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연 씨라면 아무나 골라 만나 실 수 있을 텐데.”
내가 장난하듯 웃으며 말하자 한세 연이 눈을 찌푸렸다.
“바빠서 남자 못 만나요. 애초에 지금까지 만나본 적도…… 홈홈. 아,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한세연이 품 안에서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고급스럽게 생긴 카드였다. 안에는 한성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한성가의 사람이라는 징표에요. 저희 가문에서 오래 몸담은 분들에 게만 드리는 건데 최근에 받은 게 있으니 드릴게요. 오늘 같은 날 저 를 찾는데 직원이 의심하면 그거 보 여주세요. 그럼 직원이 알아서 잘할 거에요.”
“ 오.”
신기함을 느끼며 카드를 자세히 살 펴봤다. 한세연의 설명을 들으니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그거 말고도 한성가에서 이용하는 모든 시설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 으니까 아마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좋네요. 잘 쓰겠습니다.”
한세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봤자 그쪽이 준 일월약학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요.”
“잘 써먹고 있나 보네요.”
“네, 덕분에 약들의 품질이 전체적 으로 좋아졌어요. 상용화하려면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요.”
“다행이네요. 잘 되면 콩고물 기대 해도 되죠?”
“물론이죠.”
한세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
했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부탁하 신 걸 드릴게요.”
한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 랍에서 갈색 대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 앞의 책상 위에 올려놨 다.
“그쪽이 말한 지명수배자들 신상과 활동 내역이에요. 중간에 일반인들 도 끼어있던데 일반인들도 전부 범 죄자예요?”
“네, 맞습니다.”
나는 자료를 훑어봤다.
솔직히 겨우 이틀의 시간밖에 주지 않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찾아 낸 자료가 꽤나 방대했다.
이미 알고 있는 빌런에 대한 정보 도 정확하고 잘 모르는 현상 수배범 들의 정보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좋네요. 고생했어요.”
“그런데 이건 왜 필요하신 거예요? 현상 수배범이라도 잡게요?”
“네, 현상금 사냥이나 해볼까 해서 요.”
내 대답에 한세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돈 많으시지 않아요?”
“돈이야 충분히 있죠.”
“그런데 왜? 아, 정의감이구나. 저 번 선구자의 밤 사교회 때도 그렇고 정의감이 특출나시네요.”
나는 대답 대신 쓰게 웃었다.
마땅한 변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잘 쓰겠습니다.”
그렇게 한세연과 헤어진 나는 그녀
에게 받은 자료를 보며 장소를 이동 했다.
[곽찬용 : 수원 불법 도박장에 자 주 출몰.]
내가 향한 곳은 경기도 수원의 작 은 불법 도박장.
곽찬용은 뒤에서 여러 작은 범죄 조직을 운영하는 빌런이었다.
하지만 곽찬용이라는 이름은 가명 이었기에 그의 진짜 정체와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의 본명은 ‘무진’.
마인이 다.
“흠. 여긴가.”
나는 도박장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 다.
한 남자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보안상 신분증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품 안에서 김진우의 신분증을 꺼냈다.
조금 껄끄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 겠지.
“네, 확인했습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 러보며 천천히 분위기를 살폈다. 그 냥 말 그대로 도박장이었다.
돈을 걸며 게임하고 돈을 딴 사람 들은 기뻐하고 잃은 사람들은 화를 냈다.
나는 인물 간파를 이용해 주변 사 람들의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작은 불법 도박장인 만큼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았다.
“……뭐야. 없잖아.”
내 예상과 달리 이곳엔 무진이 보 이지 않았다.
날을 잘못 잡은 걸까.
이제 어쩌지라는 생각을 할 때쯤, 입구에서 한 남성이 들어왔다.
마른 얼굴의 30대 남성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이름 : 무진
나이 : 35
종족 : 마인 상태 : 평안
마력 등급 : B+
관심도 : 0
찾았다.
시간이 흘러 곽찬용. 아니, 무진은 도박장 밖으로 나왔다.
나는 들키지 않게 은밀한 움직임으 로 그를 따라갔다.
내가 첫 번째 표적 대상으로 무진 을 선택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마인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빛 속성 숙련도를 빠르게 쌓으려는 의도였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가 십마회의 앞잡이인 천해의 직속 부하였기 때문이다.
장예가 죽은 지금, 천해가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 미리 견제 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인적이 드문 골 목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의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무진.”
내 부름에 무진이 나를 향해 고개 를 돌렸다.
갑작스럽게 본명이 불리자 조금 놀 란 눈치였다.
“넌 누구지? 마인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력을 끌어모아 신체를 강화 했다.
사실 기습공격을 했다면 좀 더 쉽 게 해결될 상황이었지만, 새로 얻은 특성의 효과를 시험해보고 싶었기에 정면으로 나섰다.
무진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자
세를 낮추며 나를 전투태세를 갖추 었다.
[사용 효과, ‘승전보’ 효과를 발동 합니다.]
[표적 대상은 ‘무진’입니다.]
[표적과의 전투에서 승리 시, 무작 위로 추가 능력치, 혹은 특성을 얻 습니다.]
표적 설정 완료.
이제 녀석을 쓰러트리기만 하면 된 다.
“……인간이군. 네 녀석 정체가 뭐 냐? 어떻게 내 본명을 알고 있는 거지?”
무진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내 그의 몸 주변에 뜨겁게 타오 르는 화염의 가시 5개가 떠올랐다.
감탄이 나올 만큼 완벽한 압축 구 현술.
그 하나하나에 강력하게 압축된 마력이 느껴졌다.
어쩌면 눈앞의 녀석은 장예보다 더 강한 상대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마력 등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 로 전투 경험이니까.
그럼 실험해볼까.
지금의 나는 과연 마나 엘릭서와 대자연의 심장 없이 B둥급의 마인 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까.
“내 본명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 다!”
무진의 외침과 함께 다섯 개의 화 염 가시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특성으로 인한 동체 시력의 상숭으로 내 눈에는 가시의 움직임 이 느리게 보였다.
나는 여유롭게 공격을 피해내고는 녀석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근접전을 유도해 상대의 혼을 때놓 고 급소를 노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바닥에서 강한 마력의 응축되더니 거대한 불기둥이 쾅! 하 고 솟아올랐다.
“큭!”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전 투광 특성의 동체 시력 상승효과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골로 갈 뗀했다.
설마 형태 변환까지 다룰 줄이야.
검, 창, 화살 등 주 형태가 아닌
불기둥과 같은 보조 형태를 다룰 수 있다는 건 녀석의 마력 제어 능력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중거였다.
“……저게 어떻게 B야.”
다루는 마력 제어 능력만 보면 절 대 B등급이 아니다.
그런데도 녀석이 B등급이라는 건,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케이스가 아 닐까 싶다.
구현 능력은 뛰어나지만 타고난 마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케이스.
뭐, 그래봤자 나보다 마력량은 훨 씬 많겠지만…….
“후우.”
역시 순수 능력으로 B등급의 마인 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네.
그렇다면 다음 기술을 실험해볼까.
[사용 효과, ‘투쟁심’을 발동합니다.]
[3분간,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 합니다.]
우우웅-!
능력을 사용하자 몸의 힘이 강해지 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육체 능력 쪽에서 더더욱 체
감됐다.
모든 능력치의 20% 상승.
능력치가 높을수록 더욱 고효율을 보이는 효과지만 지금도 효과는 확 실했다.
“좋아.”
나는 씨익 웃고는 녀석에게 달려들 었다.
무진은 빨라진 내 움직임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까와 같이 불기둥을 일으키며 내 접근을 막아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지금의 나는 전보다 더 빨라져 있 었으니까.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손 위로 세 개의 빛 속성 구체를 구현 했다.
하나는 머리.
하나는 몸통.
하나는 시간차로 다시 머리를 향해 쏘아냈다.
콰아아앙!
“크아아악!”
녀석은 두 개의 공격을 막아내었지만 뒤늦게 날아드는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녀석이 고통에 괴로워하는 지금이 기회다.
내가 가진 모든 마력을 끌어모아 손 위로 최대 출력의 구체를 구현했
다.
“하아아앗!”
어둠을 밝히는 거대한 빛.
그 환한 빛이 녀석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표적과의 싸움에서 숭리했습니다!]
[승전보의 효과로 근력이 0.5, 마력이 0.5, 마력 제어 능력의 숙련도 가 2% 상승합니다.]
[빛 속성을 이용한 마인 처치에 성 공하셨습니다.]
[빛 속성 숙련도가 15% 상숭합니다.]
[B급 빌런, ‘무진’을 단독 토벌했습니다.]
[스토리의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3 상숭합니다.]
“후우.”
승리했다.
마나 엘릭서와 대자연의 심장이 없 었음에도 녀석을 B둥급의 마인을 쓰러트렸다.
아마 ‘투쟁심’을 ‘대자연의 심장’과 함께 사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하겠지.
그렇게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내 몸에서 거대한 빛이 번쩍 였다.
“뭐야?”
[특성, ‘대자연의 축복’의 등급이 4
로 상승했습니다.]
[특성, ‘대자연의 축복’에 새로운 효과가 해금되었습니다.]
[대자연의 가호(A)[등급 : 4(0%)]
[지속 효과]
►대자연의 축복
마나 연공 시, 마력을 추가로 획득 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최대 170%까지 추가로 획득합니다.
속성 숙련도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상황에 따라 최대 80%의 속성 숙 련도를 추가 획득합니다.
“대박.”
대자연의 축복에 새로운 효과가 해 금되 었다.
바로 속성 숙련도를 추가로 획득하 는 것. 무려 80%의 속성 숙련도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속성을 다루기 시작한 단 계인 내게는 마침 딱 좋은 효과였다.
이것을 잘만 이용한다면 빛 속성 숙련도를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채 울 수 있겠지.
“김진우 마법사님?”
그렇게 벤치에 앉아 특성을 확인하 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무진의 사체를 확 인하던 특무팀 요원이 나를 바라보 고 있었다.
“확인 끝났습니다. 마인에게 습격 을 당하셨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잘 처리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정확히는 내가 먼저 습격을 한 것 이지만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아
서 대충 지어내서 말했다.
물론 내가 마인을 구분할 수 있다 는 생각을 전혀 못 하는 요원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리고 토벌 보상금은 내일쯤 입 금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바빠서 그러 는데 이만 가봐도 될까요?”
“네! 들어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요원은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뒤를 돌았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김진우가 또다시 마인을 토벌했다 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 했다.
제목은 ‘상대가 마법사인 것을 모 르고 습격한 마인의 최후.’라는 자 극적인 제목이었다.
댓글에서는 꼴 좋다는 댓글도 있었 고,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댓글도 있었다.
덕분에 소량의 명성 포인트를 또 획득했다.
그리고 다른 특이한 메시지도 있었다.
[등장인물, ‘하령’이 당신에게 흥미 를 느낍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등장인물, ‘천해’가 당신에게 분노 를 느낍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나를 향한 하령과 천해의 메시지였다.
천해는 나에게 친우인 장한, 그리 고 부하인 무진을 잃었기에 분노한 이유를 알겠지만, 대체 하령은 저번 에도 그렇고 왜 나에게 흥미를 느끼 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원작에 따르면 하령이 일반적인 마인들과는 다르게 조금 독특한 면이 있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많이 이상한 부분이다.
“언젠간 알게 되겠지.”
상대의 목적을 알 수만 있다면 미 리 대비라도 하겠지만 그게 불가능 하니 방법이 없다.
그렇게 일요일 일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한 건 하셨네요.]
한세연이었다.
[뭐가요‘?]
[어제 마인 토벌하셨잖아요. 전 그
냥 단순히 범죄자 신상을 조사하는 줄 알았는데 설마 마인이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
핑곗거리도 귀찮아서 대충 짤막하 게 답을 보냈다.
[우연이요.]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신발장으 로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그때 다시 한세연의 메시지가 다시
도착했다.
[(물건 던지는 이모티콘)]
오늘도 평소 일정대로 훈련을 시작 했다. 윤하영과 만나서 마법 훈련을 하고 또 던전에 가서 악마형 몬스터 들을 쓰러트리며 빛 속성 숙련도를 올렸다.
[빛 속성 제어술][등급 : 0(34%)]
오늘 훈련을 마치자 빛 속성 제어 술의 숙련도는 어느덧 34%를 넘어 섰다.
아무래도 강한 마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도 있었지만 이번에 획 득한 ‘대자연의 축복’의 속성 숙련 도 추가 획득 효과가 컸다.
이 속도라면 2달 안으로 빛 속성 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으. 오늘도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야외 훈련을 마친 저녁 8시.
나와 윤하영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