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선우야 빛 속성은 언제부터 다룰 수 있던 거야?”
윤하영이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 졌다.
“음.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 한 두세 달 전쯤?”
“아. 좀 뒤늦게 각성 된 케이스인가?”
“그렇지. 아 맞다. 내가 빛 속성을
다루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줘.”
이건 김선우와 김진우의 차별을 확 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무속성을 다루는 김선우와 속성을 다루는 김진우를 나누면 쉽게 알아 차리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윤하영은 내 말에 의문을 느낀 둣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비밀로? 왜?”
“필살기 느낌으로 숨기고 싶거든. 네가 멸마의 힘을 숨긴 것처럼.”
대충 지어낸 핑계였는데 윤하영은 입을 벌리며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
다.
“필살기라. 그러네.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힘을 숨기는 것도 강한 무기 가 되긴 하지.”
다행히 윤하영은 쉽게 수긍한듯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길을 쭉 걷 다가 윤하영이 혼자 중얼거렸다.
“아~ 이번 수학여행 기대된다. 영 국 애들 실력도 기대되고.”
“다른 애들은 거의 전쟁 분위기던 데.”
“아, 맞아. 릴리인가. 그 애가 좀 심하긴 했어. 저격하는 건 매너가 아니지. 서준이는 무슨 죄야?”
윤하영이 살짝 화난 듯 언성을 높 였다. 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귀여 운 느낌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러려니 넘어갔 다.
그리고 릴리 로즈.
그 애는 원래 그렇다. 자존심도 더 럽게 쌔고 남 눈치도 전혀 안 보는 애니까.
“그나저나 너 실력 많이 상승했더 라. 이번에 기말시험도 점수 잘 나 오겠던데.”
“웅. 선우 네 덕이야. 진짜 매번 너무 고마워.”
윤하영이 기분 좋아지는 밝은 미소 로 대답했다.
확실히 지금의 윤하영은 과거와 비 교했을 때 실력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원작대로라면 그녀의 마력 등급은 D 정도였겠지만 지금 그녀의 마력 등급은 무려 C+니까.
어느덧 B등급 코앞까지 성장한 것이다.
“선우야. 너는 이번 기말 목표 등 수가 몇이야?”
“글쎄. 이번엔 나도 좀 열심히 해 볼 생각이라서.”
“오 정말?”
윤하영이 눈을 반짝 빛냈다.
“진짜 잘 봤으면 좋겠다. 선우 너 는 실력이 엄청 좋은데 성적이 늘 낮게 나와서 아쉬웠거든.”
“네가 그걸 왜 아쉬워해.”
“그야 너 무시하는 애들이 몇몇 있 잖아. 괜히 내가 다 기분이 나쁘더 라고.”
무시하는 애들이라…… 있기는 하 지.
물론 최근 이서준을 제치고 몇몇 과목에서 1둥을 차지하면서 많이 줄
기는 했지만.
“내 걱정 말고 너나 질해.”
“그런가? 헤헤.”
그렇게 우리는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한국 마법사관학교 셔 틀버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배차 간격이 조금 길지만, 이 버스 는 주말에도 운영한다.
다행히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왔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며 버스 단말 장치에 스마트 학생 수첩을 가져다
대었다.
삐빅! 소리가 울리자 우리는 안으 로 들어섰다.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대부분 빈자리이다.
어디 앉을까 주변을 둘러보는데 익 숙한 밝은 갈색빛 머리가 눈에 보였다.
앉아서 스마트 학생 수첩을 들여다 보는 최서윤이었다. 아무래도 주말 동안 본가에 또 다녀온 모양이다.
인사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데 최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어? 김선우 선배님?”
최서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 다. 그러더니 내 옆의 윤하영도 번 갈아 봤다.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 안녕하세요. 여기서 만나 다니 엄청 우연이네요.”
“그러게.”
짧게 대답하고는 터벅터벅 걸어가 적당한 빈자리에 앉았다. 윤하영도 내 옆자리에 앉았다.
최서윤은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 며 나와 윤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봤 다.
괜히 그 시선이 불편해 나는 그녀
에게 말했다.
“왜. 뭐 할 말 있어?”
“......아뇨.”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더니 평소와 같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윤하 영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윤하영 선배님 맞으 시죠?”
“어? 어. 웅. 맞아.”
갑작스러운 최서윤의 친한 척 스킬 에 윤하영이 뻘쭘하게 대답했다.
“같은 빙속성 마법을 다루셔서 기 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래? 영광이네. 1학년 1위가 기 억도 해주고.”
“에이, 영광은 무슨요.”
최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 그런데 두 분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데이트라도 했어 요?”
“데, 데이트라니. 아니야. 훈련하고 오는 길이야.”
윤하영이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최서윤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훈련이요? 뭐하러 훈련을 야외에서 해요?”
“어…… 그럴 일이 있거든.”
멸마의 힘에 관한 이야기는 꼭 비 밀로 해달라는 내 말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윤하영이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최서윤은 그 대답이 의심스 러웠나 보다.
눈을 가늘게 뜨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요? 실전 훈련이라 해도 학교 내에 다 시설이 갖춰져 있을 텐데.”
그러더니 최서윤의 시선이 다시 내
눈으로 향했다. 나 역시 그녀의 눈 을 피하지 않았다.
“뭐.”
“……아니에요.”
시간은 빠르게 홀러 영국으로 가는 수학여행 당일이 되었다.
지금 시각은 화요일 오전 3시.
이른 새벽부터 150명의 2학년 전 교생이 마법사관학교의 운동장에 모 였다.
“아, 수학여행 기대된다.”
“기대는 무슨. 난 지금 전쟁터로 가는 기분인데.”
아무래도 기말시험과 영국 마법사 관학교 간의 경쟁심이 불타서 그런 것인지 즐거운 수학여행임에도 학생 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내 옆에 있는 신영준과 윤하영이 특히 그랬다.
“야. 이서준. 이번에 무조건 1등 해라?”
“서준아 파이팅!”
두 사람의 웅원에 이서준은 그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으…… 그나저나 잠을 못 잤더니 졸리네.”
윤하영이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윤하영의 옆에 있던 유아라 역시 새벽 2시라 피곤한지 눈이 퀭해 보 였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영국과의 시차 때문이었다.
현재 영국 시각은 오후 7시.
지금 당장은 좀 피곤할 수도 있겠 지만 밤을 새우는 게 시차 적응을 위해선 더 좋은 선택이었다.
그때 유아라가 나를 힐끔 보더니 말을 걸었다.
“너 이번 시험은 몇 둥 할 생각이 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내 하기 나름이겠지 뭐.”
그러다가 유아라에게 장난식으로 다시 말했다.
“맞다. 넌 릴리 로즈한테 2등 안 뺏기게 조심해야지.”
이번 시험은 영국 마법사관학교 학 생들과 함께 순위가 매겨진다. 자세 히 설명하기에는 복잡하지만, 채점 방식이 기존과 살짝 바뀌었다.
물론 필기시험은 저번 주에 미리 봐두었기에 실기 시험만 바뀐 셈이 다.
그리고 내 말에 유아라는 예상대로 눈살을 찌푸리며 반웅했다.
“……시끄러. 1등 못할 것처럼 말 하는 거 같아서 기분 나쁘니까.”
생각해보니 그러네.
어느 순간부터 이서준이 1등, 유아 라가 2등이라는 생각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게 되었다.
그때 유아라가 나를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릴리 로즈. 걔 훈련 영상 봤는데 별거 아니야.”
인천 출입국 포탈 게이트를 타고 우리는 영국에 도착했다.
거대한 통로와 함께 수많은 외국인 의 모습이 보였다. 학생들은 신기한 둣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첫 해외 방문’ 업적을 달성했습니
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와. 외국인 진짜 많다.”
“기대된다 진짜.”
“자자, 모두 소란피우지 말고 조용 히 따라오세요!”
그렇게 우리는 교사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출입국 포탈 게이트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영국 시각으로는 오후 9시.
한국에서는 슬슬 해가 뜨기 시작하 는 새벽이었지만, 이곳 런던은 완전
한 밤이었다.
나는 천천히 영국의 수도, 런던의 모습이 살펴봤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조명으로 빛나 는 거대한 시계탑, 빅 벤이 보였다.
“와. 실제로 보니까 더 멋지다.”
“엄청 큰 것 봐.”
빅 벤은 영국 마법계의 중심부이 다.
저곳에서 수많은 마법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었고, 각 국가마다 있는 마법사 협회 역시 저곳에 있었다.
원작 중반부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
들이 저곳에 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빅 벤 주변에 있는 영국 마법사 협회를 견학하게 된다.
참고로 기말시험은 내일 밤부터 시 작해 삼 일간 진행된다.
“자! 그럼 버스에 짐을 실으세요! 시간이 촉박하니 바로바로 이동할 겁니다!”
그렇게 2학년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오오.”
버스를 타고 내리자 멋들어진 유럽 식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궁전 형태의 영국 마법사 협회 본부가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 봐도 동양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건축물이라 신기함 이 느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한국 마법사
관학교 학생 여러분들을 인솔할 제 임스라고 합니다.”
자신을 제임스라고 소개한 남자가 유창한 한국어로 웃으며 등장했다.
그는 영국 마법사관학교 소속 마법사로, 내 기억에 의하면 S등급에 거 의 근접한 마법사였다.
물론 원작에서 비중은 크게 없다.
“자, 이곳으로 오시죠.”
우리는 제임스를 따라 마법사 협회 를 견학하기 시작했다.
1층에는 신화 속 인물을 본떠서 만든 화려한 동상들과 영국의 현역 마법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적당히 1층 내부를 둘러본 다음 우리는 영국 마법사 협회의 2충, ‘전설 무구 전시장’에 도착했다.
“와! 야야. 저것 봐! 엑스칼리버 다!”
신영준이 이서준을 붙잡고 유리관 을 가리켰다.
기다란 새하얀 검신과 금빛의 손잡 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검 한 자루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서준은 그것을 보자 눈을 빛냈다.
“와. 엄청 멋지다. 이거 진품이겠
지?”
“그러겠지. 경비가 이렇게 살벌한 데.”
“이 좋은 걸 전시용으로 놔두네. 아깝게.”
이서준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외부 자의 혜택으로 엑스칼리버를 보았 다.
[엑스칼리 버 (SS)]
분류 - 검
설명 : 아서 왕이 사용한 전설의 검.
[지속 효과]
►신비
체력과 근력, 마력이 50% 상숭합니다. 악마형 몬스터에게 200%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보호
검에 담긴 신비의 기운이 마법 저 항력을 50% 상승시켜줍니다.
►경량화
사용자는 이 검의 무게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용 효과]
►마력 발현
10분간, 사용자의 마력을 지속적으 로 홉수합니다.
피해량이 50% 상승합니다.
내구 : SSS
파괴력 : SS
“……진짜 돌았네.”
다시 봐도 말이 안 되는 옵션이다.
말 그대로 사기템.
능력치가 전부 퍼센트로 오르기 때 문에 기본 능력치가 높은 실력자가 이 검을 사용하게 된다면 극한의 효 율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서준은 저 검이 상당히 탐이 났 던지 엑스칼리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서준에게 ‘너도 저것 만큼 좋은 검을 사용하게 될 거니 탐낼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겨우 참아냈다.
물론 그때가 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그때 제임스가 이서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 멋지죠?”
“네. 전시용으로 놔두기 너무 아깝 네요.”
이서준의 말에 제임스가 웃었다.
“전시용으로 놔두기에는 아깝지만,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엄청나 거든요.”
하지만 관광 수입이라던지 그런 세계를 잘 모르는 이서준은 여전히 이
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영국 마법사관학교.
릴리 로즈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 SNS를 확인하고 있었다.
최근 부쩍 한국인들의 댓글이 많아 졌다.
물론 한국어를 한국인 만큼이나 잘 다루는 그녀였기에 댓글의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전부 욕설이었다.
“홍.”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댓 글을 막지도 않았고 오히려 댓글의 내용을 비웃으며 이 상황을 즐겼다.
어차피 자신을 응원하는 영국인들 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마인드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커질수록 합동시험 이후, 자신이 이서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입증할 수 있을 테니 오히려 긍정적 인 현상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빨리 시험이나 보고 싶다.”
그렇게 인터넷 언론을 살펴보는데 그녀의 시선을 잡아끄는 한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릴리 로즈 VS 이서준. 누가 더 뛰 어날까? 영국 S등급 마법사들의 시 선은?]
제목만 봐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자국의 마법사들이 나와 이서준을 비교해준다니.
그녀는 자신감 있는 손짓으로 기사 를 클릭했다.
[영국 최고 천재라 불리는 릴리 로
즈. 최근 SNS를 통해 이서준을 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에서도 괜히 합동시험에서 패배해 창피를 당하는 게 아닌가에 대한 우려의 목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것에 대해 영국의 프로 마법사 들의 의견을 물었다.]
[S둥급 마법사 에디는 ‘같은 영국 인에게 이런 말 하기 좀 그럴 수 있지만, 이서준이 쪽이 좀 더 우 세……’]
다 읽지도 않고 기사를 꺼버렸다.
대체 뭘 알고 그러는 건지.
“……뭣도 모르면서.”
그녀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침대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침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꿍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한 10초쯤 지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