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535)

그렇게 한숨을 쉬는 순간.

“김선우! 20초 93!”

가까이에서 익숙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옆에서 부특기 강화계 수업을 하는 2학년들의 모습 이 보였다.

김선우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점점 성장하는구나. 3달 사이 무 려 4초나 단축됐다. 아주 빠른 성장 이다. ”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주특기 강화계 사이에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이다. 다시 생각해도 부특기로 썩히기 아까울 정 도야.”

그 말에 김선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거의 극찬에 가까운 칭찬을 받았음 에도 크게 기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최서윤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 다.

20초 93이면 400m 달리기인가.

20초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내가 400m가 28초쯤 나오니까 무 려 8초의 차이가 날만큼의 큰 격차. 심지어 주특기가 강화계인 전민기보 다도 빠른 속도이다.

저번에 보니까 발현계 능력도 상당 히 뛰어나던데 강화계까지 대단하구 나.

대체 뭘까. 저런 실력을 갖고 있음 에도 성적 순위가 낮은 건.

정말 실력이라도 숨기고 있는 걸 까?

아니면 뒤늦게 숨겨진 재능이 꽃피 우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김선우는 혼자 터벅터벅 걸 어가더니 거대한 나무 그늘 밑에 혼 자 앉았다.

친한 사람이 없는지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공허한 시선으로 멍하니 허공 을 웅시하고 있었다.

최서윤은 그 모습을 보며 흔자 생각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 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김선우라는 사 람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박민예 사건 이후로 조금 우울해하 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큐를 찍지를 않나, 이번엔 인터넷에 자기 홍보를 하다가 걸리지를 않나.

사실 너무 갑작스럽고 이해 안 되 는 괴행동들이라 슬픔을 잊기 위해 억지로 밝은 행동은 한 건 아니었을 까. 라는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을 보니 자 신의 생각이 정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에게 실망할까 봐 멋대로 그렇게 해석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는 경 향은 분명 있었으니까.

“흐음.”

그렇게 혼자 생각하던 그녀의 옆에 송승아가 다가와 앉았다.

“아, 힘들어.”

송승아는 숨을 내쉬더니 슬쩍 최서 윤을 보았다. 그러다 최서윤의 시선 을 따라 김선우를 보았다.

“뭐해?”

“응? 아니, 그냥 있었어.”

“......그래?”

“왜?”

“후후. 아니야.”

그렇게 얘기하던 송승아는 문득 아 침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너 그거 알아?”

“뭐가‘?”

“이번에 김선우 선배님 댓글 사건. 그거 김선우 선배님이 한 짓 아니 래.”

“그래? 아이디가 빼박이던데.”

“아니야. 오늘 직접 스마트 계정까 지 인중하셨대.”

“그럼 그 댓글 단 사람은 대체 뭐 지?”

최서윤이 의문에 찬 얼굴로 중얼거 렸다.

그때 송승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학교에 있는 김선우 선배님 스토커의 짓이 라던데.”

“뭐?”

순간 최서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멍해진 얼굴을 보며 송승아는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이내 최서윤 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빵 터졌다.

“풉. 야! 무슨 스토커야 말도 안

돼. 와…… 진짜 올해 들었던 말 중 에 가장 웃기네.”

최서윤은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가짜 웃음이 아닌 정말 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

송승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 마법사 협회 대테러 특무팀.

조용한 분위기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정현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현수의 등장에 김덕현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배님, 박민예 감식 결과 나왔어 요.”

“결과는?”

“빛 속성 마법이 검출됐대요. 상혼 을 봐서는 발현계 구체 형태라고 하 고요.”

“빛 속성 구체?”

김덕현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빛 속성 마법은 흔하지도 않을뿐더 러, 구체의 형태로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 역시 혼한 편은 아니었으니 까.

“혹시 시험 때 빛 속성 구체를 사 용하는 학생이 있었나?”

“아뇨, 찾아봤는데 없어요.”

“그래? 별일이네.”

정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든 서류를 읽으며 말했다.

“그리고 마법의 강도는 A등급 이 상의 마법 하나. 그리고 온몸 구석 구석에 B등급 마법의 흔적이 발견 됐어요.”

“B둥급 이상의 마법사의 짓이라는 거군. A등급 마법은 아마 마나를 끌어모아서 쏜 것일 테고.”

“네, 제 생각도 그래요.”

김덕현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기습을 했다는 거네. 그것도 계획 적으로.”

드론의 차단, 그리고 오래 압축된 마법 공격.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나오지 않았을 상황들이었다.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

박민예가 마인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것 같고.

학교에 숨은 마인을 처치했다는 큰

공헌을 세웠음에도 전혀 자신을 알 리지 않았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교내 B둥급 이상의 학생은 6 명도 안 될 텐데.”

“네, 2학년에 3명. 3학년에 3명이 전부에요. 그중 빛 속성을 사용하는 학생은 이서준뿐이고요.”

“상흔의 형태는 발현계 구체라고 하니 이서준은 아니겠지.”

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서준은 아니에요. 그리고 다

른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봐도 종 일 몬스터를 사냥했던 것으로 추정 돼서 알리바이는 확실해요.”

“그럼, 학교 외부인의 짓인가?”

“그러지 않을까요? 물론 다른 외부 인의 출입 기록은 전혀 없긴 하지만 요.”

“그래?”

외부인이 라.

출입 기록 없이 그 섬에 몰래 들 어올 방법이 있기는 한가.

김덕현의 머릿속엔 수많은 의구심 이 생겼다.

화요일 오후, 학교 뒷마당에 있는 훈련용 포탈 게이트 앞에서 유적지 탐험 훈련을 위해 2학년 A반 학생 들이 모였다.

“자! 오늘 훈련은 유적지 탐험 체 험이다.”

유적지란 던전, 탑과 함께 특별한 보상을 획득할 수 3대 아이템 획득 지를 말한다.

운이 좋으면 유물급 아이템도 얻을

수 있어 보상의 수준만 따지면 던전 과 탑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유적지에는 특수한 마법 결계 와 봉인에 감춰져 있어 쉽게 찾아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각 유적지 당 20개의 가짜 유물 이 숨겨져 있다. 점수는 획득한 유 물의 개수로 정해진다.”

오늘 우리가 훈련하게 될 유적지 필드는 학교에서 만든 인공 유적지 필드이 다.

당연하겠지만 인공 유적지이기 때 문에 실제 유물 보상 아이템이 나온

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 예외는 있는 법.

나는 원작과 과거의 경험을 통해 유적지에 숨겨진 비밀 공간이 있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나는 그것을 노릴 것이다.

“자, 그럼 모두 준비가 된 것 같 나?”

“네!”

“그래, 좋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 다. 모두 게이트에 입장해라!”

장안철의 외침에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포탈 게이트에 들어갔다.

강한 마력이 내 몸을 감싸더니 수 많은 나무가 우거진 숲에 도착했다.

이곳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뒷산으로 아마 이 주변 일대에 다른 학생들도 있을 거다.

“그럼 어디로 가볼까.”

나는 쇠로 되어 있는 30cm가량의 막대기를 꺼내들었다.

이 막대기의 이름은 ‘유적 탐지기’.

숨겨진 유적을 탐색할 수 있는 아 이템으로 모든 학생에게 한 개씩 지 급되 었다.

마력을 주입하자 막대기가 자석처

럼 어디론가 끌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의 힘을 살짝 빼고 막대기의 방향 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하며 바닥에 유적의 숨겨진 환영 결계가 눈에 들 어왔다.

“찾았다.”

시작되고 5분도 걸리지 않은 이른 시간.

아마 나보다 빨리 유적지를 찾은 사람은 없을 거다.

나는 빛이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 바닥에 손을 짚어 마력을 주입했다.

쿠우우웅....

바닥 전체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 했다. 이내 땅이 혼들리더니 이끼가 잔뜩 낀 네모난 입구가 솟아났다.

“휴.”

나는 입구의 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어둡진 않았다.

계단을 내려오자 복잡한 미로가 눈 에 들어왔다.

이 유적지 안에 20개의 가짜 유물 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유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는 나 도 알 방법이 없다. 쭉 걷다 보면

뭔가 단서가 생기겠지.

그렇게 10분가량을 걸었다. 중간중 간 작은 몬스터가 튀어나왔지만 침 착하게 쓰러트렸다.

“……찾기 힘드네.”

나는 앞으로 쭉 걸었다. 그때 벽에 어떤 문양이 눈에 보였다.

“이건가?”

딱 봐도 수상하다.

나는 곧바로 벽에 다가가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하며 자세히 살펴봤다.

숨겨진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특히 한 벽돌에 많은 마력이 응축

되어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것을 보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찾았다.”

손으로 마력이 응축된 벽돌을 눌렀다. 그러자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오.”

벽 안에 숨겨진 작은 보물상자.

상자를 열자 안에 붉은빛으로 빛나 는 돌덩어리가 있었다.

원작의 그것과 같았다. 이 수업의 점수인가짜 유물, 마석이다.

“좋아. 좋아.”

이걸로 1점. 나는 마석을 휙 하늘 위로 던졌다가 다시 손으로 잡았다. 그러곤 만족스럽게 품 안에 넣었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그리고 이내, 꺾이는 복도에서 이서준과 마주쳤다.

“김 선우?”

“어.”

“뭐야. 너도 되게 빨리 들어왔네?”

“운 좋게 금방 입구를 찾았거든.”

내 대답에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적지는 크기가 넓어 여러 개의 입구가 존재한다. 아마 이 유적지에 만 15개에 가까운 입구가 있겠지.

그때 이서준의 시선이 내 발밑의 빈 보물상자를 향했다.

“뭐야. 벌써 하나 획득한 거야?”

“어. 운이 좋았어.”

“……한발 늦었네.”

이서준이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난 이만 가본다. 내가 오늘 좀 바 빠서.”

“어? 어어. 그래. 가봐.”

나는 손짓으로 인사하고 다른 길을 향해 쭉 걸었다.

유적지 지하 3층.

새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보물 상자

가 하나 더 나타났다.

나는 상자를 열고는 마석을 품 안 에 넣었다.

이것으로 내가 획득한 마석은 총

13개.

“쉽다 쉬워.”

이 유적지에 있는 유물들은 내가

싹 쓸어갔기 때문에 아마 다른 학생

들은 꽤나 심적으로 고생 좀 하고 있을 거다.

특히 이서준.

하필 나와 같은 유적지에 들어와 아마 유물을 거의 챙기지 못해 꽤나 당황하고 있겠지.

얘도 항상 1등만 해서 그렇지 숭 부욕이 장난 아니긴 하니까.

“흐흐.”

나는 기분 좋게 웃고는 다시 이동 했다.

이 정도면 이번 수업 성적 1둥은 확정이니까……

“이제 슬슬 그걸 찾아볼까.”

이 유적지에 숨겨진 비밀.

바로 지하 8충의 유적지가 다른 유적지들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과 8층 어딘가에 숨겨진 실제 유 적지가 있다는 것.

이 인공 유적지는 실제 유적지를 개조해서 만든 유적지다.

그리고 인공 던전 때와 같이 이 유적지에는 숨겨져 있는 비밀의 장 소가 있었다.

물론 이번 일은 원작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단지 오늘 밤, 마법사관학교의 유 적지 탐험 훈련 필드에서 도굴의 혼 적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몇몇 학생 들이 도굴꾼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마주쳤다는 내용이 잠깐 언급됐을 뿐이니까.

이 도굴꾼들은 나중에 있을 에피소 드에서 다시 재등장한다.

그것도 단순한 도굴꾼이 아닌 빌런 의 모습으로.

아마 지금쯤 그들은 지하 어딘가에서 유적을 찾고 있겠지.

털린 유적지의 위치가 지하 8충에 있다고 했으니 계단부터 찾아야 할

텐데.

“계단이 어닸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깄네.”

나는 계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 다.

“뭐야? 여기도 털렸잖아!”

빈 보물 상자를 바라보며 이서준은 황당해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빈 상자를 발견한 것이 벌써 5번째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적지 를 돌아다녔지만 획득한 유물은 겨 우 2개였다.

이대로라면 10위권은커녕 20위권 성적도 힘들게 분명했다.

“……이거 설마 전부 김선우 짓인가.”

이서준은 진지하게 의심했다. 처음 유적지에서 발견한 보물 상자도 김 선우에 의해 열려 있었으니까.

거기다 결계를 빠르게 해제하는 능 력과 예측하기 힘든 그의 유틸성을

생각해 봤을 때 이 모든 게 김선우 의 짓일 거라는 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씁. 지금이라도 다른 유적지를 찾 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 를 저었다.

“새로운 유적지를 또 언제 찾아.”

그리고 찾아봤자 새로운 유적지 역 시 다른 학생들에 의해 이미 털려있 을 확률이 높았다.

수업이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 으니까.

“쩝.”

어쩔 수 없다.

이곳에서라도 더 열심히 찾아야겠 지.

그렇게 미로를 쭉 걷는데 지하로 향하는 계단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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