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35)

당연하지. 미래를 알고 있는 나한 테 이것만큼 좋은 돈벌이가 어딨다 고?

[당연하죠.]

[미쳤군요.]

한세연의 짤막한 답장.

뭐라 답장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다 시 메시지가 왔다.

[실망이네요. 당신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졌어요. 설마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뭐야, 진짜 실망했나 보네.”

[전 돈 잃는 도박은 안 합니다.]

[도박으로 돈을 따든 말든 관심 없 어요. 그런 도박을 한다는 게 중요 한 거지. 됐고 어차피 우리 거래는

이번 달까지니까 그냥 넘어갈게요.]

메시지에서 정이 뚝 떨어진 게 느 껴진다.

한세연은 계산적이고 신중한 성격 의 사람이다.

방금 내 문자로 나에 대한 인상이 나쁜 쪽으로 바뀐 모양이다.

[아 참, 어제 주문하셨던 포션은 거의 완성됐어요. 내일모레 맞춰서 같이 드릴게요.]

뭐라 답장을 하려는 사이 눈앞에 명성 메시지가 떠올랐다.

[등장인물 ‘한세연’이 당신에게 크 게 실망합니다. 당신에 관한 관심도 가 크게 하락합니다.]

[보상으로 1,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크홈.”

힘들게 쌓은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 졌다.

“뭐 어쩌겠어.”

나도 돈은 벌어야 하는데.

갑자기 귀찮음이 몰려와서 스마트 폰을 치웠다. 그런데 이번엔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알람이 울렸다.

[선배님! 맥주 반입한 거 안 이를 테니까 저 부탁 좀 들어주면 안 돼 요? (부탁하는 이모티콘)]

누군가 했더니 최서윤이다. 아무래 도 스마트 학생 수첩의 학생 주소록 을 보고 연락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부탁이라니.

‘얘가 나한테 부탁할만한 건 하나 밖에 없지.’

분명 자기와 이서준 사이를 이어달 라는 부탁이다.

원작의 신영준도 똑같은 일을 겪었 으니까.

‘웅, 읽씹.’

어차피 맥주에 관한 중거는 전부 없앴으니 이르든 말든 상관없다. 애 초에 최서윤 성격상 이를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다시 화면을 끄고 쉬려는 순간, 다시 알람이 울렸다.

“아, 끈질기네.”

[김선우, 너 진짜 나랑 스파링 파 트너할 거야?]

뭐야, 최서윤이 아니라 윤하영이네.

얘는 중요하니까 바로 답장해 줘야 지.

[어, 나랑 해.]

[그래 그럼.]

“어?”

예상 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솔직히 한 번은 더 튕길 줄 알았 는데.

살짝 당황해서 화면을 보고 있는데 다시 메시지가 왔다.

[서준이한테 물어보니까 너랑 스파 링 파트너하면 도움 될 거라고 하더 라고.]

“오…… 이서준. 나이스.”

번뜩 잠에서 깼다.

상체를 일으키고 허리를 쭉 폈다. 여태 엎드려 있어서 그런지 허리가 쑤셨다.

‘뭐야. 언제 잠들었었지?’

나는 살짝 기지개를 켠 후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풍경.

거의 매일 보는 2학년 A반의 교실 이었다.

“자…… 마법법 3조 2항. 여기는 시험에 나오니 체크 하시고……

눈앞에는 따분한 목소리로 늙은 교 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교사의 맞 은편에는 거의 모든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리 수업이 따분하다고 해도 이렇게 많 은 학생이 잠들 수 있을까 싶을 정 도로.

‘아, 이거 그거구나.’

이 상황이 뭔지 대충 알았다. 이건 원작에서도 묘사되었던 내용이니까.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원작과 같이

이서준, 유아라, 신영준만이 잠들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2학년의 1위 2위 3위가 나란히 잠 들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중에 밝혀질 내용이지만 저 법학 교사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의 졸음을 유발하는 특수한 마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에 해당되는 건……

이건 극소수의 인간에게 나타나는 잠재 개성이라는 힘이었다.

물론 저 잠재 개성은 발동 조건이 라는 게 있다. 그리고 아마 저 교사 의 발동 조건은 ‘지식을 가르칠 때.’

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크게 문제는 없지만, 먼 미래에 저 잠재 개성이 폭주하며 학교에 작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나중에 있을 법학 교사의 잠재 개 성의 폭주.

저것을 해결하면 과연 인과율이 오 를 것인가?

결국, 내가 현실로 귀환하기 위해 서는 인과율을 쌓아야 한다.

그렇다면 인과율을 쌓는 방법이나 쌓는 과정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흐음.”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후 수업은 어제 예고되었던 대로 대련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개 인 대련실로 이동해 대련을 시작했다.

나와 윤하영 역시 개인 대련실로 이동했다.

개인 대련실 안으로 들어서자 윤하 영이 내게 말했다.

“그럼 바로 대련 시작할까?”

“아니, 그건 나중에 하고 오늘은 구현 훈련이나 하자.”

“왜? 구현 훈련은 주특기 수업 때 하면 되는 거잖아.”

윤하영이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차피 너 기본기도 부족해서 대 련해봤자 크게 도움도 안 돼. 기본 기부터 제대로 배워야지.”

“……어제부터 느낀 건데 너 은근

히 나 무시한다? 내가 너보다 성적 훨씬 높거든?”

“성적과 별개로 기초가 없는 건 맞 잖아.”

“전교 꼴찌 주제에 입만 살았네.”

윤하영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한 판만 붙어보 자. 서로 수준은 알아야 할 거 아니 야.”

서로의 수준을 알아보자라.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매번 저렇게 전교 꼴찌라며 토를 달면 나만 피곤해지니까.

“그래, 한 번 붙자.”

“오. 진짜? 이제와서 말 돌리기 없 기다?”

“알았어.”

내 대답에 윤하영이 신난 발걸음으 로 뒤로 이동했다. 대련을 시작하기 에 딱 적당한 거리가 되었다.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그녀 에게 제안했다.

“그냥 붙으면 재미없으니까 지는 쪽은 알아서 상대방 말 잘 듣기. 어 때?”

“큭큭. 무슨 자신감이야? 그래, 좋

아.”

윤하영이 쿨하게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내기 대련이 성 사되었다.

나와 윤하영은 서로 마력을 끌어모 으며 전투 준비를 했다.

나를 바라보는 윤하영의 표정을 보 아하니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이 흘러넘치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 윤하영 정도면 아무리 마력이 부족한 나라도 손쉽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발현계 마법사는 어떤 점이 약점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 대련에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겨 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주느 냐다.

“시작!”

윤하영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다리 에 마력을 집중했다. 마력으로 강화 된 다리로 바닥을 박차며 윤하영에 게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보통 발현계 마법사는 강화계 마법사와의 근접 전투에 취약함을 보인 다. 경험이 부족한 녀석일수록 그런 점은 더더욱 부각된다.

내 주특기는 발현계지만 윤하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선 강화계 로 상대하는 게 편하다고 판단했다.

예상대로 윤하영은 지금과 같은 근 접전을 예상 못 했는지 크게 당황하 는 반웅을 보였다. 뒤늦게 얼음 덩 어리를 구현했지만 방출하기엔 이미 나에게 거리를 내준 상태였다.

“아앗!”

결국, 윤하영이 스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 치지 않았다. 곧바로 그녀 앞에서 서 손에 구현된 마법 구체를 조준했다.

윤하영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아씨!”

“자, 내가 이겼으니 이제 토 달지 마. 알았지?”

“……너 그런데 아까 대련할 때 보 니까 엄청 빠르던데 왜 전교 꼴찌인 거야?”

“어허.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집 중해.”

“아으, 알았어. 근데 이거 꼭 해야 해‘?”

윤하영의 손과 발에는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쥐어져 있었다. 그게 힘든 지 입술을 꽉 깨물며 버티고 있었다.

“쉿. 조용히 하고 얼음의 느낌을 몸으로 기억해봐.”

내가 윤하영에게 시킨 훈련은 속성 적응 훈련이었다.

보통 마법의 구현은 상상력에 많이 의존한다. 그리고 구현에 필요한 상 상력을 키우기 위해선 보통 두 가지 를 상상했다.

바로 속성과 형태이다.

막연히 무속성의 마법 구체를 떠올 리는 것보다 얼음창, 불화살. 이런 속성과 형태를 함께 상상하면 더 디 테일한 마법을 구현하기 쉽기 때문 이다.

“그냥 차갑다, 힘들다 이런 걸 느 끼지 말고 얼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걸 중점적으로 느끼라고. 눈을 감아도 얼음의 느낌을 제대로 상상 할 수 있게.”

“ 으응‘

“얼음의 느낌이 어때?”

“……딱딱해. 미끌미끌하고.”

“……어, 그래. 그리고 또 차갑지.”

“웅.”

그녀의 손에 쥔 얼음이 그녀의 온 기에 녹아 바닥으로 뚝뚝 물이 되어 떨어졌다.

“다시 손 펴.”

내 말에 윤하영이 다시 조그마한 손을 폈다. 얼음이 차갑긴 했는지 그녀의 손바닥은 벌겋게 변해있었다. 나는 얼음 봉지에서 얼음을 꺼 내 다시 그녀의 손에 쥐여줬다.

“얼음이 없어도 얼음을 상상할 수 있게 그 감각을 외워.”

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 났을까.

나는 그녀에게 이제 그만해도 된다 고 말했다.

“어? 이거 그만해도 돼?”

“웅, 어차피 수업시간도 10분 정도 밖에 안 남았어.”

내 말에 윤하영이 놀라서 시계를 확인했다.

“와, 진짜네. 시간 진짜 빨리 갔 다.”

“얼음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구현부터 해봐.”

“알았어.”

윤하영이 손을 뻗었다. 그녀가 눈 을 감고 마력을 집중했다.

동시에 그녀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얼음 덩어리가 구현되기 시작했다. 디테일이며 선명도며 평소보다 더욱 화려한 모습이었다.

“자. 눈뜨고 네가 얼마나 잘 구현 했는지 확인해봐.”

내 말에 윤하영이 눈을 떴다.

“어? 어어? 이거 뭐야. 이거 내가

구현한 거야?”

강한 마력이 담긴 얼음 덩어리.

윤하영은 자신이 구현한 얼음 덩어 리를 보더니 크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조금 놀라긴 했다.

잠깐의 적응 훈련으로 이렇게 뒤바 뀔 수가 있다니. 얘도 확실히 재능 이 미쳤다.

“이 감각 잘 기억해. 지금은 적웅 훈련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이 정 도 나오는 거야. 아마 다음 날 되면 또 까먹어서 원래대로 돌아올걸?”

“와아! 김선우 선생님!”

나를 바라보는 윤하영의 시선이 반 짝반짝 빛났다.

[등장인물 ‘윤하영’이 당신을 신뢰 합니다.]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수요일 아침.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나왔다. 수 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데 책

상 위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가 울렸

[저번에 부탁하신 포션 완성했어 요. 오늘 3시쯤 만날 수 있을까요?]

당연하겠지만 발신자는 한세연이었다.

성실한 그녀답게 이른 아침부터 참 바쁜 모습이다.

3시에 만나자고 하지만 평일엔 학 교 수업이 있으니 만날 수 없다. 나 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 평일은 7시 이전엔 만나기 힘듭니다.]

전송 완료.

그리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교복 을 입기 시작했다.

띠링!

[뭐 하시는 데 그리 바빠요?]

“……답장 진짜 빠르네.”

근데 한세연 엄청 바쁘지 않나? 어떻게 매번 칼답이지?

하지만 궁금증은 잠시 미루고 뭐라 고 답장할지 고민했다.

솔직하게 제가 학생이라서요. 라고 대답할 수도 없으니 그럴싸한 답장 을 보내야 할 텐데.

그렇게 1분가량 고민하다가 저번과 똑같이 신비주의 컨셉을 하기로 했다.

[알면 다칩니다.]

[그거 진지하게 재미없으니까 앞으 론 안 하시는 걸 추천해요.]

괜히 뻘쭘해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지하 투기장 입장권은 구 하셨나요?]

[네, 알아보니까 지하 경매장 회원 권이랑 같이 사용할 수 있더군요. 이따 밤에 만나서 동반 입장하면 될 것 같아요.]

“응?”

만나서 동반 입장하자고?

[설마 같이 들어오게요?]

[당연하죠. 지하 경매권은 거래가 안 된다니까요?]

마법사관학교에서는 매주 한 번씩 특별 선택 활동이라는 것을 한다.

특별 선택 활동이란 학교 측에서

학생들에게 실전, 강의, 탐방, 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마 련한 제도였다.

쉽게 말해 매 주 한 번씩 견학 수 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내일 특별 선택 활동은 3가지다. 오늘 자정까지 스마트 학생 수첩으 로 정보 시스템에 들어가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수요일의 모든 수업이 끝난 종례시 간.

50명의 학생 앞에서 장안철이 내 일 일정을 설명했다.

“각 특별 선택 활동의 출발 시각,

장소는 학생 수첩에 자세히 나와 있 으니 거기서 확인하도록.”

짧았던 종례시간이 끝나고 장안철 은 교실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들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 거야?”

“이번 주는 뭐 뭐 있는데?”

“마인 안전 교육, 동굴 탐험, 서울 연금술 협회 견학.”

“난 몸 쓰는 건 피할래. 연금술로 갈까.”

평소라면 학생들은 종례가 끝난 동

시에 곧바로 짐을 싸고 기숙사로 돌 아갔겠지만, 오늘은 내일 있을 특별 선택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 역시 자리에 앉아 혼자 고민했다.

음, 어디로 가야 할까. 신중히 선 택해야 할 텐데.

특별 선택 활동은 원작의 메인 스 토리와도 큰 연관이 있다.

가끔 등장하는 몇몇 빌런들은 학생 들이 학교 밖으로 나오는 이 특별 선택 활동 시기를 노려 기습 공격하 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메인 스토리의

큰 위기 상황은 없었다.

마인 장한을 내가 쓰러트린 여파로 원작의 흐름이 크게 바뀐 게 아니라 면 말이다.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켜고 학 교 정보 시스템에 접속했다.

찾기 쉽게 특별 선택 활동 선택하 라는 페이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1. 마인 안전 교육

2. 동굴 탐험

3. 서울 연금술 협회 견학

원작에서 이서준은 첫날 마인 안전 교육을 선택했었다.

나도 딱히 끌리는 선택지는 없으니 무난히 이서준을 따라가는 게 안전 한 선택인 것 같다.

‘1. 마인 안전 교육 선택.’

[선택 완료되었습니다.]

“됐다.”

이것으로 학교 일은 전부 끝났다. 나는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럼 슬슬 한세연을 만나러 가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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