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535)

“웅? 아니야. 나도 한 거 없어!”

윤하영이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유아라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나와 윤 하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둘 중에 아무나 받아. 나 진 짜 바보같이 기절해 있어서 이 돈 받는 거 수치스럽거든.”

얘도 참 자존심이 장난 아니다.

단순히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500 만 원이라는 돈을 거절하다니.

애가 어려서 그런지 돈 귀한 줄을 모르는구나.

“그럼 나 줘.”

500만 원 준다는데 안 받을 이유 는 없지.

그리고 괜히 돈 준다는 거 거절하 면서 체면 세우는 것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챙길 수 있을 때 다 챙겨야 지.

그때 윤하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 그럼 나도 줄게.”

얘는 또 왜 이래?

“너는 또 왜?”

“……그야 너한테 도움받았으니 까.”

윤하영이 어색한 웃음을 홀리며 대 답했다.

“넌 됐어.”

“너는 마인한테 확실히 피해를 줬 잖아. 사실 마인을 토벌하는 데 네 힘이 가장 컸어.”

“근데 그게 내가 한 게 맞기는 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마인의 천적이라 불리는 멸마의 힘을 갖고 도 자신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도 모 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 게 모른 채 지내게 할 순 없다.

하루빨리 멸마의 힘 사용법을 깨닫 고 마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거 네가 한 거 맞아.”

“뭐래, 실제로 내가 마법 쓰는 걸 본 것도 아니면서.”

“아니야. 너 맞아.”

이 세계에서 멸마의 힘을 가진 건 너밖에 없거든.

“......그래?”

“응.”

확신에 찬 내 대답에 윤하영이 알 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선우가 그렇다면 그런 거 겠지. 네 말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무 근거 없는 말임에도 내 말을

믿는다. 아무래도 윤하영에게 나는 신뢰 높은 사람인 모양이다.

그때 멀뚱멀뚱 우리 대화를 지켜보 던 유아라가 말했다.

“김 선우.”

“웅?”

“근데 너……

유아라가 뭔가 말할 것처럼 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 려 윤하영의 눈치를 살폈다.

“뭔데?”

내가 묻자 유아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음에 얘기하자.”

……뭐야. 얘는 또 왜 이래?

교실 단상에서 거대한 홀로그램 영 상이 홀러나오고 있다.

영상의 내용은 마인의 역사와 습성 에 대한 것으로, 마법사 협회에서 마인 테러 안전 교육을 위해 제작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영상 에 흥미가 없는 둣 잠을 자거나 스 마트 학생 수첩으로 게임을 하는 등

딴짓을 했다.

그 사이 유아라는 의자에 앉아 혼 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 뭘까.’

그녀는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김선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김선우.

분명 작년만 해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애였다.

마법 능력도 보잘것없었고, 다른 면에서도 딱히 두각을 드러내지 않 았다.

그런데 2학년이 된 이후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여러 가지 방면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더니, 어제는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 들 만큼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줬 다.

그것도 B등급 이상의 마인을 상대 로.

대체 뭘까. 어제 그 일이 있고 나 서 몇 번을 다시 생각했다.

김선우가 어제 보였던 그 힘은 아 무리 생각해도 학생 수준이 아니었다. 강한 마력과 그 마력을 자유자 재로 다루는 실력까지.

다른 학생이었으면 김선우가 다룬

마법이 어느 수준인지 잘 가늠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유아라는 달 랐다.

그녀는 발현계 마법에서만큼은 전 교의 150명의 학생 사이에서도 특 출난 이해도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김선우의 마법 능 력이 재능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평소에는 가진 힘의 일부만 보이는 걸까.

지금까지 학교에서 보였던 그의 힘 은 어제 보여줬던 힘의 아주 극 일

부분이었다.

많은 마력량을 갖고 있음에도 공개 테스트 첫날 마력 방전이 일어난 척 을 했고, 이번 월요일에 있었던 기 초 마법 능력 평가에서는 힘을 숨기 려는 듯 어제와 같은 강력한 발현계 마법이 아닌 부특기인 강화계를 이 용해서 시험을 치렀다.

심지어 주특기, 부특기도 아닌 보 조계에서는 교사가 직접 특별 재능 인 장학금을 준다는 걸 거절하기도 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이서준에 버금가는 재능…… 아니,

그 이상으로 느껴지는 괴물 같은 천 재성을 갖고도 힘을 숨기는 이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 데 저 나이에 생길만한 사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몇 개 없는데.

혹시 나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건……

그러다 문득 유아라는 자신의 어릴 적 일을 떠올렸다.

불운했던 과거. 이별. 괴로움. 고 통.

지금처럼 독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 끔찍했던 사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아라 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옆자리로 옮 겨 앉은 윤하영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야.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나 서.”

“무슨 생각?”

“그냥, 옛날 생각.”

“으음. 그래?”

윤하영은 몇 가지 더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기분 탓인진 모르지만, 그녀의 목

소리에서 슬픈 감정이 느껴졌기 때 문이다.

“자! 모두 일어나라!”

장안철의 부름에 번뜩 잠에서 깼 다. 입가의 침을 손둥으로 쓰윽 닦 고는 고개를 들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뜨니 웬 메 시지가 하나 떠올라 있었다.

[둥장인물 ‘유아라’가 당신을 궁금 해합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뭔데.”

슬쩍 고개를 돌려 유아라를 바라봤 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유아라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 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둣 묘한 눈 을 바라보더니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지?

그렇게 혼자 무슨 일인가 생각하는 데 장안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모두 일어났나? 그럼 몇 가지 추

가 전달사항을 전하고 오늘 종례를 마치겠다.”

“네-.”

“우선 내일 수업도 오후 1시에 진 행하기로 결정했다.”

장안철의 말에 몇몇 학생 사이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들렸다. 첫 수업마 다 꾸벅꾸벅 졸던 애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중간시험의 성적 채 점 방식은 월요일, 화요일에 있던 시험이 60%. 나머지 40%는 이전에 있던 평소 수업 점수로 반영하기로 했다.”

이번엔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아쉬 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앞으로도 이런 갑작스러운 채점 방식의 변화는 또 있을 수 있다. 그 러니 다들 평소 수업을 잘 따라오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마지막이라는 말에 모든 학생의 시 선이 장안철에게 집중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특별 선택 수업은 취소되었다.”

다시 한번 학생들의 아쉬움이 터졌다.

“이건 좀 아쉽다.”

“그러게. 교내는 답답해서 야외 수 업이 좋은데.”

특별 선택 수업 취소라…….

이건 좀 마음에 드네.

나도 어디 야외 나가서 돌아다니는 건 귀찮으……

“......어?”

잠깐.

……다음 주 특별 선택 수업이 없다고?

“이런 미친!”

내 외침에 모든 학생의 시선이 나 에게 향했다.

원작에 따르면 다음 주 특별 선택 수업엔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바로 서울역 테러 사건.

이서준과 유아라가 한 조가 되어 서울 마법사 협회 견학 중 서울역에서 발생하는 작은 테러 사건에 휘말 리는 에피소드였다.

이 에피소드는 원작에서 꽤 중요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유아라의 비중

이 확 늘어남과 동시에, 이서준과 유아라의 사이도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유아라의 숨겨진 과거와 트 라우마에 관한 이야기까지 밝혀지 느..

“이걸 어쩌지?”

하지만 스토리의 변화로 이번 특별 선택 수업이 취소되었다.

원래라면 이서준과 유아라가 막아 야 할 서울역 테러는 그 누구도 막 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테러리스트의 테러 활 동을 막아줄 사람이 없게 된다. 결

국 서울역에 설치된 마력 폭탄에 의 해 상당한 수의 사상자가 발생할지 도 모르는 일.

그러다 괜히 예상치 못한 중요 인 물이 사망하게 되면 엄청 골치 아파 진다.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하지만 문제는 사건이 터지는 수요 일 날은 등교하는 날인데 내가 어찌 막느냐다.

마법사관학교는 조퇴나 병가를 쉽 게 내어주지 않는다.

학교를 빠지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단 조퇴를 하 자니 학교의 경고가 무섭고.

“......으음.”

방법은 역시 하나뿐인가.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사건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

역시 그것밖에 없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 습니다.”

학교 주변의 작은 커피숍.

나는 커피를 받고 빈자리에 앉았 다.

“야, 인천에 테러 터졌다는데?”

“헐. 미친 또 테러야?”

“세상이 왜 이리 흉흉하냐?”

주변에서 테러에 관해 떠드는 게 들렸다.

인천 테러 사건.

다음 주에 있을 서울역 테러 사건 의 범인이 저지른 일이었다.

역시 이번 테러 사건은 원작의 흐 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켜 인터 넷에 접속했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 헤르메 스]

나는 검색창에 한 이름을 검색했다.

이번 테러 사건의 주모자이자, 범 인인 조성훈.

테러 단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작 은 규모지만, 나름 ‘폭연’이라는 이 름도 갖고 있는 테러 단체의 대장이

었다.

[‘조성훈’ 검색 결과입니다.]

[인물‘조성훈’]

소속-JQ 그룹

직업-연금술사, 마법사

예상했던 대로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딱 세상에 알려진 조성훈에 대

한 정보만 나왔다.

원작에서도 조성훈은 그렇게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사건 발생을 위해 잠깐 투입 시킨 엑스트라라는 느낌이 강했다.

“홈……

역시 이런 포털 사이트에서 신상을 찾는 건 의미가 없다.

나는 인터넷 창을 종료하고 스마트 폰을 꺼내 메시지를 작성했다.

[한세연 씨, 부탁할 게 있습니다. 연락 가능합니까?]

전송 완료.

띠링! 곧바로 답장이 날라왔다.

[오랜만이에요. 무슨 부탁인데요?]

[찾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 주말까지요.]

[누구요?]

UQ그룹의 조성훈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왜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최근 동선에 대해 자세히 조사 부탁 드립니다.]

[알았어요. 일단 조사는 해드릴게 요.]

[네, 부탁합니다.]

이거면 되겠지. 한성그룹의 정보력 은 믿을 만하니까.

그렇게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을 때였다.

뒤에서 나를 향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휴. 겨우 찾았네.”

누군가 싶어 획 돌아보자 젊어 보 이는 여성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선우, 맞지?”

익숙한 얼굴.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누군지 알았 다.

그야 당연한 게 뉴스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게 바로 눈앞의 이 사람이었 으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20대의 젊은 여 성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 는 그 2배가 넘는다.

“……정윤슬 마법사님?”

정윤슬.

무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보조계 마법사였다.

“그래, 반갑다.”

“……여긴 어쩐 일로?’

“별거 아니야. 그냥 너랑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저랑요?”

……갑자기 왜?

“윤진이에게 네 이야기를 들었거 든.”

“아……

윤진이라면 아마 보조계 교사인 김 윤진을 말하는 거다. 원작에 의하면 정윤슬은 김윤진의 스승이었다.

대충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이 돼 먼저 말했다.

“죄송한데 저는 보조계로 옮길 생각이 없어요.”

“엉? 아아. 그래, 그건 아쉽네. 네 가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

뭐지? 정윤슬이 예상외로 쿨한 반 웅을 보였다. 원작에서 워낙 괴짜로 묘사되는 인물이라 걱정했는데.

“대신 몇 가지 질문 좀 받아줘라.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 뭔데요?”

“혹시 어제 3학년 시험장에 있었 나?”

정윤슬의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질문의 의도가 뭘까에 대한 고 민이 필요했다.

“네. 있었어요.”

어설픈 거짓말은 금방 들통난다. 심지어 그때 이서준과 함께 있어서 몇몇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테니까.

“그러냐? 그럼 혹시 그때 결계. 네 가 해제한 거냐?”

역시 이것 때문에 나를 찾은 거구 나.

정윤슬은 어제 결계 해제한 사람으 로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만약 여기서 사실대로 답한다면 내 가 세상에 알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대량의 포인트도 얻 고 단기적으로는 좋겠지만 마인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는 아직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마인의 눈에 띄는 건 좀 더 나중이어 야 한다.

“아니요.”

정윤슬이 내 눈을 똑바로 웅시했다. 그러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발뺌하는구나.”

“그걸 제가 어떻게 해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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