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애절한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 를 보며 마음속에서 꿈꾸던 그녀의 작은 로망이었으니까.
« o 99
M....
잠시 고민을 하던 최서윤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조금 용기를 가져보는 게 어때요?”
최서윤의 말에 김선우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용기?”
“아니, 맨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 고 직접 다가서진 않잖아요.”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박민예 선배님 말하는 건데요. 혹 시 아닌 척할 생각이면 포기하시는 게 좋아요. 매번 뒤에서 안쓰러운 눈으로 박민예 선배님 지켜보고 있 는 거 다 아니까.”
김선우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 떤 의미의 한숨인지 그녀는 알지 못 했다.
다만 그 한숨에 담긴 깊은 고뇌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좋아하는구나.
“됐다.”
그때 김선우가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20분 지났어. 이제 가도 돼.”
“ 아.”
최서윤은 슬쩍 스마트 학생 수첩으 로 시간을 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딱 20분이 지 났다. 정말 칼 같은 시간이었다. 대 체 무슨 이유로 마석까지 쥐여주며 이런 부탁을 한 것인지…….
그때 였다.
부스슥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숲 사 이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김선우와 최서윤은 그곳으로 시선 을 돌렸다. 풀숲 밖으로 교사들이 걸어 나왔다.
“서윤이랑 선우구나.”
“아, 안녕하세요.”
최서윤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곳은 웬일이세요?”
최서윤이 교사들에게 궁금증을 담 아 물었다.
원래 시험의 진행대로라면 교사들
은 내일 시험 종료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이 주변 일대의 드론들이 모두 먹 통이 됐거든.”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지 나가면서 몇 개 봤어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고의로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지금 조사하고 있어.”
“으음.”
최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우 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시험이 종료되었다.
학생들은 집합 장소인 무인도 바다 에 있는 포탈 게이트 앞에 모였다. 다들 자신이 수집한 마석을 자랑하 느라 바빴다.
“딱한명이안 오네요.”
“전화도 안 받아요?”
“네. 통신 차단도 전부 풀었는데 안 받아요.”
교사들은 박민예를 찾고 있었다. 계속 그녀가 연락되지 않자 교사들
이 혹시 무언가 사고라도 터진 게 아닐까 불안해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났음에도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자, 학생들 사이에서 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 박민예 선배님 아직도 안 왔 다는데?”
“뭐야? 길 잃으셨나?”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점점 소란이 커지자 교사들은 모여 서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학생들은 보내죠. 교사들은 이곳에 남아서 박민예 학생을 계속 찾아보도록 하고요.”
“그래요. 일단 드론부터 최대한 풀 어보죠.”
그렇게 회의를 마친 교사들은 학생 들 앞에 섰다.
“자자, 조용. 다들 2차 중간시험을 보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한 명씩 포탈 게이트를 이용해 돌아가시면 됩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주말이 지 나 한 주의 첫 시작인 월요일이 되
었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장예의 시 체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교내에 퍼 졌다.
학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 만 무엇보다 더 놀랐던 건, 장예가 마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였다.
언론에서는 또다시 신나게 마법사 관학교를 까기 시작했다.
‘마인의 위협에 노출된 어린 학생 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 가 계속 퍼졌다.
물론 언론의 말도 사실이었지만 마법사관학교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은 없잖아 있었다.
현재 인간들의 기술력으론 인간으 로 분장한 마인을 구분할 방법이 전 혀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도 그녀에 관한 미스테 리 특집을 방송했다.
무인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 는가. 드론은 갑자기 왜 먹통이 되 었는가.
마인, 박민예는 왜 폭주를 했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죽었는가…….
“자자! 다들 소란피우지 마라!”
월요일의 종례 시간.
장안철은 굳은 얼굴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최근 교내 분위기가 홍흉한 건 알 고 있다. 그리고 마인의 위협에 불 안해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으니 차 분히 결과를 기다리기를 바란다.”
“네에.”
“그럼 오늘 종례를 마치겠다. 모두 수고했다.”
장안철이 나가고 학생들은 각자 자 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와.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그러게.”
나는 짐을 싸는 도중에 슬쩍 이서준과 신영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몇 달간 가까이 지낸 박민예가 마인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원래라면 훈련장으로 향했겠지만 조금 피로가 남아서 오늘 하루는 쉬 기로 했다.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터벅 터벅 소파로 걸어갔다. 몸을 던지듯 앉고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으 피곤해.”
남은 시간 잠이나 잘까.
“......아, 맞다.”
나는 아공간에서 투박한 모형의 푸 른 보석을 꺼냈다.
이건 장예를 처치하고 그녀의 주머 니에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외부자 의 혜택을 발동해 보석의 성능을 확 인했다.
[푸른 웅축핵(유물)]
설명 : 주변 전자기기를 마비시킵 니다.
[사용 효과]
►방출
‘푸른 응축핵’에 마력을 주입하여 lkm 내의 모든 전자기기를 30분간 마비시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30일
내구 : B
무려 유물이다.
효과는 장예를 처치할 때 사용하던 ‘통신 마비 키트’와 비슷했다. 하지 만 범위라던가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완벽한 상위 호환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엄청 좋네.”
30일이라는 긴 재사용 대기시간이 조금 거슬렸지만 1회용인 ‘통신 마 비 키트’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라면 다음에 또 비싸게 ‘통 신 마비 키트’를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것 하나로 엄청난 포 인트의 절약도 가능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고는 소 파에 드러누웠다.
십마회의 은신처는 역대 최악의 분 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천해는 무릎 을 꿇고 두려움에 찬 얼굴로 머리를 박고 있었다.
왕은 숨 막힐 듯 싸늘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천해. 이게 무슨 일이지?”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지원을 했는데 실패하다 니. 천해. 네 덕에 A등급 혈석과 유 물을 잃었다.”
“죄송합니다!”
왕이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 리고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서준, 그 어린 인간 하나 죽이 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왕이시여! 장예의 죽음엔 의문이 많습니다!”
“의문……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거나 그런 시답지 않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어라.”
“이서준을 죽이지 못한 건 괜찮다. 어차피 그를 죽이려 했던 건, 성진 의 복수를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못해도 대결계에 있던 18세 인간이 누구였는지는 알아냈어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할 건 가?.”
스으으으...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천히 천해의 몸 을 감싸더니 그의 목을 조이기 시작 했다.
“커헉!”
천해의 목을 조이는 건, 왕이 가진 어둠의 마력이었다.
마력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천해의 몸을 옥죄었다.
“와, 왕이시여! 자, 자비를!”
“와, 왕이시여!”
스으으윽……
그의 목을 조이던 어둠의 마력이 사라졌다.
숨통이 트이자 천해는 컥컥대며 숨 을 가쁘게 들이마셨다.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네 나름 의 방법을 찾아 대결계의 18세 인 간에 대해 계속 조사해라. 그리고 이서준의 암살은 당분간 포기한다.”
“아, 알겠습니다!”
천해는 다시 머리를 바닥에 박았 다.
“으음……
최서윤은 최근 김선우가 계속 신경 쓰였다.
다름 아닌 최근 박민예에게 일어난 여러 미스테리한 사건들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로 얼마나 상심 이 클까. 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 을까. 혹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진 않았을까…….
“……괜찮으실까.”
“뭐가?”
최서윤의 멍한 중얼거림에 그녀의 옆에서 함께 복도를 걷고 있던 송승 아가 물었다.
“아, 아니야.”
그녀의 말에 송승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최서윤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지만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봤 다.
“뭔데. 말해봐.”
“아니,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됐고.”
말하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캐묻는 건 그녀의 취미가 아니었다. 때가 되면 언젠간 말하겠지.
그렇게 둘은 계속 복도를 걸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다음 수업 장소인 발현계 훈련장이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2학년 남학생들 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최서윤을 보더니 괜히 아는 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서윤 후배님!”
“아, 네. 안녕하세요.”
“발현계 훈련장 가시나 봐요.”
“넵, 다음 수업이라서요.”
최서윤은 평소와 같은 가짜 미소를 지으며 2학년 들의 관심을 받아줬 다.
남학생들의 이유 없는 관심은 언제 나 있던 일이라 그녀는 아주 자연스
럽게 대웅했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를 끝내고 다시 복도를 걸으려는데 복도 끝에서 익 숙한 얼굴의 남학생이 모습을 드러 냈다.
김선우였다.
“어? 김선우 선배님!”
최서윤의 부름에 김선우가 그녀를 바라봤다.
“어, 안녕.”
평소와 같은 무감정한 인사였다. 남들은 자신만 보면 관심을 끌고 싶 어서 밝게 인사하는데 항상 저 선배 만 자신에게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
였다.
그것마저 박민예 때문이라고 그녀 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평소와 같은 무감정한 목소리도 그녀는 슬프게 들렸다.
“괜찮으세요?”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그녀 역시 집안의 간섭과 과도한 교육열 로 지치고 외로울 때가 많았다.
아주 작은 위로라도 힘든 사람에게 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뭐가?”
“……아니에요.”
“또 혼자 이상한 말 하네. 너 좀 알아듣게 얘기 좀 해. 주어 좀 그만 뼤먹고.”
갑작스러운 시비에 최서윤은 눈웃 음을 유지한 채 이를 악물었다. 예 민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이해해야 지.
“선배님, 다음 수업도 파이팅!”
최서윤이 씩씩하게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할 말 없으면 간다.”
김선우는 무심하게 다시 제 갈 길
을 걸었다.
최서윤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 라보았다. 언제봐도 사람이 참 사교 성이 없다.
송승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최서 윤을 바라봤다.
“너 뭐야?”
“응? 왜?”
“설마 갈아탔어?”
“뭔 소리야?”
일주일의 시간이 또다시 흘렀다.
장예 사건은 학생들에게 빠르게 잊 혀졌고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마법사관학교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사이에 생긴 특별한 변화도 있었다.
[등장인물 ‘최서윤’에게 당신에 대 한 관심도가 상승합니다.]
[등장인물 ‘최서윤’의 당신에 대한
관심도 Lv : 2]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나를 향한 최서윤의 관심도가 2로 상승한 것.
갑자기 무슨 이유로 관심도가 상승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포인트 를 벌었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월요일인 오늘.
2차 중간시험의 성적표가 나왔다.
[2-2차 중간 평가 성적]
[김선우][2-A]
[실기 - 64위]
[이론 - 1위]
[최종 합산 - 60위]
[‘2회 연속 이론 1위’ 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론 1위와 실기 64위.
이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실기 성적 은 상당히 아쉬웠다.
아무래도 가장 큰 점수를 주는 몬 스터 헌터 시험에서 장예에게 신경 쓴 나머지 몬스터 사냥을 거의 못 한 탓이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깟 시험 성적보다 이서준 주변에
있는 위기부터 해결하는 게 가장 중 요했으니까.
“너 이번에 실기 몇 위했어?”
그때 유아라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갑자기 내게 관심을 갖는지 모 르겠지만 대답해줬다.
“64위.”
“뭐야? 왜 이리 낮게 나왔어?”
유아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반웅을 보였다.
“몬스터 헌터 시험 때 운이 나빠서 몬스터를 거의 못 마주쳤거든.”
“으음…… 그래도 그렇지. 스테이
지 탈출 시험을 압도적으로 1등 했 는데 64위가 나올 수 있나?”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넌 이번에 몇 위했어?”
“......2위.”
스테이지 탈출 시험에서 1위를 했 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점수를 주는 서바이벌에서 이서준에게 크게 밀린 모양이다.
나는 쓰게 웃었다.
“힘내라.”
“64위가 2위한테 힘내라는 게 뭐
야. 남 위로하지 말고 너나 챙겨.”
듣다 보니 그렇네.
“근데 너 이번에도 이론 만점이 야?”
“어. 아마도?”
제대로 점수는 확인하진 않았지만, 정답만 써 내렸으니 아마 만점이 맞 을 거다.
“와. 대단하네. 훈련장에 항상 있는 거 보면 공부할 시간도 없는 거 같 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