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돌리자 한세연의 기분이 살짝 나빠진 게 느껴졌다. 그 모습 이 괜히 귀엽다.
“아, 맞다. 물건은요?”
“식사 끝나고 드리려 했는데 지금 받으실래요?”
“네, 지금 주세요.”
한세연은 내게 검은색 케이스 가방 과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고는 내용물을 확인 했다.
검은색 케이스 가방에는 증폭된 마 나 엘릭서 20개가 들어있었다. 엘릭 서의 효능은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좋네요.”
“신발도 확인해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가방을 열었다. 종이 가방 안에는 단단해 보이는 검은색 전투화가 있었다. 투 박한 전투화치고는 디자인이 꽤 멋 지다.
[6B 기능성 다목적 전투화(B)]
분류 : 신발
설명 : 6B사의 전투화
[지속 효과]
►맞춤형
사용자의 몸에 맞게 변화합니다.
►편안한 착용감
걷기와 달리기로 인한 체력 감소가 20% 줄어듭니다.
내구도 : S
“오.”
한세연이 준비한 아이템답게 성능 이 아주 뛰어났다. ‘선물은 상대가 절대 실망하지 않게.’라는 한세연의 철학이 느껴졌다.
‘옵션이 두 개네.’
‘맞춤형’ 옵션만 있는 게 아니라 ‘편안한 착용감’이라는 체력 보정 옵션도 달려있다.
이런 듀얼 옵션을 가진 아이템은 가격이 수배 이상으로 뛰어오른다. 이 정도면 못 해도 천만 원은 넘어 가겠는데.
“모두 얼마 들었어요? 바로 드릴게 요.”
“아뇨. 됐어요. 선물이에요.”
이 정도 돈은 푼돈이라는 둣 쿨한 반응이다.
“너무 자주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한 데.”
“미안하면 제 밑에서 일하는 건 어 때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건 힘듭니다. 제가 할 일이 많 아서.”
단호한 내 대답에 한세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 하는데 그렇게 바빠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비밀입니다.”
행복했던 식사를 마치고.
한세연과 헤어진 나는 가까운 공원 벤치로 향했다.
기숙사가 아닌 벤치로 이동하는 건 이번에 얻은 신발에 마법 부여를 하 기 위해서였다.
사실 주변 시선도 있으니 마법 부 여는 기숙사 같은 조용한 곳에서 하 는 게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에어 워크의 효과를 시험해보고 싶 었기 때문에 지금 사용하기로 했다.
아공간에서 꺼낸 마법 부여서에 마력을 주입했다.
마법 부여서에서 환한 빛이 뿜어지 고 그것을 전투화에 담았다.
강한 빛이 번쩍이더니 전투화에 마 법 부여가 성공했다.
[6B 기능성 다목적 전투화(A)]
분류 : 신발
설명 : 6B사의 전투화
[지속 효과]
►맞춤형
사용자의 몸에 맞게 변화합니다.
►편안한 착용감
걷기와 달리기로 인한 체력 감소가 20% 줄어듭니다.
[사용 효과]
►에어 워크
신발에 마력을 부여하면 5초간 공 중을 걸을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분
내구도 : S
“오오.”
이것으로 아이템 옵션이 무려 3개 가 되었다. 아이템 등급은 B에서 A 로 격상했다.
혼히 이런 걸 트리플 옵션 아이템 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또 가격이 몇 배로 뛰어오른다.
이렇게 보니 엄청 좋아 보이는데.
나는 곧바로 신발을 신었다. ‘맞춤
형’과 ‘편리한 착용감’ 옵션 덕에 딱 딱한 전투화를 신었음에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럼 바로 시험해볼까.
나는 신발에 마력을 주입했다. 허 공에 한쪽 발을 올리니 무언가 밟혔 다.
“오. 오오.”
이번엔 다른 한쪽 발로 허공을 밟 았다. 지금 나는 공중 부양에 성공 했다.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감각. 하지 만 이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 졌다.
5초의 지속시간이 끝나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연습 좀 해야겠네.”
사용해보니 뭔가 어렵다.
단순히 허공을 밟는다고 밟아지는 게 아니라 허공을 밟는 순간 신발에 마력을 주입해야 하고 그걸 유지하 면서……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 어 려운 복잡함이 있다.
“ 흐음
근데 뭔가 재밌네.
다시 사용해보고 싶은데 2분의 재 사용 대기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6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나를 반짝반짝 빛 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머니로 보이는 한 여성 에게 뛰어갔다.
“엄마! 저 사람 하늘을 날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 간.
특수한 결계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오직 초대받은 마인만이 입장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오늘, 십마회(十魔會)의 회의를 위 해 전 세계 최상급 마인이 이곳에 모였다.
“……다들 모인 건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이렇게 모두가 모인 건 또 오랜만 이군. 특히 하령, 네가 이곳에 올 줄은 몰랐는데.”
하령은 마인들 사이에서 이런 모임 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자였다.
마인들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가 따르던 전대 왕에 대한 충성심이 아직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이라고 추측했다.
“‘왕’께서 직접 소집 명령을 내리 셨는데 모.여야지.”
하령의 대답에 어디선가 웃음이 들 렸다.
“드디어 왕께 충성하기로 결심한
건가.”
“이제 그럴 때도 됐지. 언제까지 죽은 자에게 충성할 순 없으니까.”
“그나저나 저번 마법사관학교 습격 은 정말 어이가 없더군. 대체 누가 기획한 거지?”
마인 중 누군가가 불만을 터트렸다.
“모르면 닥쳐라. 계획은 아주 완벽 했었으니까. 단지 마법사 녀석들을 가둔 결계가 예상외로 딸리 풀려났 을 뿐이야. 운이 나뺐어.”
“단순히 운이 나쁘다는 이유로 책 임을 회피할 생각인가?”
“그건......
“그런데 예언의 아이를 찾는 게 그 렇게 힘든가? 차라리 예언의 성유물 인 ‘선지자의 제단’을 다시 사용하 는 게 어때?”
“네놈은 선지자의 제단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제물이 얼마나 많은지 알 고 하는 소린가?”
그때 였다.
“그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모든 마인은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왕’이었다.
“확실히 이번 습격이 실패로 돌아 간 건 아주 아쉬웠다.”
“……계획은 완벽했습니다. 애초에 마의 대결계를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해제되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 는 일입니다. 이건 계산 영역의 밖 입니다.”
마인의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한다. 마의 대결계가 그렇 게 빠르게 풀린 건 계산 밖의 영역 인 것도 맞으니까.”
외부인의 출입을 허가하는 중간시
험 기간.
테러에 방해가 될 마법사들을 한곳 에 모아 결계로 가두고, 예언의 아 이를 색출한다- 계획 자체만 보면 아주 완벽했다. 다만 결계가 예상보 다 훨씬 빠르게 풀린 게 문제였다.
“그래서 결계가 빠르게 해제된 원 인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나?”
“그 일에 관해 제가 생각한 한 가 지 가설이 있습니다.”
“뭐지?”
“결계 해제에 ‘멸마의 힘’이 개입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에 십마회의 모든 마인들이
놀란 반웅을 보였다.
“멸마의 힘?”
“멸마의 힘이 결계에도 영향을 끼 칠 수 있나?”
“조용.”
왕이 말했다.
“계속 말해봐라. 성진.”
“그때 설치한 대결계는 일반적인 대결계가 아닙니다. 우리 마인의 마력과 오랜 전통의 기술로 만들어진 아주 특수한 결계입니다. 세간에는 S등급 마법사인 정윤슬이 결계를 해 제했다고 알려졌지만 아무리 정윤슬 이라고 해도 마의 대결계를 그렇게
빠르게 해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분명 다른 이능의 힘이 개입된 게 분명합니다.”
어둠 속에서 한 마인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멸마의 힘은 마(魔)를 무 찌르는 힘. 마인의 힘이 담긴 결계 를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확실히 네 말을 들으니 가능 성이 있는 거 같군. 아니, 그게 아 니면 그때의 상황이 설명이 될 수가 없지.”
‘멸마의 힘’과 같은 특별한 힘이라
도 개입되지 않는 이상, 마의 대결 계가 그렇게 빠르게 풀리는 건 불가 눙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그럼, 그때 결계 안에 있던 18세 의 인간이 누가 있었는지 찾아내는 게 빠르겠군”
“그렇습니다.”
“좋다. 성진. 당장 결계에 있던 18 세 인간에 대해 조사해라.”
모두가 쉬는 일요일 오전.
나는 이른 아침부터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새벽의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공기가 시원시원했다.
“선우야!”
그때 멀리서 윤하영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 어나 그녀를 반겼다.
“안녕.”
“웅, 안녕.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근데 무슨 훈련을 하려고 던전까
지 가서 하는 거야?”
윤하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 게 물었다.
“다른 곳에서는 네 숨겨진 힘을 연 습할 수 없거든.”
“내 숨겨진 힘?”
“웅.”
“에이 그게 뭐야. 큭큭.”
윤하영은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 하는 듯 가볍게 웃었다.
어차피 말로 설명해도 소용없다. 직접 던전에 도착해서 자신의 능력 을 깨닫게 해주면 알아서 이해하겠
지.
시간이 지나자 버스 한 대가 도착 했다. 나와 윤하영은 버스를 탔다.
“근데 던전은 어디에 있어?”
“북한산.”
“북한산? 던전은 어떻게 찾았는 데?”
“음…… 운이 좋았지.”
나는 대답을 하며 적당한 빈자리에 앉았다.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지 윤하영이 말했다.
“에이, 어떻게 운이 좋아서 던전을 찾아.”
“진짜야. 운이 좋았어.”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북한산의 던전을 발견한 건 아주 우연이었다.
그야 당연한 게, 회귀 전 C등급 마법사로 활동할 때 찾아낸 던전이 었으니까.
“......그래?”
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지 만 더 할 말은 없는지 윤하영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간이 홀러 우리는 고양시 의 북한산 일대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윤하영이 감탄 했다.
“와. 이 넓은 곳에서 던전을 어떻게 찾았대?”
북한산은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등산코스가 있지만 던전을 찾기 위 해서는 등산코스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다른 길은 필드 몬스터의 출 몰 위험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출입 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몬스 터와의 마주침에 쩔쩔매는 일반 사 람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법을 잘 지 키는 사람도 아니다.
“따라와.”
“어? 여기로 가도 돼?”
“웅. 상관없어.”
내 말에 윤하영이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길을 휙휙 넘어가자 윤하영도 뒤늦게 나를 따라 왔다.
우리는 그렇게 산을 올랐다.
만들어진 등산로가 아니라 길이 꽤 나 험악했지만, 윤하영이나 나나 기 본적인 육체 강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수월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음, 어디더라.”
“아으…… 다리 아파. 어딘지 아는 거 맞지?”
“웅. 근데 좀 오래전에 찾은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윤하영이 눈을 찌푸렸다.
“대체 언제 찾은 거길래 그래?”
“한 2년 전? 어? 저기 같은데.” 절벽 맞은편에 보이는 작은 틈새. 과거에 이쪽에서 던전을 발견했었다. 슬슬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봐.”
나는 하체에 마력을 집중해 앞으로 달린 후, 에어 워크를 이용하여 절 벽을 넘었다.
어제 밤새 연습을 해두었기에 완벽 한 움직임으로 착지할 수 있었다.
“휴.”
“와! 방금 그거 뭐야?!”
둥 뒤에서 윤하영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생각해도 방금 내 움직임은 조금 멋졌던 것 같다.
마치 무협지의 허공 답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 정도는 별거 아니
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이 홀러, 나와 윤하영은 던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윤하영이 가진 멸마의 힘을 연습할 던전, ‘복마전 5차 입 구’이다.
[‘복마전 5차 입구’에 입장했습니다.]
이곳 던전은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이름답게 악마형 몬스터가 주를 이 룬다.
물론 멸마의 힘은 마를 무찌르는 힘이니 마인이 아닌 악마족 몬스터 에게도 효과가 있다.
윤하영의 힘을 이용해 복마전을 공 략해버리면 좋겠지만 아직 나와 윤 하영의 수준으로는 이 던전을 공략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이 던전은 당분간 윤하영이 가진 멸마의 힘을 연습하기 위한 용 도로만 이용할 예정이다.
물론 찔끔찔끔 던전을 공략하다가
기회가 되면 보스 방까지 공략할 생각도 있지만 그건 나와 윤하영이 어 느 정도 더 성장했을 때다.
“어둡네.”
윤하영이 동굴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대다수 던전이 그렇듯 이곳 역 시 작은 빛 하나 없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해. 인공 던전이랑 다르게 이 곳 몬스터는 진짜니까.”
“옹. 알았어.”
이 던전의 위험도는 나도 잘 모른 다. 원작에서도 등장하지 않은 던전 이니까.
그래서 위험하게 깊게 들어가는 것 보다는 몬스터를 한 마리씩 유인해 서 처치하는 방법을 이용하려 한다.
-크르르
그렇게 한 10분가량 걸었을까. 멀 리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진화와 적응의 비법 특성 효과로 어둠 속에 숨은 몬스터의 모습이 시 야에 들어왔다.
고블린과 같은 외형을 지녔지만,
이마에 뿔이 있고 등 뒤에 박쥐 같 은 날개가 달려있다.
저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끔찍한 외 형.
녀석은 ‘녹색 동굴 악귀’라 불리는 잔인한 성격의 C등급 몬스터였다.
“거기서 기다려.”
“어? 안 도와줘도 돼?”
“웅.”
나는 허리춤에서 마비 단검을 꺼내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가볍게 마 법을 구현해 녀석을 유인하기 위한
공격을 했다.
슈우우웅. 쾅!
내 손을 떠난 마법 구체가 동굴 악귀의 어깨에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