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535)

“웅. 내일이거든. 혜성 길드 놈들이

습득한 ‘생명의 잔’을 한국으로 가 져오는 날이. 더 늦기전에 회수해야 지.”

백은성이 한국에서 개인적인 유흥 을 즐기기 위해 만든 범죄 조직, 골 드윈.

내일 밤 백은성은 그들을 이끌고 한국의 또 다른 범죄 조직인 혜성 길드를 공격할 예정이었다.

다름 아닌, 어느 한 성유물의 재료 인 생명의 잔을 회수하기 위해서.

“그런데 혜성 그놈들은 생명의 잔 을 어떻게 얻었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네.”

“걔들도 어디서 홈친 거더라고. 나 도 자세히는 몰라. 스파이를 통해 들은 내용이라.”

백은성의 말에 지켜보던 진이 부러 움에 찬 시선을 보냈다.

“와. 그럼 길드 전쟁하는 거야? 진 짜 재밌겠다.”

“재밌긴. 그래봤자 대부분 C급에서 B급 사이 녀석들인데. 뭐.”

“그게 재밌는 거지. 약해빠진 녀석 들 사이에서 혼자 숨어서 몰래 다 죽일 수 있으니까.”

“어휴. 아무튼, 난 이만 가본다.”

백은성이 손을 혼들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베르트가 같이 인사를 했다.

“어어, 그래. 혼자 잘할 수 있지?”

베르트의 물음에 백은성이 자신 있 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길었던 특무 체험의 첫날을 마치고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 지역 주변

의 한 갈비집.

강경찰을 포함한다른 특무팀 요원 들이 인천에서 가장 잘하는 집이라 며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왔다.

“자자, 편히들 드세요. 오늘 고생 많았어요.”

맛있게 익은 고기를 집어 한입에 삼켰다. 고소한 육즙이 퍼지며 하루 의 피로가 확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인천에서 가장 잘하는 집이라더니 과장은 아니었나 보네.

“으, 맛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최서윤이 행복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유아라 역시 입맛에 맞는지 젓가락 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고기를 뒤집는데 솜씨가 꽤나 능숙했다.

내가 고기를 뒤집으려 하자 본인만 의 고기 굽기 철학이 있는지 젓가락 으로 막아내며 찌릿 나를 노려봤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강경찰의 앞에 놓인 맥주병을 집어 그의 잔에 따라줬다.

“이야. 잔도 따라주시네요. 하하. 고맙습니다.”

강경찰의 말에 나는 씨익 웃고는 본능적으로 내 앞의 빈 잔을 찾았 다.

“......아.”

순간 내가 학생 신분인 것을 깨달 았다.

맥주잔이 없는 건 당연한 거겠지.

쩝. 아쉬운 손짓으로 맥주병을 다 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때 내 맞은편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의 행복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최서윤이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 라보고 있었다. 방금 내 행동의 의 미를 눈치챈 모양이다.

“뭐, 뭐.”

“……아니에요.”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강경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까부터 신 경 쓰였던 것을 모르는 척 슬쩍 물 었다.

“강경찰 마법사님, 아까 요원분들 끼리 떠드는 걸 들었는데 골드윈이 뭔가요?”

골드윈이라 하면 저번에 마주쳤던 도굴꾼들이 속한 조직이었다. 그리

고 자운의 멤버, 백은성이 한국에서 관리하는 범죄 조직이기도 했다.

이들은 원작에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지만, 나중에 다시 등장할 예정이 었다.

하지만 나는 원작이 아닌 회귀 전 의 경험을 통해 뭔가 수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아, 인천에서 활동하는 마법 범죄 길드 중 하나에요. 사실 말이 길드 지 정식 길드도 아니고요.”

마법 범죄 조직이라는 말에 유아라 가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나와 강경찰을 바라봤

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강경찰에 게 말했다.

“요즘 말썽을 피우나 봐요. 아까 들어보니까 꽤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던데.”

“그렇죠. 요즘 움직임이 수상해서 예의 주시하고 있기도 하고요.”

“혹시 범죄 조직끼리의 싸움도 일 어나고 그런가요?”

“조직끼리의 싸움이요? 에이, 그런 거 최근엔 없어요. 그리고 걔들도 굳이 위험하게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고요.”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끼리의 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 라. 역시 뭔가 이상했다.

원작의 전개 때문이 아니라, 과거 회귀 전의 기억 때문에 그렇다.

아마 이맘때쯤일 거다.

그날도 유적지 도굴 사건이 끝난 지 며칠 안 됐을 시점이니까.

뉴스에서 두 마법 범죄 조직의 패 싸움 소식을 알린 적이 있었다.

바로 골드윈 길드와 혜성 길드의 싸움.

원인도 모르게 일어났던 이 패싸움 은 골드윈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고 한다.

결과는 상대 조직의 괴멸.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지만 그런 압도적인 결과를 이뤄냈다는 건, 이 싸움에 자운이 개입되어 있을 확률 이 높았다.

하지만 이건 원작에선 다뤄지지 않 은 부분이었다.

자운이 개입됐을 정도의 일이라면 뭔가 목적이 있었을 텐데 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무슨 생각해?”

그때 맞은 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유아라가 의미심 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골드윈인가 뭔가 범죄 조직이 신경 쓰여서 그래?”

“아니. 내가 걔들을 신경 쓸 이유 가 어딨어.”

내 짧은 대답에 유아라가 나를 바 라보더니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알았어. 안 물을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뭘 안 물어.

그때 그녀의 옆에 앉은 최서윤이 눈을 깜빡이며 나와 유아라를 번갈 아 봤다.

“두 분 왜 맨날 저만 모르는 얘기 해요?”

오늘 체험 일을 마치고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마법사 호텔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9시.

나는 방 끝에 있는 널찍한 침대에 앉았다.

“방이 되게 좋네.”

방 전체적인 분위기가 저번 용병 체험 때의 호텔보다 훨씬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특히 저번엔 이서준과 함께 2인실 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나 혼자 사 용한다.

잠시 몸에 힘을 빼고 푹 침대에 몸을 맡기었다.

푹신한 감촉에 당장이라도 잠들 것 같다.

“어우 극락이네.”

이러다 정말 잠들 것 같아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시간도 남았는 데 벌써 잠들기에는 시간이 아까우 니까.

“흠.”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켰다. 그 리고 ‘골드윈’를 검색했다.

[인천 마법 범죄 조직 ‘골드윈’, 불 법 사업 확장 진행 중]

[특무팀 인천 지부, “범죄 조직 검

거에 힘쓸 것.”]

여러 내용이 떠올랐다. 하지만 특 별히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었다.

아쉬움에 스마트 학생 수첩을 내려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정보가 한정 적인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 는 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 지.”

아무래도 골드윈과 혜성의 싸움이

일어나게 될 장소에 한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위치는 회귀 전 뉴스에서 보았기에 대략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 렸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김선우?”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여성은 유아 라였다.

머리에 살짝 땀이 젖은 걸 보아하 니 가볍게 운동을 한 모양이다.

“운동했냐?”

“웅. 너는 어디가?”

“잠깐 바람 좀 쐬러.”

내 대답에 유아라는 고개를 끄덕이 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알았어. 그럼 난 가볼게.”

“어어.”

그렇게 유아라와 헤어지고 호텔 밖 으로 나왔다. 시원한 밤공기를 느끼 며 쭉 걸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싸움이 일어났던 장소는 인천에 있는 ‘진원포’라는 항구였다.

택시를 잡고 진원포에 도착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음.”

텅 빈 바닷가. 조명도 거의 들어오 지 않아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았 다.

분위기만 보면 어디 들키지 않고 단체로 싸움을 하기에는 딱 좋아 보 이긴 한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는데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골드윈 소속 마법사 이철희라고 합니다. 길드장님께

서 꼭 잘 모셔오시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 제든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철희?

이철희라면 저번에 유적지에서 만 난 도굴꾼의 이름이었다.

“괜찮아요. 편하게 해요. 전 김성은 이라고 해요.”

나는 멀리 뒤에 숨어 그들의 대화 를 엿들었다.

이철희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앞 에 있는 김성은이라는 자는 처음 보 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 남자를 보며 ‘인물 간파’

를 사용했다.

이름 : 백은성

나이 : 35

종족 : 인간 상태 : 평안 마력 등급 : S 관심도 : 0

뭐야.

인물 간파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운의 몇 안 되는 한국인 멤버, 백은성이었다.

하지만 백은성의 얼굴은 저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 외모는 40대 이상으로 보이 는 중년의 얼굴이었지만, 실제 그의 얼굴은 20대로 보이는 잘생긴 외모 를 갖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마도구를 이용해 외형을 바꾼 모양이다.

“혜성 길드의 밀입국 시간은요?”

“아마 내일 밤 9시쯤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녀석들이 가진 ‘생명의 잔’은 확실하게 수거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꽤 중요한 물건이 라서요.”

……생명의 잔?

생명의 잔이라면 성유물인 ‘성배’ 의 재료 중 하나였다.

성배는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죽은 자까지 살려낼 수 있는 마법과 과학 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아이 템이 었다.

하지만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원작에 의하면 생명의 잔은 이미 자운이 차지하고 있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런 거였나……

이제서야 이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자운은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 흩어 진 성유물들을 모으고 있었다.

물론 자운의 이름으로 활동하면 그 만큼 감시도 많아져 골드윈같은 다른 범죄 조직의 이름을 빌려 활동을 하기도 했다.

두 범죄 조직이 싸우게 된 이유.

그리고 혜성 길드가 처참하게 패배 했던 이유.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자운은 혜성 길드가 지닌 생명의 잔을 노리고 있었다.

“생명의 잔은 그럼 길드장인 정태 찬 손에 있겠네요?”

“네, 정태찬이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수고했어요. 그럼 내일 까지 정태찬 관련 신상 정보를 따로 부탁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일 9시.

만약 내가 이 싸움에 끼어든다면 생명의 잔을 가로챌 수 있을까.

백은성이 이 사건에 개입된 이상 생명의 잔을 가로챈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명의 잔을 가로챌 수만 있다면 분명 앞으로의 전개에 큰 이점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이걸 어쩌지?’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이 늦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 숨어있으면 다른 골드윈이 일행들에 게 들킬 여지도 있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생각하자.

특무 체험의 2번째 날이 찾아왔다.

아침 식사를 위해 유아라와 최서윤 은 호텔 1충에 마련된 뷔페식당으로 내려왔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접시 위에 가 득 담고 그 둘은 적당한 빈자리에 앉았다.

유아라는 물 한 잔을 마시더니 식 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물끄러미 맞은 편에 앉은 최서윤을 바라봤다.

최서윤은 식사를 하지 않고 무언가 를 찾는 둣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궁금중에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아뇨. 김선우 선배님이 안 보이셔 서요.”

최서윤이 신경 쓰이는 듯 주변을 계속 살피며 말했다.

“금방 내려오겠지. 그리고 걔 가끔 특이해도 은근히 계획적으로 사는 애야.”

유아라의 말에 최서윤이 고개를 갸

웃했다.

어제 김선우와의 대화도 그렇고 이 둘은 자신이 모르는 비밀 같은 것을 공유하는 듯싶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 보이기도 했고.

궁금중이 생긴 그녀는 단도직입적 으로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 선배님은 김선우 선배님이랑은 어떻게 친해진 거예 요?”

“나랑 김선우?”

“네.”

유아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미간을 좁혔다.

“……나 걔랑 그렇게 안 친한데.”

“에이, 그런 것 치고는 두 분이서 대화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많던데 요?”

“내가 다른 애들이랑 대화를 잘 안 하니까. 그렇게 보인 거겠지……

유아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 렸다.

최서윤은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 했다. 유아라의 사교성이 그렇게 좋 지 못한 건 교내에 어느 정도 알려 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유아라에게도 자주 대 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선우였다.

그러고 보니 참 아이러니하다.

생각해보면 김선우도 그렇게 사교 성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선배 주변에는 항상 이서준, 유아라같은 대단한 사람들이 모였다. 신기한 일이다.

“넌 김선우랑 어떻게 친해진 거 야?”

그때 유아라가 역으로 물었다.

“네? 어, 음. 그냥 어쩌다가 그렇

게 됐어요.”

이서준을 따라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 라고 사실대로 대답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워 말을 얼버무렸다.

“그게 뭐야.”

“헤헤. 그냥 뭔가 교내 활동하면서 자주 마주쳤거든요. 그리고 저랑 김 선우 선배님, 특별반 같은 조잖아 요.”

“으음.”

유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저기 선우 선배님 오셨네요.”

최서윤이 식당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유아라도 최서윤을 따라 시선을 돌 렸다.

김선우는 잠을 오래 못 잤는지 눈 에서 살짝 피곤함이 느껴졌다.

밤새 잠 안 자고 다른 짓이라도 한 건가. 혼자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바람 쐰다며 나 가던데.

“ 흐음......

순간 의심병이 발동한 유아라는 식 판에 음식을 담는 김선우를 관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선우는 음식을 담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최서윤이 그를 향해 손을 혼들자 이쪽으로 다가왔다.

“선배님 왜 이리 늦게 내려와요?”

“뭐 어때? 밥만 제때 먹을 수 있 으면 된 거지.”

유아라는 그런 김선우를 바라보다 가 물었다.

“잠 잘 못 잤나 봐? 좀 피곤해 보 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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