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535)

또래 중엔 적수가 없었고, 이서준 과 함께 역대급 천재라 불리는 유아 라 역시 이서준에 비하면 부족한 감 이 있었다.

천재는 고독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 럼, 경쟁자는 늘 자신이었고 항상 자기 자신과 싸워왔다.

그런 이서준이 약간이지만 나에게 경쟁심을 느낀다고 한다.

이서준의 이야기를 끝까지 본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이서준을 바라봤다. 이서준은 등을 보인 채

잠을 자고 있었다.

흑염 용병단 사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 옥상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정제원.

그는 길드, ‘여명의 칼날’ 소속으로 유아연의 명령을 받아 이서준을 감 시하고 있었다.

그때 옥상 문이 열리며 유아연이 등장했다.

“늦게 왔네?”

“잠깐 일이 있어서. 그런데 뭐, 특 이 사항 같은 건 없었어?”

“이서준한테는 아닌데 그 주변에서 작은 사건은 있었어.”

“작은 사건?”

정제원의 말에 유아연이 고개를 들 었다.

“그 누구더라…… 저번에 누나 동 생 도와줬다고 한 남학생 있잖아.”

“김선우?”

“어어, 김선우!”

“김선우가 왜?”

“걔랑 최서윤이 어떤 현상 수배범

한테 기습 공격을 당했더라고.”

기습 공격?

정제원의 말에 유아연이 흥미를 느 꼈다.

“그런데 김선우, 얘 제법이더라?”

“왜?”

“거의 혼자서 상대를 쓰러트렸어. 상대가 못해도 B등급 이상의 마법사로 보였는데.”

B등급을 흔자? 유아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기하네. 내가 알기로는 학교에서 순위가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

“그래? 몇 위인데?”

“72위.”

“뭐?”

순간 정재원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 게 떴다.

“에이, 말도 안 돼. 절대 72위의 실력이 아니야. 못해도 5위권 실력 이었어.”

“……그 정도야?”

“웅! 진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 어. 5위 실력이 아니라, 아.무.리 못 해도 5위권.”

저렇게 흥분하면서 말할 정도라니.

눈앞의 남자, 정재원은 말이 가볍 긴 해도 과장해서 말하는 성격은 아 니었다.

그렇다는 건, 김선우에게 정말 뛰 어난 실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성적은 72위. 하지만 실력은 최소 5위권이라…… 뭔가 이상한데.

“확실해? 옆에 최서윤도 있었다며. 최서윤이 혼자 한 건 아니고?”

“아니야. 내가 하도 신기해서 똑똑 히 봤어. 그리고 최서윤은 빙속성이 고 김선우는 무속성이라 멀리서 봐 도 누구의 마법인지 구분이 돼."

“……그렇긴 하겠지.”

그러다 번뜩. 유아연의 머릿속에 허무맹랑한 한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유아연의 표정이 자칫 심각해졌다.

“갑자기 왜 그래?”

“조용히 해봐.”

유아연은 자신이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설의 가능성에 대해서.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꺼내 맞춰보 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퍼즐이 잘 들어맞았다.

아니 신기할 정도로 너무 잘 들어맞 았다.

퍼즐 모형이 원래 이게 아닌가 싶 을 정도로.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 닭살 이 돋았다.

“누나?”

유아연은 뒤돌더니 옥상 문을 열었다.

“어? 누나 어디가?!”

“잠깐 조사할 게 있어!”

유아연은 계단을 타고 달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가지의 가설

로 가득차 있었다.

김선우가 이서준과 자주 엮이는 이 유.

낮은 순위에도 실력을 숨기는 이 유.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면 이 모든 게 설명이 된다.

김선우.

어쩌면 그 아이는 이서준을 감시하 기 위해 투입된 자운의 멤버일지도 모른다.

— 삐비비빅!

알람 소리와 함께 번뜩 잠에서 깨 어났다.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등장인물 ‘유아연’이 당신에게 의 구심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건 뭐야?

유아연이라면 여명의 칼날?

“뭔데......

너무 뜬금없는 메시지에 잠시 정신 이 멍해졌다. 절대 잠기운에 멍해진 게 아니다.

유아연이 내게 의구심이라니.

무슨 이유로?

“맞다. 이서준은……

나는 옆을 돌아봤다. 이서준은 이 미 침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얘는 또 어디 간 거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며

이서준이 들어왔다.

“ 일어났네?”

이서준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아직 오전 7시도 안 됐는데 아침 부터 땀을 빼며 운동을 한 모양이 다.

……엄청 성실하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어제 와 같이 흑염 용병단 사옥에 들어갔

몇몇 용병들은 우리를 알아보더니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제 뭔 사건이 터졌다면서요?”

“이야. 이서준 학생. 실물로 보니 진짜 잘생겼네요.”

“아, 감사합니다.”

우리는 용병들의 인사를 적당히 받 아주고는 2층 방으로 이동했다.

어제와 같이 용병단 6팀장, 정하준 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의뢰를 훌

륭하게 해결하셨더군요.”

정하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로 우리 에게 말했다.

“그리고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다 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잘 해결했다 고 하니 다행입니다.”

정하준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우선 오늘 여러분들에 게 의뢰를 맡기고 싶어 하는 의뢰인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드디어 두 번째 의뢰의 시작이다. 원작의 흐름과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자’가 의뢰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들어오시죠.”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우리에게 걸어왔다. 선글라스를 쓴 금발의 백 인 여성이었다. 여성은 우리를 둘러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어머~ 반가워요. 저는 샬럿이에 요.”

나는 눈앞에 여성을 응시했다. 언 뜻 보면 그저 평범한 백인 여성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샬럿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진짜 이 름이 아니다.

그녀의 본명은 ‘베르트’.

테러 단체, 자운의 핵심 인물로 수 많은 인간을 학살해온 살인귀였다.

물론 눈앞의 여성은 사진으로 보았 던 베르트의 외모와는 다르지만, 변 장 마도구를 이용하면 외형쯤이야 쉽게 바꿀 수 있었다.

“한국말이 유창하시죠? 샬럿님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하시는 미술가이십니다.”

실제로 베르트는 미술가로도 활동 하고 있다. 그녀의 특이한 작품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우와. 정말요? 신기하다.”

“네, 이분이 한국 마법사관학교 학 생들에게 꼭 의뢰를 맡기고 싶다고 하셔서 오늘 샬럿 님의 의뢰를 맡게 되실 겁니다.”

베르트가 우리들의 앞에 나타난 이 유는 간단하다.

자운의 중요한 인물인 이서준을 가 까이에서 지켜보고 그의 능력을 시 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이서준은 자운에게 아주 특별한 존 재였다.

세계엔 아주 극비로 숨겨져 있지 만, 이서준은 13년 전 세계를 공포 에 떨게 했던 한 ‘인물’의 유일한

연관점이기 때문이다.

“자〜 제가 맡길 의뢰는 아주 간단 합니다. 경호와 경비예요.”

“경호와 경비요?”

“네! 물론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거기 다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엘리트잖아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내 옆의 애들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경호 와 경비를 해야 할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현주가 궁금한 둣 그녀에게 물었

“사실 최근에 제 작품을 도난당했 거든요. 그것도 세 번에 걸쳐서요. 도난당한 날짜를 계산해보니 오늘이 나 내일, 도난범이 다시 찾아올 가 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그것을 방지 하려고요.”

저 말은 모두 거짓이다.

자신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직접 이서준과 겨루어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연극일 뿐이다.

실제로 도난범의 정체는 자운의 멤 버들이 었다.

“아하. 그런데 신고는 하셨나요?”

“네, 했죠. 그런데 잘 풀리지 않았 네요.”

베르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현주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정하준은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그럼 여러분들은 오늘과 내 일. 이틀간 샬럿님을 경호해주시면 됩니다.”

“네!”

우리는 베르트와 함께 포탈 게이트 를 타고 강원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가 준비한 차를 타고 30분가량 을 이동했다.

어느덧 우리는 자연과 어우러진 화 려한 건축물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너무 멋지다.”

“여기가 제가 한국에서 지내는 별 장이에요.”

나는 주변을 쭉 둘러봤다.

이곳은 전 세계에 숨겨진 수많은 자운의 아지트 중 하나였다.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네.”

“그러게. 진짜 멋지다.”

이서준과 최서윤, 이현주는 계속해 서 감탄했다.

나는 적진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크게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운이 위장 의뢰를 맡긴 건, 우리 를 해할 목적으로 한 게 아니기 때 문이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목표는 이서준 의 관찰이다.

“홈……

그나저나 자운의 아지트 하니 떠오 르는 게 있다. 바로 그들이 숨겨놓 은 보물이다.

만약 그것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앞으로의 활동에 큰 이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괜찮으세요?”

그렇게 혼자 심각한 고민을 하던 사이,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았는지 베르트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괜찮습니다. 잠깐 멍을 때렸네 요. 하하.”

나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베르트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조금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 데.”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내 완고한 대답에 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불편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 든지 말씀해주세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베르 트.

원작의 묘사만큼이나 자신의 성격 을 철저하게 숨기는 그녀의 연기력 은 대단했다.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우리는 베르트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의 내부는 외 부만큼이나 화려하고 웅장했다.

유명 미술가의 저택이라는 컨셉을 아주 훌륭하게 지켜냈다.

“여기 그림들이 바로 제 작품들이 에요.”

“오……

벽에는 수많은 작품이 걸려있었다.

미술에 대해선 잘 모르는 나였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관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중 절반은 그녀의 작품 이 아니다. 세계 어딘가에서 테러 활동을 하며 훔쳐 온 것들이었다.

“선배님. 저기 좀 봐요.”

최서윤이 친근하게 툭툭 팔을 건드 렸다.

“저기 꽃 그림 보여요? 색감 너무 이쁘지 않아요?”

“……난 잘 모르겠는데.”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전체적 인 느낌만 알지 색감 같은 디테일한 것까지는 잘 모른다.

“쯧. 센스가 없으시네.”

“그런 거 알아서 어따 쓰냐?”

“에휴. 됐어요. 말을 말아야지.”

최서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서준에게 다가갔다.

이서준은 그래도 미적 감각이 있는 지 최서윤과 대화가 잘 통하는 모양 이었다.

그렇게 둘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데 중간에 이현주가 슬쩍 끼어들었다.

최서윤과 이현주의 시선이 잠시 교 차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방금 시선

으로 기 싸움이 시작된 느낌이다.

그 모습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적진 한가운데에 온 것도 모르고 태평하구나.

“……이곳에 이서준이 있단 말이 지.”

강원도의 화려한 건축물 앞.

어둠 속에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정체는 s등급의 마인, 성 진.

멸마의 아이로 의심되는 이서준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직접 이곳에 오게 되었다.

“흐흐. 조용하고 좋군.”

성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스럽 게 웃었다.

조용하기도 하지만 인적이 드문 것 이 누군가를 죽여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을 장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포탈 게이트와의 거리도 꽤 멀어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나며 싸 움이 터진다 해도 마법사 협회가 개

입하는데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라고 만들어 놓은 건물 같군.”

이곳이라면 어떤 변수도 없이 깔끔 하게 이서준을 죽일 수 있으리라.

베르트의 안내에 따라 짐을 푼 뒤, 식당으로 향했다.

건물이 워낙 넓어서 걷는데 꽤 시 간이 필요했지만 구경할 것이 많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여기저기 비싼 물건들을 홈치고 다 니더니 돈을 떡칠했구나. 라는 느낌 이 들었다.

“오……

식당에 도착하자 일자로 길게 이어

진 식탁이 보였다. 그 위에는 먹음 직한 음식들이 나열되어 군침을 돌 게 했다.

“자, 다들 앉아요.”

우리들은 식탁에 앉았다.

내 맞은편에는 최서윤과 이현주가 앉았고, 내 옆에는 이서준이 앉았다.

“와. 진짜 맛있겠다.”

이서준이 식탁 위의 음식을 보며 중얼거렸다.

식탁 위에는 잘 익힌 스테이크와 샐러드, 고급 회 둥 사람이라면 누 구나 좋아할 만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맞은편의 최서윤과 이현주 역시 침 을 꿀꺽 삼켰다.

“이거 용병 일을 하러 왔는데 힐링 하러 온 기분이네.”

“……그러게요.”

“부담 갖지 마시고 드세요. 어쩌면 밤에 고생하실 수도 있잖아요?”

“넵, 잘 먹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베르트의 말에도 학생 들은 크게 의심하지 않고 힘차게 대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요리사의 실력이 꽤 뛰어난지 음식

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으…… 너무 맛있다.”

식탐이 강한 이현주가 행복한 표정 을 짓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베르트는 그런 우리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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