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장예의 모습을 보았다.
드론이 멈추자 장예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품속의 마나 엘릭서를 꺼내 그대로 입에 털어 넣 었다.
“으 ”
마나 엘릭서 특유의 비릿한 맛과 함께 마나가 몸에 차올랐다. 그리고 포인트 상점으로 미리 구매해둔 상 급 마력 은폐의 비약을 연달아 마셨 다.
이것으로 내가 마법을 사용해도 아 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스으으
나는 손 위로 빛 속성 마법 구체 를 구현했다.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동그란 마법 구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투 지속 시간이 짧은 내 특성상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거기다 지금 장예의 마력 둥급은 A.
최대한 빠르고 계산된 움직임으로 장예를 암살해야 한다.
긴장되네.”
우우우웅!
손 위에 떠 오른 마력이 휘몰아치 며 강한 소리를 울렸다.
나는 장예를 향해 손을 뻗어 조준 했다.
손끝의 떨림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 했다.
파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공기를 찢는 거대한 소리가 터졌다.
그 여파로 내 몸이 뒤로 크게 밀 려났다.
내 손을 떠난 마법 구체가 장예를
향해 빠르게 치달렸다.
푸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끄아아아으]1”
피어오르는 검은 먼지와 연기 속에서 장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공격은 적중했다.
나는 곧바로 에어워크를 이용해 그 녀를 향해 달려가며 대자연의 심장 을 발동했다.
[사용 효과, ‘대자연의 심장’을 발 동합니다.]
[1 분간, 마나 회복 속도가 1000% 중가합니다.]
두근!
나는 장예에게 돌진하면서 손 위로 3개의 작은 마법을 구현했다. 그리 고 보이지 않는 연기 속으로 그것을 모조리 방출했다.
마법은 바람을 이끌고 연기를 향해 나아갔다. 강한 돌풍이 불자 연기가 바람에 휩쓸리며 감춰졌던 장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몸 반쪽이 사라진 채, 괴로 워하고 있었다. 빛 속성의 영향인지 재생력이 느려져 있었다.
나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우우웅!
다시 한번 내 몸 위로 빛 속성을 머금은 5개의 마법 구체가 떠올랐다.
“……끄으윽!”
장예의 살벌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에게 마 법을 방출했다.
슈우우우웅!
빠르게 날아가는 마법 구체.
동시에 장예의 눈 전체가 검게 물 들며 폭주를 일으켰다.
“끄아아아!”
강력한 마력이 그녀의 몸에서 폭발 했다. 그 마력의 폭발은 내가 쏘아 낸 마법을 집어삼켰다.
나는 잠시 그녀에게서 한 발짝 떨 어 졌다.
“역시 A등급이라 쉽게 안 죽네.”
“……김선우.”
그녀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날아 갔던 그녀의 몸이 느린 속도로 재생
되고 있었다.
만약 빛 속성 마법이 그녀의 재생 력을 억제하지 못했다면 상황은 꽤 복잡하게 흘렀을 것이다.
A등급 마인답게 순식간에 몸을 회 복시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을 테 니까.
내가 빛 속성 마법을 다룰 수 있 게 된 건 다시 생각해도 천만다행이 었다.
재생할 시간을 줄 생각은 없기에 나는 다시 빛 속성 마법을 구현해 그녀에게 쏘아냈다.
쾅!
쾅!
콰아앙!
“크으윽!”
장예는 필사적으로 마력의 장막을 생성하며 공격을 버텨내었다. 하지 만 아무리 A등급의 마인이라고 한 들, 재생력을 발동시킨 마인은 방어 에 상당히 취약해진다.
말 그대로 선공 필승.
결국, 이어지는 나의 공격에 장예 는 힘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남
은 한쪽도 얼마 안 가 무릎을 꿇었다.
나는 아공간에서 마수 소환서를 집 어 뱀을 소환했다. 뱀은 빠르게 장 예를 향해 날아가며 몸을 조였다.
“윽!”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시 한 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마나를 한곳에 압축했다.
은빛의 마법 구체가 내 손 위에서 일렁였다.
상황은 이제 끝이다.
장예를 확실히 묶었으니 이제 머리 를 터트리면 된다.
“......너냐.”
장예가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짧 은 물음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분기 가 느껴졌다.
“뭐가.”
“김진우.”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예는 반쯤 뒤집힌 눈 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네. 처음 나에 게 접근했던 이유. 신기할 정도로 비어있던 과거. 마인을 간파하는 눈. 시험에서 보인 실력과 달리 낮았던 순위.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똑같은
외모.”
혼자 중얼거리던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가 김진우였어.”
“맞아. 내가 김진우야.”
“개새끼…… 시발새끼……
그녀의 검게 물든 눈가에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내 그 물은 그 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 모 습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인의 눈물.
원작에서조차 한 번도 다뤄지지 않
았던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나는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장예는 억울한 듯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용서 못 해…… 네놈이 아빠 를……! 죽여버릴 거야!”
이렇게 보니 딱하다는 감정이 들기 도 한다.
마인에게도 인간처럼 감정이 있고, 가족애 또한 있다.
인간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걸 제외 하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마인이 인간에게 해가 되는 존재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의 손에 죽은 인간만 해도 수 십에 달하니까.
그녀가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그녀도 누군가의 가족을 잃게 만들 었다.
그러니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 리면 안 된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콰아앙-!
다시 한번 마법의 폭발이 일었다.
마인의 검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장예의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녀의 몸을 조이던 뱀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A급 빌런, ‘장예’를 단독 토벌했습니다.]
[스토리의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85 상승합니다.]
[빛 속성을 이용한 A등급 마인 처
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빛 속성 숙련도가 23%상승합니다.]
이것으로 사건을 하나 해결했다.
기쁨을 느낄 법도 했지만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다.
마지막 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산을 내려오자 마나 엘릭서의 부작 용인 마력 탈진 현상에 빠졌다.
온몸이 축 처지며 호흡이 가빠졌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쉴 곳을 찾 았다. 아니, 그것보단 쉴 곳이 아니 라 어디 숨어야 할 곳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다. 밤이 되 면 몬스터들은 더욱 흉포하게 변한다.
- 크으으으
그때 어디선가 몬스터의 울음소리 가 들렸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 었다. 울음소리를 들어보니 맹수형 몬스터가 아닐까.
긴장감이 온몸을 스쳤다. 맹수형 몬스터라면 다른 몬스터들보다 더욱 흉포한 성격을 갖고 있다. 항상 굶 주려있는 그들은 먹잇감이 보이면 바로 달려든다.
혹시 놈들이 나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닐까 떨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몸 을 움직였다. 발소리를 들키면 큰일
난다.
바스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어디선가 빠른 속도로 움직 이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커어어엉!
풀숲 사이에서 눈이 3개가 달린 작은 늑대가 튀어나왔다. 나는 허리 춤의 마비 단검을 휘두르며 곧바로 반응했다.
카아앙!
늑대는 내 단검에 아주 얕은 상처 를 입으며 떨어졌다. 이내 경계하는 움직임으로 내 주변을 천천히 돌았 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녀석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후.”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나는 저 늑 대 상대로 이길 가능성이 없다.
불안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부작용이 끝나기까지 28분.
아니, 약물 특성이 부작용 시간을 줄여주니 18분 정도…….
그 시간 동안 내가 버티는 게 과 연 가능할까.
그때 였다.
가까운 곳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졌
다. 이내 하얗게 빛나는 얼음 창이 풀숲을 가로지르더니 늑대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 끼에에엥!
“어? 선배님?”
최서윤이 풀숲에서 걸어 나왔다.
얼굴에 먼지가 잔뜩 끼었지만, 아 름다운 외모는 여전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 누 구보다 이쁘게 보였다.
“어, 어어. 안녕. 반갑다. 정말로.”
“안녕하세요. 아, 죄송해요. 이 몬 스터 선배님이 잡으려고 했던 건지 몰랐어요.”
아무래도 그녀는 눈앞의 늑대를 내 가 노리고 있었다고 착각한 모양이 었다.
“그래도 제가 잡았으니 마석 양보 는 못 해 드려요.”
최서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 가져.”
내 대답에 최서윤은 미소를 짓더니 손 위로 얼음 칼을 구현했다. 그리 고 능숙한 솜씨로 늑대의 배를 갈라
붉게 빛나는 작은 마석을 끄집어내 었다.
“음. 크기가 생각보다 더 작네.”
최서윤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쭈욱 기 지개를 켰다.
“으으음! 선배님은 마석 좀 모으셨 어요?”
“아니. 거의 못 모았어.”
“엥? 여태 뭐하셨는데요?”
“……몬스터 찾아다녔지.”
“아, 운이 나쁘셨구나. 이 늑대도 겨우 찾으셨을 텐데 제가 괜히 뺏어
서 미안한데 어쩌죠?”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내 대답에 최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선배님도 파이팅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최서윤은 몸을 돌 렸다.
“야 잠깐!”
다급한 나의 목소리에 최서윤이 다 시 몸을 돌렸다.
“네‘?”
“딱 20분만 내 옆에 있어 줘.”
“왜요?”
“……말동무가 필요해서.”
최서윤이 눈을 찌푸렸다. 가짜 미 소를 항시 착용하는 그녀도 저런 표 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 다.
“저 바쁘거든요? 1학년 1등 사수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만 약 저 1둥 못하면 집안에서 아주 난리가…… 에휴 말을 말아야지.”
“거래하자.”
내 말에 최서윤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거래요? 아니 거래가 필요할
정도로 말동무가 필요해요?”
“어, 필요해. 꼭.”
마력 탈진에 빠진 지금, 내게 어떤 위기의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 니까.
하지만 최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그 어떤 것보다 저한텐
1등이 중요해서요.”
“하급 마석 6개 중급 마석 1개.”
“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이것들을 얻으려면 못해도 3시간은 숲을 싹 뒤져야 할 것이다.
고작 20분의 시간만 나에게 투자 하면 3시간을 버는 셈이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이 제안은 거절하 지 못할 것이다.
최서윤은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뭔가 사기당하는 기분인데. 혹시 전민기한테 지령받은 건 아니 죠?”
전민기, 1학년 2위의 이름이었다.
“아니니까 걱정 마.”
“그럼 선불 주면 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머니에
서 마석 7개를 꺼냈다.
내가 가진 마석의 전부였다.
최서윤은 씨익 옷더니 세상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우리 무슨 얘기 할까요?”
타닥타닥
숲속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스산 한 바람이 바닥의 나뭇잎을 휩쓸었다.
그 앞에서 최서윤과 김선우는 멍하 니 앉아있었다.
“그래서 무슨 얘기 하려는 건데요. 왜 아까부터 말이 없어요.”
“사실 다른 할 얘기가 있는 건 아
니야.”
“근데 왜 마석까지 주면서 말동무 하자고 한 거예요?”
최서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 로 물었다.
“그런 게 있어.”
“……뭔가 수상한데.”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최서윤이 힐끔 김선우를 바라보았다.
김선우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모닥 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그의 시선엔 공허함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몸에 힘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마석까지 쥐여주면서 말동 무가 되어달라는 건 분명 무언가 고 민 상담이 필요한 것 같은데.
‘고민이라. 대체 뭘까.’
마석까지 받은 지금, 그녀는 말동 무 역할을 확실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그가 자신의 고민을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도 출해야 한다.
그때 최서윤은 박민예가 떠올랐다.
몇 달간 김선우의 행동을 지켜본 결과, 그는 항상 박민예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옆에 이서준이라는 완 벽한 남자가 있어 차마 가까이 다가 가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 만 했다.
그 모습은 지켜보는 자신이 다 안 타까울 정도였다.
세상에 이런 사랑도 없었다.
하지만 최서윤은 그런 모습이 조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 랑을 받는 박민예에게 약간의 질투 심이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