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535)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아! 여기서 뭐해?”

고개를 돌려보니 절친, 송승아가 반갑게 다가오고 있었다.

최서윤은 웃으며 반응했다.

“응? 아냐. 그냥 훈련하다가 잠깐 쉬고 있었어.”

최서윤의 대답에 송승아는 슬쩍 최 서윤이 보고 있던 장소로 시선을 돌 렸다.

“어? 김선우 선배님이네.”

“웅.”

“와, 옆에는 누구야? 되게 귀여우 신데.”

“몰라, 스파링 파트너인가 본데?”

“스파링 파트너? 아아, 그런가 보 네. 근데 저거 설마 마법 가르치는 거야?”

“웅, 그런 거 같아.”

“오…… 역시 모범생답게 전교 꼴 찌인데도 이론은 빠삭하신가 보네.”

“……모범생?”

순간 최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모 범생이라니? 김선우 선배가?

“누가 모범생이야?”

“당연히 김선우 선배님이지. 소문 못 들었어?”

“무슨 소문?”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 평판 제일 좋다잖아. 수업 참여도도 좋고 다른 실전 과목도 생각보다 성적 잘 나오 고 있다던데? 아무튼, 엄청 성실하 다더라고. 어디서 들은 얘기로는 사 람들 없을 때 혼자 학교 청소도 하 고 그런다더라.”

“......정말?”

최서윤이 황당한 얼굴로 김선우를 바라봤다.

모범생이라니.

‘교내에 맥주 반입하는 사람이?’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 층 빌딩의 최상층.

그곳에서 한 남자가 야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하령님.”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남자를 불렀다.

하령이라 불린 남자는 야경에 시선 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무슨 일이죠?”

“이틀 전, 제 친우인 백강의 연락 이 끊겼습니다. 조사해본 결과 그의 마지막 이동 장소가 하령님이 주관 하시는 지하 투기장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 부분에 관해 아시는 게 있 는지 여쭈어보려 합니다.”

“미안하지만,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럼, 김진우라는 자에 대해서 혹 시 아십니까?”

어둠 속 남자의 말에 하령이 입을 다물었다.

김진우.

최근 량량이라는 신인에게 큰 배팅 을 걸었던 토끼 가면의 정체였다.

지하 투기장이 끝나고 부하를 시켜 개인적으로 조사를 했기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오다 니.

“압니다.”

“그러시군요. 백강 정도나 되는 녀 석이 이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 라졌다는 게 이상해서 혹시 여쭈어 봤습니다. 그렇다면 김진우라는 사 내를....♦.”

“천해.”

“네, 하령님.”

“제 고객입니다. 건들지 마세요.”

천해가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하령은 전 세계에 10명도 되지 않는 s등급의 최상급 마인. 하 지만 그런 강한 힘올 가졌음에도 오 만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는 아 주 현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난생처음으로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

천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에게 흥미가 있으니까요.”

하령이 이전 지하 투기장을 떠올리 며 대답했다.

김진우.

그는 량량이 양홍주를 이길 걸 확 신했다.

단순히 운이 좋은 게 아니었다.

량량이 승리했음에도 기뻐하는 기 색이 전혀 없던 건, 분명 그는 미래 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령은 생각했다. 혹시 그에게 미 래를 읽는 힘이 있는 건 아닐까 하 는 생각.

‘알아야겠어.’

정말로 그에게 미래를 읽는 힘이 있는지를.

일요일 아침.

아침에 눈을 뜨니 웬 메시지가 떠 올라 있었다.

[등장인물 ‘하령’이 당신에게 호기 심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거 뭐냐?”

하령이라면 지난번 지하 투기장에서 마주쳤던 S등급의 마인이다. 하 지만 그때 가면을 쓰고 있어서 나를 알아볼 수 없었을 텐데.

이놈이 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지?

‘……설마 량량한테 돈 건 것 때문 에 그런가?’

가능성이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하령이 나에게 관심 가질 만한 이유는 이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 해도 겨우 역 배팅에 성공 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관심이 생겼 다고?’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홀러가는데.

“ 으음......

지하 투기장에 다녀온 지 벌써 5 일이 흘렀다. 지금 와서 명성 메시 지가 떠올랐다는 건, 하령이 내 정 체를 알아냈다는 이야기다.

이놈이 나를 뒷조사했다는 건 확실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를 향한 하령

의 감정이 ‘악의’가 아닌 ‘관심’이라 는 것.

아마 이것으로 지금 당장은 위험한 일이 생긴다거나 할 것 같진 않다.

애초에 하령은 마인들 사이에서도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으 니까.

“뭔가 대비를 해야 하나.”

하지만 대비한다고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까?

하령은 이 세계에서 20위 안에 드 는 강자이다.

그런 녀석이 마음먹고 나를 어떻게 하려 한다면 방법이 없다.

‘김진우 활동을 자제해야겠네.’

역시 이것밖에 없다.

최근 김진우로 활동하면서 사람들 의 관심을 너무 많이 끌기도 했고.

덕분에 포인트도 벌고 돈도 왕창 벌었지만 잠시 쉬어갈 때다.

조금 잠잠해진 것 같으면 그때 다 시 활동하면 되겠지.

“에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잠도 덜 깨고 몸에 피로가 덜 풀 렸지만 이렇게 앉아서 시간 낭비를

할 순 없었다.

일과를 시작하러 갈 때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나는 훈련장 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마법 훈련장으로 향했겠 지만, 오늘 내가 향한 곳은 마법 훈 련장이 아닌 체력 단련실이었다.

내가 체력 단련실로 향한 이유는 단순했다.

마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몸의 근

력으로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강화계는 발현계에 비해 상대적으 로 마나 소모가 덜 필요로 하다. 지 금 당장 마력이 부족한 나는 부특기 인 강화계에 좀 더 의존할 필요가 있었다.

[문이 열립니다.]

체단실에 입장하니 여러 체력 단련 기구들이 보였다. 헬스장과 상당히 흡사한 분위기였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단련 기구와 땀을 뺄뺄 홀리며 단련하는 사람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어? 김선우?”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땀에 젖은 이서준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

“안녕. 여긴 웬일이야?”

“웬일이긴. 체력 단련하러 왔지.”

“하하. 그러네. 여기서는 처음 보는 거 같아서.”

“부특기에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아서 체력 좀 키우려고.”

내 말에 이서준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 레 저었다.

“하긴, 부특기가 강화계인데 몸이 그게 뭐냐? 살 좀 찌워라.”

“시끄러.”

“기구 사용법은 알아?”

“당연히 알지.”

“아, 맞다. 너 1학년 때 강화계였 지?”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고는 가볍 게 스트레칭을 했다. 이서준도 가볍 게 웃더니 원판이 몇 개 달려있는지 도 모르겠는 봉을 번쩍 들며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체 단실의 문이 열렸다.

신영준이 손을 혼들며 요란하게 둥 장했다.

“요! 이서준 하이!”

“안녕.”

이서준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자 이번엔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김선우 하이!”

“……어, 하이.”

내 인사에 신영준이 만족스럽게 웃 었다.

“오, 김선우. 근데 체단실엔 웬일이

야?”

아까 이서준과 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체력 단련하러 왔지.”

“아, 그러네. 으핫!”

호쾌하게 웃는 신영준을 무시하고 다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몸도 이 제 어느 정도 풀어졌다. 슬슬 러닝 부터 해볼까.

그렇게 러닝머신에 오르려는 때였다.

다시 한번 단련실 문이 열렸다. 그 리고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서준아. 또 만나네.”

여성은 고혹적인 미소로 이서준에 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동시에 모든 학생의 시선이 그곳으 로 향했다.

남자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화려한 외모.

그녀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유 명 인사 중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훈련을 잘하고 있니?”

“네, 뭐 똑같죠.”

이서준이 웃으며 답했다. 이서준

옆에 있던 신영준은 그녀의 외모에 놀랐는지 살짝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아 는 얼굴이었다.

3학년 4위, 박민예.

“옆은 서준이 친구분?”

“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서준이 절친 신영준이라고 합니다!”

신영준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활 기찬 그의 인사에 박민예가 조용히 웃었다. 그러다가 그의 옆에서 스트

레칭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시선을 마주 했다.

“이분도 서준이 친구?”

그녀의 말에 이서준이 대답했다.

“네, 친구예요.”

“반가워요.”

그녀가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마치 최서윤의 가식적인 눈웃음을 보는 기분이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살짝 당황 이 일었다.

몇 초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나를

보더니 다시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 렸다.

“근데 요즘 우리 자주 만나네. 그 치‘?”

“그러게요. 체단실에서 시간을 많 이 보내서 그런가.”

나는 가만히 그 둘의 대화를 지켜 봤다.

아니, 정확히는 이서준과 대화하는 여학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건 그녀가 아름다운 외모에 혹해서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엔 그저 눈에 띄는 평범

한 여학생으로 보이지만 나는 아무 도 모르는 그녀의 비밀을 하나 알고 있었다.

박민예.

그녀는 마인이다.

본명은 ‘장예’.

한강에서 죽었던 마인, 장한의 딸 이다.

마법 길드.

보통 마법 길드라고 하면 마법의 계통과 상관없이 실력 있는 마법사 들이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을 말한다.

마법 학교를 졸업한 90% 마법사 는 이쪽으로 취업하며 던전이나 탑 을 공략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순수한 마법의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법 길 드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보조계 계통의 마법 길 드, ‘깨달음의 룬’이 있다.

전 세계에 5명 밖에 없는 S등급 보조계 마법사, 정윤슬이 만든 깨달

음의 룬은 어린 보조계 마법사들에 겐 꿈과 같은 길드였다.

적어도 1년 전까지는 그랬다.

“어? 뭐야? 길드장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텅빈 ‘깨달음의 룬’의 길드 사옥 내부.

수석 길드원, 박민희가 한 여성의 등장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길드장이 자기 길드에 왔는데 어 쩐 일로 왔냐니. 그게 무슨 말 같지 도 않은 소리냐?”

“와. 근데 진짜 오랜만이시네요. 내 년에 50 넘는 아줌마가 20대로 보

이시는 것도 여전하고.”

“그러니? 너는 20대면서 50대로 보이는 건 여전하네.”

“아씨.”

1년 만에 등장한 길드장, 정윤슬의 등장에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길드장 정윤슬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괴짜로 통하는 마법사였다.

길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부길드장에게 맡겨둔 채, 증명의 탑 에서 1년 넘게 나오지 않은 건 이 미 유명한 일화였다.

정윤슬은 텅 빈 길드 내부를 쭉

둘러 보았다.

“근데 좀 사람이 없어 보인다? 정 우찬 그 녀석은 어디 갔어?”

“에휴. 걔 그만뒀어요.”

“엉? 그만둬? 왜?”

“왜긴요. 길드장님이 길드 내팽개 쳐서 그렇죠.”

박민희의 말에 정윤슬이 헛기침을 했다.

“크홈, 그 녀석 언제 그만뒀는데?”

“한 반년 정도 됐나?”

“……이 새끼가 누님에게 말도 없

이.”

“길드장님이 증명의 탑에서 나오질 않는데 어떻게 연락해요.”

“그건 그렇긴 하지.”

“걔 말고 민진아, 이도현, 조정인, 에밀리, 박찬희, 메이슨도 나갔어 요.”

“뭐? 야이 미친! 핵심 맴버가 다 나갔잖아!”

정윤슬이 황당해서 소리쳤다. 방금 박민희가 말한 맴버는 ‘깨달음의 룬’의 핵심 간부진들이었다. 하지만 박민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정윤슬 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니까 누가 길드 내팽개치래요?”

“나 없이 잘 돌아갈 줄 알았지!”

“근데 왜 오셨어요? 증명의 탑 27 충은 결국 포기하셨어요?”

“미쳤냐? 내가 포기를 왜 해? 내 가 그거 돌다가 화딱지가 나서 지금 승부욕 장난 아니거든? 무조건 공략 할 거야.”

“아, 네. 다시 들어가기 전에 길드 해체하고 가세요. 저 퇴직금도 두둑 이 챙겨주시고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무섭다.”

“농담 아니에요.”

그때 박민희가 뭔가 생각났다는 둣 말했다.

“아 참, 어제 마법사관학교에서 시 험 참관할 길드 참관 신청서 보내라 고 연락 왔는데 보낼 거에요?”

“아니, 거길 왜 가?”

“길드장님, 지금 길드 무너지게 생 겼는데요. 당연히 가야죠. 부족한 멤 버도 채워야 하고.”

“됐다. 안 무너진다. 나 복귀했다고 기사 터트려. 그럼 길드 다시 잘 돌 아간다.”

정윤슬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하품 을 했다.

“에휴. 길드 나간 사람이 아까 말 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일 반 길드원들도 상당수가 나갔어요.”

“거참 끈질기네.”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야기에요.”

“하. 참관 일은 언젠데?”

“다다음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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