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마다 공부해서 그래.”
“너 수업시간 말고 따로 공부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아무튼.”
유아라는 별생각 없는지 고개를 끄 덕였다.
“아, 맞다. 너 그거 알아?”
“뭐가?”
“연속 두 번 이론 만점인 건 마법사관학교 역사상 네가 최초인 거.”
최초라고? 그건 몰랐는데.
“그래? 신기하네.”
“반웅이 그게 뭐야? 나름 기록을 세웠는데 안 기뻐?”
“기쁘긴 한데 실기가 가장 중요하 지 뭐. 이론 1위 어디다 써먹냐?”
내 대답에 유아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부심 좀 가져. 나라면 엄청 뿌듯할 거 같은데.”
“사람마다 다른 거지 뭐.”
“선우야! 아라야!”
그때 윤하영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 이번에 실기 18위 했어!”
“오. 진짜? 축하해.”
나는 진심을 다해 축하했다. 틈틈
이 윤하영에게 마법을 가르친 보람 이 있었다.
“나 이번에 최종 52위에서 32위로 올랐어! 선우야 네 덕이야!”
윤하영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야. 네 재능 덕이지. 노력도 엄청나게 하기도 했고.”
물론 잘 가르친 내 덕도 있다.
원작보다 성적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다음에 내가 보답으로 밥 사줄게! 비싼 거로!”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과제 제출해주시고 오늘 수업 내용은 시험에 나오니 다들 꼭 복습 하시길 바랍니다.”
오후 첫 교시 몬스터 생물학 수업.
나이든 늙은 교사가 수업 종료를 알렸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과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주말 동안 고생해서 만든 과제를 제출했
다.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 작했다. 교사는 신경 쓰지 않는 둣 학생들의 과제를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음. 과제는 모두 기간에 맞춰 잘 하신 것 같네요.”
교사의 한마디에 교실은 다시 고요 해졌다. 그런 변화가 재밌는지 교사 가 미소를 지었다.
“모두 수고했어요. 시험 성적도 나 왔다죠? 성적 잘 나오신 분들은 축 하하고 잘 못 나오신 분들은 다음 시험에서 꼭 성공하기를 빌게요.”
“네에.”
“자, 이제 자유롭게 쉬셔도 됩니다. 아, 참. 그리고 김선우 학생?”
교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동시 에 몇몇 학생이 교사의 시선을 따라 나를 바라봤다.
“방과 후에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요?”
……나랑?
“네,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몬생 교사는 빙긋 웃더 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멍하니 교실 앞문을 바라보았
다.
뭐지?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는 몬생 교사의 부름을 잊지 않 고 교무실을 찾았다.
“어, 선우야. 무슨 일이니?”
“선우 학생 왔어요?”
내가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 은 교사가 나를 반긴다.
아무래도 평소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하다 보니 교사들 사이에서 이미 지 관리가 잘된 이유일 것이다.
나는 평소와 같이 밝게 미소를 지 으며 교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 고 몬스터 생물학 교사에게 다가갔 다.
“어, 선우 학생. 이리 와요.”
몬생 교사의 부름에 자리에 앉았 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요?”
“음. 무난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수업 태도나 과제 퀄
리티가 상당히 좋아서 교사들 사이 에서 선우 학생 이야기가 자주 나와 요. 저도 선우 학생을 참 좋게 보고 있고요. 특히 최근 이서준 학생이랑 함께 조사해온 ‘거대 검은 돌 도마 뱀’ 분석 과제는 정말 보고 놀랐어 요. 논문으로 제출해도 될 정도예 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몬생 교사가 씨익 미소를 짓다가 말했다.
“선우 학생을 부른 건 다름 아니 라, 이번에 이론 시험에서 또 만점
을 받았잖아요? 그것 관련으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이론 만점 관련으로?
대체 뭘까. 전혀 감이 오지 않는 다.
눈앞의 몬생 교사가 마법사관학교 의 이론 과목 부장직을 맡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다름 아니라 선우 학생한테 촬영 요청이 들어왔거든요.”
“촬영 요청이요? 저한테요?”
전혀 예상 못 한 말이 튀어나오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네. SCS 방송국 아시죠? SCS 계 열의 작은 다큐 채널이 있는데 거기 서 선우 학생 관련 다큐를 제작하고 싶다고 하네요.”
심지어 다큐란다.
“방송국에서 왜 저를?”
“아무래도 선우 학생이 이론 성적 이 1등이고, 또 교사들 사이에서 평 이 좋아서요. 그래서 방송국 쪽에서 홍미가 생겼나 봐요.”
내가 잠시 입을 다물자 몬생 교사 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꼭 촬영할 필요는 없어요. 방송 탄다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유명해지다가 괜히 귀찮 은 일에만 휩쓸릴 수도 있기도 하잖 아요?”
“흐음……
“보니까 영 내키지 않으신 것 같네 요. 그럼 거절로 알고 있으면 될까 요?”
“아니요.”
“네?”
“저 할래요. 촬영.”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교사의 표정
에 놀람이 가득했다.
나는 씨익 웃었다.
다큐 촬영이라.
한 번에 큰 포인트를 벌 기회인데 이걸 놓칠 순 없지.
금요일 마법사관학교의 대도서관 4 층 자습실.
시험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이곳 엔 학생들이 얼마 없어 한적한 분위 기가 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론 성적의 비중이 작 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시험 까지 끝났으니 사람이 없는 건 당연 한 일이었다.
“흐 O 으 ”
— 丁그 .
최서윤은 그곳에서 한창 공부를 하 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 1학년 1차, 2차 중간 시험에서 이론 1위였다.
집안의 엄격함 때문에 실기뿐만이 아니라 이론에서도 무조건 1위를 유 지해야 하기에, 그녀는 꼭 시험 기 간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 틈틈이 공부하곤 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의 공부를 마치고 잠시 허리를 펴며 휴식을 취했다. 멍하니 도서관 문을 바라보고 있는 데 그때 도서관 문이 열렸다. 그리 고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등장했다.
김선우.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건 처음이었다.
‘도서관도 오시는구나.’
괜히 친한 척 말을 걸어볼까 고민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공부를 위해 모인 지금, 불 필요한 친목질은 서로에게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때 였다.
“......엉?”
김선우의 뒤로 4대의 카메라와 방 송국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 따라오기 시작했다.
“뭐야.”
갑작스러운 카메라의 등장에 도서 관 안의 몇 없는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김선우를 향했다.
김선우는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 는 움직임으로 고고하게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이론 과 목 교과서를 펼쳤다.
“저는 이틀에 한 번은 꼭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편이에요.”
카메라에 대고 김선우가 말했다.
최서윤은 황당해서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거의 매일을 도서관에 출석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도서관에서 김선우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거 김선우 아니냐?”
“와. 대박! 무슨 촬영하나 본데?”
주변에 잠깐 소란이 일었지만, 김 선우는 의식하지 않고 공부를 시작 했다.
중간중간 카메라에 대고 그윽한 시 선을 보낼 뿐이었다.
“저는 늘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요. 사실 교과서에는 모든 게 있거든 요.”
« o.«
최서윤은 갑자기 속이 니글니글해 졌다. 평소 자신이 알던 김선우와는 너무 딴판인 데다 말투와 눈빛마저 엄청 느끼했다.
최근 박민예의 일로 슬퍼하던 김선 우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사람이 잠깐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참나.”
그렇게 혼자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김선우와 그때 눈이 마주쳤다.
김선우를 따라 카메라맨들의 시선 도 그녀를 향했다.
갑작스러운 시선들에 살짝 당황하 는데 카메라맨이 그녀에게 다가갔 다.
“혹시 최서윤 학생입니까?”
“......아, 네.”
“오! 활약상은 잘 들었습니다! 1학 년 이론, 실기 둘 다 1위! 혹시 인 터뷰 가능하실까요?”
“……어떤 인터뷰요?”
카메라맨의 시선이 김선우를 향했다.
“혹시 김선우 학생을 아시나요?”
“네…… 뭐, 대충은요.”
“학교 최초 2연속 이론 만점 학생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1학년 종합 1위 학생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 지 궁금합니다.”
“어…… 대단하다? 부럽다?”
“컷!”
카메라맨이 외쳤다.
“말 더듬지 말고 제대로 칭찬 한
번만 해주세요. 극찬!하는 느낌으 로!”
[254명의 사람이 당신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금, 토, 일. 3일간 촬영을 진행했더 니 학교에 소문이 쫙 퍼졌다.
내 스마트 학생 수첩에는 무슨 촬 영이냐며 묻는 메시지가 폭발하는 중이다.
[오오! 김선우! 뭐냐구~]
[야 방송 타니까 좋냐? 부럽다 진 짜.]
나는 메시지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는 인터넷 화면을 보았다.
“방송이 일주일 뒤라고 했지.”
나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다큐 예고편을 켰다.
댓글은 0.
“흠……
이왕 힘들게 촬영한 거, 최대한 많 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는 데 관심 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서준 관련 다큐는 댓글이 몇천 개씩 달리던데.
나는 홍보를 위해 예고편을 다른 커뮤니티에 올렸다.
[제목 : 마법사관학교 최초 이론 1 위 연속 2번이라는데 천재 아님?]
[영상 첨부]
반응은 딱히 없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갖 고 본방을 봐주면 된다는 마음가짐 으로 열심히 홍보했다. 일단 포인트 는 벌긴 벌어야 하니까.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열심히 홍보 하자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ksw 저거 홍보충 또 왔네. 진지하 게 본인 맞는 거 같은데? 저 사람 작성글보셈. 전부 김선우 이야기임. 그리고 닉네임도 ksw임긔긔]
[에이 설마 거거 닉네임 저렇게 해 놓고 대놓고 홍보한다고?]
[긔긔거대박이네. 진짜 본인이면 개 관종인데 거거박제간다거거거]
“웅‘?”
“야! 김선우! 인터넷에 글 올린 거 진짜 너냐?”
월요일 오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향한 학 생들의 관심이 뜨겁다.
어제 내가 인터넷에 올린 게시글의 아이디가 추적당하며 사람들의 관심 을 끈 탓이었다.
덕분에 꽤나 민망한 상황이 생겼 다.
[4,263명의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을 갖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물론 짭짤하게 포인트를 획득 하긴 했지만.
“나 아니야.”
“에이, 너 맞잖아.”
“자.”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의 화면을 켜 내 앞에 모인 학생들에게 보였
다.
[swkl234]
“이게 내 스마트 계정 아이디야.”
“……뭐야. 이거 진짜 너 꺼야?”
“어, 잘 봐.”
“진짜네. 뭐지?”
이 세계는 1인당 단 하나의 스마 트 계정을 소유할 수 있었다.
스마트 계정이란 스마트 기기를 사 용해 인터넷이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계정으로 모든 사이트 에서 게시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거나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의 추가 계정은 보안법 상 불법이다.
법이 너무 꽉 막힌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세계는 마인과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들에게 보여준 swk라는 계정은 김진우의 신상정보 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마트 계정 이다.
외부자의 혜택의 힘으로 기기의 계
정을 잠시 바꿨다.
“그럼 인터넷에 김선우로 도배한 애는 누구냐?”
“그러게? 되게 옛날부터 활동한 것 같던데 이 학교 사람 아니냐?”
“와 대박! 김선우한테 스토커 있나 본데?”
“헐. 그럼 스토커 설마 우리 학교 에 있는 거야?”
……이건 또 뭔 소리냐?
나는 황당한 시선으로 내 앞의 학 생들을 바라봤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로 계속
떠들고 있었다.
저들의 대화를 따라가자니 괜히 머 리가 아파서 관뒀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며 장안철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자! 자리로 돌아가라!”
학생들은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 갔다. 장안철은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공지를 하겠다. 이번 주부 터 2차 선택 체험 활동이 있다.”
2차 선택 체험 활동.
이전에 했던 용병 체험과 같은 실 제 현장에서 직업을 체험하는 수업 이었다.
“이번에도 선택지는 총 3개다. 특 무, 탑, 유적지 탐험. 이렇게 총 3가 지가 있지.”
장안철의 말에 학생들이 눈을 빛냈 다. 야외 수업은 언제나 그렇듯 인 기가 많다.
선택 체험 활동 같은 수업은 더더 욱 그렇다.
나도 이번 선택 활동은 마음이 편 하다.
저번 용병 체험과 달리 이번 체험
활동은 그렇게 심각한 사건이 터지 지 않기 때문이다.
“화요일 밤 12시까지 스마트 학생 수첩을 통해 어떤 체험 활동을 할지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럼 이상.”
“네에!”
오후. 마법사관학교 앞 운동장.
50명의 1학년 A반 학생들이 체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전민기! 21초 25!"
“와! 대박!”
1학년 2위, 전민기의 400m 달리기 기록에 학생들 사이에서 놀란 반응 이 터졌다.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최서윤 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봤다.
그녀의 기록은 28초. 무려 7초의 차이였으니까.
‘저쪽은 주특기가 강화계니까. 어 쩔 수 없겠지.’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찾았지만 그 래도 1위 수성에 대한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