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535)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도 안 해.”

그녀의 대답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러더니 이서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씩 확 인하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놈들이 여기까지 왔을까?”

“왔겠지. 이서준이 녀석들에게 어 떤 존재인데. 이서준이 히든 스테이 지에 떨어졌다고 했을 때, 아마 김 진철 회장보다 녀석들이 더 크게 놀 랐을걸?”

“큭큭. 그렇긴 하겠다.”

이들이 찾는 건 13년 전 자취를 감춘 악명 높은 테러 단체, 자운이 었다.

아직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 이지만 이서준은 자운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걸 아는 이들은 자운의 맴버들이 이곳에 올 것이라 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모습을 완벽히 숨긴 걸까. 그들이 찾는 자운의 멤버들은 이서준이 기숙사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 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돌아가자.”

“뭔가 아쉽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잖아.”

유아연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 였다.

“아, 맞다. 온 김에 동생이라도 만 나고 가.”

“됐어. 아라, 걔 되게 바쁜 애야.”

“거짓말하네. 동생한테 잔소리 들 을까 봐 그러는 거잖아.”

남자가 장난기를 머금은 말투로 말 했다. 유아연은 정곡이 찔려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잔소리는 무슨.”

“누나 설마 요즘 그거 다시 시작한 건 아니지?”

“이제 안 해. 안 한 지가 4년인 데.”

유아연이 왼쪽 손목의 칼자국을 손 으로 감싸 쥐었다.

그녀의 손목에 있는 칼자국은 과거 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던 그녀가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힘들 때마다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였다.

물론 아직도 과거의 트라우마는 아 직 남아있지만 그래도 전과 같이 자 해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에게 남은 하나뿐인가족, 유 아라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서였다.

대신 그녀의 가슴 속에는 강한 증 오심만이 남았다.

그렇게 마법사관학교에서의 일을 마치고 본부로 돌아가려는 때였다.

“윽!”

유아연이 머리에 약한 두통을 느끼 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옆의 남자가 놀라서 그녀에게 말했다.

“누나! 괜찮아?”

—아연아! 아라 데리고 도망쳐!

환청이 들렸다. 매일 듣는 환청이 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13 년 전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누나!”

“……괜찮아.”

환청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 때 자해를 하면 환청이 사라지곤 했지

만 이젠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 를 들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도망쳐! 도망쳐!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것을 무시했다.

“아이고야.”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고 소파에 앉았다. 텔레비전을 켜자 바로 뉴스 속보가

떠올랐다.

이서준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나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긴 했다.

「마법사관학교 뒷산 던전의 히든 스테이지에 떨어졌던 이서준 외 1명 의 학생이 무사히 던전 공략에 성공 했습니다.J

바로 ‘이서준 외 1명’. 이게 나다.

“크흠.”

역시 이서준의 스타성인가.

아주 난리도 아니다. 어느 방송국

에서는 이서준 특집 다큐를 방영한다며 광고를 하고 있다.

“그래도 외 1명은 심했다.”

이름 정도는 나와도 괜찮을 텐데. 명성 포인트를 떠나서 1명이면 같이 표기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124명의 마법사가 당신에게 관심 을 갖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그래도 이런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보아하니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예 안 나오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뉴스 채널을 돌려보니 이서준이 내 활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김선우라는 사람도 알아달라 고 말하는 것 같지만 기자들은 크게 흥미가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서준이 겸손을 떨고 있 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쓰게 웃으며 스마트 학생 수 첩을 쥐었다.

띠링! 띠링!

“……엄청 울려대네.”

아까부터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발신인은 다양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애들의 메시지도 있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둥 장인물들의 메시지도 있었다.

신영준, 윤하영, 최서윤…… 둥둥.

[너 이서준이랑 던전 탈출했다며? 긔 긔 긔 긔]

[선우야 괜찮아?]

[선배님! 서준 선배님이랑 히든 스 테이지 공략하셨다면서요.]

대충 내용만 훑어보고 따로 답장은 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답해주면 끝이 없기 때문 이다.

“보상 아이템이나 확인해볼까.”

아공간에서 히든 스테이지의 공략 보상 아이템들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아이템은 총 2가지.

이 아이템들은 원래 원작에서 누군 지도 모르는 엑스트라들이 갖게 되 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히든 스테이지 공략자가 나 로 바뀌게 되었으니 전부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마법 부여서를 쥐 었다.

[마법 부여서 : 에어 워크(B)]

분류 : 마법 부여

설명 : 도구를 지정해 마법을 부여

한다.

[사용 효과]

►에어 워크

5초간 공중을 걸을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분

*신발에만 부여 가능합니다.

에어 워크. 이름 그대로 공중을 걷 게 하는 아이템이다.

물론 공중을 걸을 수 있는 건 고

작 5초뿐. 하지만 재사용 대기 시간 이 그만큼 짧으니 충분히 쓸만하다.

“신발을 하나 구해야겠네.”

아무래도 지금 내 싸구려 신발에 마법 부여를 하는 건 많이 아까우니 까.

나는 마법 부여서를 아공간 안에 넣어놨다.

“ 다음...".

[마비 단검 (B)

분류 : 단검

설명 : 마비 독이 발려진 단검. 상 대를 찌르면 마비시킬 수 있다.

[지속 효과]

►마비 독

강한 일격에 성공할 시, 일정 확률 로 상대가 마비에 걸립니다.(독성 등급 : B)

(상대의 독성 저항 능력에 따라 효 과가 달라집니다.)

체력과 근력, 순발력이 10 중가합니다.

내구 : B

파괴력 : C

마비 단검.

말 그대로 상대를 마비시키는 힘이 담긴 단검이다.

안 그래도 근거리 전투용으로 사용 할 보조 무기가 하나 필요했는데 아 주 잘 됐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이 아이템을 다른 목적에 먼저 이용 하려고 한다.

마비 단검에 담긴 독성을 이용해

써먹을 곳이 있기 때문이다.

“후.”

숨을 크게 내쉬고 단검을 칼집에서 뽑아냈다. 새하얀 검신이 밝게 빛을 냈다.

나는 이 단검으로 내 팔목을 찌를 것이다.

목적은 단 하나.

마비 관련 적웅형 특성을 얻기 위 해서.

마비 단검의 독성 등급은 무려 B 니까 일반 마비 독을 마시는 것보다 이것으로 찌르는 것이 특성을 얻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이 들지만, 적응형 특성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면 이 정도 미친 짓은 각오해야 겠지.

푸욱!

“……윽!”

팔목에 단검이 박히며 선홍빛 피가 홀러내렸다.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마비 효과는 오지 않았다.

“......뭐야.”

강한 일격에 성공할 경우, 일정 확 률.

설마 확률 때문에 실패한 건가?

“아씹......

운도 더럽게 없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단검으로 팔목을 찔렀다.

“끄으윽!”

……성공인가? 팔에 감각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30초쯤 지나자 팔 하나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추가로 다른 신 체 부위에도 상처를 내었다. 허벅지, 팔뚝 등등..

혹시 특성 획득에 실패할지도 모르 니 확실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비 독은 내 몸 전체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몸의 감각이 둔해지더니 5분쯤 지나자 몸 전체가 완전히 굳었다.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몸이 움직여 지지 않는다.

‘근데 이거 너무 많이 찌른 것 같 은데……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마치 독에

취한 것처럼…… 눈이 감겼다. …… 망했다. 너무 과하게 찌른 것 같은 데.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마법사관학교에서 약 1km 떨어진 작은 건물의 옥상.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그곳에서 한 남성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 진. 이서준은 어때?

“괜찮아. 아주 멀쩡해.”

이들은 오늘도 이서준에 관한 이야

기를 나눴다. 괜찮느냐. 다치진 않았 느냐. 다른 위기는 없었느냐. 등등. 그런 이야기였다.

-다행이네. 잘 감시해. 걔는 갑자 기 왜 히든 스테이지에 떨어진 거 래? 진짜 식겁했네.

“그래도 공략에 성공했잖아. 진짜 대단하더라. 어떻게 저 나이에 히든 스테이지를 하루 만에 공략하고 나 올 수 있지? 난 못해도 이틀이나 삼일은 걸릴거라 생각했거든.”

남자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그만큼 이서준이 대단한 거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고. 오히 려 이서준에 대한 확신이 들어서 좋 네. 아, 맞다. 이서준이랑 같이 던전 을 공략한 녀석 말이야. 그놈에 대 해선 뭔가 아는 거 있어?

“아, 김신우인가 김선우인가 그 놈?”

_ 옹.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몰라. 대충 들어보니까 전교 꼴찌라던 거 같은데. 아, 이번 에 중간시험 성적이 나와서 또 모르 겠네.”

—둘이 좀 자주 엮이는 거 같던데.

“그런 거 같긴 한데 아마 우연이겠 지. 근데 거긴 어때?”

-우리 이제 로마 도착했어. 준비 도 거의 다 끝났고. 일은 계획대로 오후 3시에 진행될 거야.

남자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현재 시각은 한국 시각으로 오후

12시.

로마시각으로 오후 3시면 한국 시 각으로는 밤 10시쯤이다.

“흐흐. 나도 같이하고 싶은데 아쉽 네.”

-조금만 더 고생해. 조만간 밥 한 번 살게.

“알았어. 다치지 말고 조심해.”

_ 웅.

뚝.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멍하니 마법사관학교를 바 라봤다.

“으윽......

정신을 차리자 강한 두통이 밀려왔다. 단검에 찔린 부위에서도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라 있었다.

[당신의 육체가 마비 독에 완전히 적응합니다!]

[적응형 특성, ‘마비 독 저항(D)’이 추가됩니다.]

[마비 독 저항(D)

분류 : 특성

설명 : 당신의 육체가 마비 독에 저항하는 힘이 강해집니다.

[지속 효과]

►마비 독 항체

마력이 1 상숭합니다.

마비 독 저항이 50% 상승합니다.

마비 독 회복 속도가 70% 상승합니다.

“……됐다.”

이걸로 새로운 특성을 하나 더 획 득했다.

마력 1에 마비 독 저항 50%. 효과 자체는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지만, 공짜로 얻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마력 1은 며칠 열심히 마나 연공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수

치기도 하고.

“으, 아파 죽겠네.”

나는 피부에 굳은 피를 닦아 냈다. 체력 회복 효과 덕분인지 다행히 상 처는 조금 아물었다. 이 정도면 움 직이는 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얼마나 잠들었지.”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밤 10시 다. 던전 공략의 피로가 쌓여서 그 런가. 마비 상태로 거의 7시간을 내 리 잤다.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 밤 10시면 시간이 꽤나 애매한데. 실컷 잠들어서 다시 잠들 수도 없는 노릇

이고.

“훈련이나 할까.”

음. 그게 좋겠다. 할 일 없을 땐 이것만 한 게 없지. 그리고 마력 관 련 적응형 특성도 아직 얻지 못했으 니까.

“아 맞다.”

나는 아공간에서 스마트폰을 꺼냈 다. 그리고 메시지를 입력해 한세연 에게 보냈다.

[한세연 씨, 구해줬으면 하는 물건 이 있습니다.]

10시라는 늦은 시간에 이런 메시 지를 보내는 게 민폐가 아닐까 생각 이 들지만, 내일은 휴일이고 하니 괜찮겠지.

그리고 평소와 같이 10초도 안 돼 서 답장이 도착했다.

[뭔데요?]

[저번에 만들어주신 마나 엘릭서와 튼튼한 전투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필요한 비용은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최근 너무 많은 부탁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한세연 입장 에서는 또 다를 것이다. 이런 부탁 쯤이야 그녀에게는 정말 쉬운 일이 니까.

[알았어요. 근데 마나 엘릭서는 저 번 것과 같은 거로 준비하면 될까 요‘?]

[네. 같은 것으로 부탁합니다.]

한세연과의 연락이 종료된 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인적인 일은 모두 마쳤으니 마법 훈련장으로 갈 차례다.

♦ ♦ ♦

[문이 열렸습니다.]

콰앙!

마법 훈련장에 도착하자 기다렸다 는 듯이 강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당연하겠지만 저 굉음의 주인은 유 아라다.

내일이 휴일이라 그런 걸까. 11시 가 가까워진 늦은 시간에도 유아라 는 훈련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소문에 의하면 요즘 훈련장에서 나 오질 않는다던데.

그렇게 그녀에게서 신경을 끄고 개 인 훈련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옆 훈련실의 문이 열리며 유아라가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어, 안녕.”

유아라가 땀에 젖은 이마를 수건으 로 쓰윽 닦았다.

그러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멀쩡해 보이네. 아무리 너라고 해 도 히든 스테이지에서 한두 군데는 다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유아라 나를 보더니 그렇게 중얼거 렸다.

아무리 너라도라는 말이 무슨 의미 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를 훑어보던 유아라의 시선 이 내 팔뚝으로 향했다.

“……아니네. 다치긴 했네. 팔의 상 처.”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