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535)

멍하니 메시지를 보고 있자 다시 메시지가 왔다.

[혹시 내일 시간 있어요?]

시간이 있냐니.

마치 데이트 신청이라도 할 것 같 은 뉘앙스다.

“……진짜 뭐야.”

[내일 시간은 왜요?]

[같이 놀자고요흐흐]

뭐 하고 놀지 궁금해서라도 시간이 된다고 답장하고 싶지만……

내일은 조성훈 관련해 바쁘기 때문 에 어쩔 수 없다.

[죄송해요. 내일 바빠서요.]

답장을 보냈다.

[등장인물 ‘장예’가 당신의 반응에 어이없어합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여.”

그리고 메시지가 왔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다음 주 일 요일은 어때요?]

……다음 주 일요일은 윤하영과 던 전 약속이 있는데.

[죄송한데 다음 주말도 안 될 것 같아요.]

답장.

[등장인물 ‘장예’가 당신에게 강한 굴욕감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잠시 3분가량 답장이 오지 않았다.

씹힌 건가 싶어 스마트 학생 수첩 을 내려놓으려는 때였다.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흐흐.. 어쩔 수 없네요.]

다음날 오후 3시.

한세연의 부름을 받고 약속 장소인

서울의 한 고급 오피스텔에 들어갔

다.

이곳은 한세연이 사비로 구매한 개 인 주거 공간 중 하나로 한세연이 가끔 휴식을 위해 이용하는 공간이 라고 한다.

“어서 와요.”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한세연이 옅 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평소 정장 같은 딱딱한 의상을 입 은 그녀만 보았는데 지금의 그녀는 부드러운 소재의 니트와 짧은 반바 지를 입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아뇨, 평소랑 이미지가 달라서요. 자연스럽고 좋네요.”

내 말에 한세연이 킥킥 웃었다.

“제 개인 공간에서도 정장을 입을 순 없잖아요. 됐고, 자. 받으세요.”

한세연이 내게 네모난 상자를 내밀 었다. 상자 위에는 ‘YKH’라는 문구 가 적혀 있었다.

YKH. 세계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유명 정장 브랜드의 이름이었다.

“……한번 입을 건데 이렇게 비싼 걸.”

“정장을 살면서 한 번만 입겠어요? 앞으로도 또 입을 날이 오겠죠. 자, 열어 봐요.”

한세연의 말에 상자를 열었다. 안 에는 잘 빠진 검은색 정장이 있었다. 그것을 보자 눈앞에 의상의 정 보가 떠올랐다.

[YKH 클래식 남성 수트(A)]

분류 : 의상

설명 : YKH사의 남성 수트

[지속 효과]

►맞춤형

사용자의 몸에 맞게 변화합니다.

내구도 : A

“ 오.”

방어구도 아닌 주제에 내구도가 A 나 된다. 거기다 맞춤형 효과까지. 확실히 세계 최고 명품은 뭔가 다르 긴 하다.

이거 엄청 비싸겠는데.

“고마워요. 잘 입을게요.”

“지금 바로 입어봐요.”

한세연의 말에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한세연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뭔가 싶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 가 왼쪽의 작은 방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갈아입어요.”

“……아, 맞다.”

나는 민망함을 느끼고 방안으로 후 다닥 달려갔다.

‘선구자의 밤’은 서울에 소재한 브 쥬르라는 고급 호텔에서 진행된다.

브쥬르 호텔은 준비되어있는 넓은 마당과 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 시 설이 갖춰져 있어 행사용으로 자주 이용되는 곳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힘껏 꾸며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8시라는 늦은 시간이라 형형색색의 조명이 주변을 밝혔다.

“안녕하십니까? 초대장을 확인하겠 습니다.”

입구에 도착하자 호텔 직원이 내게 말했다.

나는 품 안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 다. 한세연이 준 초대장이었다. 직원 은 초대장을 확인하더니 옅은 미소 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확인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 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주변에는 먹음직한 음식들과 술이 보였다.

행사는 1충에 따로 설치된 행사장 과 넓은 마당에서 시작된다. 행사장 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웃으며 대 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어머, 한세진 부회장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그때 옆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 니 멋지게 꾸며 입은 한세진이 여성 들 사이에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인기도 많네.’

중후반부의 강한 빌런이 되는 한세 진을 지금 처치해 버리면 좋겠지만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녀석을 처치하는 건 좀 더 나중의 일.

지금은 조성훈을 찾는 게 우선이 다.

그때였다. 내 앞에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지나갔다. 내 시선은 본능적 으로 그 얼굴을 따라갔다.

‘최서윤?’

뭐야? 얘가 왜 여깄어?

나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 다.

아름다운 드레스와 한껏 꾸민듯한 외모는 원래도 빛났지만, 오늘따라 더 빛나 보였다.

그때 그녀의 옆에 중년 남성이 다 가왔다. 그 얼굴 또한 알고 있었다.

‘최재형’

5대 마법 명문가 중 하나인 최씨 가문의 가주.

……아버지 따라 왔구나.

그렇게 한 30분가량 조성훈을 찾 아 계속 주변을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최서윤을 마주칠 때마다 괜히 뻘쭘해서 시선을 피했다. 그래 도 다행인 건 최서윤은 내 존재 자 체를 아예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 인사를 나 누는 모습이 피로해 보여서 불쌍하 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내게 가장 급한 것은 조성훈 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 이지 않았다.

이제는 의심까지 든다. 얘가 이곳 에 오기는 한 것인지.

“얘 어딨어?”

그렇게 계속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 리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세 연이 보였다.

따로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마주쳐도 서로 아 는 척하지 말자는 그녀의 전언이 있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세연이 나를 바라보더니

희한한 손짓을 했다.

‘뭐지?’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녀 가 다급한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 했다.

‘보. 라. 고. 요.’

보라고요?

아, 저 손가락 방향을 보라는 거구 나.

그녀의 말을 깨닫곤 그녀가 가리켰 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한 여성과 신나게 떠드는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나는 그를

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찾았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 얼굴.

인천 테러 사건의 범인, 조성훈이 그곳에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행사는 무르익었다. 시간은 어느덧 9시 10분.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행 사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성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 여성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더니 이 내 둘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하하. 따라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으음…… 아니요.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아닙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멀리서 조성훈과 여성의 대화가 들 렸다. 아무래도 저 여성이 원작에서 조성훈에게 살해당했던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성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내가 지켜봤을 때 여성은 술을 입에 거의 안대다시피 했었기 때문이다.

‘약을 탄 건가……

조성훈은 마법사이면서 연금술사 다. 사람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약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지.

‘쓰레기 새끼.’

그렇게 둘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향했다. 나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으 로 그들을 따라갔다.

골목길 안에서 6명의 남성이 조성 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한 줄로 서서 입구를 지 켰다.

마치 영화 속 건달들을 보는 느낌 이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건달이 아니다. 무려 마법을 사용하는 건달 이다. 질이 더 나쁘다.

나는 곧바로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마나 엘릭서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후우.”

마나 엘릭서는 대자연의 심장과 달 리 무려 5분이라는 시간 동안 마나

회복속도를 올려준다.

마나가 부족한 내가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그럼 마셔볼까.

꿀꺽꿀꺽.

“으…… 더럽게 맛없네.”

[‘증폭된 마나 엘릭서’의 효과로 5 분간 마나 회복속도가 500% 증가 합니다.]

[지속시간이 지나면 30분간 마력 탈진 현상에 빠집니다.]

나는 빈 유리병을 바닥으로 던졌다.

쨍그랑!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울리자 부 하들의 깜짝 놀란 둣 주변을 둘러보 았다.

“뭐, 뭐야‘?”

“방금 뭐 깨지는 소리 들리지 않았

어?”

나는 천천히 몸의 마력을 끌어모았 다.

대자연의 심장만큼은 아니지만 신 체의 마나 회복속도가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녀석들을 쓰러트리는 덴 충분하다.

‘그럼 가볼까.’

나는 손 위로 구현된 마법을 녀석 들에게 방출했다.

환하게 빛나는 마법 구체가 어둠을 밝히며 뻗어 나갔다.

콰앙!

강한 굉음이 울렸다. 부하 중 하나 가 어깨에 마법을 관통당하며 소리 를 질렀다.

“끄아아악!”

갑작스러운 소란에 조성훈이 서둘 러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부하들도 무언가 위기를 느끼 곤 마력을 끌어모으며 방어태세를 갖췄다.

“우선 하나.”

나는 다시 마법을 구현했다. 나에 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최대한 빠르게 녀석들을 쓰러트려 야 한다.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고 싶어 마력 을 조금 압축해서 방출했다.

내 손위에 떠오른 마법 구체 하나 가 공기를 가르며 녀석 중 하나의 배를 꿰뚫었다.

“크아아악!”

“둘.”

남은 건 이제 넷.

나는 손 위로 4개의 마법을 동시 에 구현했다.

그리고 다시 목표를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쾅! 콰앙! 콰앙! 콰아아앙!

“크아아악!”

“끄으윽! 뭐야!”

조성훈을 제외한 모든 녀석이 정신

을 잃으며 쓰러졌다.

녀석들의 전투 능력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어서 다행이었다.

“후우.”

그럼 6명의 부하는 모두 쓰러졌으 니 이제 보스 차례다.

주변을 둘러보던 조성훈은 고개를 들더니 어둠 속에 숨어있던 나를 똑 바로 웅시했다.

“너 뭐냐?”

조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 법을 강하게 구현해 녀석을 향해 방 출했다.

파앙!

하지만 내 마법은 녀석의 몸을 감 싸고 있는 투명한 마력에 부딪히며 사라졌다.

녀석은 마법을 맞은 부위를 탁탁 털어내더니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 았다.

호신강기.

신체의 표면을 마력으로 둘러싸 단 단하게 만드는 강화계 마법사 특유 의 방어 기술이었다.

저 정도의 호신강기를 다루다니.

상대의 수준이 꽤 높았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 B등급 이상이다.

‘하긴, 이서준과 유아라가 힘을 합 쳐서 겨우 쓰러트렸을 정도니……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데 조성훈이 분노한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정체가 뭐냐고 물었잖아!”

나는 다시 대답 대신 마법을 녀석 에게 쏘아냈다. 아까보다는 더 압축 된 마법 구체였다.

콰앙-!

하지만 이번에도 녀석은 반응 좋게 호신강기로 마법을 막아냈다. 그래 도 마법이 압축된 탓에 마법을 막아 낸 녀석의 팔뚝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개자식. 죽여주마.”

콰직!

조성훈의 발밑 바닥이 움푹 패였다. 녀석의 종아리가 마력으로 강화 돼 부풀어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

다.

콰악!

녀석이 바닥을 박차며 나에게 달려 들었다.

“죽어!”

주특기가 강화계인 녀석답게 나에 게 달려드는 속도가 엄청났다.

나 역시 신체를 강화하며 녀석의 공격 범위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 했지만 주특기가 강화계인 프로 마법사 상대로 거리를 벌리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이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대자연의 심 장을 발동했다.

[사용 효과, ‘대자연의 심장’을 발 동합니다.]

[1 분간, 마나 회복속도가 1000% 증가합니다.]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나가 차오르며 엘릭서의 마나 회 복 효과와 중첩되었다.

마나가 무한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비됐던 마나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마나로 신체를 한 단계 더 강화시켰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신체의 근 육.

내 몸은 폭발적인 힘을 내뿜으며 녀석의 몸을 가격하듯 밀어냈다.

파앙!

“크으윽!”

갑작스럽게 변한 내 움직임에 조성 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어떻게 마나가 저렇게 늘어 날 수 있지?”

“후우. 큰일 날 뗀했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 금 녀석의 공격에 맞았으면 진짜 정 신 못 차리고 바닥을 기었을지도 모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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