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하 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최서윤을 바 라봤다.
최서윤은 힐끔힐끔 이서준을 의식 하는 둣 그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나보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정 작 저 두 명을 가장 신경 쓰는 건 최서윤이었다.
“신경은 본인이 가장 많이 쓰면서 무슨……
“네? 저요? 아, 아닌데요?”
어쭈? 발뺌하는 것 봐라.
“너 이서준 좋아하잖아.”
“……아닌데요. 동경인데요.”
동경…… 뭐, 아직까지는 그 감정 에 더 가까울 수도 있나.
원작에서도 최서윤이 이서준에게 본격적으로 푹 빠지는 건 특별반에서의 몇몇 사건을 겪은 이후였으니 까.
하지만 지금도 그녀가 이서준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는 건 부 정하진 못했다.
“흐음.”
생각해보니 이번 특별반 최서윤의 조가 나로 바뀌면서 스토리가 바뀌 었다.
원작에서는 특별반의 조별 활동을 계기로 최서윤이 이서준에게 푹 빠 지게 되는데 최서윤과 내가 같은 조 가 되면서 어쩌면 이 전개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서준은 최서 윤이라는 강력한 조력자를 잃게 되 며 오히려 회귀 전보다 생존율이 더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거 어쩌지?
내가 최서윤을 이서준이랑 좀 이어 줘야 하나…….
나와 최서윤은 몬스터 필드를 돌아 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캠핑장 주변에 위치한 작은 뒷산.
우리는 교사에게 몬스터 필드에 대 한 설명과 몬스터의 서식지, 그리고 몬스터 사냥법에 관한 설명과 강의 를 듣고 실전에 투입됐다.
교사는 각 조마다 임무를 부여했는 데 우리는 거대 혹 도마뱀을 잡아
녀석의 가죽과 뿔을 잘라오는 임무 였다.
특별반 수업 첫날부터 왜 이런 걸 하는지는 이해가 안 되지만 아무튼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다.
“……이 넓은 곳에서 거대 혹 도마 뱀을 무슨 수로 찾죠?”
최서윤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다.”
“승아는 괴물 요정을 잡아 오는 임 무가 걸렸다던데.”
“괴물 요정? 뭐야 난이도 차이가
너무 큰데.”
괴물 요정은 다양한 서식지에 분포 해 있어 몬스터 필드에서 흔하게 찾 을 수 있는 몬스터다.
반면 거대 흑 도마뱀은 산속을 샅 샅이 뒤져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희귀한 몬스터였다.
이거 오늘 안에는 찾을 순 있으려 나.
“그나저나 벌써 하늘이 깜깜하네 요. 날씨도 춥고.”
현재 시각은 오후 8시 30분. 해는 이미 저버린 지 오래다.
특히 야밤에는 몬스터들이 더 포악
해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몬 스터 필드를 걸을 땐 더 신경 써야 한다.
“조심해서 걸어.”
“네 에.”
-그으으으...
어디선가 몬스터의 소리가 울렸다.
“으. 무섭다.”
최서윤이 살짝 몸을 움츠렸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마법으로 주
변을 좀 밝힐까요?”
“안 돼. 몬스터 도망친다.”
“아, 그러네요.”
최서윤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 20분가량 을 계속해서 걸었다. 나는 그녀를 힐끔 흘겨보고는 말했다.
“최서윤.”
“네?”
“너 이서준이랑 잘 되게 도와줄 까.”
“......네?”
내 뜬금없는 말에 최서윤의 두 눈
에 의문이 깃들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물론 내가 도와준다고 해서 둘이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서준의 곁에는 이현주라는 강력 한 소꿉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처럼 최서윤이 이서준 에게 푹 빠지게 된다면 앞으로의 전 개와 이서준의 생존에 큰 안정감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는 최서윤을 밀어줄 의 향이 있다.
최서윤은 한동안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선배님, 혹시 뭐 잘못 먹었어요?”
그렇게 말하던 최서윤이 뭔가 깨달 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알았다. 박민예 선배님 때문에 맞 죠? 이서준 선배님한테 땟길까 봐?”
최서윤이 능글능글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말했다.
설마 또 장예 얘기가 나올 줄 생각도 못 했는데.
“야. 너……
그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다 가 그만두었다.
“에휴. 마음대로 생각해라.”
“제가 선배님이랑 박민예 선배님 밀어줄까요?”
최서윤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보 니까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
“필요 없어.”
“왜요? 저랑 이서준 선배님을 밀어 줄 생각까지 하시는 거 보면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신 거 같은데.”
“시끄러.”
“부끄러워하시긴.”
—으어어어어!
그때 어디선가 몬스터의 비명이 들 렸다.
“엇? 다른 조가 몬스터 하나를 토 벌했나 봐요.”
“그러게. 우리는 언제 찾아서 토벌 하냐.”
그렇게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던 때.
갑자기 오한이 느껴졌다.
동시에 멀리 어디선가 쿵쿵 뛰어오
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최서윤 의 손목을 낚아채 내 쪽으로 끌어당 겼다.
“꺅!”
수우웅!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방금 최서윤 이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몬스터의 기습이었다.
나는 몬스터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 을 돌렸다.
검은 빛의 도마뱀이 몸을 웅크린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 선배님! 아파요!”
“아, 미안.”
나는 잡고 있던 최서윤의 손목을 놓았다. 나도 모르게 마력으로 강화 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괜찮으려나. 꽤 아팠을 텐데.
“괜찮아?”
“으. 네, 일단은요.”
최서윤이 손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러더니 방금 우리를 습격한 몬스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거대 흑 도마뱀?”
“맞아. 전투 준비해.”
거대 흑 도마뱀.
임무를 위해 우리가 찾던 몬스터였다. 안 그래도 찾느라 꽤 힘들었는 데 고맙게도 우리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처리할게. 혹시 모르니 뒤에서 서포트 해줘.”
“네!”
나는 손에 위로 마법 구체를 구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거대 흑 도마뱀은 그르르 거리며
나를 탐색하는 움직임을 취하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카아앙!
나는 침착하게 도마뱀을 향해 마법 을 방출했다. 도마뱀은 유연한 움직 임으로 몸을 비틀더니 내 공격을 피 해냈다.
“쳇!”
나는 곧바로 후속 공격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강력한 마력
의 기운이 느껴지더니 얼음의 창 하 나가 녀석을 향해 쏘아졌다.
슈우우웅!
콰직!
얼음의 창은 빠른 속도로 녀석을 다리를 꿰뚫었다. 녀석은 괴음을 지 르며 바닥을 굴렀다.
“오.”
깔끔한 마법 솜씨에 감탄이 나왔다. 과연 1학년 1위라는 건가. 하지 만 한가롭게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마력을 끌어모아 새로운 마법 을 구현했다.
녀석의 움직임이 제한된 지금. 녀 석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타이 밍이니까.
우우웅.
내 손 위로 떠오르는 마법 구체.
손을 뻗어 녀석의 미간을 향해 방 출했다.
거대 흑 도마뱀과의 전투가 끝난
뒤.
나와 최서윤은 도마뱀의 사체를 해 체하고 있었다.
최서윤은 마법으로 구현한 얼음의 칼로 능숙하게 도마뱀의 뿔과 가죽 을 잘라냈다.
피가 튀겨서 징그러울 법도 한데 최서윤의 움직임에는 겁이 없었다.
“이거면 됐죠?”
“웅. 어느 정도 된 거 같네. 수고 했어.”
“으~ 드디어 끝났다.”
최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크
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더니 나를 힐끔 보며 입을 열 었다.
“아, 맞다! 선배님, 아까 고마웠어 요.”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나는 그녀 를 바라봤다. 최서윤은 특유의 밝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거대 흑 도마뱀의 기습으로부터 구 해준 것에 대한 감사겠지.
그리고.
[등장인물 ‘최서윤’이 당신에게 고 마움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뜨는 걸 보아하니 예의상 하는 말도 아닌 모양이다.
“됐어. 돌아가기나 하자.”
내 대답에 최서윤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선배님 아까 반응 속도가 되 게 빠르시던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 어요? 무슨 강화계 마법사 보는 줄.”
최서윤이 살짝 붉어진 손목을 어루
만지며 말했다.
“내 반응이 빠른 게 아니라 네가 방심한 거야.”
“에휴. 칭찬해줘도 참.”
최서윤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경쓰지 않 고 집합 장소인 캠핑장을 향해 쭉 걸었다.
시간이 흘러.
나와 최서윤은 어느덧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거대 흑 도마뱀의 뿔과 가죽을 제 출하자 박정완은 놀란 표정을 지었
다.
“오. 찾기 힘들었을 텐데 생각보다 빨리 끝내셨네요? 최서윤 학생, 김 선우 학생. 수고했어요.”
“넵.”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와 최서윤은 적당한 빈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는데 예상외로 임무를 마친 학생들이 몇 없었다.
이서준 역시 아직 돌아오지 않았 다.
이서준과 장예가 단둘이 있다는 것 에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지금의 이서준은 장예에게 기습당한다고 해
도 쉽게 패배할 만큼 약하지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데 때마침 이서준과 장예가 돌아왔다.
이서준의 손에는 ‘거대 맹수의 이 빨’이 달려 있었다. 이서준은 박정 완에게 그것을 보였다.
“이서준 학생, 박민예 학생. 수고했 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휴식하시면 됩니다.”
“네.”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예 와 바닥에 앉았다.
잘생기고 이쁜 두 남녀가 함께 있
으니 한편의 명화처럼 보인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아하 니 꽤 친해진 모양이다.
나는 힐끔 최서윤을 바라봤다.
의외로 최서윤은 이 둘에게 관심 없는지 스마트 학생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조금 심각하 다.
‘뭔지 알겠네.’
원작에서도 진행되었던 최서윤 관 련 에피소드의 시작이다.
5대 마법 명문가라 불리는 최씨
가문엔 적이 많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인 최재형은 자 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를 용서하 지 않는 냉혹한 성격이기에 유독 많 은 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최재형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 는 몇몇 사람들은 그의 외동딸인 최 서윤을 이용해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중에는 마인도 섞여 있을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아마 그녀는 최근 자신을 향한 수 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마법사 협회 에 신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별다른 소득 없이 수사 종료됐다는 메시지를 받았겠지.
“뭐 힘든 일 있냐?”
“……네? 아뇨.”
내 물음에 최서윤이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시선을 떼더니 평소와 같 이 가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눈에 담긴 불안의 감정이 느껴졌다.
“딱 보니 뭔 일이 있구만.”
“뭔 일 있으면 도와주시게요?”
최서윤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보다 가 대답했다.
“글쎄.”
내 대답에 최서윤은 황당해하는 표 정을 지었다.
“글쎄가 뭐에요?”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나보단 이서준에게 의지했으면 하는 마음과 혹시 모를 나비효과로 인해 최서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이 겹쳐진 애 매한 대답이었다.
그런 내 심정을 모르는 최서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요. 먼저 나서서 도와주겠다 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진짜 정 없
네.”
최서윤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그저 실없이 웃었다.
늦은 새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십마회의 아 지트에서 마력의 소용돌이가 생겨났 다. 소용돌이는 점차 형태를 이루더 니 한 남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남성은 어둠 속을 지나 어딘가를 쭉 걸었다. 그리고 그는 거대하고
화려한 왕좌 앞에서 멈춰섰다.
왕좌에 따분하게 앉아 있던 남성, 왕이 말했다.
“성진.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마의 대결계 관련으로 보고 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왕의 충신이자 S등급 마인, 성진이 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은 그 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말하라.”
“조사 결과 마법사관학교 중간시험 때 마의 대결계가 설치된 시험장에 CCTV가 없었습니다. 결국, 방법이 없어 소문에 의지해 추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2학년 대련 시험이 2시간가 량 남은 상태라 18세의 인간들 대 다수가 몸을 풀기 위해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자와 길드 스카우터들에게 얻은 정보를 통해 시험장에 있던 18세 인간을 한 명 찾아냈습니다.”
왕은 성진을 바라봤다.
“그게 누구지?”
“이서준입니다.”
“……이서준?”
“네, 그렇습니다.”
왕은 잠시 침묵했다. 생각이 필요 했다.
“이서준이라면…… 내가 아는 그 이서준이 맞나?”
“네, 맞습니다.”
“……설마 이서준이 멸마의 아이였 다니.”
이서준.
마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모르는 사 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