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싸움으로 가면 승산이 없다.
기회는 녀석이 방심하고 있는 바로 지금.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조
준했다.
마나 최대치를 담은 압축된 마법 구체.
녀석의 머리를 날리기엔 충분하다.
물론 실패하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부디 내 마법이 녀석의 머리를 정 확히 맞추기만을 바랄 뿐이다.
‘간다!’
손끝에 마력을 집중해 녀석을 향해 방출했다.
강력한 마력 구체가 내 손을 떠나 녀석의 머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
아갔다.
그 충격파로 내 몸이 뒤로 밀려났 다.
눈 부신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힌 다.
동시에 장한이 고개를 돌리며 반응 했다.
제발 맞아라!
-콰아아아앙!
마법 구체가 녀석의 머리를 관통하 며 지면을 크게 강타했다.
거대한 굉음이 울리며 희뿌연 먼지 가 피어올랐다.
그 여파로 녀석의 전신이 먼지에 감춰졌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녀석을 보았 다.
마법이 녀석의 머리를 관통한 걸 보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녀석의 머 리. 즉, 뇌를 맞췄는지가 중요하다.
과연 공격은 성공적으로 들어갔을 까.
먼지가 사라지고 감춰졌던 장한의 흉측한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내 공격의 영향으로 녀석의 입과 볼 반쪽이 그대로 사라졌다.
“쓰읍.”
만약 인간이었다면 즉사할 만큼의 치명타.
하지만 육체의 강화와 체력 재생이 극대화된 마인에게는 아니었다.
실패했다.
조금만 더 위로 쐈더라면 녀석의 뇌를 날려버릴 수 있었을 텐데.
이 정도 공격으로 녀석은 죽지 않 는다.
크으으
장한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5충 아래서 보는데도 그 눈에 차오른 분 기가 느껴진다. 주먹까지 떨리는 걸 보니 제대로 열 받았다.
크어어어어一!
이성을 잃은 마인이 나를 향해 크 게 소리를 질렀다.
녀석이 바닥을 박차며 나에게 달려 들었다.
쿵쿵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공포스 럽다. 녀석의 몸이 도약했다. 몸은 무거워졌지만 움직임은 가볍고 빨랐다.
장한은 내가 있는 5충 옥상까지 단번에 올라왔다.
크으으
거친 숨소리.
반쯤 날아간 얼굴로 나를 노려본 다.
그 모습이 엄청 징그럽고 무섭다.
“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 나에겐 남 은 마력이 없었으니까.
‘남은 방법은 하나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사용 효과, ‘대자연의 심장’을 발 동합니다.]
[1 분간, 마나 회복 속도가 1000% 중가합니다.]
두근!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숨이 터 졌다.
두근두근……
한층 빨라진 심장 박동.
심장이 한번 뛸 때마다 대량의 마 나가 차올랐다.
마치 심장이 마나를 생성하는 공장
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마력의 충만감을 느끼다가 손 바닥을 펼쳤다.
3개의 압축된 마력 구체가 동시에 구현됐다.
그것을 보자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장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자연의 심장의 지속시간은 고작 1 분.
1분은 짧은 시간이다.
아마 녀석을 1분 내로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1분이면 녀석을 반죽음으로
만들 수 있다.
이서준을 포함한 그 일행들은 근처 의 번화가로 뛰어가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저 멀리서는 이상한 굉음이 계속해 서 울렸다.
그리고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서준은 이 모든 상황이 마인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복 선도 있었다.
오늘 한강에서 찍은 사진에 우연히 마인의 얼굴이 찍혀있었으니까.
“상황이 심각한 것 같은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이서준은 고개를 돌렸다.
20대 후반의 남성이 작게 중얼거 리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장현수.
그는 현 마법사 협회의 대테러 단 체인 특무팀 소속이며, 이서준의 마인 신고로 파견 온 마법사 중 하나
였다.
“하필 오늘 축제가 있어서. 큰일 났네.”
“축제는 왜요?”
이서준 옆에서 같이 뛰던 신영준이 물었다.
“오늘 축제로 사람이 많이 모여 있 었잖아.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이며 엄청 강해졌을 거야.”
“ 아.”
신영준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그나저나 괜히 헛고생했네요. 설
마 마인이 번화가에 숨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신영준은 한강에 있었던 마법사 협 회 사람들과의 마인 수색 작업을 떠 올리며 말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마인의 기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근처다. 분명 수많은 인간을 학 살하며 몇 단계는 강해진 마인이 날 뛰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의 방향으로 시 선을 돌렸다.
“.…”뭐야?”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한 것과 조금 달랐다.
마인은 몸을 웅크린 채, 붉은 창을 든 한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마법을 맞고 있었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온몸이 너 덜너덜해져 있었다.
마인은 고통에 계속 비명을 질렀다. 오히려 마인이 불쌍해 보일 정 도였다.
마인을 저렇게 압도하다니.
대단한 실력이다.
저 남자는 대체 누굴까.
손에 든 저 붉은 창은 또 뭐고?
그렇게 마법을 퍼붓던 남자가 갑자 기 마법을 멈추었다.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 다봤다.
왜 갑자기 공격을 멈춘 거지?
그때 남자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서준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에서 본 남자의 얼굴은 평범 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동그란 안경과 어울리지 않는 수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현수는 남자를 보더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마법사 협회 특무
부 소속 장현수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장현수는 슬쩍 바닥에서 움찔거리 는 마인을 보았다.
너덜너덜해진 마인의 육신이 천천 히 재생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녀석이 다 시 일어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발 생하지 않게 지금 확실히 목숨을 끊 어야 한다.
장현수는 허리의 검을 뽑아 마인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마인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장현수는 귀에 손을 대고 조용히 읊조렸다.
“상황 종료됐습니다.”
장현수는 검에 마력을 불어 넣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수염의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상황이 쉽게 풀렸습니다.”
“아닙니다.”
남자가 짧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굵었다. 마치 변조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장현수는 유심히 남자의 얼굴을 살
펴봤다.
마인을 혼자서 토벌하다니. 최소 B 급 이상의 마법사가 아니면 힘든 일 이었다.
거기다 어디 다친 구석도 안보이 고.
다치지 않고 혼자서 마인을 토벌했 다는 건, 그가 꽤 뛰어난 실력을 갖 고 있다는 증거였다.
저 정도 실력이면 분명 어디서 이 름을 들어봤을 텐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김선…… 아니, 김진우입니다.”
장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꽤 뛰어난 실력인 것으로 추측되는 것과 달리 이름 자체는 처음 들었다.
김진우…… 그런 사람이 있었나?
“아, 네. 김진우 씨.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김선우와 장현수가 대화를 나누던 사이.
이서준은 김진우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저 눈동자, 코. 입.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김선우?”
내 이름을 부르는 이서준의 말에 순간 몸이 움찔했다.
시선을 돌리니 이서준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되게 닮았네. 아니, 그냥 똑같 이 생겼는데.”
이서준의 중얼거림에 신영준이 반 옹했다.
“뭐가?”
“저 사람, 김선우랑 닮은 거 같아
서.”
“김선우? ……어? 뭐야. 진짜 닮았 는데?”
“와 진짜네? 수염만 없으면 아예 같은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데.”
이현주와 신영준의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괜히 찔려서 슬쩍 고개를 돌 렸다.
“저기, 혹시 동생 있으세요?”
그때 이현주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다행히 아직은 단순히 닮은 사람이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없는데요.”
나는 평소보다 더 목소리를 굵게 해서 대답했다.
“그럼 사촌 동생이라던가?”
“ 없습니다.”
“배다른 동생.”
“……없습니다.”
“흐음, 이상하다.”
이현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김선우 알아요? 마법사관학교 다
니는데. 18살.”
“그런 사람 모릅니다.”
“정말요?”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있습니까?”
“……음, 그렇긴 하죠.”
이현주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게 왜 아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점점 목소리가 굵어지시
네. 담배 자주 피우시나 보다.”
“너네 뭐하냐?”
우리를 지켜보던 장현수가 나섰다.
“우리 학교 학생 한 명이랑 너무 닮아서요.”
“닮기는. 혼하게 생기셔서 그런 거 겠지. 민폐 끼치지 말고 그만해라.”
그렇게 말하던 장현수가 나를 보더 니 아차하며 변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혼하게 생겼다는 게 안 좋은 의도로 말한 건 아닙니다. 정감 가는 얼굴이라고 할까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런 말 자주 듣 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이서준의 눈치를 살 폈다.
이서준은 아직 나를 향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시선을 거두지 않 았다.
어쩌면 나를 분장한 김선우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고.
나는 주머니에서 마법사 자격증을 꺼내 장현수에게 건넸다.
“제 마법사 자격증입니다. 여기로 실적 포인트 넣어주시고 토벌 보상 금도 여기로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건네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자격증 의 앞면이 이서준에게 잘 보이도록 했다. 예상대로 이서준은 자격증의 앞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마법사 자격증이 있다는 건 내가 김선우가 아닌 김진우라는 명확한 증거였다.
마법사 자격증에는 특수한 마법 수 식이 담겨 있어 위조가 불가능 하니 까.
자격증을 보던 이서준은 그제서야 나를 향한 의심을 거두었다.
그때 마법사 자격증을 확인하던 장 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C급?”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최소 B급 이상이라
고 생각해서……
장현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나는 장현수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 올렸다.
‘그런데 뭐 하다 이제 오신 겁니 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이곳에 오기 전 어
디에 있으셨나요?’
‘아, 저 학생들의 마인 신고를 받 고 한강에서 마인 수색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사진을 찍었 는데 우연히 카메라에 마인이 찍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왜요?’
……사진을 찍었는데 우연히 마인 이 찍혀서 늦었다니.
대체 이게 무슨 우연일까.
심지어 그 우연 하나로 이야기의 진행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이게 가능한가?’
생각해보면 불가능할 것까진 없었다.
애초에 원작의 흐름엔 우연적인 상황이 아주 많았으니까.
본래 원작의 스토리만 해도 그렇 다.
단순히 축제를 즐기려 했던 이서준 일행은 단순히 배고프다는 이유로 한강에서 번화가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번화가에서 폭 주를 시작하는 마인을 맞닥뜨리게 되고.
하지만 그 우연이 다른 우연과 겹 쳐지며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나비효과인가.”
아마 회귀하고 일주일간 활약한(?) 나로 인해서 생긴 변화일 것이다.
일주일 사이 정말 많은 일이 있었 으니까.
학교에서 전교 꼴찌가 되고, 이서준과 같은 팀이 되고, 특별 재능 장 학생으로 학생들의 주목을 받고.
아마 이 모든 사소한 사건들이 조 금씩 중첩되어 이서준의 행동에 변 화를 주었을 거다. 그리고 그 변화 가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 거 고.
이건 회귀 전의 내가 가장 우려하
던 상황이었다.