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여기도.”
찰칵.
그렇게 내 말에 따르며 사진을 찍 던 이서준이 힐끔 나를 바라봤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입 을 꾹 다물고 있었다.
“뭐 할 말 있냐?”
“……아니. 또 어디 찍을 곳 있 어?”
“음…… 이쪽.”
찰칵.
“이 정도면 됐어.”
“오케이. 와. 근데 우리가 A등급 몬스터까지 잡아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러게.”
나도 바위가 갑자기 무너질 줄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만족한다.
“아 맞다. 이거 가죽 잘라내자.”
거대 검은 돌 도마뱀의 가죽은 매 우 단단해 방어구의 재료로 많이 사 용된다. 거기다 희소성까지 높아 가 죽의 가치는 못해도 5천만 원이 넘 어간다.
“아, 이거 가죽 엄청 비싼 거였 지?”
“웅. 최소 5천만 원.”
“......대박.”
이서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더니 황급히 검을 이용해 가죽 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가량의 가죽 해제 작업 이 끝나자 이서준은 탁탁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 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 을 챙겼다.
“다됐네. 이 가죽은 내가 갖고 있 다가 팔면 말해줄게.”
“알았어. 그럼 이제 논문 써야지. 지금 당장 카페 가서 쓸까?”
이서준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약속? 누구랑?”
이서준의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만나려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한세연이다. 하지만 이서준에게 솔 직하게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냥 아는 사람.”
“음. 그래? 뭔가 궁금하네.”
나는 대답 대신 쓰게 웃었다.
“뭐. 여튼, 비밀인 거지?”
마치 너에게 거창한 비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특별히 묻지 않아 주겠다는 뉘앙스다.
한마디 할까 고민하다가 비밀인 건 맞기에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그래. 비밀이니까 묻지 마라.”
오후. 김진우의 의상으로 갈아입고 약속 장소인 서울의 유명 커피 체인 점에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실루엣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엄청 수상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인사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근데 지금 모습 엄청 수상한 거 알아요?”
내 말에 눈앞의 여성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보았다.
맑고 투명한 두 눈동자가 보였다.
“그래도 이게 시선이 덜 끌려요.”
그녀의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한세연.
대한민국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 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거기다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으니까 다른 유명 인들보다 더 알아채기 쉬울 거다.
“먼저 물건부터 건네드릴게요.”
한세연은 책상 밑에서 낑낑거리더 니 무거운 케이스 가방을 책상 위로 올렸다.
.............만드느라 진짜 엄청 고생했어요.”
찌릿. 한세연이 나를 노려봤다.
나는 미안함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가방을 열어보니 마나 엘릭서 100병이 눈에 보였다.
“고생했습니다. 바쁘셨을 텐데.”
“아, 그리고 부탁하신 대로 지속시 간을 늘린 대신 효과를 줄인 마나 엘릭서도 섞여 있어요. 밑에 4줄이 그 포션들이에요.”
그녀 말대로 가방의 맨 밑에 4줄 에 있는 포션들은 색깔이 달랐다.
[증폭된 마나 엘릭서2(C)
분류 : 포션
설명 : 복용 시, 20분간 마나 회복 속도가 150% 중가합니다. 지속시간 이 끝나면 10분간 마력 탈진 현상 에 빠집니다.
지속시간은 늘어나고 부작용 시간 은 확 줄었다. 이건 내가 마법 훈련 을 위해 부탁한 포션이었다.
지금 사용하는 마나 엘릭서는 효과 가 뛰어난 만큼 지속시간과 부작용 시간에 문제가 많아 훈련용으로 사 용하기엔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마나 회복 증가량이 확 줄었다는 거지만 어디까지나 훈 련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니 만족해야 겠지.
그럼 슬슬 포상을 줘볼까.
나는 품 안에서 일월약학서를 꺼냈 다.
한세연은 책을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게 뭐예요?”
“선물이에요.”
선물이라는 말에 한세연은 흥미로 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내게 책을 받더니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 했다.
처음엔 흥미롭게 지켜보던 그녀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이내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보며 말했다.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자세히는 말 못 합니다.”
내 대답에 한세연이 눈가를 좁히더 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죠. 정상적인 방 법으로는 이걸 구했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건 과거 에 도난당한 물건으로도 유명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한세연은 이 책에 대해 자세히 아는 모양이다.
하긴, 그녀가 약사인 만큼 당연히 관심이 있었겠지.
한세연은 말을 이었다.
“이 책의 가치는 꽤 높아요. 과거 일월문이 만들어낸 약제 중 일부분 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특별 한 기술이 숨겨져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던 한세연이 다시 책의 내용을 확인했다.
“흐음…… 내용 보니까 위조는 절 대 아닌데.”
“그래서 선물은 마음에 드십니까?”
내 질문에 한세연은 잠시 고민에
찬 얼굴을 했다.
“마음에 드는 걸 떠나서 조금 무섭 죠. 약사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듣 던 물건이 덜컥 손안에 들어오니 까.”
한세연이 심각한 얼굴로 책을 내려 놓았다.
“억지로 안 가져도 됩니다.”
나는 책을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 었다. 그때 한세연이 날렵한 움직임 으로 책을 낚아채더니 품에 끌어안 았다.
“아뇨.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한세연이 빙긋 웃었다. 두 눈에 담
긴 탐욕이 느껴졌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의 피에 흐르는 한성가의 탐욕.
“이건 제가 가져갔다가 고이 모셔 두고 유용하게 써먹을게요.”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해하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세연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평소에 대체 무슨 일을 하 시길래 이런 걸 구한 거예요?”
“아까 말했잖아요. 비밀이라고.”
“참 비밀 많네……
한세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 는 조용히 웃었다.
“아, 그리고 오늘 일 역시 비밀로 부탁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 죠?”
떳떳하게 얻은 물건이 아니니 알아 서 입조심 하자는 말이었다. 한세연 은 내 말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는지 미소를 지었다.
“알죠.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기술 로 신약 개발해도 한성제약의 오리 지널이라고 할게요. 어차피 알아볼 사람도 없을 테니.”
나는 홉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안다.
장예는 계속해서 당시 결계 안의 소문을 조사했다. 그러나 전처럼 여 기저기 사람들에게 물으며 정보를 얻는 건 자제했다.
아무래도 학교 내에서 그녀의 인지 도가 높다 보니 그녀의 수상한 행동 에 이상함을 느끼고 소문이 날 가능 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서준에게 확 물어보고 싶 네.”
하지만 십마회에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이서준은 이미 성진과의 대 화에서 그날의 사건에 대해 무언가 수상한 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만약 그에게 대놓고 묻는다면 의심 받을 게 분명할 터.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지금, 그 에게 의심 살 행동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그녀가 아직 이서준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신영준과 이현주에게 그날의 일을 묻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언제까지 신영준과 이현주에 게 접근하지 않을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날의 사건을 묻는 건, 이서준을 죽이기로 한 몬스터 필드 서바이벌 당일로 정했으니까.
“근데 살짝 불안하네.”
장예는 문득 김선우를 떠올렸다.
사건의 조사가 진전되지 않자 답답 함을 느끼고 홧김에 김선우에게 그 날의 일을 물었었다.
자신이 알기엔 신영준과 이현주를 제외하면 이서준과 가장 가까이 지 내는 사람이 김선우였으니까.
괜히 물어본 게 아닐까 조금 걱정 이 들었지만 이내 걱정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녀가 본 김선우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흐음. 근데 김선우 걔도 뭔가 수상하단 말이지.”
장예는 슬쩍 인터넷 기사에 뜬 김 진우의 사진을 보았다.
닮았다.
수염과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 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많이 닮았다. 특히 눈이 완전 똑같이 생겼다.
솔직히 말해서 쌍둥이도 이렇게 똑 같이 생기진 않았을 것 같다.
“……이게 우연으로 가능한가.”
하지만 이미 과거에 결론이 나왔다.
김선우는 김진우와 관계없다. 김선 우의 개인 정보 기록을 찾아본 결과 김진우와의 연관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물론 몇 가지 이상한 점은 있었지만.
머리를 썼더니 괜히 머리가 아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 안 서랍을 열어 붉게 빛나는 돌, 혈석을 쥐었다.
며칠 시간을 들여 홉수했더니 처음 보다 크기가 제법 작아졌다. 지금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다.
장예가 마력을 주입하자 혈석이 붉 게 빛나며 그 안에 담긴 마력이 그 녀의 몸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홀러 2차 중간
시험이 시작되었다.
중간시험은 이전과 같이 일주일간 진행된다.
일정을 살피자면 첫날인 월요일부 터 수요일까지 이론 과목 시험과 실 전 과목 시험을 보고 목요일부터 금 요일까지 1박 2일로 몬스터 필드 서바이벌을 하게 된다.
당연하겠지만 성적에 가장 큰 비중 을 차지하는 것은 몬스터필드 서바 이벌이다.
1박 2일간 야생에서 진행되는 시 험인 만큼 종합적인 능력을 평가하 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월요일부터 수요일 오전 까지 다양한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 냈다.
체력장, 마력 제어능력 평가, 필기 시험 둥 다양한 시험을 보았는데 몇 주간 내 마력 능력이 향상된 만큼 대부분에 시험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자! 그럼 2인 스테이지 탈출 시험 을 시작하겠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2시.
학교 뒷산 옆에 있는 인공 탑 앞 에 50명의 학생이 모였다.
오늘 볼 시험은 스테이지 탈출 경
쟁시험.
탑이나 던전에서 등장하는 특수 스 테이지에서 탈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이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개인이 아닌 팀 플 시험이라는 거다.
“조는 랜덤으로 정해진다. 물론 순 위 보정 점수가 있으니 순위 차이가 크게 나는 사람과 조를 짜게 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점수 산정 방 식은 얼마나 빨리 스테이지에서 탈 출했는가. 또 몇 위로 탈출했는가 다.”
시험을 설명하던 교사가 우리를 둘
러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조를 발표하겠다.”
과연 누구랑 될까. 실력 있는 애와 걸리면 좋을 텐데.
“1조. 이서준, 정태훈.”
이서준은 누군지 잘 모르는 엑스트 라와 같은 조가 되었다.
“2조. 유아라, 김선우.”
유아라는…… 나?
새하얀 공간.
원형으로 된 작은 방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와 모형들이 깔려 있었다.
이곳은 바로 스테이지 탈출 시험의 첫 스테이지.
나와 유아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뭔가 좁네. 방도 새하얘서 단순하 고.”
“그러게.”
“그나저나 너랑 같은 조가 될 줄 생각 못 했는데.”
유아라가 슬쩍 나를 보더니 말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건 아니고. 오히려 괜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나는 살짝 웃었다. 나 도 유아라와 같은 조가 된 건 마음 에 들었다. 그녀의 실력도 실력이지 만 1등을 향한 집념을 높게 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표출하기 위해 한마디를 했다.
“너 시험에서 이서준 못 이겨봤 지?”
그녀의 역린을 건드려서 그런 건지 유아라는 곧바로 눈을 가늘게 뜨며 반응했다.
“뭐? 너 지금 뭐라 했어?”
“기대해. 오늘 처음으로 이서준 이 기게 해줄 테니까.”
“너 웃긴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 야?”
유아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래 봬도 스테이지 탈출은 자신 있거든.”
내 대답에 유아라가 나를 흘겨보더 니 피식 웃었다.
“어디 자신감만큼 할 수 있는지 한 번 지켜볼게.”
“그래, 놀라지나 마.”
“음. 그럼 뭐부터 해볼까?”
유아라의 물음에 나는 쭉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 출구부터 찾자.”
스테이지 탈출 시험은 방 탈출 카 페와 비슷하다. 출구를 찾고 탈출을 위한 단서를 모아야 한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단서를 찾았 다. 벽에는 다양한 문양과 의도를 알 수 없는 특이한 물건들이 눈에
보였다.
회귀 전의 경험이 조금씩 떠오르려 한다. 그러니까 출구가…….
“이거 아니야?”
그때 유아라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엔 미완성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어어. 이거 맞아. 마법진.”
새록새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마법진을 완성하면 스테이지에서 탈출할 수 있다.
물론 이 마법진은 외부자의 혜택을
이용해도 완성할 수 없다. 외부자의 혜택은 해석이나 풀어내는 것에 능 할 뿐, 무언가를 완성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단서를 찾아서 이 마법진을 완성 해야 해.”
“마치 이전에 해본 것처럼 말하 네.”
“딱 보면 보이잖아.”
유아라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보 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래? 단서라.”
그렇게 나와 유아라는 스테이지 탈 출을 위한 단서 찾기에 돌입했다.
사실 외부자의 혜택이 마법진만 완 성 시킬 수 없을 뿐 다른 특수한 도구들은 전부 눈에 보였기에 금방 금방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여깄다.”
나는 바닥의 푸른 빛의 구슬을 집 었다.
구슬에 빛나는 한 부위를 손으로 누르고 마력을 주입하자 마법진의 일부가 떠올랐다.
“오.”
유아라는 신기하단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걸. 출구 마법진에 입력해봐.”
“응.”
유아라가 마법진을 보더니 마력을 이용해 그대로 출구의 마법진에 그 리기 시작했다. 형태는 딱 들어맞았 다. 마법진의 일부가 복구되었다.
시작이 좋네.
“남은 것도 빨리 찾아보자.”
나는 계속해서 주변을 샅샅이 둘러 봤다. 외부자의 혜택으로 밝게 빛나 는 물건이 보이면 바로 집어서 단서 를 확인했다.
“또 찾았다.”
“어, 벌써?”
“응. 여기 벽에 구멍 보이지? 여기 에 아까 구슬을 박으면 돼.”
유아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구멍에 구슬을 박았다.
번쩍!
“어? 어어. 뭐야 진짜네?”
벽에 떠오른 마법진의 일부를 보며 유아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넣는 걸 어떻게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