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535)

“아, 이거?”

내 팔뚝에 생긴 상처. 아까 전 기 숙사에서 마비 단검으로 찌른 상처 를 말하는 거였다.

“별거 아니야.”

“잠깐, 그거 검상 아니야?”

유아라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내 팔목을 잡았다.

“아앗! 야! 아프잖아!”

내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뿌리치자 유아라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뭐야? 던전에 검을 사용하는 몬스 터도 있었어?”

검을 쓰는 몬스터? 당연히 없었다.

그리고 도검류를 사용하는 몬스터 는 매우 희귀하면서 강력하기 때문 에 최소 A등급 이상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런 고등급 몬스터가 던전에 있었 으면 아마 던전 공략 시간이 두배는 길어졌을 거다.

“아니, 이건 따로 생긴 상처야.”

“……뭐야. 보니까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 같은데. 너 설마 누구랑 싸웠어?”

유아라가 의심에 찬 눈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그냥 내가 찔렀는데.”

그 순간 유아라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입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유아라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됐는데.

“야, 야야. 농담이야.”

괜히 내가 당황한 반응을 보이자 유아라가 의심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등장인물 ‘유아라’가 당신에게 의 구심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김선우. 너 혹시 자해 같은 거 해‘?”

“미쳤냐? 내가 그런 걸 왜 해.”

“그런데 왜 이리 당황해? 혹시 다

른 곳에도 있는 거 아니야?”

유아라가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 야! 야야. 뭐해!”

“뭐야. 한 번만 찌른 게 아니잖아.”

유아라의 표정이 자칫 심각해졌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해 는 하지 마라. 그거 주변 사람 가슴 에 못 박는 거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상처만 봐도 직접 찌

른 티가 나는데.”

“그건......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유아라 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등장인물 ‘유아라’가 당신에게 측 은함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얘 뭔가 큰 오해를 하는 거 같은 데.

빨리 뭐라도 지어내서 말을 해야

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해낸 그럴 싸한 거짓말을 말하려는 때였다.

삐익! 삐익! 삐익!

나와 유아라의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안전 안내 알람이 크게 울렸다.

[대테러 안전 본부]

[전 세계적으로 테러 활동이 급중 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많은 사람이 밀집되는 장소 방문은 당분간 자제

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테러 활 동.

테러 단체, 자운의 범행을 말하는 거다. 물론 조심하라는 경고가 울리 긴 했지만 자운이 한국에서 본격적 인 테러 활동을 하기까진 아직 시간 이 남았다.

그때 다시 한번 안전 안내 알림이 울렸다.

[로마에서 테러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13년 전에 해체된 테러

단체, 자운의 핵심 맴버였던 ‘베르 트’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사진]

[이와 같은 얼굴을 보신 분은 마법사 협회 특무팀에 신고 바랍니다.]

사진에는 금발 머리의 젊은 백인 여성이 찍혀 있었다.

베르트.

자운의 핵심 맴버이자, 아주 잔인 한 습성을 가진 녀석이었다. 이 녀 석의 손에 죽은 사람만 천명에 가까 울 정도였다.

그나저나 베르트의 사진이 찍힌 건 원작에서도 우연이었는데, 그 우연 이 또다시 일어났다.

솔직히 나비 효과로 사라질 사건일 줄 알았는데 이건 좀 의외네.

나는 슬쩍 내 앞의 유아라를 바라 보았다.

내 예상대로 유아라의 표정은 심상 치 않았다. 스마트 학생 수첩을 쥔 그녀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테러 단체 자운.

자운은 그녀에게 증오와 복수의 대

상이었다.

13년 전, 5대 마법 명문가라 불렸 던 그녀의 가문인 유씨가문이 자운 의 손에 멸문당했기 때문이다.

자운은 그녀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했고 가문의 보물을 홈치고 달 아났다.

그렇게 그녀는 하나뿐인가족인 언 니, 유아연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가 이렇게 독하게 훈련하고 강 해지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 역시 가 문의 원수인 자운 일당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유아라.”

내 부름에 유아라의 몸이 흠칫 떨 렸다. 이내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며 나를 바라봤다.

“어, 어. 왜?”

“너 괜찮냐?”

“웅.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래?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 보 여서.”

내 대답에 유아라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 런가 봐.”

유아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벽에 걸 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늦었네. 슬슬 가봐야겠다.”

“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

유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훈련 장 밖으로 나갔다.

훈련장 밖으로 나온 유아라는 터벅 터벅 밤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가까 운 벤치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흥분감에 손이 아직도

떨렸다.

자운.

녀석들이 아직 살아 있었다.

비록 이번 자운의 테러로 많은 피 해자가 생겼지만, 유아라는 복수와 증오의 대상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복수를 할 수 있다.’

강해지기 위한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녀석 들을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 다…….

문득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이 번에 모습을 드러낸 자운 일당을 보

며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가족이 살해당하던 그 날.

유아라는 고작 5살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지만, 언니는 달랐다. 언니는 아직도 그때 의 기억이 가슴에 남아 매일같이 괴 로워했다.

지금은 고쳤지만, 한때 자해까지 하며 그 괴로운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기도 했었다.

“자해……

그러고 보니 김선우, 그 애는 왜 자해를 한 것일까.

다시 생각해도 특이한 애였다. 전 교 꼴찌 주제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고, 넘치는 마나를 갖고 있으면 서 마나가 없는 척 행동하기도 했다.

분명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 텐데.

‘정말 나와 같은 자운의 피해자인가?’

유아라는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고 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듣기로는 자운의 피해자가 전 세계에 수만에 달한다고 했으니 까.

“너무 과한 생각인가……

유아라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보았 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처 럼 수많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뭐야.”

토요일 저녁.

잠에서 깨니 오후 1시였다.

어제 마비 독 때문에 오래 잠들어 있어서 새벽 내내 마법 훈련을 했더 니 새벽 5시라는 늦은 시간에 잠들 어 버렸다.

참고로 어제도 마력 관련 특성을 얻지 못했다. 아무래도 얻는 데 꽤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흐아암.”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532명의 사람이 당신을 기억합니다.]

[보상으로 2,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잠든 사이에 생긴 눈앞의 메시지는 빠르게 치웠다. 그리고 대충 식빵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켰다.

두 시간 전 한세연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부탁하신 물건은 전부 구했는데 오늘 오후 6시에 만날래요?]

6시라…….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상관없겠지.

그나저나 한세연의 일 처리는 언제 나 놀라울 정도로 빠르네.

[좋습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답장을 보냈다. 한 10초쯤 기다리

자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주소 찍어드릴게요.]

잠시 후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도 착했다. 보아하니 서울 중심지에 소 재한 유명 레스토랑이었다. 이름은 ‘칸 티아’.

저번에 먹었던 한소옥처럼 예약이 몇 달씩이나 밀리는 최고급 레스토 랑이 었다.

“아, 기대된다.”

레스토랑 칸 티아는 명성으로는 한

소옥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저번에 한소옥의 요리를 먹고 천국 을 보았는데 칸 티아의 요리는 과연 어떨까.

“흐흐.”

그렇게 소파에 앉아 퍽퍽한 빵을 씹어 먹다가 외부자의 혜택으로 인 터넷을 켰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의 뉴스란에 접속했다. 세계정세를 파 악하기 위해서였다.

「최악의 테러 집단, 자운. 13년 만에 부활?」

厂자운의 핵심 맴버였던 베르트,

이번 로마 테러 사건에 모습이 찍 혀 J

「세계 마법사 협회, “자운의 부활 가능성 아주 높아” 수사 착수」

어젯밤 로마에 있었던 자운의 등장 으로 인해 엄청난 난리가 일어났다.

자운은 원작의 묘사에 따르면 그들 이 활동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마인 보다 더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존재 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역대 최악의 단체가 다시 부 활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반면 생각보다 자운의 부활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부류도 있었다.

[댓글]

양가노므 : 님들 걱정 안 해도 됨. 그때 자운의 악명은 거기 리더가 키 운 거나 다름없는데 그 사람 죽었 음.

1-늠브12 : 이거 맞다거거 자운이 다시 부활해봤자 금방 소탕된다. 예 전에 자운을 못 막았던 건 진천우가 너무 강해서 그랬던 거.

i-wfswql2 : 진천우 빨은 맞지 거 긔

바로 전 자운의 리더였던 진천우가 없다는 이유였다.

진천우.

역사상 최악의 마법사라 불리며 압 도적인 강함으로 세계 모든 마법사 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던 자였다.

세계에서 강하다고 알려진 마법사 들이 모여 연합을 이루어도 자운을 쉽게 무너트릴 수 없었던 건, 진천 우 단 한명을 막지 못해서였다.

그만큼 진천우는 마법사 세계에서 김진철 회장만큼이나 압도적인 무력 의 상징이었다.

“홈.”

하지만 진천우가 없으니 자운이 약 하다는 건 틀린 소리다.

진천우가 자운의 큰 비중을 차지하 는 인물인 건 맞지만 자운의 맴버는 하나하나가 S 등급과 A등급으로 이 루어진 괴물 단체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들은 아주 지능적으로 움 직인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이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을 내려 도 망을 친다.

“……2년 안에 못 해도 A등급 까 진 올라가야 할 텐데.”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약하다. 2년 뒤 자운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할 때 저들을 막기 위해선 나도 빠 르게 힘을 키워야 할 텐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에휴.”

어떻게든 되겠지.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6시.

김진우로 분장한 나는 한세연과의

약속 장소인 ‘칸 티아’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다가와 형식적인 질문을 건넸다. 그 리고 예약된 자리를 안내받아 착석 했다.

의외로 한세연은 아직 도착하지 않 았다.

내가 약속 시간보다 10분 빨리 왔 기 때문인 걸까.

“흐음.”

나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훑어봤 다. 적당히 어두운 배경에 분위기 있는 조명이 근사했다.

한소옥이 한국 전통의 미를 자랑하

는 한옥이었다면 이곳은 근사한 서 양식 궁전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30대 초반의 깔끔하게 잘생긴 남성.

한세진이었다.

‘뭐야. 한세진이 왜 여기에……

한세진은 한 여성과 식사를 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한세진쯤 되는 사람이 이런 최고급 레스토랑에 있는 건 아주 당 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하필 한세연 과 식사 약속이 잡힌 시간에 마주치

게 되는 건 신기한 우연이었다.

“김진우 씨.”

그렇게 한세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 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니 한세연이 서 있었다. 그더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 했다.

“일찍 오셨네요? 언제 오셨어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래요?”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멀리서 한세진이 한세연을 발견했

다. 잠시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세연아.”

“어? 오빠?”

한세연도 이런 만남을 예상 못 했 는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한세진의 질문에 한세연이 내 얼굴 을 바라봤다.

“앞에 분이랑 약속이 있어서.”

한세진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 러더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한세진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김진우라고 합니다.”

나는 한세진의 손을 잡았다. 이것 으로 나름 중반부의 비중 있는 빌런 과 안면을 트게 됐다.

“김진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데.”

“한강 마인 사건이랑 인천 테러 사 건 범인 잡았던 마법사분이셔.”

“아! 뉴스로 봤습니다.”

한세진이 나를 알고 있다는 듯 미 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마법사분이랑 식사

를.. 사업적인 이야기로 만난 것

같진 않은데……

나를 훑어보는 한세진. 이내 씨익 웃더니 한세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연이 남자 취향이 이렇구나. 수 염 있는 남자라. 조금 의외인데.”

“아, 그런 거 아니야.”

한세연이 눈을 찌푸리더니 주변 사 람을 의식한 듯 조용히 말했다.

한세진은 그런 그녀를 보더니 피식 웃고는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 음에 따로 식사라도 하시죠.”

그렇게 한세진이 떠나고 한세연과 단둘이 남았다.

우리들의 앞에는 두꺼운 스테이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육즙이 흐르는 게 벌써 입에 침이 감돈다.

크게 썰어서 한입 베어 물자 입안 에 환상적인 맛이 가득 퍼졌다.

내가 행복한 미소를 짓자 한세연이

조용히 웃었다.

“저번 식사 때도 느꼈는데 식사 리 액션이 좋네요.”

“이런 맛있는 요리를 아무렇지 않 게 먹는 그쪽이 더 이상한 거 같은 데요.”

내 대답에 한세연이 미소를 지었다.

“근데 아까 받은 오빠 명함이요. 혹시 연락하거나 그럴 건 아니죠?”

“음. 그건 모르죠.”

“하지 마요. 만약 뭐 필요한 일 있 으면 저한테 연락해요.”

나는 피식 웃었다. 천하의 한세연 이 이런 말을 하다니.

아무래도 그녀가 나를 출세에 필요 한 인물이라고 결론을 지은 모양이 다.

“생각해볼게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저한테 연락해요.”

“으음, 이거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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