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이야기할 게 있어서 불렀 어요. 우선 장학금에 관한 이야기인 데. 아마 내일 중으로 입금이 될 것 같아요.”
아, 뭔가 했더니 장학금 때문에 불 렀구나.
설마 진짜로 장학금을 받게 될 줄 은 몰랐는데.
그때 장난으로 이희영에게 했던 말
이 정말로 현실화되었다.
“아라 학생은 특별 재능인 장학금 이고 인환 학생과 선우 학생은 교사 추천 장학금이 들어갈 예정이에요.”
“얼마나 들어오나요?”
“아라 학생은 5000만 원, 인환 학 생은 1000만 원, 선우 학생은 500 만 원이요.”
힐끔 유아라를 바라보니 크게 기뻐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 돈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표정이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엄청 멋지 다.
그때 박인환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김선우가 장학금을 받는다고요?”
“네.”
“왜요? 쟤 전교 꼴찌잖아요.”
“선우 학생이 재능이 있거든요.”
박인환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표정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재능이요? 혹시 보조계 쪽 장학금 이에요? 김윤진 선생님이 저번에 그 러신 거 보면 이해라도 되는데.”
“아니요, 발현계에요.”
“……이거 학생들한테 알려지면 아 마 난리 날걸요? 보조계는 그래도
결계 해제 속도라는 명분이라도 있 었는데.”
박인환이 석연치 않은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뭐, 박인환의 저런 반응도 이해는 된다.
보조계 쪽에서는 내가 보여준 게 있었지만 발현계에서는 보여준 게 딱히 없었으니까.
이희영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건 괜찮아요. 교사 추천 장학금 은 어차피 교사 재량에 따라 주는 거라서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죠.
제가 여러분을 부른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
이희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 를 향했다.
“올해부터 재능인 특별반이 개설될 거에요. 각 학년에서, 계통당 5명씩. 저는 2학년 발현계 특별반 학생으로 우선 이렇게 셋을 추천하려 해요. 다른 2명은 다른 반에서 뽑을 거고 요.”
아, 재능인 특별반.
원작에서도 나왔던 에피소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일반 학교의 심화 반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성적과 상관없이 오직 재능과 잠재 력만으로 뽑힌다.
설마 전교 꼴찌인 내가 특별반에 추천될 줄 생각도 못 했는데.
“혹시 거절하고 싶은 학생 있나 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재능 있는 학생들끼리 모여 특별 수업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 좋은 기회를 누 가 거절하겠는가.
거기다 상위권 학생들과 교류할 껀 덕지도 생길 테니 업적이나 명성 포 인트를 벌 여지도 생긴다.
“거절할 사람은 없는 거죠? 그럼 재능인 특별반으로 여러분을 추천할 게요.”
“네.”
모두가 함께 대답하자 이희영이 만 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이희영이 나를 바라봤다.
“아참, 그리고 선우 학생.”
“네.”
“선우 학생은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선우 학생은 지금 전교 꼴찌잖아 요? 그래서 이대로는 특별반에 들어
갈 수 없어요. 대신 학생의 잠재력 과 재능을 학교에 증명하면 돼요.”
잠재력과 재능을 중명하라고?
“다음 주 중간시험에서 종합 80위 위로 올리세요. 가능하죠?”
이희영과의 면담이 끝나고, 나와 유아라, 박인환은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침묵을 유지한 채 복 도를 걷는데, 박인환이 갑자기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뭐냐?”
“왜‘?”
“저번 김윤진 선생님도 그렇고 이 희영 선생님도 그렇고 왜 다들 너한
테 장학금 못 줘서 안달이냐?”
“나도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 어?”
또다시 시작된 박인환의 무근본 시 비 걸기에 대충 대답했다.
“아니 이상하잖아. 집안이 겁나 좋 나? 너 어디 명문가 출신이냐? 아 니면 뭐 뒷돈 줬냐?”
“아니.”
“진짜 신기한 놈이네. 마력도 없어 서 첫날 마력 방전 일어난 놈이. 너 진짜 뭐 있지?”
“……에휴. 마음대로 생각해라.”
[등장인물 ‘박인환’이 당신에게 얕 은 분노를 느낍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뭐라 했냐?”
박인환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하지만 저런 도발에 욱할 내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 며 무시했다.
얘도 참 어지간하다. 저렇게 화를 못 참아서야 나중에 사회생활 하겠
나?
아, 얘 어차피 나중에 빌런이 될 운명이니 상관없구나.
“너네 시끄러우니까 적당히 해.”
유아라가 우리를 획 돌아보며 말했다.
박인환은 유아라의 사나운 눈초리 에 잠시 입을 다물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전교 꼴찌가 특별반 추천도 받고 그러는데?”
박인환의 말에 유아라의 시선이 나 를 향했다. 투명한 눈빛.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오
지 않았다.
“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거봐! 어, 응? 뭐라고? 받을 수 있다고?”
“어. 발현계 수업 때 김선우가 내 옆자리라서 알아. 재능은 있어. 다만 마나량이 형편없어서 그렇지.”
유아라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흘러 나오자 박인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전교 꼴찌인 데.”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는 거야. 더 이상 묻지 마.”
유아라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서야 박인환은 입을 다 물었다.
모든 수업과 훈련을 끝내고 기숙사 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벌써 11 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샤워를 하고 옷도 갈아입다 보니 11시 30분.
다음 날까지 30분을 남겨늏고서야 하루 일과를 모두 끝낸 기분이 들었
다.
“……맞다. 내일 과제도 있었는데.”
내일 이론 수업인 고전 마법학의 성질 변화의 역사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다.
사실 이 과제는 일주일 전에 주어 진 과제였다. 하지만 최근 바쁜 생 활로 미루고 미루다 보니 결국 하루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아, 귀찮네.”
아무래도 오늘 푹 자기는 그른 것 같다.
사실 이론 수업은 마법사관학교 내 에서 성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
진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와 포인트 획득을 위해 들인 노력이 있기에 하나의 과제도 빼먹 을 순 없었다.
거기다 다음 평가에서 종합 80등 안에 들기 위해서는 이런 이론 과목 을 하나라도 더 잘 보는 게 중요하 기도 하고.
“킁.”
그나저나 다음주 시험 때 80등 안 으로 들 수 있으려나…….
차라리 첫날 공개 테스트처럼 단순 히 표적을 맞히는 거라면 10둥 안 도 자신 있는데.
“ 모르겠다
오늘 훈련을 좀 격하게 했더니 피 곤해 죽겠네. 리포트고 뭐고 다 때 려치우고 잠이나 자고 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게 외부자의 혜택이 있다는 거다.
각잡고 쓰면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 지 않을까. 어차피 머릿속에 들어오 는 정보만 받아 적으면 되는 일이니 까.
“그럼 써볼까.”
외부자의 혜택 덕에 다행히 과제는 내 예상보다 두 배는 빠른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무아지경으로 글을 써내리다 보니 작성한 페이지가 무려 40페이지가 넘어갔다.
내가 써놓고도 이건 좀 과했나 싶 을 정도로 많은 분량이 완성됐다.
이 정도면 거의 교수 논문 수준이 아닐까.
그렇게 한숨 푹 자고 다음 날 과 제를 제출하니 고전 마법학 교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김선우 학생. 이걸 혼자 다 한 거 예요?”
“네, 혼자 다 했습니다.”
“아니, 무슨 페이지 수가 이렇게 많아요?”
혹시 쓸데없는 내용으로 분량을 늘 린 건 아닐까, 교사가 쓱쓱 내 과제 물을 홅기 시작했다.
한번 빠른 속도로 다 읽더니 다시 첫 페이지로 넘어왔다. 이번엔 조금 느린 속도로 한 글자씩 진지한 눈으 로 리포트를 읽기 시작했다.
교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 다.
“김선우 학생. 어디서 베껴온 건 아니죠? ……아니지. 이 정도 퀄리 티면 분명 저도 봤을 거니 그건 아 니겠죠.”
“전부 제가 썼습니다.”
[등장인물 ‘양현숙’이 당신의 성실 함에 감탄합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고전 마법학 교사 이름이 양현숙이 었구나.
“대, 대단하네요. 대충 훑어봤는데 도 상당한 퀄리티가 느껴져요.”
“감사합니다.”
“자, 일단 자리로 돌아가세요.”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내 두 번째 앞자리에 앉 은 윤하영이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 더니 엄지를 척 올렸다.
“자, 여러분. 김선우 학생 과제물 분량 보이시나요? 무려 42페이지나 써왔어요. 참 대단하지 않나요? 다른 학생 여러분도 김선우 학생의 성
실함을 본받았으면 좋겠어요.”
[35명의 학생이 당신을 아니꼬워합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42페이지 실화냐?”
“쟤는 무슨 과제가 아니라 논문을 제출했네.”
“대단하다. 진짜.”
교사는 나를 향한 질투 어린 시선 을 모르는 건지 흐뭇한 얼굴로 학생
들에게 말했다.
“자, 다들 열심히 한 김선우 학생 에게 박수 한 번 쳐주세요.”
“와아아!”
작은 박수 소리가 교실 안에서 울렸다.
잘 들리지도 않는 미약한 박수 소 리.
대충 둘러보니 윤하영, 이서준, 신 영준, 이현주만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칠 거면 모두 치던가. 안 칠 거면 모두 안 치던 가.
괜히 내가 다 민망하네.
예상보다 심심한 반웅에 교사 역시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마법사관학교 장학재단]
[5,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
드디어 장학금이 들어왔다.
수중에 몇십억씩 들고 있는 지금,
500만 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큰 금 액은 아니었지만, 공짜 돈이 생겼다 는 게 중요하다.
이 돈을 어디다 사용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뒀다.
[한성 제약 12주 매수]
바로 주식을 구매하는 것.
그런데 아직 기사가 터지지도 않았 는데 며칠 사이에 주가가 꽤 올랐다. 덕분에 12주밖에 구매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일 기사가 터지면 주가가 더 오를 예정이니 무조건 사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현금 들고 있어봤자 당장 쓸 곳도 없으니까.
‘……음, 다른 곳도 투자해볼까.’
그렇게 스마트 학생 수첩을 보며 다른 종목에 대해 고민하는데 앞에서 윤하영이 불렀다.
“선우야. 어때?”
화요일 오후의 대련 수업.
윤하영이 손 위로 구현한 얼음 화 살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박이네.”
“웅?”
“엄청 좋은데? 구현 디테일도 엄청 좋고.”
화살의 구조를 완벽하게 외우라는 내 숙제를 잘 해왔는지 그녀의 마법 형태에서 연습한 티가 났다.
정말 며칠 사이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엄청난 재능이다. 이 정도면 유아 라급은 아니더라도 박인환급 재능은
된다.
나 같은 애 말고 이런 애가 장학 생 특별반에 들어가야 하는데.
“구현은 어느 정도 된 거 같네. 기 초도 어느 정도 된 것 같고.”
“정말? 그럼 우리 가볍게 실전 대 련이나 하자. 다음 주 중간시험에 실전 대련도 있잖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 중간시 험 과목에 대련이 있었지.
사실 윤하영이랑 연습한다고 내게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윤하영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윤하영의 대련 경험은 나와 있었던
내기를 제외하면 거의 백지이다.
아마 조금만 연습해도 금방금방 실 력이 늘 것이다.
“그래, 대련 스파링이나 하자. 실전 감각도 키워볼 겸.”
“오. 정말? 오케이. 복수전 간다. 흐흐.”
“구현 디테일 좀 늘었더니 자신감 좀 생겼나 봐?”
“솔직히 지금 자신감 좀 차오른 상 태야. 그리고 선우 네가 어떤 식으 로 전투하는 지도 저번에 겪어봐서 이번엔 대처할 자신이 있거든.”
얼씨구. 그러셔?
“그래, 어디 한번 해봐.”
단순한 도발인 건 알지만 나도 괜 히 승부욕이 생기네.
‘체단실에서 훈련한 성과가 궁금하 기도 하고.’
나는 그녀와 거리를 적당히 벌리고 말했다.
“스파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실전 이라고 생각하면서 덤벼.”
“웅? 그래도 돼? 그러다 다치면 어쩌게?”
“괜찮아. 안 다쳐.”
“……그 말 뭔가 자존심 상하는
데.”
윤하영의 승부욕이 자극됐는지 눈 빛이 달라졌다.
나는 피식 웃고는 몸의 마력을 끌 어모았다. 평소와 같이 하체에 마력 을 집중했다.
윤하영의 눈에 긴장감이 살짝 어린 게 보였다.
“시작!”
시작과 동시에 윤하영은 수십 개의 얼음 화살을 구현해 방출했다.
천장을 뒤엎는 얼음 화살.
내 제안대로 윤하영은 실전이라고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내게 덤볐 다.
윤하영의 마법 구현 디테일은 확실 히 좋아졌지만, 방출 속도는 아직 느렸다. 나는 빠른 속도로 얼음 화 살을 피해냈다.
확실히 최근 근력 훈련을 해서 그 런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데 도 고통이나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 다.
나는 평소보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얼음 화살을 피해내며 그녀에게 한 발짝씩 나아갔다.
“하앗!”
확실히 저번 대련에서 느낀 게 있 었는지 윤하영은 얼음 화살을 적절 하게 구현 방출시켜 나의 접근을 최 대한 막아냈다.
대단한 마력이다. 저렇게 마법을 뿌리는 데도 끊길 생각을 하지 않다 니.
만약 나였다면 몇 발 쏴놓고 마력 이 고갈돼 사용하지도 못했을 텐데.
‘하지만.’
마법 대련은 마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경험과 센스가 가장 중요했다. 윤 하영은 그런 점에서 아직 경험이 부
족했다. 그에 반해 나는 5년 이상을 현역 프로 마법사로 살아온 경력이 있었다.
나는 손에 마법 구체를 구현했다.
많은 마력이 담긴 구체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것을 그녀의 다리 쪽으로 방출했다.
-휴우우옹!
팡!
내 예상대로 윤하영은 몸을 꺾으며 반웅 좋게 내 마법을 피해냈다. 하 지만 실패한 공격은 아니었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공 격에 텀을 만드는 것.
윤하영은 마법을 피하는 과정에서 잠시 마법 구현을 중단했다.
내가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하체의 마력을 최대한 모아 그녀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그녀를 확 밀치며 넘어트렸고 손에 마법을 구 현해 그녀를 조준했다.
짧은 시간. 대련은 또 이렇게 허무 하게 끝났다.
“......후우.”
“으. 이번엔 진짜 자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