, 세계 마법사 협회에서 거액을 투자해 만든 훈 련용 특수 탑으로 수많은 탑 전문가 들과 마법사들이 협력해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가상 탑 등반 훈련 시 스템이 었다.

참고로 이 특수 탑이 세계 최고라 극찬받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성유물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 탑만의 생명 보호 시스템 때문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전투 중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몸에는 영향이 가지 않았다.

쉽게 말해 탑의 내부는 현실과 가 상이 겹쳐진 신비의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미리 공지했다시피 너희들은 3일

간 탑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점 수 책정 방식은 두 가지다. 3일이라 는 시간 동안 탑의 꼭대기인 30충 에 도달하는가. 혹은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느냐다.”

장안철의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웅 성거림이 들렸다.

“……30충 도달할 수 있기는 하

냐.”

“당연히 못 하지.”

“애초에 3일 만에 30층에 도달한 학생이 50년 동안 한 명밖에 없었 다며.”

“그니까. 그냥 포인트나 쌓으라는

거지.”

학생들의 소란 사이에서도 장안철 은 말을 계속 이었다.

“포인트 획득 방법은 아주 다양하 다. 전투, 약탈, 人}냥, 이벤트 등 다 양한 곳에서 획득할 수 있지. 더 자 세한 룰은 탑에 입장한 뒤, 스마트 학생 수첩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 다.”

장안철은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다 시 외쳤다.

“그럼 기말시험을 시작하겠다!”

번쩍!

훈련용 포탈 게이트를 타자 거대한 빛과 함께 낯선 공간에 도착했다.

새하얀 벽으로 되어있는 동그란 방.

탑의 1층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저번 중간시험 때 경험한 스테이지 탈출 시험의 방과 상당히 홉사했다.

[탑의 1층에 입장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탑의 의지’.

탑의 의지는 인공적으로 생성해 낼 수 없지만, 이 인공탑이 완벽한 탑 의 형태를 이루어내자 자연스럽게 신비의 힘이 깃들며 ‘의지’가 생겨 버린 아주 특수한 케이스였다.

나는 신기함을 느끼다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흠……

앞에 장안철이 말했다시피,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탑의 최정상 층인 30층에 오르는

방법과 포인트를 쌓는 방법.

30층에 오를 수만 있다면 포인트 고 뭐고 최고 순위를 확정받을 수 있겠지만, 30층에 도달하는 건 아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야 당연한 것이 3일 내로 30층 에 도달한 사람은 50년간 단 한 명 일 만큼 극악의 난이도를 지녔기 때 문이다.

거기다 28충에 있는 ‘인내의 방’이 라는 스테이지는 마나를 흡수하는 특수 장치 속에서 무려 3시간이나 버텨야 하기에 나처럼 선천적으로 마나가 부족한 사람은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포 인트를 쌓는 것인데.

포인트를 쌓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탑에 숨어있 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가장 안정적이면서 기본적인 포인 트 습득 방법이지만 대량의 포인트 를 벌어내기에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상위권을 노리기 위해서는 사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제일 좋은 건 약탈인데.”

약탈이란 다른 학생과 전투를 치러 승리한 뒤, 상대방이 가진 포인트의 절반을 빼앗는 방법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포인트를 빼앗는 것이 기에 어마어마한 포인트 벌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탈에도 페널티가 존재했다.

바로 ‘레드 플레이어’로 등록되어 탑과 연동된 스마트 학생 수첩에 그 사람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학생의 목표가 될 것이고, 만약 누군가와의 전투에

서 패배하게 된다면 포인트의 절반 을 잃고 1충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상황은 피해야 했다.

“흐음.”

그렇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 하던 사이.

다시 한번 탑의 의지가 들려왔다.

[모든 학생이 탑에 입장했습니다.]

[잠시 후 첫 이벤트, ‘배치 고사’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배치 고사.

이번 1층의 테마이자 포인트를 획 득할 수 있는 첫 이벤트였다.

시험의 결과에 따라 최대 20충까 지 단번에 오를 수 있기에 만약 30 층을 노리는 학생이 있다면 이번 배 치 고사는 꽤 중요한 이벤트였다.

[5, 4, 3, 2, 1…… ‘배치 고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방 안에 마력이 가득 차올랐다.

이내 방안을 둘러싼 여러 개의 문 이 열리며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튀 어나왔다.

-커어어엉!

[몬스터를 처치하십시오.]

[몬스터의 처치 수에 따라 순위가 결정됩니다.]

예상했던 대로 첫 이벤트는 몬스터 처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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