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용히 감탄하자 이서준은 당 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그 가방 마도구야? 어떻게 그 작은 가방에서 뭐가 계속 나오 냐.”
“마도구 맞아. 공간 마법이 걸려있 거든.”
“ 진짜?”
대충 지어내서 말했는데도 이서준 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반응했다.
“와. 공간 마법 걸린 가방 엄청 비 쌀 텐데. 나도 갖고 싶다. 어디서
났냐.”
“비밀.”
내 대답에 이서준이 미련 없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냐.”
그렇게 우리는 대충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어제 생각보다 많은 방을 공략했기 에 아마 보스 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서준도 던전의 끝이 다가오는 걸 느꼈는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우리 걱정하겠다.”
“그러게.”
아마 학교는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대서특필로 신랄하 게 마법사관학교를 비판하고 있겠 지.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빨리 여기서 나가자.”
“그래.”
그렇게 우리는 어제와 같이 몬스터 들을 쓰러트리며 나아갔다.
3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보스 룸에 가까워졌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보였다.
바닥에 쓰러진 한 여성이었다.
“뭐야. 사람이 어떻게 여기 쓰러져 있지?”
갑작스러운 사람과의 마주침에 이서준이 당황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여성에게 다가갔 다. 그때 여성이 우리의 발소리를 들은 듯 우아한 몸짓으로 상체를 일 으켰다.
기품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여성이 었다. 그녀는 고혹적인 눈동자로 이서준올 올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마주칠 줄이야…… 당신은 누구죠?”
이서준은 몸을 숙이더니 말했다.
“마법사관학교 학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있으신 거죠?”
이서준의 말에 여성이 가녀린 몸짓 으로 손을 모으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마법사관학교 학생? 감사합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서 빠 져나올 수 있겠군요. 저 뒤편에 사 악한 존재가 숨어 있어요. 저 사악 한 존재를 무찔러주세요!”
여성이 과장된 말투와 함께 뒤에 어두운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곳이 보스가 있는 곳인가.”
이서준은 저 멀리 어두운 곳을 바 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차 갑게 식은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다 가 손 위로 최대한의 마력을 압축 구현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이서준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김 선우?”
나는 손을 뻗어 망설임 없이 여성 을 향해 마법을 방출했다.
콰아아앙—!!!!
강한 굉음이 울리며 희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 속에서 어깨 한쪽이 꿰뚫린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 재미없게 눈치가 빠르 구나.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서준은 놀란 눈으로 여성을 바라 봤다.
여성의 몸 전체가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저 여성의 정체는 이 던전의 보스 인 ‘유령 마녀’.
최소 B등급 이상의 보스 몬스터였다.
이서준은 눈치 빠르게 마력을 끌어 모으며 전투태세로 전환했다. 이서준의 검에서 강한 마력이 뿜어졌다.
-……신기하군. 나이는 어려 보이 는데 저 정도의 마력이라니.
유령 마녀가 이서준을 보며 조용히
감탄했다.
이서준은 대답 대신 녀석에게 달려 들었다. 유령 마녀는 주변에 강력한 마기를 방출했다. 그 강력한 마기의 여파로 이서준의 몸이 뒤로 륑겨 나 갔다.
“큭!”
-……재밌구나. 너는 내 장난감이 되어줘야겠다.
유령 마녀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더 니 그녀의 손 위로 마기를 응축한 검은 구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바닥과 천장이 흔들리며, 돌가루와 먼지가 떨어졌다.
—……장난감이 망가지면 안 되니, 천천히 죽여주마.
검은 구체가 이서준을 향해 쏘아졌다. 이서준은 곧바로 옆으로 달리며 구체를 피했다.
콰아아앙!
검은 구체가 바닥에 닿으며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유령 마녀의 강함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저걸 맨몸으로 맞았다간 무 조건 죽는다.
-……쥐새끼같이 잽싸구나! 이것 도 피해 봐라!
이번엔 아까보다 몇 배는 많은 구 체가 나타났다.
이서준은 당황하지 않고 몸의 마력 을 끌어모았다. 그의 검에서 빛 속 성 마력이 뿜어지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유령 마녀는 언데드 몬스터답게 빛 속성에 약하다. 이서준의 검에 피어 오르는 강한 빛을 보자 유령은 당황 했다.
—……비, 빛 속성 검기?
이서준은 대답 대신 유령에게 돌진 했다. 유령 마녀는 검은 마법 구체 를 뿌리며 대응했지만, 녀석의 마법 은 이서준의 폭발적인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어떻게 저 나이 에 저런 경지에! 네놈 정체가 뭐냐!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유령마 녀가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곧바로 대자연의 심장을 발동하며 손에 마나를 최대한 끌어모았다.
10초. 15초. 그렇게 마나를 압축해 녀석을 향해 쏘아냈다.
파아아앙!
끄아아악!
내 마법이 유령 마녀의 어깨를 다 시 관통했다. 강한 마력의 파동이 일며 유령 마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찰나의 순간.
이서준은 몸을 날렸다. 유령 마녀 와 이서준의 거리가 코앞까지 가까 워졌다.
빛 속성 마력이 담긴 그의 검이 평소보다 더 밝게 빛을 내며 녀석을 향해 휘둘러졌다.
“하아아앗!”
검에서 뿜어지는 빛은 유령 마녀를 삼키고. 날카로운 검날은 유령 마녀 의 몸을 정확히 반으로 베어냈다.
동시에 강한 마력 폭발이 일었다.
콰아아아아앙!
강한 바람과 함께 빛이 서서히 사 라졌다. 기괴하게 몸이 두 동강 난 유령 마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믿을 수가 없어. 설마 저 나 이에…… 대단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유령의 몸은 먼지 가 되어 사라졌다.
[‘던전 보스 처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히든 스테이지 공략’ 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후, 드디어 끝났다……
약 26시간의 대장정.
우리는 히든 스테이지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던전의 끝, 보상의 방.
모든 고생이 끝나자 이서준이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근데 너 마지막에 쏜 마법 뭐냐?”
“뭐가?”
“파괴력이 보통이 아니길래.”
“아 그거? 10초 이상 압축 구현해 서 쏜 거야.”
“맞다. 너 압축 구현술도 다뤘지?”
이서준이 생각났다는 둣 중얼거렸다.
“신기하네. 그럼 마지막에 쓰러져 있던 여성이 보스인 건 어떻게 알았 어?”
이서준이 궁금증이 담긴 시선으로
물었다.
“멍청아. 딱 봐도 수상하잖아. 던전 끝에 일반 사람이 왜 있어.”
“……그렇긴 하네.”
“됐고, 보상이나 확인하자.”
“그래.”
보상의 제단엔 여러 아이템이 올라 와 있었다. 메인 보상은 원작의 그 것과 동일했다.
무려 s등급의 검집. ‘검의 쉼터’.
[검의 쉼터 (S)]
분류 : 검집
설명 : 신비의 힘이 담긴 검집
[지속 효과]
►맞춤형
검의 크기에 맞게 변화합니다.
►무기 강화
검집의 검을 뽑으면 30분간 검의 파괴력이 50% 증가합니다.
검집의 검을 뽑으면 30분간 검의
마력 중폭이 50% 증가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무기 수리
검집에 검을 넣어 검을 수리합니
다.
*검의 상태에 따라 최대 7일의 시 간이 소요됩니다.
*망가진 검에서 사라진 신비의 힘
은 고칠 수 없습니다.
내구 : S
S등급 아이템답게 효과 하나는 끝 장난다.
검의 위력과 마력 증폭을 50%나 올려주고 검이 망가져도 자동으로 수리할 수 있는 미친 옵션을 갖고 있다.
검사라면 이 검집을 보는 순간 눈 이 돌아가지 않을까.
거기다 이 세계에 검을 다루는 마법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생각 하면 경매장에 오르는 순간 100억 은 거뜬히 넘기겠지.
“와 대박! S등급 검집인데?”
이서준은 이 검집의 가치를 알아본 듯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마 검집 에서 뿜어지는 S둥급의 황금빛을 보 고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건 너 가져.”
S등급의 검집. 그런 최고급 아이템 이라도 나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 검을 다룰 줄도 모르고, 앞으로도 다룰 일도 없다. 그렇다고 당장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거기다 이서준의 죽음으로 한번 실 패를 맞본 나다.
이 검집을 가지고도 이미 한 번
죽어버린 이서준에게 아이템을 안 줄 수가 없었다.
“나 가지라고?”
“어. 어차피 난 검 안 쓰잖아.”
애초에 원작에서는 네 거기도 하 고.
“이거 S등급 아이템인데?”
“어. 상관없어.”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야…… 너 나중에 말 돌리지 마라?”
“어어, 그래.”
이서준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검집 을 홀어봤다. 표정에 만족스러움이
가득하다. 역시 검사답게 욕심은 있 네.
“S등급 검집이라. 효과가 뭘까. 빨 리 감정해보고 싶네.”
어떤 효과인지 알려주고 싶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으니 입은 다물었다.
그렇게 웃던 이서준이 생각났다는 듯 내게 말했다.
“아, 맞다. 남은 보상은 전부 너 가져.”
“당연한 걸 선심 쓰듯이 말하네.”
“그런가? 큭큭.”
나는 피식 웃고는 제단 위의 물건 들을 가방(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마법 부여서’, ‘마비 단검’…….
메인 보상인 ‘검의 쉼터’ 만큼은 아니지만, 이 두 개의 보상을 합치 면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됐다.”
내가 물건을 모두 담자 이서준이 기다렸다는 둣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가 출구야.”
“그래, 빨리 나가자.”
포탈을 타고 나오자 처음 우리가 들어갔던 인공 던전이 모습을 드러 냈다.
“어? 학생들이 나왔어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 리.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주변으로 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기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익숙 한 얼굴의 교사도 있었다.
그때 한 교사가 우리에게 달려왔다.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나와 이서준을 번갈아 보았다.
“얘들아! 괜찮니?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괜찮습니다.”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다. 혹시 던 전을 공략하고 나온 거니?”
“네.”
이서준의 대답에 우리를 둘러싼 기 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와. 하루 만에 공략했다고? 그것 도 학생이?”
“역시 이서준이네. 이건 기삿감이 다. 빨리 사진 찍어.”
“저! 이서준 학생! 인터뷰 부탁합 니다!”
“이서준 학생! SBC에서 나왔습니다. 히든 스테이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이서준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 려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크게 관심 없어 보 인다. 섭섭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이서준이 이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밖
으로 빠져나왔다. 몇몇 교사들이 의 무실에 안 가도 되냐고 물었지만 괜 찮다는 말로 일축했다.
“후.”
던전 밖으로 나오자 따스한 햇볕이 눈이 부셨다.
종일 어두운 곳에만 있다가 밝은 곳에 나오니 좋네.
“야! 이서준 나왔다는데?”
“아씨! 늦었네! 뛰어!”
그나저나 이서준 때문에 난리 난 건 던전 안이나 던전 밖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서준이 나왔다는 소식에 사람들 이 분주하게 뛰었다.
나를 알아본 한 기자는 내게 아는 척을 하더니 이서준의 활약에 대해 물었다.
나는 적당히 대답해주고는 다시 걸 음을 옮겼다.
“ 흐음......
그렇게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던 때였다.
내 앞에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보였다.
아름다운 얼굴의 여성과 남성.
이 둘은 자연스레 내 옆을 지나갔 다.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데도 묘한 위압감에 저절로 그곳으로 시 선이 향했다.
여성은 내가 아는 누군가와 참 닮 아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 봤다. 순간 그녀가 내 시선을 느낀 듯 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제대로 마주 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와 더 닮았다.
바로 유아라.
한 5년 정도만 더 나이 먹으면 저 런 느낌일까.
그때 그녀가 나를 알아본 둣 고개 를 살짝 숙였다. 나도 그녀에게 고 개를 숙였다. 그녀의 옆에 있던 남 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따 라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 이 없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다.
불의 마녀, 유아연.
길드, 여명의 칼날의 주인이다.
유아연은 방금 마주친 남학생에게 인사를 건네곤 다시 앞으로 걸었다. 방금 마주쳤던 남학생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김선우.
이번에 이서준과 함께 히든 스테이 지에 떨어졌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로 그를 알고 있었다.
바로 마법사관학교 마인 습격 사건 때, 자신의 하나뿐인 친동생, 유아라 를 구해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저 학생, 그 학생이지? 이번에 이서준이랑 같이 히든 스테이지를 공
략했다던.”
“맞아.”
“근데 그것 말고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얼굴이 익숙하단 말이 지……
“마인 습격 사건 때 내 동생 구해 줬던 애야.”
“아, 맞다! 그래서 누나가 인사했 구나.”
유아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 대화하는 사이.
던전 안에서 이서준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오…… 이서준이다. 실물이 더 잘 생겼네.”
남자가 감탄했다. 유아연은 아무런 반웅 없이 이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